<170화 작지만···작아서 더 소중한 행복 Ⅱ 2>
결국 햄버거로 결정한 우리는 햄버거를 시키기 위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 엄마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 줬는데 결국 햄버거라니···.”
내가 햄버거 세트를 4개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면서 한탄하자 종혁이 말했다.
“각 나라별 햄버거에 대한 특징에 대해서 탐구해 보자고···.”
“그런 거 필요 없어.”
“난 떡볶이 먹고 싶었는데···.”
“그럼 오락실에서 한판 하고 분식점 갈까?”
“학교 앞 분식점이 방학에도 문을 여나?”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학원가에 즉석떡볶이 맛있게 하는 곳 있어.”
“거기 갈까?”
“난 떡볶이 매워서···.”
“그게 맵다고?”
종혁이와 현진이가 다음 메뉴를 가지고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나와 같이 조용하던 경수가 부지불식간에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아빠 암 걸렸다고 했잖아?”
“아···몸은 괜찮으셔?”
“이제는 집에서 통원치료해. 빠르게 발견해서 치료만 잘 받으면 일상생활 지장 없데.”
“다행이다.”
“치료비하고 생활비도 보험 덕분에 걱정 없고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아빠 동료라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좀···.”
“무슨 일인데?”
“아빠가 일용직 근로자로 일했거든 건설 현장에서···.”
“그거 되게 힘들 텐데···대단하시다.”
“힘든 일 하면서 친해진 사람이라서 아빠도 매정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은 가 봐.”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연대보증 같은 건 안 되는 거 알지?”
“돈 빌려달라거나 보증 서 달라는 거였으면 아빠도 단호하게 대답했을 건데 그게 아니라서 더 곤란한 것 같더라.”
“무슨 일인데?”
“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갑자기 노동조합? 거기에 부위원장이면 임원급 아니야?”
“맞아.”
“아니 갑자기 노동조합에서 너희 아버지한테?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으셨던 거야?”
“아니 아빠는 말 그대로 일용직이어서···.쉽게 말하면 하청 직원?”
“아···그런데 갑자기 노동조합에서 연락이 왔다고?”
“아빠가 암에 걸렸잖아.”
“그게 왜? 병원에 입원해서 일 쉬었다고 도와준다고 연락 온 거야?”
“아니···. 암에 걸린···물론 지금은 통원치료하고 계시지만···암에 걸린 노동자가 노동시위를 하면 어떨 것 같아?”
“어···사회적으로 엄청날 것 같은데?”
“맞아.”
“뉴스에서도 대서특필하겠다.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되고 좋은 거 아니야?”
“후···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더라고.”
“음?”
“우리 아버지 하청 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싶다고 한 적 있었데···정확히는 같이 일하던 직장동료가 같이 가입하자고 여러 명 서명받아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노동조합이니까 같은 노동자면 받아줬겠지.”
“아니 거절당했어.”
“뭐? 노동조합이라며?”
“하청 직원은 노동조합의 일원이 될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뭐야. 그게 무슨 노동조합이야.”
“그런데 이번에 경기가 되게 안 좋잖아.”
“어 외환 때문에 요즘 다들 어렵지.”
“그래서 노동환경이 악화되었다고 노동조합 가입을 늘린다면서 아빠가 일하던 하청 업체 직원들을 가입 시켜준다는 거야.”
“가입하면 좋은 건가?”
“가입하면 임금인상도 바로 적용받고 휴가도 정기적으로 가질 수 있으니까. 좋은 거지.”
“그럼 뭐가 문제인데?”
“아빠가 가입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그럼 전부 가입이 안 된다고 하더라.”
“뭐?”
“그리고 노동조합 임원 자리로 조건이 더 좋아져서 다시 역제안 받은 거야.”
“뭔가 좀 그러네···.”
“그러니까. 잘 모르겠지만 찜찜해.”
“아빠도 그렇게 생각돼서 거절하고 싶은데 그럼 분명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가입이 안 된다고 할 테니까. 아빠야 보험 덕분에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그 아저씨들은 경기가 안 좋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거 칼만 안 들었지 거의 강도 수준인데?”
“그러니까. 아프신 너희 아버지를 앞에 내 세워서 협상 카드로 써먹기 위해서 임원 자리에 같은 동료들 가입도 걸린 거네?”
“아빠는 이번에 받은 보험금으로 사실 장례식장 알아보고 있었거든.”
“장례식장?”
“화장터하고 장례식장하고···나는 몰랐는데 아빠가 친한 친구들이 제대로 장례도 못 치르고 그런게 가슴에 남아서 장례식장 차려서 친우들 무덤까지는 아니더라도 납골함 이나마···.”
“아···.”
나는 경수를 통해서 봤던 경수 아버지의 참담했던 8월의 어느 날이 떠오르면서 경수 아버지가 왜 장례식장을 운영할 계획을 세웠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럼 경수 아버지는 다시 일용직으로 일할 생각은 없으신 거네?”
“응.”
“하긴 암에 걸렸다가 완치된다고 해도 몸 쓰는 일을 계속한다는 건 무리가 있겠다. 나 같아도 가족이 아팠다가 건강해졌다고 해도 걱정돼서 그 전에 일하던 직장은 바꾸라고 할 것 같아.”
“맞아. 엄마가 나서기도 했고 아빠도 한번 아파서 큰 병원에 입원해보니까 생각이 바뀐 것 같아 그래서 장례식장도 생각해본 것 같고···.”
“그럼 그런 상황을 노동조합 측에 말하면 되는 거 아닐까? 나는 몸이 아파서 어차피 일하지 못하니까 동료 중에 한 명을 임원으로 해주고 가입시켜달라고···.”
“아빠도 그 이야기를 했지. 그랬더니 암에 걸린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더래.”
“정말?”
“응···. 별로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어.”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싶다고 하는데?”
“거절하고 싶은데···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마음에 걸리는 거지.”
“그런데 노동조합 부위원장 되면 막 일이 힘든 거야? 매일 시위해야 하나?”
“아버지는 몸이 아프니까 아마 인터뷰 자리에 참여하고 대부분은 사무실에서 자리만 지키면 된다고 하더라.”
“뭐? 노동조합 임원이면 일선에서 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노동조합 임원은 일선에서 일하지 않고 회사 측에서 월급을 따로 책정해서 준데···그런데 금액이···.”
“금액이?”
“아빠가 일용직으로 한 달 꼬박 일해야 버는 금액보다 훨씬 많데···나한테 말하지는 않았는데 그 돈 때문에 더 고민하시는 것 같았어.”
“왜? 많이 주면 좋은 거 아닌가?”
“노동조합이 회사와 노동자의 교섭권인가 그것 때문에 생긴 건데···오히려 노동은 안 하고 시위만 몇 번 지휘하다가 큰돈을 월급으로 받는다니까···아빠는 거부감이 드는 것 같아.”
“나 같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일 안 하고 가끔 시위하고 월급도 빵빵하게 주면···거기다 시위도 노동자들을 위해서 하는 거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빠는 그렇지가 않은 가 봐.”
“응?”
“아빠가 전남 출신이라고 했잖아?”
“어”
“그리고 매년 8월만 되면 그 뜨거웠고 고통스러웠던 날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거든.”
“근데?”
“나도 몰랐는데 아빠가 항상 그날엔 고향에 갔었나 봐. 나하고 엄마한테는 지방에 일하러 간다고 하고서.”
“아니 왜?”
“나도 몰라···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아···.”
“응?”
“그저 나하고 엄마한테 부끄러운 모습 보이기 싫어서였던 것 같아. 뭐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랑스러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다들 빨갱이라고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갈 곳을 잃어버린 게 자기의 선택 때문이라고 매도당하면···.”
“뭐?”
“나 학생회장 안 하기로 했어. 정확히는 못 하게 된 거지만.”
“학생회장 갑자기 학생회장은?”
종혁이의 놀란 표정에 우리는 경수가 어떻게 학생회장 자리를 제안받았는지 말했다.
“학교에서 네가 제안한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아니 학교에서도 내 방안에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받아들여졌어. 그런데 문제는 그런 해결방식은 내가 학생회장이 아니어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정상적으로 입후보해서 선거전으로 치르자고 하는데···.”
“이건 처음 이야기하고 완전히 다르잖아.”
“나도 그렇게 말했는데···. 그럼 처음에 제안한 게 나한테 유리하고 좋은 조건이라고 해서 불공정하고 학생회장이 되어도 괜찮냐고 하잖아. 거기서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어.”
“이건 완전히 이용해먹고 버린 거잖아.”
“후···그런데 그런 선택을 학교에서 한 이유가 뭔지 알아?”
“그러게 해결책도 제시했고 합리적인 제안이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꾼 이유가 뭐래?”
“아빠가 전남출신이라고···. 외고에 빨갱이 출신이 학생회장이 돼도 괜찮은 거냐고···.”
“뭐!”
나는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김 씨 아저씨가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이후에 내 인계점이 낮아진 것 같았다.
친구들이 화를 내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나 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경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를 자리에 앉혔다. 종혁이도 이런 내 모습은 처음 겪어봐서 그런지 굳은 표정이었다. 현진이만 대수롭지 않게 분위기를 바꾸면서 말했다.
“꼭 찔리는 게 있는 곳에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매도하더라. 외고 이사장이 누군데?”
“글쎄 관심 없어서 모르겠는데···.”
“하긴 누가 이사장 이름을 외우고 다니겠어.”
“어쨌든 아빠가 전남 출신이라고 이런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빠는 8월에 엄마하고 나한테 말없이 내려갔다 오곤 했데···.”
“그런데?”
“문제는 당일 날 가면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하루 전날 가고는 했는데···.”
“했는데?”
“거기서 민국당 대표를 만났는데 좋은 만남은 아니었데.”
“민국당이면 민주화를 위해서 앞장섰다고 그럼 추모를 위해서 간 거 아니야?”
“그런데 술에 잔뜩 취해서 여종업원한테 추파 던지는 모습을 보니까. 아빠 인생이 전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데.”
“그걸 이제야 말씀하신 거야?”
“그게···. 내가 학생회장에 입후보 안 하겠다고 하니까. 아빠가 속에 있는 말을 꺼낸 것 같아.”
“입후보?”
“아···상황이 바뀌었다고 학생회장을 선거로 뽑겠다고 했다고 한 거지?”
“그럼 경수가 입후보해서 될 수도 있는 거네?”
“그런데 난 나한테 그런 제안을 했다가 말을 바꾸는 행동을 보니까···뭐랄까 정떨어진다고 할까?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
“그런 말을 속상한 마음에 말했는데···아빠는 그래도 도전해보라는 말하고 함께 속에 있는 말을 꺼낸 거지.”
“맨정신에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해?”
“두꺼비 한 잔 했지···.”
“뭐?”
“두꺼비가 뭐야?”
“그걸 안남시에서 구했다고?”
“한 번씩 전남에 갈 때 사서 오시나 봐 특별한 날 아껴서 마시려고···.”
“아···.”
“나한테 한 잔 주면서 불콰해진 얼굴로 말씀하시는데 뭔가 울컥하더라.”
우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런데 나 병문안 온 거 아니었냐?"
“무슨 아픈 데가 있어야 병문안이지.”
“그냥 겸사겸사 모일 곳이 필요했던 거지.”
장난스러운 친구들에 대답에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친구들의 질문에 항상 답을 찾고 해답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는 해답이 아니라 속에 있는 말을 꺼내고 서로 공감해주면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