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불확실성 3>
어두운 밤하늘 유일한 달빛만이 산이라고 하기에는 볼품없는 곳을 비추고 있다. 산이라고 하기에도 언덕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한 장소에 사람이지만 기척이 적어서 유령처럼 느껴지는 존재들이 대치하고 있다.
“문고리 권력자 통칭 어르신으로 불리는 자.”
“그런 존재가 정말 있다는 건가?”
“나도 확신은 못 하고 있었지 어제까지는 말이야.”
“그렇다는 말은···.”
“오늘에야 그 실체를 직접 마주했다. 어르신 방에 들어갔던 패기 넘치는 재무국 공무원을 한 명 작업하라는 지시 덕분에···.”
그 실체를 확인했다는 갈풀의 말에 김 씨 아저씨는 무거운 침묵으로 답을 했다. 그런 김 씨 아저씨를 보는 갈풀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온 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닭살이 올라온 걸 그 순간이 지나고서 인식할 수 있었다.
‘뭔가 노리는 게 있는 건가?’
“자네는 청와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나?”
“경무대로 불리던 시기부터 하면···.”
“그런데 그런 넓은 땅과 건물이 처음부터 정부에게 있었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
“누군가 그 땅과 건물을 초대 대통령에게 넘겼기 때문에 대통령관저로 사용할 수 있었지. 그게 누굴까?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게 힘쓴 사람은?”
“···!”
“그때부터 문고리 권력의 탄생이었지.”
“처음에는 단순한 권력을 탐하는 이로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건가?”
“그것까지는 내가 전문분야는 아니니까. 하지만 각하가 암살당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본다.”
“···!”
“독재 정부이기는 하지만 빠른 경제발전과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국민의 모든 힘을 합쳐서 일궈낸 한강의 기적···그걸 원하지 않았던 이가 있었던 거지.”
“그게···.”
“국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서로를 향해 총질하는 세계를 만들어 준거지.”
“···.”
“자네가 받았던 부당한 임무들도 그 연장 선상에 있을 거야.”
드득―.
김 씨 아저씨의 몸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김 씨 아저씨나 갈풀이라고 불린 남자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화가 날만 하지. 임무를 위해서 자신조차 버리려고 한 김 씨니까.”
“···.”
“내가 말했지. 너무 믿지 말라고. 회사라고 해도 사람이 운용하는 거고 신이 아닌 이상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임무 따위는 없다고 말이야.”
“그래···난 순수했던 것 같군.”
“내가 항상 자네를 보면서 순수하다고 놀리기는 했지만···자네의 그런 표정을 보자니 씁쓸하군.”
“그럼 나를 도와주겠나?”
“크큭···김 씨가 이런 말도 하도 감회가 새로운데?”
“···.”
“대가 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내 신조인 걸 알면서 그러나?”
“···.”
“하지만 김 씨···자네라면 한 번쯤 무상으로 도와주지.”
“그런가···.”
“여기 청소는 자네가 하라고 난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까.”
“전부···?”
“설마···내가 당했다는 흔적도 적당히 만들어주고 치워달라고···.”
“후···꼬리를 여기서 자른다는 건가?”
“겸사겸사인 거지. 그 대신에 한 번쯤 도와준다니까?”
“무상은 아닌 것 같은데···.”
“어차피 할 일이었잖아? 내가 아니었다면 두 명을 처리했어야 할 텐데 덕분에 하나만 처리하면 되니까 더 좋은 거지.”
“여전히 멋대로군.”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은 하면서 살아야지.”
“꺼져.”
김 씨 아저씨의 신경을 장난스럽게 살살 긁더니 이내 가벼운 어조지만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했다.
“묻지 않는군. 내가 오늘 다녀온 장소를 말이야.”
나는 갈풀의 가볍게 말하는 말에 긴장으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어르신이라는 실체가 있던 곳의 장소?’
김 씨 아저씨가 긴장이 풀리지 않은 자세로 대하는 걸 보면 단순한 동료라고 보기에는 복잡한 관계로 보였다.
이제까지 대화를 하면서도 실체를 확인했다는 어르신이 있던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일부러 언급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던 것 아니었나?’
나처럼 김 씨 아저씨도 갈풀이라는 남자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는지 반문했다.
“무슨 의도지?”
“안락한 노후를 위해서 은퇴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나?”
“정말 은퇴 당하고 싶다는 건가?”
김 씨 아저씨가 팔을 벌리자 언제 손에 투명한 끈이 걸려있는지 달빛에 반사되는 빛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투명한 끈? 아니 뭔가 특수한 처리를 한 건가? 평범한 낚싯줄 같은 것과 달라 보이는데···.’
진정하라는 듯 권총을 들고 있는 반대편 손으로 펴서 김 씨 아저씨를 향하게 한 갈풀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는게 없다는 말은 하지 않지. 믿지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와 자네의 이익이 합치되는 방향이기 때문에 말하는 거라면?”
“···.”
“자네 정도의 사람이 3팀과 그리고 3팀의 배후인 어르신이라는 자와 대립한다? 나로서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네. 오늘 이곳으로 순순히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
“···.”
“나는 3팀 내에서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기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
“···.”
“그런데 회사에서 이런 일을 종종 부탁하는 전문가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니. 아지트를 공개할 생각이 아니라면 함정이 분명했지.”
“그런데도 이곳으로 순순히 온 건가···?”
“오늘 내 파트너는 보시다시피 허세 가득한 신입이고 적당히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전문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 거지.”
“어째서···.”
“지금 내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키가 나도 필요했거든.”
“그게···지금 상황이라는 건가?”
“그렇지. 전문가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이가 누굴지 궁금했는데···. 김 씨 자네일 줄은 나도 예상 밖이었다네. 물론 기분 좋은 예상 밖 상황이지만 말이야.”
“···.”
“회사에서 강제은퇴 된 자네라면 지금의 나로서는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지.”
“자네가 원하는 데로 이용하겠다는 의민가?”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거지. 결국 회사 쪽에서 손을 쓰기 전에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자네가 말한···어르신이라는 자가 있는 장소를 발설하면서 말인가?”
“못할 이유도 없지.”
“···.”
“내가 3팀에 있으면서 들은 어르신···자네라면 3팀에 소속되었을 때 감을 잡았을 텐데?”
“그건···.”
“정말 형체가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면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정보부 요원으로서는 최고의 자질이지만 이미 은퇴 당한 마당에 자네 생각을 말해보라고···.”
“3팀의 행동 자체가 회사의 규정을 어기거나 아니면 경계에 서 있는 행동이 대부분이었다. 침투나 잠복이라고 해도 그 선을 넘었다고 확신한 순간이 있었지.”
“그런데도 3팀장은 제재를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윗선에 보고를 하지도 않았겠지···.”
“회사의 규정대로 운영되는 팀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3팀장 자리는 확고했고···.”
“누군가 뒤를 봐주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3팀 내에서 말하던 어르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실체가 없다고 확신할 수 없겠지···.”
“그래. 3팀의 뒤에 있는 존재가 있다고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3팀이 국가가 아닌 개인을 위해서 움직이는 건 국기문란행위라고 생각했을 거고···.”
“그래.”
“결국 자네는 강제은퇴 당한 거지···.”
“···.”
“그런 위험한 일인데도 3팀의 뒤를 쫓는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복수가 맞나?”
“글쎄···.”
“···?”
“내가 거기까지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뭐···그건 중요하지 않겠지.”
“이제 어르신이라는 자와 마주한 곳을 말해줄 차례 아닌가?”
“그렇군···. 그런데 살아 돌아올 자신은 있나?”
“···!”
“3팀과 협조하고 있는 어르신 주위에는 3팀만이 아니라 3팀을 통해서 은퇴한 자들이 깔려있다.”
“그게 무슨···.”
“자네처럼 강제은퇴 당한 게 아니라 3팀에서 은퇴 후 경력을 살려서 취업까지 알선해 준거지.”
“그게 어르신의 경호다?”
“그래.”
“정말···.”
“후후···. 재미있지?”
“위치는?”
갈풀이나 김 씨 아저씨 서로 그 자리에서 서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무언가 교환을 한 건지 확인을 하듯 잠시 시간을 들이더니 대화가 이어졌다.
“좋다.”
“···.”
“왜 안 가고 있지.”
“자네 동료가 틈을 안 보여서?”
“뭣?”
“자네하고 같이 온 친구 말이야.”
“···.”
나는 갈풀이라는 남자의 말에 놀라서 순간 집중이 흐트러졌다.
두 명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손을 들고 일어서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이에···
야옹―.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보석이 박힌듯한 푸른색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검은 밤하늘을 닮은 색의 털을 가진 고양이가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들어냈다.
“고양이였나···?”
모습을 들어내기 무섭게 하악질을 하더니 이내 숲속으로 사라졌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한 걸까?’
다행히 고양이 덕분에 위기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가면 고양이 간식이라도 사서 다시 한번 와야겠네.’
고양이가 사라진 수풀을 바라보던 김 씨 아저씨와 갈풀이라는 남자는 어두운 숲을 투시하도 하듯 바라봤다.
아직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듯 주변을 살피는 김 씨 아저씨와 갈풀이라는 남자였지만 시간이 지체된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흠···. 뭐 예상하지 못한 만남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나는 이만 세상에서 사라지지···.”
그 소리와 함께 산 아래로 사라지는 갈풀이라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김 씨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이내 비닐봉지를 쓰고 총상까지 입은 남자를 내려보다가 자리를 갈풀이라는 남자가 내려간 산 아래와 반대 방향인 산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체를 이대로 두고 움직이는 거지?’
분명 갈풀이라는 남자는 김 씨 아저씨에게 시체의 은닉 최소한 자신의 행방에 대한 뒤처리를 넘기고 사라진 걸로 보이는데 김 씨 아저씨는 그것과 다르게 산 위로 올라갔다.
‘시체를 치우는 것보다 급한 일이 있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