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불확실성>
다시 한번 운산에 재민이의 휴대폰이 꺼졌다는 기숙사로 향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하던 허 경정이 말했다.
“선배가 보고서 마지막에 손글씨로 물음표가 적혀 있었는데 담당자한테 물어보니까. 휴대폰이 잠깐 켜졌다가 꺼졌다고 하더라고···.”
“그럼 기숙사가 아닌 곳에서 휴대폰이 한번 켜졌다는 거 아니에요?”
“그게···말이 안 되는 위치라서 휴대폰 위치 추적이 오류가 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더라고 위치도 말해주지 않으려고 했어.”
“네?”
“말이 안 돼서 보고서에 누락 했다고요?”
“응.”
“거기가 어딘데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수도권 외곽에 의천군이 있는 건 알지?”
“네. 군부대가 몰려있어서 거기 사는 주민들이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마다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곳 아닌가요?”
“경수는 잘 아는구나?”
“뉴스에서 몇 번 나왔던 것 같아요.”
“잠깐 휴대폰이 위치가 잡혔던 장소가 의천군이라는 거야.”
“그럼 재민이가 운산에서 의천군으로 이동했다는 거 아닌가요?”
“그게 담당자의 말도 이해가 되는 게···한 시간 사이에 그렇게 멀리 갈 수 없다는 거지. 고속도로를 타고 과속주행을 한다고 해도 두 시간은 걸릴 거리를 한 시간 만에? 그래서 담당자가 물음표만 표시하고 보고서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해.”
“확실히 이상하네요.”
“꼭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허 경장이 말한 것처럼 운산시에서 의천군까지 순간 이동한 것도 아닌 이상 한 시간만에 이동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앞으로 발달할 교통망이 발전한다고 해도 물리적 거리를 순식간에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걸리는 시간을 두 시간 걸릴 거리를 한 시간에 가게 해줄 뿐이지.
‘그럼 재민이 휴대폰이 정말 이상 신호를 보낸 걸까?’
휴대폰이 발달하기 전 기본적인 통화와 문자를 보내는 지금 오히려 더 튼튼하다. 스마트 폰으로 바꾸고 싶어서 자신이 쓰던 휴대폰을 일부러 바닥에 던졌는데도 스크래치만 나고 통화는 잘만 되었다던 일화를 생각하면 말이다.
휴대폰 고장도 아니고 물리적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순간이동 같은 방법이 아니라면···?
하지만 의천군은 군사시설···즉 군 공항이 있는 곳이니까.
‘김 씨 아저씨가 말한 회사 사람이라면 군 공항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할 거야.’
나는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휴대폰을 방안에 두고 현관을 나섰다.
어머니는 편의점 때문에 늦고 동생은 기주네에 갔기 때문에 내가 늦은 시간에 밖으로 향하는 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가볍게 조깅 하는 복장으로 나선 나는 아파트 산책로를 타고 올라가 운남시를 둘러싼 산자락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산행을 접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제자리에서 운동을 하면서 운동이 끝나면 산을 내려갈 것처럼 하고 사람이 없을 때는 강화된 육체를 사용해서 성큼성큼 산을 타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해가 급격하게 기울면서 사람들의 모습도 뜸해졌다.
금고를 열어 미리 준비해둔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후드 달린 점퍼와 편한 바지로 갈아입고 신발도 무게가 좀 나가지만 튼튼한 워커로 갈아신었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은 금고에 다시 넣고 사람들 눈을 피해서 의천군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막연하게 재민이의 휴대폰 신호가 마지막에 잡혔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이동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건 성미에 안 맞아.’
회귀 전 나는 참고···참고···또 참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일까?
미래의 정보를 가지고 돈도 많이 벌고 다시 찾은 내 가족과 행복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면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사건 사고가 내 눈앞에서 벌어지면 충동적으로 나서고 말았다.
‘사실은 위험하더라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서고 싶었던 게 내 속마음 아니었을까?’
내 발걸음은 위험을 향하지만···
내 마음은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자유롭다.
모순되지만 그게 지금 내 심정이었다.
멀리 군부대가 보였지만 그것보다 내 시선을 사로 잡는 건 다른 장소였다.
‘군부대와 다른 별도의 공간인데 헬기가 착륙할 공간이 확보되어 있네?’
이곳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휴대폰을 집에 놓고 의천군에 대한 지도만 본 상태에서 달려오다가 산을 넘어서 민가로 내려가기 전 별장과 같은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수도권 외곽에 별장이 지어지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산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었다.
‘헬기 착륙장을 확보한 별장이 많지는 않겠지?’
거기다 의천군 군사공항이 바로 옆인데 그 소음을 참아내면서 헬기 착륙장을 마련한 별장을 짓는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일 수도···단순히 돈이 많아서 일수도 있지만···.’
나는 만에 하나라는 생각에 멀리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달빛만으로도 내가 별장을 살펴보는데 무리가 없었다.
‘육체 강화가 범용성이 크긴 해.’
별장은 불빛 하나 없이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건가?’
좀 더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멀리서 어두운 승용차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밤이라 멀리 울리는 바퀴의 거친 소음이 아니었다면 차가 별장으로 오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어두운 밤에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 움직인다는 건···.’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았는데도 승용차가 무사히 별장에 도착했을 때 승용차의 색이 검은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산길을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고 올라올 수 있었지?’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차 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건장한 남성이 별장으로 들어갔다가 커다란 가방을 지고 나왔다.
‘무슨 가방이 사람만 하네···설마?’
내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가방이 혼자서 꿈틀한 것 같았지만 어두운 밤에 그것도 순간이었기 때문에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검은 승용차가 별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고민했다.
‘별장을 살펴보는 게? 아니면 차를 따라가야 하나?’
순간의 고민은 순간으로 끝내고 빠르게 별장에서 떠나는 승용차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 산길이라 천천히 주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붙는 건 금방이었다.
어두운 산길을 조심히 내려간다고 해도 어째서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았는지 의야 했는데 산길 사이사이 어두워졌을 때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표시가 되어 있었다.
‘저렇게 작은 흔적만 보고 어두운 산길을 탈 정도면 훈련된 사람일 거야.’
나는 저들이 느끼지도 못할 내 숨소리조차 죽이면서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따라붙었다. 놈들은 의천군 외곽까지도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쫓아가는데 문제가 없었다.
의천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자 헤드라이트를 켜면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지고 가는 짐이 짐인 만큼 과속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속도가 좀 빨라지기는 했지만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야.’
놈들이 고속도로라도 탈까 봐 긴장된 상태로 놈들을 쫓았지만 다행히 국도로만 이동했다.
남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것인지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안전운행을 했기 때문에 놈들을 쫓는 데는 수월했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위치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위치에서 쫓아가는데 더 신경을 써서 이곳이 어딘지 모르겠어.’
돌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우선은 놈들을 쫓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
외곽 진 길만 따라서 달려서 그런지 처음 놈들이 차량을 멈췄을 때 잠깐 쉬었다 가려고 하는 것인지 의심했다.
하지만 아예 시동을 끄고 둘 다 밖으로 나오자 놈들이 오고자 했던 장소가 이곳이라는 걸 알고 전체적으로 살펴봤다.
저 멀리 민가의 불빛이 비치기는 하지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산행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낮고 볼품없는 산이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낮은가?’
인적이 드물 수밖에 없는 공간에 그것도 늦은 시간에 도착한 두 명의 덩치 큰 남자.
‘무슨 목적일까?’
의문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지만 놈들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은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도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좀 더 접근해볼까? 아니면 놈들이 멀어졌을 때 그 짐가방을 확인해볼까?’
잠깐 고민에 잠긴 사이에 둘이서 산이라고 하기에는 어정쩡한 높이의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놈들이 넣어둔 짐가방이 궁금했지만 차 열쇠 없이 열다가 차에서 도난방지음이 마음에 걸렸다.
‘우선 놈들부터 제압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놈들이 올라간 산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인기척이 아니라 묘한 느낌이 느껴졌다.
‘뭐지?’
분명 다시 살펴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무언가 놈들의 뒤를 쫓았다는 확신이 들면서 손에 식은땀이 나왔다.
나는 땀이 바닥으로 떨어져 흔적이 남지 않도록 옷으로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그 뒤를 쫓기로 결심했다.
‘경제 흐름에서 이미 확인된 악재보다 확인하지 못한 불확실성이 더 큰 혼란을 야기한다고 했어.’
상대가 긴장해야 할 정도의 강자라면 더욱 신중하게 정체에 대해서 알아내야 한다.
단순히 뒤를 쫓아봐야 맨 처음 덩치 둘 그리고 신원미상의 위험인물 나 이렇게 꼬리 잡기 게임이 될 뿐이었다.
나는 작은 산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 시야라면 높은 곳에서 살펴본다면 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 가능해.’
평소와 다르게 무조건 빠르게 움직이기는 게 아닌 조심스럽게 산을 타기 시작했다. 흙바닥을 밟지 않고 바위나 나무만을 타면서 산을 올랐기 때문에 놈들의 대치상황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