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선한 이익집단은 없다 5>
우리나라는 권위주의적으로 사람을 단순히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경수가 알아본 관리인 아저씨는 은행장에서 은퇴 후 소일거리로 모교 기숙사 관리일을 하고 있는데 은행장까지 했던 자신이 관리인 일을 한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굳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저씨가 은행장을 할 때 봤던 한국과 기숙사 관리인이 되어서 보는 한국은 전혀 다르다고 하더라.”
“왜? 월급이 다르다는 건가?”
“아니···사람들의 시선이 다르데···.”
“···?”
“은행장일 때 출근 시간보다 2시간씩 일찍 다니면서 정년퇴직까지 지각을 한 번도 안 하셨데.”
“한 번도?”
“그게 본인의 성실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힘들어도 지키려고 엄청 노력했다고 하더라.”
“은행장이 일찍 출근하고 야근까지 하면 부하직원들이 눈치 볼 것 같은데?”
“그래서 은행장이 되고서 야근은 안 하고 정시퇴근했다고 하던데?”
“되게 열심히 사신 것 같다.”
“그렇게 일했던 게 몸에 배어서 기숙사 관리하면서도 일찍 출근하고 퇴근을 정시에 했다고 해.”
“거의 반평생 그랬으니까. 관리일 하면서도 성실하셨겠네.”
“그런데 첫 달 일하고 들은 소리가 잊히지가 않는데.”
“···?”
“아니···박 씨는 왜 그렇게 일찍 퇴근하나? 아침에 일찍 온다고 퇴근할 때 일찍 가라는 소리는 아니라고···.”
“뭐?”
“정시 퇴근이라며?”
“왜 정시에 퇴근하냐는 거지.”
“아니 그럼 퇴근 시간을 왜 정해놓는 건데?”
“그래서 아저씨가 아니 난 계약된 시간에 퇴근하는 건데 왜 뭐라고 하는 거냐고 했더니.”
“했더니?”
“기숙사 관리인 아저씨한테 사회생활 해본 거냐고···.”
“은행장까지 했는데?”
“사회생활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건데?”
“은행장일 때하고 기숙사 관리인 할 때하고 똑같이 가진바 직분에 열심히 했는데 대우가 다르더라는 거지.”
“대우가 다른 것에서 끝나면 모르는데···교직원들이 기숙사 관리인 아저씨를 무시하니까···학생들에게도 권위가 없어진 거지.”
“기숙사 관리인 일 하면서 학생들 귀가 시간 그러니까 통금하고 쓰레기 분리수거 하고 빨래가 가장 큰 문제인데···어떤 권고를 해도 그게 지켜지지 않는다는 거지.”
“한번 안 지키기 시작하면 나는 붙잡고 재는 안 잡는다는 소리가 나올 텐데?”
“그래서 지금 엉망인 상태로 계속되고 있어서 큰 사고가 나기 전에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중이라고 하더라.”
“뭐?”
“그런데 후임자가 구해지지 않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다고 하셨어.”
“어? 일은 힘들고 박봉에 대우도 안 해주니까. 사람이 안 구해지나 보네. 그럼 그만둔다는 소리까지 했으면 학교 측에서도 좀 배려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학교에서는 나가기 전에 사람을 구하고 가야지 안 그러면 책임감 없다는 그런 소리나 하고 있다네.”
“원래 그런 거야? 일하다가 그만둘 때 후임자도 구해놓고 나가야 하는 거?”
“원칙은 회사에서 이번 경우라면 학교 측에서 해야 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나라가 도의를 그렇게 자주 언급하잖아. 도의상 어떻게 그냥 두냐. 도의상 일하다가 인수인계도 없이 가냐. 그런 식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
“인수인계를 받을 사람이 있어야지 인수인계를 해주지.”
“그럼 관리인 아저씨는 그만둔다고 한지 얼마나 된 건데?”
“1년 넘었다고 하던데?”
“뭐?”
“그런데 왜 아직도 다니시는 건데?”
“아직 사람을 못 구해서.”
“그걸 왜···.”
“말했잖아. 내가 답답해서 나도 관리인 아저씨한테 왜 그러냐고 말했더니···아저씨가 하는 말이 도의상 그럴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기숙사 관리인 아저씨 성격을 학교 측에서도 알고 모르는 척하고 사람도 안 구하는 거 아냐?”
“나도 그게 의심스러워서 알아봤는데···공고가 올라오긴 했어. 나도 봤고. 그런데 대우가 형편없더라고.”
“뭐?”
“지금 관리인 아저씨가 받는 대우보다 더 못해. 아마 일부러 사람 구하기 힘들게 그렇게 올린 게 아닐까 의심되긴 하는데···공고를 안 올린 건 아니니까···.”
“그럼 학교에 임금을 좀 더 올려주더니 대우를 좀 더 해주는 조건으로 바꿔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물론 말해봤다고 해. 그런데 학교 사정상 어렵다고···그렇게 말한 다음에는 담당자가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데.”
“그냥 아저씨한테 다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는 거네.”
“아저씨가 성실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니까. 끝까지 이용해먹겠다는 거지.”
“안좋은 조건에 사람이 구해져도 좋고 안 구해져도 괜찮다는 발상인 거네?”
“이렇게 버티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런데 아저씨가 힘들어하는 거 하고 고노일 하고 무슨···?”
“음···말하자면 길어지는데···.”
“어떻게 관련이 되는 건데?”
현진은 자신이 할 말을 정리하더니 악순환의 시작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기숙사를 관리해야 하는 사람을 학교 측에서 무시하니 학생들에게 발언권이 약해지고 그 약해진 발언권으로 관리가 제대로 안되면서 상황이 악화되는 악순환에 대해서 말이다.
“기숙사에 처음에는 교환학생들이 시작이었는데 나중에는 전 기숙사생이 점점 늦게 들어오고···술 냄새도 풍기고···.”
“뭐?”
“물론 아저씨가 재제하고 그럼 안된다고 경고했지. 하지만 이미 권위가 낮아질 대로 낮아져서 말도 잘 안 듣지만 고노하고 관련된 일이라고 하니까. 아저씨도 강하게 나가기 곤란해진 거야.”
“기숙사 통금시간 안 지키고 술 냄새 풍기는 게 고노하고 관련이 있다고?”
“처음에는 교환학생들이 고노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수업 끝나고 바로 오기 힘들다고 조금 늦게 입실하게 된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해.”
“음···그거야 그럴 수 있지. 학교 부지에 제대로 된 휠체어가 다닐만한 장소가 한정되어 있거든.”
“그래서 기숙사 통금시간보다 늦어도 잡을 수가 없었데.”
“아···.”
“그런데 나중에는 고노하고 같이 다니지 않던 학생들도 지키지 않는 거야. 그래서 막아 세우고 벌점을 주려고 하니까. 항의를 하더래.”
“뭐라고?”
“고노를 도와주다가 갑자기 서로 헤어져서 들어온건데···너무한거 아니냐고.”
“어?”
“나중에 아저씨가 고노에게 물었는데 그냥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하는데···. 아저씨가 보기에는 그냥 아이들이 자기 일을 도와주니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렇다고 한 것 같다는 거야.”
“허···.”
“그런데 자세히 묻기도 힘든 게 교사도 아니고 기숙사 관리인일 뿐이니까.”
“어렵다.”
“그렇지?”
“고노는 최소한 유유 부단한 성격인 것 같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는 성격인 것 같아.”
“처음에 다리뼈가 부러져서 몇 달간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걸 잘못 통역되어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고···.”
“같은 교환학생 친구들이 고노 때문에 늦었다고 핑계를 대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간다는 거지?”
“고노한테는 나쁠 게 없으니까?”
“그것보다는 다들 고노를 배려해주니까. 그런 분위기에 심취한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고.”
“그럼 고노도 학생회 임원 자격은 있는 건가?”
“뭐?”
“딱 봐도 엄청 유유 부단하고 결정도 제대로 못 내리고 분위기에 휩쓸리는데?”
“자기가 거짓말하거나 진짜 다치지 않은 건 아니니까.”
“그건 좀···.”
“마스다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임원으로 하기에는···.”
“그럼 환경부장 자리에 누구를 앉히려고? 사실상 교환학생 측에서 뽑아달라고 한 학생은 고노하고 마스다 둘 중에 한 명이 후보라면서?”
“교환학생 입장에서 고노나 마스다나 다 좋겠지.”
“왜?”
“고노는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는 성격이라면서 그리고 마스다 같은 경우는 자기가 나서는 면이 있지만 돈도 잘 쓰고 걔들 입장에서 나쁠 게 없지.”
“그럼···.”
“내 생각에는 둘 중에 누굴 뽑아도 문제가 될 거야.”
“특히 기숙사 관리인 아저씨가 이제는 못 버티겠다고 하는데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닐까?”
“그래도 책임감 때문에 사람 구할 때까지 있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
“심적으로 힘드니까 몸이 많이 상해서 일하고 싶어도 더 일할 상황이 아니래. 다음 학기 전까지 사람 구해지지 않아도 그만두게 될 것 같다고···.”
“가족들이 일을 더 못하게 막는다고 하더라. 나 같아도 못하게 할 것 같아. 버는 것보다 병원비가 더 나온다는데 굳이 아파가면서 할 이유가 없잖아.”
“말 그대로 책임감 때문에 하고 계신 건가?”
“음···.”
경수가 고민에 빠진 듯 책상 위의 임원 명단을 노려보면서 장고에 빠졌다.
나와 현진은 남은 콜라를 마저 마시면서 대화했다.
“마스다가 되든.”
“고노가 되든.”
“다음연도 학생회장은 아주 힘들겠어.”
“아저씨가 그만두면 누가 기숙사 관리인이 되겠어. 지금 엉망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경수는 우리에게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나 혼자라면 이렇게까지 내막을 알아내지 못했을 거야.”
“뭘···.”
“나도 막막했는데 기숙사 관리인 아저씨하고 이야기하다가 알게 된 게 대부분인데···정작 고노하고는 대화도 못 했어.”
“아니야.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충분해.”
“되게 난감한 상황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너희들 덕분에 방법이 생겨난 것 같아.”
“뭐?”
나와 현진이 서로를 보면서 당혹스러워하는데 경수가 우리 등을 한 번씩 치면서 밝게 말했다.
“말 그대로 이건 나 혼자 해결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 하지만 너희 말대로 다음연도 학생회장을 하고 싶다는 사람을 구하기 힘든 것만큼은 확실히 알았잖아?”
“어? 그건 그렇지. 학교에서는 대체로 이런 엉망인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면서 복잡한 일에 손대고 싶어 하지는 않고.”
“그래서 방법이 보여.”
“뭐?”
놀라서 경수를 바라보는데 막막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무슨 방법을 찾은 것인지 안경을 추켜세우면서 웃는 모습에 나와 현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