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선한 이익집단은 없다 3>
마스다는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추운 겨울인데도 짧은 치마에 통 부츠를 신고는 같은 교환학생들과 함께 어울려서 안남시 시내를 돌아다니는 건 그나마 가까운 곳에 가는 거고 멀게는 남해 해안 도시 가까우면 서해안을 따라서 나보다 우리나라에 대해서 진심인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 여행에 진심? 공부하러 온 건 아닌 것 같네.’
마스다와 어울리는 교환학생들은 형편이 나쁘지 않은 걸로 보이는 무리였다. 좋게 말하면 여유가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공부하라고 보낸 유학을 하면서 물 쓰듯 학비를 쓰는 것 같았다.
‘마스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일까?’
옆에서 잠깐 살펴보기만 해도 믿기 힘든 씀씀이를 보여주는 마스다의 모습에 누구나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스다의 기억을 살펴보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교환학생들의 대화여서 그런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지만 난 외할아버지의 힘들었던 생생한 삶의 기억 덕분에 일상적인 일본어 대화를 듣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머 누구야? 잘생겼다.”
“잘생기긴. 그래도 키가 커서 보기는 좋네.”
“근처 학교 학생일까?”
“고등학생으로 안 보이는데 대학생일지도 몰라.”
저들끼리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마스다와 무리 사이를 지나다가 부딪치기 직전에 몸을 틀어서 그들 사이를 지나왔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아찔한 두통과 귀속에서 울리는 이명을 참으면서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중했다. 흐릿한 오래된 사진 속 장면처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사진이 움직이는 듯한 이상한 부유감이 느껴진다. 이명이 섞인 듣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점차 대화 소리가 선명해진다.
마스다로 보이는 소녀와 그런 소녀와 닮은 중년 여성이 멍하게 TV에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엄마 오늘 너무 추운데 난방기 켜면 안 돼?”
TV 옆에서 우웅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에어컨이 보였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여서 추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습기 때문에 에어컨 끄는 건 안 되니까. 정 추우면 고타츠라도 켜렴.”
마스다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춥다는 듯 양팔로 어깨를 감싸더니 고타츠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는 시원하고 다리는 따뜻하니까 좋다.”
그런 여자아이 앞으로 달콤하고 시원해 보이는 커다란 수박을 조각내서 내려놨다.
“또 수박이야?”
“여름이라고 지원 나오는 과일이 전부 수박이네? 이제 물려?”
“아냐. 수박 시원하고 맛있어. 근데 다음엔 화채로 해 먹자.”
“다음 주에 조미료 지원 나오니까. 설탕 좀 많이 받아두지 뭐.”
“저번 달에는 지원 안 받았어?”
“조미료만 한참 쌓아놔서 넣어 둘 곳이 없어서 안 받았더니···설탕하고 간장이 아슬아슬하네.”
“자주 쓰는 조미료를 더 주면 좋을 텐데.”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양만 줄 수 있다니까. 별 수 없지.”
“이번에 여름 이불 들어오면 쓰던 거 버릴까?”
“왜? 별 모양이 예쁘게 들어가서 좋다며.”
“그렇긴 한데 땀 냄새나”
“그럼 새 이불 받으면 버리고···.”
띠리링―.
“아빠···오셨나보다.”
“으···아빠 올 때마다 냄새나서 싫어.”
그런데 문 앞에 와 있는 건 양복을 입고 서류철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
“어머 후지타 씨가 웬일로···.”
“현장방문 나왔습니다.”
“아···네···들어오시겠어요?”
한여름에 청사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많이 더웠는지 땀범벅이었던 후지타라고 불린 남자가 시원한 물을 한잔 원샷 하더니 좁지만 시원한 방안과 고타츠까지 켜져 있는 걸 보고도 서류를 넘기면서 식상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남편 아니에요. 결혼한 적도 없는데요.”
“그럼 마스다 아오이의 친아버지가 가출하고 연락받으신 적 없다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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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까지 언급해주신 사항에 대한 걸 정리한 서류 여기 여기에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평소와 같은 계좌로 지원금이 나오나요?”
“그럴 겁니다.”
“멀리 안 나갈게요.”
“네 그럼.”
공무원으로 보이던 후지타라는 남성이 나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돌린 마스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마스다의 멍한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
“잘했어. 모르는 사람···특히 공무원이 집에 오면 어쩌라고?”
“인사만 꾸벅하고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그래.”
“그런데 왜 말하면 안 돼? 그리고 아빠···나도 아빠 있는데···왜 아빠가 있다고 말하면 안 돼?”
“아오이···. 이 더운 여름날 잘나간다는 공무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우리 집까지 방문했지?”
“웅···.”
“아오이는 이렇게 집에서 시원하게 에어컨 켜고 너무 추우면 고타츠도 켜고 시원한 수박 먹고 집에서 편하게 있고 싶어 아니면 더운 날 시간하고 돈에 쫓겨서 살고 싶어?”
“으··음···당연히 시원한 수박 먹고···.”
“그래. 집에서 편하게 있고 싶으면 엄마 말만 잘 들으면 돼.”
“그렇지만 아빠는?”
“아빠는 아빠대로 잘살고 있어.”
“아오이···자주 못 보는데?”
“아빠는 원래 아오이 자주 안 봤어.”
“어···.”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봐도 냉정한 마스다 어머니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게 서로 좋은 거야.”
눈을 감고 뜨듯 검은 화면이 지나가자 마스다가 좀 자란 것 같았다.
학교를 다니는지 검은색 백팩을 메고 벚꽃길을 걷고 있었다.
“마스다 너 수학여행 안 간다며.”
“응.”
“왜?”
“지원금이 안 나와서.”
“뭐?”
“마스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어? 전혀 몰랐는데···.”
“엄마가 지원금 잘 챙겼거든.”
“어···?”
“수학여행 가고 싶지 않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거야.”
“그런데 지원금 받은 거 좀 모으면 수학여행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뭘 모아?”
“어? 그러니까. 돈을 모으는 거지.”
“아르바이트할 수도 있고.”
“아직 학생이라 아르바이트는 불법이야.”
“오빠는 아르바이트 다니는데?”
“너희 오빠도 아직 고등학생 아니야?”
“요즘 일할 사람 구하기 힘들어서 부모님 동의 얻어오면 일할 수 있어.”
“마스다 너도 해봐. 한 달 만해도 수학여행 갈 수 있을걸?”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카네코 친구라고 하면 좀 도와주지 않겠어?”
친구들의 말에 마스다는 집으로 뛰어가듯 들어가 엄마를 찾았다.
“엄마.”
“애가 밖에서 들어오면 손발부터 씻고 들어오라고 했지?”
마스다 어머니의 잔소리에 손발을 씻고 거실 겸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외치듯 말했다.
“나 아르바이트하고 싶어.”
답은 마스다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터져 나왔다.
“안돼.”
“엄마···.”
“마스다 내가 일하기 시작하면 평생일 해야 하는데 그게 좋은 거니?”
“어?”
“처음에는 하루 이틀 그런 식이지 그러다가 지원금 외로 수입이 있다고 걸리면 앞으로 지원금을 받을 수 없어. 받던 사람이 지원금에서 탈락되면 다시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과정이 있는지 아니?”
“그럼···.”
“지원금을 받으려면 별도의 경제활동을 하면 안 돼.”
“하지만 나도 수학여행 가고 싶은데···.”
“그건 엄마가 해결해준다고 했잖아.”
“그렇지만 수학여행 신청은 이번 주까지 인걸···.”
“그런 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다 해결되게 되어 있어.”
마스다는 제가 원하던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의 반응은 어제와 달랐다.
“마스다가 최저생계비 지원받는 다면서?”
“그렇다더라.”
“어제 선생님이 그러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한테까지 수학여행비를 받는 건 사회적 형평상 옳지 않다는 내용으로 항의가 들어와서 아직 수학여행을 신청하지 않은 학생 중에 최저생계비 지원을 받는 가정은 수학여행비를 내지 않아도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 한다고 말이야.”
“너는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우리 엄마가 운영회 임원이잖아.”
“그런데 왜 운영회에?”
“수학여행비가 학교경비로 처리하기보다는 운영회에서 기부금 식으로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더라.”
“운영회는 학교에 운동부 어머니들이 대부분 들어가 있지 않아?”
“운동부 활동비가 많이 들어간다고 운영회에서 지원하는 건 들어봤는데···.”
“학교에서 비난받기는 싫고 손해나는 것도 싫으니까. 운영회에 넘긴 거라고 엄마가 화를 내는데···”
“잠깐 그럼 마스다는 공짜로 수학여행 가는 거야?”
“그렇지?”
“아···그건 좀 그렇지 않나?”
“우리 엄마는 내가 수학여행 가고 싶다고 하니까. 아빠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한 달 넘게 부업하고 있는데···마스다는 그냥 가는 거잖아.”
“하지만 마스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게 마스다 잘못은 아니잖아?”
“그렇지만 카네코가 아르바이트 자리 알아봐 준다고 했는데도 거절하고 공짜로 가겠다는 건 좀···.”
아이들이 마스다를 피하고 눈치를 주는 것 같았지만 마스다는 모르는 어른이 집에 찾아올 때 침묵했던 것처럼 모르는 척하면서 학교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집으로 뛰어가서 엄마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엄마. 친구들이 나 최저생계비 지원받는다고···. 수학여행도 공짜로 가고···.”
“다 네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어?”
“걔네는 부모가 돈 번다고 하루에 얼굴 보기도 힘든 아이들이야. 그런데 아오이 너는 엄마하고 아빠하고 물론 아빠는 자주 못 보지만 엄마는 매일 같이 있잖아?”
“응···.”
“그러면서 생활은 걔네하고 똑같은 수준으로 하니까. 배가 아파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만약에 걔네가 너한테 해코지를 하면 이렇게 하렴.”
다음날 마스다는 선생님을 바로 찾아갔다.
그리고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최저생계비를 받는다고 같은 친구를 상대로 이지메를 하거나 안 좋은 소리를 하면 그 학생은 처벌받을 수 있다. 다들 조심하고 친구끼리 가정형편으로 매도하면 안 된다.”
각반의 담임과 조례 시간에도 이런 내용을 강조하자 아이들은 마스다를 어려워하면서 멀리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전부 나를 멀리하는 것 같아.”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질투를 하는 거란다 학교 다니기 싫으면 자퇴해도 괜찮아.”
“자퇴?”
“그래.”
다음날 마스다의 담임은 마스다가 자퇴를 하겠다고 하자 마스다를 말리면서 다른 방안을 강구 하자고 했다.
마스다는 담임선생님의 관심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퇴는 보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스다가 자퇴를 하지 않고 집으로 오자 엄마에게 시달려야 했다.
“왜 자퇴를 안 하고 그냥 온 거니? 엄마가 동의서까지 서명해줬잖아.”
“그게···담임선생님이 자퇴는 인생에 큰 결정이니까···한번 심사숙고 같이 해보자고···.”
“자퇴를 해서 학력이 낮을수록 지원금 받기 수월한 걸 왜 몰라. 담임은 그냥 자기 반 학생 중에 자퇴생이 생기는 게 싫어서 붙잡는 것 뿐이라고.”
“하지만···.”
“친구들이 너 멀리하면서 싫어한다며 그런데도 학교 다니고 싶어?”
“어?”
“엄마가 지원 물품 기다린다고 집에 있었더니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늘···내일은 안 되니까. 다음 주에는 엄마하고 같이 교무실에 가자.”
“응···.”
다음날 마스다는 생소한 상황에 막다뜨렸다.
“마스다 미안해. 자퇴까지 생각하는지 몰랐어.”
“우리는 그냥···수학여행 이번에 외국 나간다고 비용이 컸잖아. 그런데 너는 그냥 간다고 하니까···.”
“그건 좀 그런 거지 내가 싫거나 그런 게 아니야.”
“맞아. 마스다가 그런 걸 결정한 게 아닌데···아무래도 부모님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눈에 밟혀서 내가 잠깐···.”
“아니···난 괜찮은데···.”
마스다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지만 평소와 다르게 엄마가 집에 없었다.
“엄마···나는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