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선한 이익집단은 없다 2>
“그렇게 골치 아프면 너도 학생회장 하지 말고···. 성적도 좋은데 왜 고민하고 있는 거야?”
“제안을 받은 거지. 월반에 조기 졸업까지 혜택을 줄 테니까. 골치 아픈 학생회장을 맡아달라는 거야.”
“학교에서 골치 아픈 문제를 떠넘기는 거 아냐?”
경수의 고민도 이해가 되었다.
경수가 외고에서 1등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정도라면 학교에서 배우는 학업은 사실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엄청나니까.’
그런 경수에게 월반과 조기 졸업은 지금 상황을 타게 할 딱 좋은 조건일 것이다.
학연 때문에 외고를 선택한 상황에서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건 경수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 것이다.
‘욕심이 날 만하네.’
“어떻게 하면 시끄러운 교환학생들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회장을 조용히 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네.”
“학생회장 자리가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그리고 월반이나 조기 졸업이 가능한 것도 경수가 조건이 돼서 가능한 거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조건이 만족 돼도 학교에서 그걸 용인해줘야 하는데 귀찮은 일 떠넘기고 해주겠다는 게 문제인 거지.”
“쉽지 않네.”
“쉬웠으면 경수가 이렇게 다크서클 달고 나타나지 않았겠지.”
“그런데 공부 잘하는 건 알겠는데 갑자기 학생회장이 돼서 문제를 다 해결하라는 건 무슨 심보인 거야?”
“학교에서는 성적 좋은 애가 권력자나 마찬가지니까.”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그거야 매번 1등 하니까···모르는 거고.”
“···?”
“높은 성적을 가졌다는 권위로 해결하라는 거야?”
“그게 권위가 되기는 해? 그리고 어떻게?”
“그래서?”
“너희가 가능하다면···도와줬으면 하는데···.”
“우리가?”
“겨울방학이잖아?”
“교환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
“안 돌아가고?”
“교환학생 끝내고 돌아갈 학생들은 이미 돌아갔지.”
“그럼 남아있는 학생은···?”
“학생회에 진심인 교환학생들하고 집에 갈 여력이 없어서 이번 겨울방학을 학교에서 보낼 학생들하고 남은 거지.”
“그럼 결국 고노 쥰페이라는 친구하고 마스다 아오이라는 친구는 남아있다는 말이네.”
“거기다가 사실 대부분의 교환학생이 고노하고 마스다로 나뉘어서 다투는 것 같아.”
“같은 교환학생끼리?”
“한국 학생이 아닌 자국 학생끼리 왜?”
“후···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왜? 오해 안 하고 들을 테니까. 속 편하게 말해봐.”
“고노 측 그러니까. 고노 쥰페이하고 그를 지지하는 교환학생들 입장은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복지에 앞장서겠다는 말로 학생회 임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고노가 장애인이야?”
“그것까지는···어쨌든 고노가 교환학생으로 올 때부터 휠체어에서 생활한 건 맞아.”
“그럼 마스다 측 주장은 뭔데?”
“마스다는···자기처럼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 학생에게 복지지원이 우선이라는 거지.”
“뭔가 둘 다 틀린 말은 아닌데 자리는 하나라는 거네.”
“그렇지. 대부분의 문제가 그런 거지. 나쁜 사람은 없는데 해결방법은 서로 양보하거나 아니면 승리하는 쪽이 독차지하거나.”
“어렵다.”
“이러니까. 학교에서 발을 빼고 희생양···. 아니 희생양은 너무 간 것 같고 학생회에서 이 사건을 처리하라는 말이네.”
“어떻게 학생회 임원 선발하는 문제가 사건이 되기도 하네.”
“내 말이···.”
“그럼 경수 너는 어쨌든 학생회장은 하고 싶은 거지?”
“하고 싶다기보다는 내 목표를 생각하면 그 조건을 거절하기 힘든 거지.”
“음···외고 월반에 조기 졸업은 솔직히 너무 매력적이기는 하다.”
“그럼 우리가 도와줘야 할 건 뭔데?”
“뭐? 도와준다고? 안 돕겠다는 건 아닌데 무슨 도움이 되려나?”
“음···곡해하지 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속 시원하게 말해봐. 어차피 너도 어느 정도 생각해보면서 알아봤을 거 아니야?”
“교환학생이라는 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거든.”
“그래?”
“그런데 마스다가 어떻게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건지 궁금한데···.”
“아하···관련 서류는 교무실에 있고 겨울방학이지만 아직 기숙사나 학교에 교직원이 남아 있으니까···우리한테 대신 알아봐 달라는 거야?”
“그런 위험한 일을 부탁할 리가 없잖아. 마스다에 관한 소문을 좀 들었는데···.”
“무슨 소문?”
“마스다가 자신을 지지하는 아이들한테 밖에 나가서 밥도 사고 간식도 종종 돌린다고···.”
“형편이 어렵다면서?”
“그런데 그건 소문일 뿐이니까. 그리고 학생회장으로 내정된 거나 다름없는 나를 보면 분명 행동을 조심할 거란 말이야.”
“자주 찾아와서 말을 걸었다고 했으니까. 얼굴은 확실히 기억하겠네.”
“그래서 그 소문이 정말인지···아니면 고노 측에서 낸 헛소문인지 알고 싶어서···.”
“아···.”
“확실히 얼굴을 알고 있는 경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네.”
“나는···.”
현진이 고심하는 표정으로 대답하려는 사이에 내가 빠르게 덧붙였다.
“춥다고 힘들어하는 현진이하고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 나 혼자 움직이는 게 훨씬 편해.”
‘나 혼자 움직이는 게 더 편하지. 현진이하고 움직이면 아무래도 말도 안 되는 육체 능력을 보여주면 의구심을 가질 테니까.’
“야···.”
“왜? 같이 가게?”
경수의 말만 들으면 마스다는 기숙사보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황당하다는 현진의 반응에 내가 오히려 같이 갈 거냐고 묻자 말꼬리를 돌려서 경수에게 질문을 하는 현진이였다.
“그럼 마스다만 의심하고 있다는 거야?”
“솔직히 고노에 대한 소문도 있기는 한데···.”
“무슨 소문?”
“화장실 혼자 간 적이 있다고···.”
“장애인 화장실이면 혼자 갈 수 있는 거 아냐?”
“우리 학교 그런 시설이 없어. 그래서 더 의아한 게 어째서 기반시설이 없어서 불편할 텐데 고노가 교환학생으로 온 걸까···.그리고 화장실에 혼자 갔다는 소문이 걸려서···.”
“고노는 뭐라고 말했는데?”
“손에 묻은 게 찝찝해서 손을 씻으러 갔다고···.”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는데?”
“뭐야? 다른 소문이 또 있었나 본데?”
“그게···고노가 휠체어를 들고 기숙사로 들어간 걸 본 사람도 있다고 해서···.”
“뭐? 그건 진짜 말이 안 되는 소문 아니야?”
“설마···?”
“나는 고노의 태도도 좀 의심스러워서···.”
“고노는 왜?”
“고노는 유복한 편인 걸로 알고 있거든.”
“부모님이 재력가 인가 보네?”
“그런 부모가 자식이 휠체어를 탈 정도로 힘든 상태인데 멀리 그것도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있는 학교로 교환학생으로 보냈다?”
“어?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내 생각에는 교환학생을 신청했다가 어쩌다 사고를 당해서 휠체어 신세를 지다보니···그게 익숙해진게 아닐까?”
“아니 휠체어가 어떻게 익숙해져?”
“음···나도 몰랐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휠체어 타고 다니는 고노한테 엄청 친절하더라고···.”
“어?”
“아무래도 학교에서 불편을 겪을 일이 많으니까. 손도 잡아주고···안내도 해 주고···.”
“설마···고노가 다친 상태를 거짓으로 꾸몄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응···.”
“확실히 의심스럽긴 하네···.”
“그런데 너 아픈 거 아니지 하고 휠체어를 뺏어 버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니까.”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면 학교에서 완전 인성 쓰레기로 소문나겠는데?”
“후···그래서 고민하다가 고노나 마스다 둘 중에 누구라도 정말 곤란한 상황인 사람한테 임원 자리를 주려고···.”
“만약에 둘 다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둘 다 진짜 힘든 상황인 거면?”
“그건 그때 고민해보지 뭐···. 이것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한 거야.”
“그럼 경수 친구지만 얼굴을 모르는 다른 학교 학생인 나하고 현진이가 고노하고 마스다에 대해서 알아보면 된다는 거지?”
“그게···가능하면 어려우면 괜찮아.”
“뭘···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럼 네가 마스다를 마크해 난 고노를 마크할게.”
“응?”
“네 말대로 내가 추위를 많이 타니까. 고노를 맡겠다고.”
내가 고노와 마스다 둘 다 알아보겠다고 할까 봐 현진이 급하게 끼여 들어 말하는 모습에 나는 작게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런 나와 현진의 모습을 보고 경수가 말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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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하늘 추운 겨울바람 때문에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산자락에 여러 명의 발자국 소리가 나뭇잎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후윽···.”
“너 훈련 제대로 안 받았냐? 왜 이렇게 숨이 거칠어.”
“죄송합니다. 어제 파라오에서 근무를 서느라···.”
“일하다가 딴짓했구만···너 3팀장이 아무리 느슨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거기에 너무 빠져들면 안 돼.”
“은퇴할 때 되면 한자리 주시지 않겠습니까?”
“3팀장이 어련히 자기 라인 이곳저곳에 깔아뒀지만···넌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그런 음지에서 계속 있는 게 좋냐?”
“선배는요?”
“젊었을 때는 몰라도 나이 들면 난 양지에서 느긋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그럼 3팀에 지원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지금이야. 회사에서 3팀에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나 때만 해도 말이야.”
“선배가 3팀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달랐다고···벌써 수십 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라오에서 술 마시고 그러고 싶냐?”
“그게 좋아서 지원한 건데요?”
“후···그래.”
“그런데 작업장이 왜 이런 산속에 있습니까? 보통 바닷가나 항구에 있지 않습니까?”
“이건···제대로 자연사 시켜야 해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
“자연사?”
“자연사 내지는 최소한 자살로 보여야 해.”
“네?”
“노인네 집무실까지 쳐들어갔을 정도면 고위 공무원이나 높은 직급일 텐데···갑자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오히려 언론에서 떠들어 달라고 부채질하는 거지.”
“아···그래서···.”
“그런데 왜 자신의 작업장까지 오픈하면서 우리한테 오라고 했을까요?”
“글쎄···보통은 우리가 부르면 외진 곳에서 목표물만 받아서 스토리 짜고 바로 작업하거든.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인데···.”
“선배도 처음이라고요?”
“노인네가 지랄발광하는 거 보기 싫어서 급하게 처리하느라 전문가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고는 있는데···여엉···감이···.”
털썩―.
어두운 풀숲이 잠깐 흔들렸다고 생각한 순간 큰 덩치를 가진 인형이 갑작스럽게 주저앉듯 넘어졌다.
작은 소음이었지만 선배라고 불리던 남자는 말하던 말을 흔들림 없는 어조로 가볍게 말하면서도 행동은 날렵하게 소리가 난 쪽으로 틀면서 허공을 봤다.
“다···당신은···.”
“오랜만이다. 갈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