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57화 (157/205)

<157화 선한 이익집단은 없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오랜만에 보게 된 경수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너 괜찮아?”

“밤새운 거야?"

나와 현진의 질문에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아···.”

“갑자기 인생 다 산 것처럼 왜 그래?”

“내가 학생회장이 될 것 같은데···.”

“뭐? 축하해. 그런데 언제부터 학생회장에 나갈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저번에 만났을 때 만해도 아무 말 없었잖아.”

“사실 나도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 난 월반에 집중하고 있었거든···.”

“그럼 내년 학년이···.”

“내년에 3학년.”

“뭐? 이대로 조기 졸업하는 거 아냐?”

“조기 졸업이 최종 목표는 맞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는데?”

“나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하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게 죽상이야.”

“피부 트러블 장난 아닌데? 좋던 피부가 왜 이렇게 망가졌어?”

“내가 피부는 무슨···.”

“무슨 일 있는 거지?”

“휴···내가 외고에서도 1등을 했거든.”

“넌 어디서든 그럴 줄 알았다. 대단하네. 그런데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렇게 초췌해진 거야?”

“아니. 내가 월반신청 한다고 하니까. 부장 선생이 와서 나한테 학생회장을 하라고 하네?”

“와우···학생회장? 선거로 뽑는 거 아니야?”

“생활기록부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우리 학교 학생들이 학생회장에 관심이 없는지 지원을 잘 안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선생이 밀어주면 거의 된다고···.”

“내성적 성격도 아니고···뭐가 문제인데? 학생회장 하면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아···나 소문 들은 것 같은데 외고 학생회장 출신들이 졸업할 때쯤 시험 망친다고.”

“뭐? 그런 기분 나쁜 속설은?”

“알고 보니까. 그 소문이 단순히 소문만은 아닌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우리 학교하고 자매결연을 한 외국 학교가 있는데 일본에 있는 학교야.”

“자매결연? 그럼 서로 교환학생 하는 건가?”

“좋아 보이는데? 언어가 달라서 힘들기는 하겠지만···.”

“좋지 매년 졸업할 때마다 일본어하고 능력자들이 배출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학교에서도 처음에는 한두 명이었다가 이제는 거의 한 학급 정도의 인원을 교환학생으로 보내기 시작했어.”

“학교에서 좋은 기회를 살려준 거 같은데 뭐가 문제야? 너도 교환학생 가고 싶어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하고 그룹 스터디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니까. 우선 집에서 멀어지면 학비가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어서···.”

“그래도 너희 학교 기숙사도 운영하고 있지 않아?”

“자매결연학교도 기숙사 운영해서 숙소는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학비나 그 밖에 생활비는 부모님이 부담하니까.”

“아···그건 확실히···지금 환율 엉망이라 더 힘들기는 하겠다. 그런데 갑자기 교환학생은 왜 말한 건데?”

“교환학생 수가 늘어난 만큼 학생회에 교환학생 담당부가 있거든. 직책은 환경부장이지만 사실상 학교 내에서 교환학생 기숙사 배정이나 수업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거기다가 구내식당 이용 인원까지 결정할 수 있어.”

“구내식당도 있었어?”

“학생들이 전부 이용할 정도는 아니고 선생들만 이용하는데 워낙에 적은 비용으로 음식 퀄리티가 좋아서 학생들도 선생님 찬스로 가서 식사하고 싶어 하는 곳이야.”

“나도 들어본 것 같아. 외고에 복지시설 중에 구내식당이 가장 좋다고.”

“그런데 갑자기 구내식당은 왜? 아직 학생들은 이용하지 못한다면서.”

“구내식당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인원이 60명쯤 되나 봐. 그런데 선생하고 학교 임직원들 전부하면 50명 조금 안 되는 거지.”

“그럼? 10명 정도는 더 여유가 있다는 거네?”

“응.”

“그럼 좋은 거 아니야? 뭐 힘든 친구들 식사할 수 있게끔 배려해 준다든지.”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지. 교환학생 중에서 신청자를 선착순으로 받았는데···. 재작년인가? 교환학생 중에 사정이 여유가 없는 친구가 진정서를 넣었나 봐. 공정하게 선착순도 좋지만···자신처럼 처지가 어려운 학생을 먼저 배려하면 안 되냐고.”

“그래서 교환학생을 담당하는 학생회 임원이 결정하게 된 거야?”

“어. 아무래도 같은 교환학생이면 더 공정하게 구내식당 이용권을 배분하지 않겠냐는 거지.”

“이용권?”

“어려운 처지의 학생을 먼저 고려한다고 하면 남은 자리의 인원수가 더 적어지니까. 차라리 식권으로 나눠주고 돌아가면서 공정하게 배분하라는 의미였는데···.”

“그렇게 속 편하게 운영될 리가 있나.”

“그래서 학생회장이 되면 교환학생 중에 임원을 뽑을 때마다 일본 측 교환학생 무리가 내부에서 극하게 대립한다는 거지.”

“구내식당 이용권이 그 정도였어?”

“그렇다기보다는 구내식당 이용권이 촉발한 것뿐이지···내부적으로 뭔가 서로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

“그게 뭔데?”

“나도 이제 1년 다닌 곳인데 얼마나 잘 알겠어. 그냥 서로 사이가 안 좋다가 구내식당 이용권을 놓고 극한 대립까지 가게 된 상황에서 학생회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야.”

“고민이 깊어서 그렇게 초췌해진 거야?”

“아니.”

“···?”

“그것보다는 나를 학생회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어디서 소문이 난 건지 교환학생 중에서 학생회 임원에 추천받은 교환학생이 매일같이 쫓아다니면서 나를 괴롭히는데···.”

“···?”

“아마 서로 안 좋아하니까. 한쪽으로 결정되면 1년간 고생해야 하게 될까 봐···그러나 보네. 차라리 빨리 결정하고 서로 다투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어때?”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좀 어려운 문제가 엮여있어서···.”

“어려운 문제?”

“인권문제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그 경계선에 있는 문제.”

“···?”

나와 현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경수를 보자 초췌한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외고가 산에 있는데 일본 교환학생 중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애가 있거든.”

“휠체어? 교통사고 나서 타는 거야?”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처음 교환학생으로 올 때부터 타고 다녔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데?”

“우리 학교가 휠체어가 다닐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옆에서 도와줘야 하거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교환학생 그러니까. 학생회 임원이 되고 싶어 하는 학생 중 하나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학생이야.”

“어?”

“그리고 구내식당 선착순으로 하는데 반발한 친구···그러니까. 사정이 어려운 집안의 학생에게 배려를 해줘야 한다고 말한 친구하고 이렇게 지원했어.”

“단순한 것 같은데 복잡하네.”

“개들 이름은 뭔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교환학생은 고노 쥰페이. 그리고 구내식당에 대해서 건의한 교환학생은 마스다 아오이라고 해.”

“둘 중에 누구를 선택하든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데?”

“학교에서도 입장이 애매한가 봐.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학생이고 한 명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학생인데···그래서 학생회장한테 미룬 거지.”

“무슨···시험 하는 건가?”

“학교에서도 입장 곤란해질까 봐 서로 결정 미루는 일 같은데 선거로 결정하면···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않아?”

“우리 학교는 학생회장만 선거로 결정하고 나머지는 학생회장이 임의로 전부 선임한다고 하더라. 별정직 공무원처럼···.”

“응?”

“별정직 공무원?”

“임용권자가 자신의 재량에 의한 임용을 하는 게 별정직이야. 쉽게 임용 가능한 대신에 정규직보다 위상이 낮다고 보면 돼.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넣기 위해서 외부인사를 채용하는 수단인데···사실상 별정직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고 임용권자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같이 나가는 직책이지.”

“한마디로 학생회장이 신임하는 임원을 마음대로 뽑는 거네?”

“난 차라리 학생회장처럼 임원들도 선거나 아니면 선생들이 뽑으면 편할 것 같아.”

“왜? 임용권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니야?”

“내가 학생회 임원으로 뽑았는데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책임져야 하니까.”

“아···그건 쫌···. 내가 한 일도 아닌데 그렇게 되면 힘들겠다.”

“왜? 믿을 만한 사람 뽑으면 되는 거 아니야?”

“생각해봐. 사람 속을 어떻게 다 알아? 그렇다고 자기하고 친한 친구만 임원으로 넣으면 말도 많을 거 아냐.”

“그럼 평판 좋은 사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평판 믿다가 뒤통수 제대로 맞아봐야 알지?”

“···?”

“나도 공영 방송이라는 데서 열심히 오보를 해준 덕분에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는데 평판이라는 게 덮어놓고 믿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생각보다 더 어렵네···.”

“솔직히 다른 임원들은 별로 문제 될 것도 없어. 친한 친구 위주로 임원이 된 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그런데 문제는 교환학생 중에 뽑아야 하는 환경부장이 문제야.”

“···?”

“이전에도 계속 되어왔으니까. 다른 임원 자리는 누구를 뽑아도 특별히 문제가 될 건 없는데···.”

“없는데?”

“환경부장의 자리에 둘 중 누구를 뽑아도 한쪽에서 태클을 걸 거라고.”

“아···.”

“뭘 해도 건의하고 잘못되었다고 하고 그런다는 거지?”

“물론 이전에도 사이가 좋지 않던 친구가 임원이 된 경우에 그런 교내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크게 이슈가 될 여지가 없었다고 했거든···.”

“이번에는 교환학생의 특수성하고 환경부장이라는 이슈가 같이 합해지면 크게 소란스럽겠네.”

“그래서 고민이야. 골치아플게 뻔한데 해야 하나 싶어서.”

“그렇게 골치 아프면 너도 학생회장 하지 말고···. 성적도 좋은데 왜 고민하고 있는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