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지켜야 하는 것>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김 씨 아저씨는 나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위험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너만 위험하게 아니다.”
“···.”
“가족이 위험할 걸 알면서 전면에 나설 수 있겠나?”
“···.”
“운산까지 온 너의 행적을 살펴봤다. 나쁘지 않았지.”
“···?”
“이제까지 요원들이 보지 못했던 시야에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기술은 발달한다.’
나는 그런 기술을 보고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 씨 아저씨는 어두워진 하늘 저편만을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동시에 너무 위험한 길로만 다닌다고 볼 수도 있지.”
“그렇지만···.”
“너라면 어쩌면 날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돕는다고요?”
“재민이 사건···.”
“···?”
나는 재민이가 문재하와 관련된 소송 때문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성마른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김 씨 아저씨는 나의 거친 말투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처럼 자신이 해야 하는 말을 전달하는 느낌으로 계속 말했다.
“각 부처 차관 그것도 주요한 힘 있는 차관으로 손을 쓴 것 같다. 당근과 채찍처럼 회유와 협박을 함과 동시에 각자의 손아래 박힌 가시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준 거겠지.”
“···.”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된 관계였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동조하고 같이 행동하고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
“저는 그게 궁금한 게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김 씨 아저씨의 맥락 없는 말에 내가 답했다.
“아마 재민이와 관련된 재정국 차관의 아들 소송도 3팀의 입김이 닿아 있는 거겠지.”
“···.”
“나는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조용히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3팀과 한번 조우하고 말았지.”
“···?”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기주라는 아이···.”
“설마···.”
“어린아이가 납치되었다는 상황에 나도 좀 무리하고 말았지.”
“아저씨···.”
“내가 3팀의 꼬리를 잡은 것처럼 그들도 나를 포착한 거지.”
“당장 출국부터 해요.”
“난 강제 은퇴를 당한 시점부터 0순위 타겟이다. 3팀이 아니라도 1팀이 움직일 수도 있지. 만약 내가 미국에서 그대로 정착했다면 1팀···그대로 모르는척했을 수도 있겠지···하지만 한국에 들어와서 3팀에 포착된 이상 내가 다시 출국한다고 해도 회사는 움직일 거다.”
“그럼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게 그렇게 위험했다면 어째서···.”
“글쎄···.”
아무런 말 없는 침묵이었지만 나는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동시에 온몸이 누군가 나를 내리누르는 듯한 무게가 느껴졌다.
외할아버지의 시선에서 본 외증조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힘든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의 외증조할아버지가 소유했던 재산을 생각하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집과 전답을 전부 팔고 그 돈으로 실체도 알 수 없는 무엇인가와 싸우기 위해 가족도 등지고 나가버린···. 외할아버지의 아버지.
외할아버지 기억 속에서 너무 크고 동시에 원망스럽지만 자랑스러웠던 아버지라는 존재···.
어쩌면 이 땅 위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까?
평범하다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처자식들 먹여살리려니 대화할 시간도 없다고 하면서 임진왜란과 같은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얼굴 없고 제대로 된 이름도 받지 못한 채 앞선 의병장 뒤를 따르던 평범한 성인남성 1이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까?
남자가 남자다우려면 삼첩 사첩이 무슨 구설이냐고 허세를 부리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바빠서 자녀에게 얼굴 한 번 비추기 힘든 시절···아내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거라고는 뒷 모습밖에 없던 우리네 평범한 아버지들이 이 땅을 지켜온 게 아닐까?
그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던 직원이었다고 하는 김 씨 아저씨는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보다 자신이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이 사라지는 게 더 무서운 게 아닐까?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닮았다.’
어떤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앞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서는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
평범하다고 말하지만···그 한명 한명이 위대하다는 걸 모르는···평범하다는 말에 속아서 그저 열심히만 사는 사람들···
길가에 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치면 다른 2차 사고를 막기 위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수신호를 보내주는 사람.
맥주병이 사거리를 뒤덮고 있으면 나서서 깨진 병을 치워주고 대가나 그런 걸 바라지 않고 당연하게 자리를 뜨던 사람들.
TV나 영상매체 등 언론에서 주요인물이 봉사 활동을 한다고 기자들이 따라붙고 언론에서 크게 이슈가 되는 이들보다 하루하루 땀 흘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까?
회귀 후에 회귀 전 경험 덕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처음 회귀 날 나와 어머니를 두둔해준 마을 사람들과 종혁이 부모님이 없었다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한다고 해도 아직 중학생인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줄 사람이 있었을까?
아버지 사고처리를 도와준 변호사도 결국 누군가의 도움으로 소개받고 알게 된 사람이었다.
기주가 처음 사고가 났을 때 빨리 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건 양아치처럼 보였지만 사실 큰 상처를 가지고도 올바른 삶을 살고자 했던 태연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구할 수 없었다.
회귀 후 나 혼자 해결한 것처럼 느껴지는 사건들 뒤에는 아이들 어른들 각자 자신의 자리를 자부심으로 지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 아저씨···.’
그저 행복하기만 바랐다. 의뢰를 주고받으면서 주는 의뢰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이 정도면 내가 할 도리를 했다는 나만의 도피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위태로운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서 의뢰라는 말로 나와 거리를 두려고 했던 김 씨 아저씨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내가 생각이 깊어진다고 생각했는지 단호한 김 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방해했다.
“당연히 말하지 못하면 모른다.”
‘아니야. 당연하지 않아. 나는 술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어. 그런데 나는···.’
내가 벤치에 기대듯 앉자 나를 보지 않고 어두워진 하늘을 계속 보던 김 씨 아저씨가 말했다.
“한동안 연락하기 어려울 거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생답지 않게 대단한 건 알지만 그 이상 위험한 일이야. 그리고 내가 알아낸 걸 누군가는 그 진실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한테 면죄부를 주기 위해 김 씨 아저씨가 말을 한다.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진실을 밝혀줄 그런 사람으로 커달라고....’
나는 아픈 눈으로 김 씨 아저씨를 질책했지만...아저씨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안보고 있는 건가?’
김 씨 아저씨는 내가 보통의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것과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털어놓을 정도로 나를 믿어줬지만 동시에 선을 긋고 있었다.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말고 자신이 잘못되었을 때 만약을 대비한다는 느낌이었다.
‘그 만약이라는 건 내가 부탁한 재민이 실종을 조사하다가 잘못된다는 거잖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생각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일이라는 걸···
“···.”
“무력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누구나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나는 이전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
“나는 나라를 위해서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오만이었다.”
“···?”
“그저 내 이름은 남지 않아도 나라를 이 땅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 희생했다는 사실이 묻히는걸 원하는 건 아니었다.”
“이름이 기억되지 못했어도 이때까지 해왔던 헌신은 기억해 주길 바랐다는 말씀인가요?”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지. 강제은퇴로 목숨이 위험한 것보다 내가 해왔던 모든 임무가 부정당하는 게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내가 얼마나 3팀의 시선을 끌어내면서 조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저씨···.”
“누군가 비리를 알아낸다고 해도 그대로 강제로 침묵하게 된다면 의미가 없겠지.”
김 씨 아저씨는 메신저로 나를 선택한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재민이를 찾기 위해 운산까지 내려갔던 나의 저력을 보고 한번 믿어보겠다는 생각이 아니···
내가 재민이 실종에 너무 깊게 연루되어서 위험하게 되기 전에 그 위험성을 알리고 내가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일 거다.
나는 김 씨 아저씨가 어둠 속에서 묻혀서 사라질 때까지 그저 지켜만 봤다.
그리고도 한참 벤치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저씨의 자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 건네던 밀크티고 아저씨 특유의 비닐 소리도 생각보다 높았던 체온마저 찬바람에 순식간에 해체되어 사라졌다.
‘나는 또 누군가의 희생으로 내 삶의 안온을 찾으려는 건가?’
회귀 전 어린 시절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커서는 동생을 버리고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렇게 모든 걸 부정하고 내 삶이 평범해지기만 바라면서 살아왔다.
회사에 나가고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다들 No라고 할 때 같이 No라고 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다.
나이가 먹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어린아이를 헌신적으로 키우는 아내에게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청혼해서 결혼까지 했다.
그게 진짜 사랑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그런 삶에 행복하다고 묻는다면···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데···모든 힘을 쏟았다.
하지만···
지금은 답할 수 있다.
‘내가 원한 삶이 아니기에 행복할 수 없었다.’
김 씨 아저씨가 바라는 데로 안전한 곳에서 김 씨 아저씨의 무사 생환만 기다릴 수도 있었다.
아니 그렇게 하면 나에게 피해는 없고 재민이의 행적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김 씨 아저씨는 이 나라에서도 회사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유능한 인재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걸까?’
나는 멍하니 어두워진 밤하늘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