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외로운 삶4>
하굣길 발걸음이 무겁다.
“학교에서 다들 재민이 어려워하고 피해 다니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네가 재민이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거 보면서 다들 친하다고···.”
오늘 현진이와의 대화에서 들었던 재민이와 나의 모습
현실에서 내가 재민이를 대했던 모습과 차이가 있었다.
나는 나의 필요에 의해서 재민이가 필요할 때마다 찾았다.
그로 인해 문제하 일당에서 돈을 벌어오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할지 생각도 못 했다.
‘아니···알고 있었으면서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학원가 PC방에서 문재하를 마주하고 떨리던 눈동자를 봤지만 나는 외면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내가 필요할 때 재민이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서 운산 자동차 정비 공업고등학교 진학을 도왔다.
‘그렇지만 그게 순수한 도움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거워지는 발걸음에 아파트와 연결된 공원 벤치에 앉아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본다.
“스스로도 재민이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제가···재민이를 찾아 나서는 게 옳은 일일까요?”
언제라고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으면 김 씨 아저씨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벤치 뒤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져도 놀라지 않았다.
“재민이는 사실 자기가 이런 상황이 싫어서 스스로 학교에서 벗어난 게 아닐까요? 학교에서 말하는 것처럼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저는···.”
“너는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지.”
“··네···.”
“재민이도 그럴까?”
“네?”
“분명 어이없지만 한쪽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관계도 분명 있지. 그렇다면 그런 사이를 친구라고 하면 안 되는 걸까?”
“어···.”
“나는 상처 입은 짐승이나 마찬가지였던 상황에서 천사장님을 만났지.”
“···.”
“아무도 믿지 않고 누구에게나 날카롭게 대하는···.”
“···.”
“하지만 그분은 나를 친구로 대했지.”
“···.”
“나는 후회하지만···.”
“···.”
“그 당시에 천사장님은 그걸로도 만족했던 게 아닐까?”
“···.”
“정말로 내가 끝까지 나이와 신분 모든 걸 떠나서 친구가 되어준 천사장님의 모습을 외면했다면 그래···어쩌면 내가 처음 정한 거리만큼 아무것도 아닌 그런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분의 손자인 너를 외면하지 않고 찾아온 순간부터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
“물론 과거에 좀더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한 내 모습을 후회하기 때문에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아요.”
“···?”
“외할아버지는 분명···.”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뒷말을 흐렸지만
김 씨 아저씨는 나를 통해 대답을 얻은 것처럼 나와 같이 노을을 보면서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찬 바람이 나와 김 씨 아저씨 사이를 휘돌고 지나면서 체온을 뺏어갔지만 찬 바람이 부는 공원에서도 작은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느낌일까?’
“그런 만큼 너와 재민이 사이도 네가 재민의 실종에 발 벗고 나선 시점부터 달라진 게 아닐까?”
“하지만···저는···.”
“친구 사이라는 건 꼭 누군가 정의해서 내릴 필요가 있는 걸까? 아니면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도 있어? 잘난 외모? 공부 잘하는 지성? 아니면 부모가 재산이 많아야 하나?”
“친구가 되는데 그런 조건이 필요하다면 그건 친구라기보다는 사업 파트너 내지는 그저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관계인 것 같은···.”
“네 말처럼 친구가 되는데 조건이 없다면···너와 재민이의 관계가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좀 다르다고 해서 그게 꼭 틀린 걸까?”
“아···.”
‘다른 것과 틀린 것···.’
분명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종혁이, 경수와 오늘 속에 있는 대화를 조금 나누게 된 현진이와의 관계는 전부 다르다.
그 친구들이 생각하는 나와의 관계도 친구라고 엮여있지만 그들이 나와의 관계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건 각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서로 느끼는 친밀도와 거리감이 각자 다르다고 그게 틀린···잘못된 친구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재민이와는 친구라기보다는 악우라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지금도 어디로 말도 없이 사라져서 절 귀찮게 하니까요.”
“···?”
“그러니까. 빨리 찾아내서 다시는 귀찮게 하지말라고 해야겠어요.”
김 씨 아저씨는 그런 내 대답에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더니 노을이 져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단순한 실종이 아닐지도 모른다.”
“네?”
놀라는 내 반응에 평소와 다르게 말을 바로 이어가지 못하는 김 씨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어쩌면···.”
“재민이가 나쁜 일에 엮여서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가요?”
“후···재민이의 흔적을 쫓다가 3팀의 흔적을 찾았다.”
“네?”
“3팀이라니 어째서 재민이가···.”
이런 나의 질문에 김 씨 아저씨는 갑자기 3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3팀의 존재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3팀에 대한 의구심이요?”
“정말 VIP를 위한 곳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말씀은···.”
“3팀이라는 존재 자체가 회사의 그림자다···구성원 전부 유령이나 다름없지. 그렇다면 VIP는 3팀이 존재를 제대로 알고 유용하는 것일까?”
“그래도 회사의 최종 결정자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그만큼 VIP의 권위가 크기 때문에 VIP에게 직접 회사 내에 3팀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확인 질문조차 하지 못한다.”
“아무리 VIP의 권위가 크다고 해도 어째서 질문조차 못 하는 건데요?”
“어느 누구도 직접 VIP에게 3팀의 존재 유무와 관련성에 대해서 질문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만약 3팀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3팀이 해온 모든 적법절차의 선을 넘나드는 일과 VIP와 관련이 생기게 되니까. 그래서 아무도 질문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보통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김 씨 아저씨는 왜 VIP가 3팀의 존재에 대해서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3팀은 운영자금조차 자체조달한다.”
“팀원이 몇 명인데 자체로 자금조달이 된다는 거죠?”
“3팀이라는 권력을 통해서 음지에 터를 잡는 거지.”
“···?”
“안남시로 따지면 파라오 나이트.”
“···!”
나는 기주를 납치했던 전순희를 목격했던 파라오 나이트의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김 씨 아저씨는 안남시에서 가장 큰 나이트클럽의 이름에 놀랐다고 생각했는지 전국 각국의 주점이나 나이트의 이름을 불렀다. 대부분 내가 모르는 이름이었지만 지역에 오랫동안 그리고 유명세가 있는 규모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음지에서 자금을 조달한 거지.”
“그렇다면 김 씨 아저씨 말은 그 돈이 전부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건가요?”
“아니.”
“네?”
“윗선에서 불법으로 흘러드는 자금과 정치자금이 섞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아니 정확히는 못 믿는 거겠지.”
“···?”
“깨끗하게 세탁된 자금만 따로 관리한다. 3팀이 아닌 금고지기를 별도로 두는 거지. 지금은···재정국···그전에도 국가 자금에 관련한 정보 부처 중 고위직 공무원의 약점을 잡아서 관리하게 시켰다.”
“그 말씀은···.”
“너도 뉴스나 신문에서 봤겠지?”
“설마···.”
“재정국 차관 문지만의 아들 문재아가 이번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던 사건말이다.”
“그 사건이 3팀과 관련 있다는 말씀인가요?”
“아무래도 재정국 차관이 금고지기 역할로 돈을 보관하다가 사고가 생긴 것 같다. 금고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항상 있어 왔지. 그런데 재정국 문차관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걸 보면 아무래도 문차관 쪽에서 벌인 일은 아닌 것 같더군.”
“그럼···.”
“아마 부하들 중에서 눈먼 돈이라는 생각에 욕심을 부린 거겠지. 사건이 있던 장소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금고가 있다는 건 확인했다. 물론 비밀리에.”
“아···.”
“경찰이 조사했을 때는 금고 안은 비어있었다고 한다. 나는 문재아와 어울리던 사람들 위주로 탐문 하다가 3팀을 통해서 작업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
“중요한 건 그 사건 덕분에 금고지기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건 전부 눈먼 돈 때문에 생긴 작은 사고 같은 거지.”
“그런 일이 자주 있나요?”
“자주 있지는 않지만 없을 수가 없지.”
“어째서요? 위험하잖아요.”
“한순간의 위험만 감수하면 큰 돈을 얻을 수 있으니까.”
“···.”
“불법적인 하지만 꼬리표가 없는 돈을 한순간에 얻게 되면 이제까지의 삶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김 씨 아저씨의 표정은 냉소가 가득했다.
“그런데 돈의 진짜 주인이 화가 나서 범인을 잡아가거나···.”
“물론 잡히는 경우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지.”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거나.”
나는 내가 금고에서 빼돌린 엔화가 마음에 걸려서 질문했다.
대답은 더 놀라웠다.
“그렇게 힘을 쓰지는 않아 그들에게 금고 한 두 곳은 푼돈일 테니까.”
‘그 정도 돈이 푼돈이라고?’
“아···.”
“다만 자기들이 계획한 일에 대한 정보가 세어 나간 게 아닌가 해서 계획을 서두르는 경우는 있지.”
“···?”
“시기상으로 보면 이번 외환위기는 계획된 것일 수 있다. 물론 정황뿐이지만···.”
‘그래서 회귀 전 외환위기보다 몇 달 빠르게 온 이유가···문재아 사건 때문에 서두른 걸까?’
“그런데 변재민이라는 친구 재정국 차관의 둘째 아들 사건 관련 소송의 증인이더군.”
나는 앉아 있던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뜨고 김 씨 아저씨를 바라봤다.
김 씨 아저씨가 말해준 3팀의 존재를 알게 된 지금은 재민의 실종이 단지 실종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