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외로운 삶3>
“다단계 사기로 수백억 아니 조 단위의 사기를 친자는 수사대상이 되지 않거나 무혐의로 풀려나지만 몇 천 단위 몇 백 단위의 사기를 친자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검거해서 선고도 빨리 나오지.”
“그게 무슨···.”
“3팀은 정치자금도 조달했다.”
“···?”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다단계 사기범이나 주가조작 또는 큰 돈이 오가는 거래에서 대표라는 이들만 입건되어 투옥되지 대부분 실제로 돈을 주무르던 실세들은 잡히지 않고 밀항하기 때문에 피해 금액을 찾지 못하지···.”
“설마···.”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어리석어서?”
“···.”
“실제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피해금이 실제로는 정치자금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사고가 나는 거다. 그리고···.”
“그리고?”
“사고가 나게 하는 곳이 내가 있던 3팀이었다.”
‘김 씨 아저씨도 3팀이었다면?’
내가 경악한 표정으로 김 씨 아저씨를 바라보자 삐뚜름한 표정으로 자조하듯 말했다.
“나는 3팀에 녹아나지 못했다.”
“거기에 적응할 수···아니 녹아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생각보다 많지.”
“네?”
“3팀에 오래 자리 잡은 3팀장의 경우 매일 같이 작게는 VIP를 위한 정치자금을 만들고 크게는 VIP에게 불리한 이슈가 나오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폭로해서 물타기를 하는 일을 했다.”
“···!”
“3팀장은 정치 자금이나 이슈를 만들어내고 덮는 건 음지에서 국가가 정상궤도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더럽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에게 말하곤 했지.”
“그것 참 편리한 궤변이네요.”
“하지만 내가 3팀에서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
“평범하게 자기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사건이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다고요?”
“김중대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의 경우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게 가능하다고요?”
“실제 3팀은 김중대의 의원을 비롯한 관련자라고 명명한 이들을 두 달 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혹독하게 고문해서 결국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자백을 얻어냈으며, 구체적 증거 없이 재판부는 유죄판결을 내렸다.”
“···.”
“내가 3팀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었지만 그걸 통해서 3팀장이 팀장 자리를 얻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
나는 경악스럽다는 표정밖에 지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그걸 통해서 회사에서 승진까지 했다고?’
“나는 도저히 3팀에서 버틸 수 없었다. 아니 3팀장은 내가 3팀에 적응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네? 아니 그럼 왜 제안을 한 건데요?”
“회사는 직원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강제 은퇴 당했지. 하지만 내가 1팀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가능했을까?”
“설마···.”
“3팀이라는 곳으로 보직 변경을 제안은 사실 나를 처리하기 위한 단계 중 하나였을 뿐이지.”
“3팀이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니까요?”
“그래. 서류상 이미 죽은 내가 시체로 발견된다고 해도 아니 시체도 남길 생각도 없었겠지만···아무래도 같은 회사의 직원인 신분과 이미 죽은 신분은 차이가 크니까.”
“그걸···.”
‘그걸 알면서 왜 그런 위험한 선택을···.’
나는 속에서 튀어나갈 것 같은 신음을 간신히 삼켜야 했다.
내가 봤던 김 씨 아저씨의 기억 속에서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는 국군포로를 국내 입국시키기 위해서 여권을 만들어줬다는 이유로 강제로 은퇴 수순을 밟게 되는 장면이 다시금 떠올랐다.
사실은 3팀 업무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명분만 있으면 바로 은퇴 당할 거라고 예상했다고 하면···목숨을 걸고 여권을 전달해 준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데도 어째서 여권을 만들어서 넘겼냐는 물음이 입안에 가득 찼지만 내가 그 사실을 안다는 걸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침묵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가슴을 누르는 묵직한 무엇인가가 자리 잡았다.
‘김 씨 아저씨는 당신과 내가 닮았다고 하지만···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도 전에 나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정리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속내를 밝힌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외할아버지는요?”
“그분은 그저 나를 믿어줬지.”
“외할아버지가요?”
기억 속의 외할아버지는 힘들게 살아온 만큼 억척스러운 분이었기 때문에 김 씨 아저씨를 그저 도왔다는 말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의 눈빛과 닮았다면서 어떤 것도 묻지 않았지.”
“아···.”
나는 김 씨 아저씨 말에 외할아버지가 어째서 김 씨 아저씨를 그저 믿었는지.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김 씨 아저씨를 볼 때마다 아저씨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닮았다.’
나는 그저 쓰게 웃으면서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김 씨 아저씨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김 씨 아저씨의 이런 모습을 본 게 내가 최초려나?’
그렇게 나는 안남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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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에 만난 현진에게 내가 한 첫마디였다.
“미안하다.”
“뭐래? 너무 추워서 어디가 이상해진 건 아니지?”
물론 헛소리를 들은 것 같은 반응은 예상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아끼거나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저 헛소리로 생각하는 현진의 말에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너처럼 추위 많이 타는 줄 알아?”
“그런데 갑자기 아침 댓바람부터 미안하다 타령이야? 너 혹시 나 몰래 뭐 숨겨두고 먹었어?”
“그런거 아니야.”
“뭔데?”
“그냥···.”
“미친놈 오늘은 좀 떨어져서 걷자.”
나는 질색하는 현진이에게 오히려 붙어서 장난을 치면서 학교 정문을 들어갔다.
‘미안해.’
정작 내가 마음의 문을 닫아 놓고 주변의 친구들에게는 친해지자···절친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번 깨닫고 나니 현진이 다른 반 아이들과 있을 때와 다르게 내 옆에서는 더 호들갑스럽고 시끄럽게 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나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겠지?’
알고 한 건지 아니면 그저 머리를 긁적이고 이러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한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배려받았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회귀를 했는데도 나는 방황을 하는구나.’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어나고···
나이를 먹고···
흰머리가 늘어난다.
나이를 먹고 덩치가 커진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난 제자리에 있었다.
회귀 후···
오히려 난 성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삶은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셔서···이렇게 살기가 힘들어.
동생 때문에···
어머니 때문에···
그리고 내 주위 나를 도와주는 어른이 없기 때문에···
친구가 없기 때문에···
그런 말로 나를 굳게 감싸고 그저 흘러가는 세월을 하루하루 원망하면서 살았던 삶을 깨닫고 있는 게 아닐까?
아내의 배신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제야 내가 살고 있던 숨 쉬던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진 삶.
그런 소중한 하루하루를 그저 원망하는데 헛되이 사용했던걸 후회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사람답게 사는 삶이 아쉬워졌던 게 아닐까?
나는 아직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사실은 그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멍하게 서 있던 나를 재촉하는 현진의 몸짓에 교실로 향한다.
회귀 전에는 그저 하루하루가 지겨웠던 고등학교 등굣길 찬바람이 불고 뜨거운 바람이 불고 항상 나를 지치게 했던 장소가 지금은 학교를 다니는 이 순간에도 그립고 새롭다.
‘보는 시선이 달라져서일까?’
날도 추운데 운동장에서 학교 전경을 본다고 시간을 썼더니 현진이 내 어깨를 치고는 교실로 먼저 들어간다.
양팔로 온몸을 쓸어내리면서 추워하던 현진이 교실 속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어머니가 챙겨준 손난로를 꺼내서 현진에게 던지자 잽싸게 낚아채더니 그제야 자리에 와서 앉는다.
“너는 가끔 보면 우리 엄마처럼 학교를 보더라.”
“너희 어머니?”
“엄마는 학교가 너무 가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가지 못했데···그렇게 항구에서 일하다가 아빠하고 일찍 결혼하고 나 낳고···.”
“아···.”
평소 같았으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넘어갔을 대화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안하다가 그저 속내를 가감 없이 들어냈다.
“너희 어머니 대단하시다.”
“···?”
“여자 혼자서 키우는 게 힘든 게 아니잖아. 우리 어머니도 나하고 동생 혼자 키우신다고 많이 힘드실거야.”
“너희 어머니도 혼자라고?”
“설마 몰랐어?”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아냐?”
현진은 소문에 빠르다.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직접 말해주기를 기다린게 아닐까?’
“우리 아버지 나 전학 오고 나서 돌아가셨거든.”
“그럼 그때 결석한 게···.”
“그렇게 된 거지.”
“중학교 3학년 담임이 문수옥 선생님이었지? 그 선생님은 진짜 소명의식이 있는 것 같아.”
“응?”
“우리 아빠는 돌아가신 거 학교가 뭐야···동네 사람 친구 전부가 다 아는 사실이었지.”
나는 현진의 기억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현진이 직접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건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이었나···.’
나는 다시 한번 김 씨 아저씨의 충고를 되새기면서 말했다.
“힘들었겠다. 난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라고 누구를 원망하는지 모르지만 계속 원망했어.”
“난 언론···.”
“어?”
“아빠는 선원이었거든. 그런데 여객선이 침몰할 때 아빠하고 동료들이 살기 위해서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했다고 그렇게 언론에서 주장했거든.”
“···.”
“정말 그때 장난 아니었어. 다들 우리 집에 와서 욕설을 도배해 놓고 창문도 다 깨고···.”
“뭐?”
“친구들도 나를 멀리하고···학교에서는 공공의 적이 되었지.”
“···.”
“너 누가 뱉은 침 맞아봤어?”
“뭐라고?”
“나는 하굣길에 창문에서 누가 침 뱉는 거 맞아봤어. 정확히 머리에 맞았지. 기분 더러운데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싸우고 싶어도 학교 애들 전부가 그 녀석 도망가는데 도와주더라고 집에 걸어가는데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나는데 나중에는 아빠가 원망스럽더라.”
“어떤 새끼야?”
내가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교실에 있던 반 아이들이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미어캣이 되어서 나와 현진이 있는 자리를 봤다.
현진이 흥분한 나를 자리에 앉히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 녀석 벌써 내가 당한 만큼 갚아줬어. 그리고 예전 일이기도 하고.”
“그래도···.”
“크큭···그래도 친구라고 대신 화내주니까. 기분이 묘하네.”
“이게 웃을 일이냐?”
“난 네가 내일로 화를 내줄지 몰랐거든.”
“뭐?”
“넌···음···좀 완벽해 보이기는 하는데···차가워 보인다랄까. 어렵달까. 좀 벽이 있는 느낌이었거든.”
“···.”
나는 현진의 정확한 지적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말은 안 했어도 느끼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냥 선입견 같은 거였나 봐. 내가 춥다고 징징대면 손난로도 던져주고 친한척 하지 말라는 듯 냉랭한 것 같으면서도 좀 마음 약한 구석이 있달까?”
“내가?”
“너 전학 오고 나서 부딪쳤던 재민이도 네가 학교 알아 봐주고 소식 없다고 재민이 일 알아본다며.”
“그걸 네가 어떻게···.”
“반 아이들 소식은 내가 빠삭하지. 물론 재민이는 지방으로 학교 가서 재민이 소식은 좀 느리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