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익숙하지만 변해가는 것 3>
아날로그가 익숙한 세대지만 앞으로는 디지털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는 세상으로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불편해지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전제주의 국가에서도 멈추지 못한 게 변화인 거지.’
변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변하는데 나만 제자리에 걷고 있다면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서 적당히 이득을 얻는 거지.’
가만히 서서 발맞춰서 걸어갈 때는 잘 알지 못한다. 어느 순간 지쳐 고개를 돌려보면 무척이나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자신에게 익숙했던 것과 다른 모습으로 자리 잡아 있다.
그 변화에서 한걸음이라도 떨어지면 시대에 뒤떨어진 세대가 되는 것이고 그 변화에서 한걸음이라도 빠르게 걷는다는 시대를 앞선 혁신적인 투자자가 되는 것이다.
‘그저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기 바빴던 내가 투자자가 될 줄은 몰랐네.’
안나와의 통화를 끝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아파트 옆 수변공원을 걷고 있는 내 옆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겨울이라지만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김 씨 아저씨?’
기주의 일을 시점으로 연락을 주지도 받지도 않던 김 씨 아저씨가 부스럭거리는 검은 봉지와 함께 갑작스럽게 모습을 들어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 통화를 하던 벤치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면서 벤치에 앉게 한 후 옆자리에 앉은 김 씨 아저씨는 한참 말이 없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김 씨 아저씨였기 때문에 나도 옆자리의 온기를 느끼면서 잔잔한 침묵을 음미하고 있었다.
“잘 지냈나?”
“네, 아저씨는요?”
“나야···.”
그리고 또 한참 말이 없자 원래 말이 없는 김 씨 아저씨였지만 무언가 말하기 곤란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후···.”
“···?”
“모른다면 그것도 괜찮겠지.”
“네?”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김 씨 아저씨의 말에 불길함을 느끼기도 전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이정만 아저씨의 전화다.
이정만 아저씨는 필요한 일이 아닌 이상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늦은 시간 그것도 나한테 전화를 한다는 건 좋은 소식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하도록 하게.’
태풍이 바로 옆까지 다가왔는데 내가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미리 선배의 사건이 태풍이라고 쉽게 판단했던 건 나를 둘러싼 이 평안이 금이 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짧은 안목 때문이었을까?
혼란스럽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이정만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나는 정말 무심한 사람이다.”
“네?”
“재민이···재민이가 실종되었다고···그걸 이제야···알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저씨? 어디세요? 지금 어디예요?”
“지금 재민이가 다니는 학교에 방학인데도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할 생각으로 내려왔는데 실종된 지 일주일이 넘었다고···.”
“아니 학교에서 학생이 실종되었는데 아저씨한테 연락도 없었다고요?”
“보육원 원장에게는 연락했다고 하던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연락을 안 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재민이라면 보육원이 아니라 태연이나 아저씨 아니면 저한테 연락하게끔 긴급연락처를 작성할 텐데 보육원에 연락하고 말았다고요?”
“내가 너무 무심해서···.”
“이건 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경찰에 신고는 하셨어요?”
“경찰에 신고하고 나오는 길이다. 하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재민이가 태연이나 아저씨한테 연락도 없이 사라질 이유가 없잖아요.”
“경찰에서는 고등학생 거기다 비행 청소년인 학생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가출하는 건 빈번하다고···.”
“그럴 리 없어요. 그리고 아저씨 잘못도 아니고요. 저도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전화 통화를 끊자 벤치 옆에서 무심히 나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김 씨 아저씨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설마···재민이 실종에 대해서 알고 오신 거예요?”
“···.”
“재민이는 가출할 친구가 아니에요. 이정만 아저씨에게 속죄하겠다고···설마···.”
“그 친구가 어떤 사건에 연루된 건지는 아직 파악된 게 없다. 단지 이번 실종의 성격이 내가 알던 방식과 흡사해서···.”
“김 씨 아저씨가 알던 방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너의 의뢰를 받으면서 네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상은 어른에게 맡겨두면 좋겠다.”
“그게 무슨···.”
내가 재민의 실종 때문에 섣부르게 움직여서 이 사건과 연관될 걸 걱정해서 나타난 듯 김 씨 아저씨는 내가 이정만 아저씨와 통화하고 나자 귀신처럼 사라졌다.
‘김 씨 아저씨는 무언갈 알아챈 거야. 그래서 내가 연관된 건지 아니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온 거지.’
내가 연관되어 있지 않은 일로 재민이가 실종되었다는 걸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라졌다.
김 씨 아저씨 성격상 우연일 리 없었다.
‘재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확실해 그것도 김 씨 아저씨가 내가 섣부르게 움직이다가 사건에 연루될 것을 걱정할 정도의 일에···.’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고 복잡하다.
‘내가 재민가 꿈꾸던 자동차 정비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를 소개하고 연결 시켜준 행동이 사지로 민 건가? 왜 실종된 거지? 설마···.’
그리고 결국 어떠한 사실이 내 목을 조른다.
‘내가 재민이가 자동차 정비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얼마나 연락했지?’
초반에는 휴대폰이 있었으니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연락했었다. 하지만 학교 생활에 익숙해진다. 종혁이가 유학 간다. 미리 선배 일 등 재민이에게 연락을 안 하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무심했나?’
내가 복잡한 속내를 숨기고 집에 들어가자 주신이는 이미 씻고 자고 있는지 거실 불이 꺼져있었다. 어머니는 아직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해서 오늘도 밤늦게나 들어오실 예정이었다.
나는 적막한 거실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가진 술법의 능력을 재민이가 실종된 운산시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억지로 잠이 오지 않는 머리를 비우면서 침대에 누웠다.
‘재민이가 다니던 운산에서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해.’
내가 머리를 침대에 놓기만 기다렸다는 듯 시야가 맑아지면서 멀리서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백공.’
“어린 친구 오늘은 급한가 보군.”
“제가 태풍이 다가온다는 어르신의 경고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서···.”
“태풍이 왜 태풍인지 아는가?”
“···?”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어찌할 수 없는 재해이기 때문에 태풍이라고 부른다네.”
“···.”
“물론 자네가 대비를 했다면 그 피해를 조금 줄일 수는 있겠지만 다가오는 태풍을 멈춰 세울 수는 없는 법이지.”
“그렇지만···.”
“물론 좀 더 조심한다면 떨어지는 간판을 피하거나 유리창을 보강해서 깨지지 않게 하는 등의 행동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재민이는···.”
“참으로 애석할 뿐이지.”
“재민이가 다니던 학교가 있는 운산에서 술법이 발동 가능한가요?”
“저번에도 말했지만···내가 자네에게 걸어주는 술법은 휴대폰 같은 거라네. 자네가 사용하기 좋게 만들어주는 것 일뿐 술법이 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힘은 휴대폰을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배터리처럼 자네가 얻어야 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운산에 제가 땅을 사거나 집을 사면 술법을 지금처럼 사용 가능할까요?”
“흐음···.”
“···.”
“이곳의 지기와 연결이 된 가까운 곳이라면 자네가 말한 방법으로 가능하겠지만.”
“···?”
“이곳의 지기와 떨어진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지.”
‘안남시와 가까운 곳의 땅이나 집을 사는 것과 멀리 떨어진 지방 도시의 땅이나 집을 사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건가?’
“어린 친구 자네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휴대폰 배터리 충전기가 무선이 아닌 유선인 것이지.”
“···?”
“가까운 곳은 배터리 충전기의 선을 늘려서 충전할 수 있지만···물론 이렇게 멀어지는 거리만큼 배터리 충전의 효율이 떨어지겠지.”
“그 말씀은···.”
“배터리 충전기가 유선이기 때문에 이곳과 완전히 떨어진 장소 즉, 지방에서는 충전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지.”
“···.”
“내가 충전기에 빗대서 설명한 이유는 이미 자네가 가진 지기로 술법이 사용 가능하다네.”
“그렇다면!”
“허허··선재라···. 하지만 이건 위험한 방법일세.”
“위험하다고요?”
“자네가 이곳에서 충전한 용량 이상의 술법을 사용하게 된다면 자네의 선천지기 즉, 생명력을 사용하게 될걸세.”
“···!”
“결국···이곳이 아니라면 술법을 사용하는데 위험이 따르는 것이지. 모든 힘은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없다네.”
“···.”
“허허··선재라···.”
“저는 아무 말도···.”
“자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네 내가 이렇게 위험을 경고하는데도 굳이 먼 곳까지 나아가 술법을 사용할 생각인가?”
“···.”
“흠···자네가 이제까지 쌓아온 업···특이점을 술법에 먼저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겠네. 하지만 정의의 저울은 사용하지 말게나.”
“하지만 정의의 저울을 사용하면 그 죄를 지은 자를 추적할 수 있는데요.”
“그만큼 지기의 소모가 엄청난데 그런 짓까지 한다면 생명력은 순식간에 소모되어 먼지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할 걸세.”
“소멸한다고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
“소멸한다는 건 이름도 남기지 못하는 것일세.”
“이름을 남긴다는 게 중요한가요?”
“중요한 인간도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겠지.”
“저는 별로···.”
“자네의 가족의 자네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자네의 지인이 자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은가?”
“그건···.”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은 그런 것일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지워지는 것만큼 인간에게 큰 징벌은 없다고 생각하네.”
“···.”
“그렇게 내가 경고를 해도 친구를 찾아 나서겠다면 정의의 저울을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게나.”
“제가 맹세하지 않는다면요?”
“이곳의 지기와 연결되지 않는 곳에서는 술법이 발동하지 못하도록 조정하는 정도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네.”
“···정의의 저울을 절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자네의 말의 무게를 믿도록 하지.”
대백공이 나를 주시하자 무언가 나를 묶고 있던 보이지 않던 끈이 풀린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