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태풍의 눈 2>
“돼지 새끼···.”
형광등이 을씨년스럽게 비추는 지하실의 광경은 밝은 조명과 달리 암울했다.
사람의 형체가 의자에 묶여서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전신이 퉁퉁불어서 사람인지 인형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적당히 겁만 주려고 했는데···생각보다 녀석이 대가 쎄서.”
“죽은 건 아니지?”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그래서?”
“아직 팔팔해야할 고등학생이 몇 번 담궜다고 지 스스로 겁먹어서 심정지가 온걸 저라고 어쩝니까?”
돼지로 불린 남자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형체가 매달린 의자를 발로 가볍게 차면서 말했다.
보석반지를 낀 중년남자는 그런 돼지로 불린 남자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생각이 복잡한지 인상만 쓰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살살하라고 처음부터 말까지 했는데···이런 식으로 나한테 엿 먹이는 거냐?”
“형님···저 하고 형님하고 같이 일 한지···10년이 넘어요. 그런데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이건 사곱니다. 사고 어쩌다가 한번 일어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그래 10년이 넘는데···내가 이제까지 잘못한 것 적당히 덮고 깨끗하게 세탁까지 시켜서 너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 수 있게 해줬으면 나한테 뭐라도 도움이 돼야 하는 거 아니냐.”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는 돼지라고 불린 남자의 어깨에 팔을 올리면서 다그치기보다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저도 도움이 되려고 이제까지 형님이 시키는 일 아무런 토 달지 않고 깔끔하게 해결했지 말입니다.”
“솔직히 깨끗하게는 아니지. 그것도 적당히···내가 뒷정리해서 적당히 넘어간 거고.”
“그렇지만 저같이 손 더럽히면서 형님일 해줄 친구가 또 어디 있습니까?”
“그래···그래서···참 아까워···.”
이제까지 타이르는 말투에서 긴장을 풀고 있던 돼지라고 불린 남자는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의 아깝다는 말에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깔린 구정물이 무릎에 닿아 전신에 튀기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에게 매달렸다.
“형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내가 널 뭘 믿고? 일을 이따위로 꼬아놨는데.”
“제가 저만 죽을 것 같습니까?”
“하···이 자식이 너 내가 누군지 알면서 그 딴소리를 해?”
“전···.”
“살고 싶다고 했으니까. 기회를 주마 이것도 실수하면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야. 어차피 넌 죽은 놈이니까 처리도 쉽다 그거 명심해.”
“네···.”
“우선···후···. 실종으로 처리하자.”
“네?”
“원래 불량학생이었으니까. 실종 처리는 쉬울 거야. 학교에는 명성에 흠집 안 잡히고 조용히 묻으라고 말해 둘 테니까. 너도 제대로 처리하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부탁한 새끼···. 그놈이 이 건수 가지고 나한테 장난질 시도할 것 같거든.”
“···?”
“왜 그런 멍청한 표정이야? 내가 망쳤으니까. 후속 조치까지 알아서 해야지 내가 네놈이 싸지른 뒤처리까지 전부 다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아···아닙니다.”
“그 새끼가 뺀질뺀질하니까. 제대로 처리하고 이번처럼 일 크게 키우지 말아라.”
“네···.”
“제대로 실종 처리하고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 하나 나오면 네 녀석이 다 쳐 먹어야 할 거다.”
돼지라고 불린 남자가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의 말에 어떤 사건을 떠올렸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구토를 하면서 괴로워 했지만 돼지라고 불린 남자가 어떤 발작을 일으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돼지라고 불린 남자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외면하고 보석 반지의 중년 남자는 더러운 냄새가 떠다니는 공간을 박차고 나갔다.
드르륵―.
핸드폰 진동음과 함께 떠 있는 이름을 보고서 고민을 하던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는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욕을 짓씹듯 속으로 읊조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3팀장.”
“네.”
“일 처리가 점점 수준 이하로 바뀌는 것 같은데 내 느낌인가?”
“그럴 리가요. 차관님 일이라고 신경 쓰다 보니 충성심 높은 놈이 과잉 충성을 한 것뿐입니다.”
“과잉 충성? 누가··사···흠···.”
전화통화라는 걸 생각해서인지 차관은 화가 나서 내뱉던 말을 억지로 삼키더니 처음과 달리 담담하지만 내용은 냉혹한 말을 했다.
“이번 일에 내 이름이 나오면 어떻게 될지 알겠지?”
“물론 이건 어떤 머저리가 멍청한 짓을 한 부분에 어떻게 차관님 이름이 오르내리겠습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다만 잘 만들어진 계획에 한 부분 틀어진 것뿐입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예상외 사건이 발생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제까지 업무 성과에 대해서 3팀장에게 실망한 적이 없는데 지금은 좀 아쉽군···.”
으득―.
3팀장이라고 불린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는 차관의 말에 이빨이 갈리면서 눈에 불똥이 튀었지만 전화 목소리는 처음 통화할 때와 같았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돌발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
“그저 끝에 가서 보면 별것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그런데 왜 내 비서 쪽으로 요청사항이 올라왔지?”
“그건···.”
“운산 자동차 전문 공업고등학교 쪽으로···.”
“설마 내 이름으로 이사장에게 압박을 넣으라는 건 아니겠지?”
차관이 직접 이사장에게 연락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차관의 반응을 봐서는 그런 연락을 직접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비서분 이름으로 요청한 겁니다.”
“내 이름이 거론되는 건 싫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실종으로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학교 측에서 크게 이슈를 만들면 검경이 안 움직일 수 없지요. 하지만 학교에서 그저 흔히 있는 일탈로 지나간다면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후···.”
“거기다가 제가 양지의 인물들과 직접 접촉하면 다른 팀에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되겠지요.”
“그럼 난 비서에게 들어온 요청에 대해서 모르는 것으로 하지.”
“당연합니다. 그래서 비서 앞으로 요청을 올린 겁니다.”
“그럼 난 모르는 일이니 알아서 잘 처리하라고 하달해놓지.”
“알겠습니다.”
“더 이상은 시끄러운 일 없이···.”
“살아있는 인간은 언젠가 시끄러운 법이죠. 하지만 3팀에는 살아있는 인간이 없습니다.”
“크흠···.”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는 자신의 확신에 찬 말속에 숨겨져 있는 가시를 차관이 제대로 알아챘다고 느꼈다.
이제까지 어금니를 깨물고 인상을 쓰던 모습이 어디로 갔는지 표정 변화는 없지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통화를 끝냈다.
“언제나 조용히 결국은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겁니다.”
“알겠네.”
통화가 끝나자 그제야 어두운 계단을 다 올라 지상에 올라왔다. 지하에서 올라오던 피비린내 더러운 인분 냄새에서 벗어나자 살 것 같았다.
‘내가 그림자로 계속 살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더러운 짓거리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차관의 아들이 벌인 사건을 처리하면서 알게 된 차관의 뒤에 있는 권력자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내기만 한다면 자신도 그림자 생활에서 벗어나 양지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지금 생활도 충분히 마음에 들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늙는다면 자신은 삶은 개새끼가 되어서 놈들의 양분이 되는 것이 뻔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양지로 향해야 했다.
‘차관의 뒤에 있는 놈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쉬운 상대는 아니겠지.’
차관의 아들이 크게 사고를 치고 죽어버리는 바람에 뉴스를 덮기 위해서 외환위기 시기까지 당기는 일을 해냈다. 물론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가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나라를 팔아먹는 짓조차 자신들의 처세에 이용해 먹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과 그 실체를 약간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은 이용해 먹기 좋은 놈이지만 앞으로는···.’
그런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의 앞길을 밝히듯 겨울 하늘 특유의 차갑지만 맑은 하늘이 보였다.
지하 계단을 다 올라온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는 계단 앞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덩치를 향해 손짓했다.
계단 앞에서 보초를 서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부하가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가 나타나자 이제까지 어슬렁거리던 몸짓이 거짓말인 것처럼 각을 잡고 남자 앞에 섰다.
그런 모습을 무심하게 보던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는 손짓에 덩치는 준비된 차를 불렀다. 검은 승용차가 도착하자 덩치가 당연하다는 듯 뒷좌석을 열어줬고 차에 올라타 출발했다.
“돼지 새끼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해보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바로 보고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차관 오늘 행적이 어떻지?”
“재무국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청와대 만찬에 참석하는 일정입니다.”
“청와대라···차관치고는 자주 들어가는 거지?”
“뭐···재무국이라는 특성 그리고 지금 IMF라는 특수사항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자주는 아니라고···.”
“내가 네놈 생각을 물어봤어?”
“죄송합니다.”
“차관의 일정에 특이사항이라고 말한 만 한 곳이 전혀 없어. 그런데 그게 말이 안되잖아?"
“···.”
“차관 아들이 비자금이 있는 장소를 구름 과자 먹다가 홀랑 태워 먹었는데 아무런 질책도 없다? 오히려 계획하고 있던 외환위기를 급하게 언론에 태워서 이슈까지 잡아먹었지. 그렇다면 뒷배를 봐주는 사람과 마주해서 협상을 하든 무릎을 꿇든 어쨌든 어떤 조치를 했을 거야.”
“···.”
“대답도 못 하나?”
“아닙니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흐음··청와대···내가 들어가는 건 무리겠지?”
“원장님이 대신 현장의 말들을 전하니··아무래도···.”
“청와대 소식에 능한 친구 한 명 찾아봐.”
“무슨···?”
“청와대에서 오래 일하고 밖에 나온 친구들 있잖아.”
“하지만 청와대에서 일했을 정도라면 이미 신원정보 조회도 다 끝난 일반인일 텐데요?”
“지금 내 말에 토 다는 건가?”
“아닙니다.”
“언제까지 가능해?”
“알아보겠습니다.”
“내일까지 확보해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