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익숙하지만 변해가는 것>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어서 인지 등굣길 학생들은 전부 부산하고 들뜬 느낌이었다.
‘거기에 나도 포함되어 있을까?’
해야 할 일 중 하나를 놓친 것 같은 느낌에 아침부터 일어나서 등교하는 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멀리서 현진이 양손을 비비면서 다가오는 모습에 나는 상념을 정리했다.
“으···춥다.”
차가운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만했지만 강화된 육체는 찬 바람조차 시원하게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상해 보일 테니 적당히 대꾸하면서 등굣길을 걸어갔다.
“그러게. 학교가 싸늘하네.”
“미리 선배는 오늘은 등교한 데?”
“저번에 선배 기다리는 사람들 많으니까 오라고 했어. 아마 오늘쯤 오지 않을까?”
“미리 선배 어머니 상태는 좀 괜찮아 지신 건가?”
“피부가 벗겨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일상생활은 지장 없을 거라고 담당 의사가 말하기는 했는데 혹시 몰라서 외삼촌한테 부탁해놓으려고.”
“외삼촌의 외과 의사라고 했었지?”
“전문분야는 아니어도 같은 전문의니까 아무래도···.”
현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교실에 도착하자 석유 난로 특유의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난로 바꾼다 바꾼다 하면서 절대 안 바꾸는 이유가 뭘까?”
“바꾼다고 했었다고?”
내가 졸업할 때까지 석유 난로였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현진의 석유 난로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서 대답에 놀람이 섞였다.
“바꾸겠다고 말은 계속 나오는데 아직도 안 바꾼다고 방송부 선배가 말하더라. 이번 연도에 안 바꾸면 방송국에 제보한다고 아주 열심히 조사 중이래.”
“제보?”
“우리 반에 학생만 50명인데···대충 봐도 얼마 넓지도 않은 교실에서 애들을 밀어 넣고 일산화탄소 중독이라도 되라는 것처럼 석유으로 때우는 난로라니···할 말은 많은데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그래도 나무 태우는 난로보다는 낫지 않아?”
“야, 그건 우리 국민 학교 때 일인데 그 때랑 비교하지 말자.”
“그런가?”
“신도시에 있는 학교는 전부 전기 난방기 사용한다고 하던데.”
“아···.”
“···?”
“동생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냉난방기 전부 전기로 돌아가는 최신 제품이야.”
“나도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닐까?”
“미친···너 그 생활을 다시 9년이나 더하고 싶냐? 난 빨리 졸업이나 했으면 좋겠다.”
“너무 추운데···석유 냄새 때문에 그렇지.”
“하긴 선생 중에는 냄새난다고 난로 끄고 버티라는 사람도 있지.”
“국사가 그렇잖아. 난로 끄고 창문까지 열게 하고···. 물론 공기가 순환되는 건 좋지만 너무 춥다고···.”
“···.”
“으으···.”
국사 시간을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는지 춥다는 몸짓을 온몸으로 보여준 현진이에게 난 안 좋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있을 일을 말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앞으로는 더 심해질 거야.”
나는 회귀 전에 느꼈던 살이 타들어 가는 햇빛과 눈을 아프게 하던 자외선 그리고 제대로 된 눈 폭탄에 차들이 도로에서 멈춰섰던 회귀 전 기억을 가지고 사실을 말했지만 현진은 믿지 않았다.
‘나도 회귀 전에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장난치냐고 대꾸도 안 했겠지.’
“저주하는 거냐?”
“너 언론고시 준비한다면서 이것도 몰라?”
“뭐가.”
“지구온난화.”
“그거야 서구권 국가에서나 주장하는 거지. 잘사는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에서 이제 개발하고 발전해보려니까 딴소리하는 거 아냐?”
당시에 선진국을 주축으로 한 서구권 국가에서 지구온난화의 위험성과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했을 때의 위험성에 대한 지구온난화 보고서를 발표했지만 각국의 입장 차이 기업의 입장 차이로 그저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정도만 우리나라에서는 인식하고 있었다.
‘사실 이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견제하기 위한 거짓된 보고라고 말하는 나라도 있었으니까.’
“그런 거면 좋겠다.”
“···?”
등굣길의 찬 바람을 피해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현진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교실문이 보였다.
드르륵.
교실문을 열고 교실 한가운데 난로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진에게 질문했다.
“너 석유 난로 싫지.”
“좋겠냐?”
“그럼 당장 버려도 좋아?”
“미친···나 손가락 지금 안 구부려지는 거 보이냐? 동상 걸릴 것 같으니까 난로 앞에서 말해.”
석유 난로 앞에는 등교를 마친 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손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현진이 손을 녹이면서 말했다.
“너 같은 사이보그가 아닌 나는 손 좀 녹여야겠다.”
“그래···.”
한참을 손을 녹이던 현진이 이제는 다들 외면하는 창가 교실 뒷자리로 오더니 책가방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학교에서 석유 난로가 위험하고 학생들 여론이 안 좋다고 당장 버리라는 결정을 학교에서 하면 어떨 것 같아?”
“미친···추워죽겠는데 갑자기 버리라고 하면 뭐 다른 대책은 있고?”
“자연에너지로 버티는 거지.”
“장난해?”
“국민 학교 때 졸업한 목재 난로로 버티라고 하지?”
“그럴 수도 있고.”
“그렇게 대책이 없으면 버리면 안 되지 당장 추워서 죽겠구먼···.”
현진은 바닷가에서 살아서 그런지 추위를 많이 타기는 하지만 반 아이들이 난로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많이 추운 것 같기는 했다.
“석유 난로 위험하잖아. 너도 냄새난다고 싫어하고 방송부 선배가 제보를 준비할 정도로 학생들 여론도 석유 난로가 없어졌으면 하는 거잖아?”
“그렇다고 당장 없어지면···아니 난로 중에 안 위험한 난로도 있냐? 전기로 하는 난방기구도 누전되면 불나는 건데 석유 난로가 위험하다고 당장 없애면 난 살 수 없다.”
“추위를 많이 타서?”
“그것도 그렇지만 이미 좋든 싫든 추울 때 따뜻하게 해주는 난로를 사용하다가 사용하지 말라는 건 따뜻한 난로라는 걸 모르는 상태면 모르지만···알고 난 다음에 갑자기 사라진다면 상대적으로 더 박탈감 느낄 것 같은데?”
“박탈감?”
“있다가 없으면 더 박탈감 느끼지. 거기다가 추운데 난로 못 틀게 하면 반란이야···반란.”
“크··큭···반란?”
“너 난방이 얼마나 중요한데. 조선시대에 산이 왜 민둥산이 됐을 거 같아?”
“어···?”
“밥하는데도 필요하지만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라고 그런데 그게 부족해서 죽는다? 그럼 너 죽고 나 살자가 되는 반란이지.”
“에너지···.”
“학교에서 석유 난로가 냄새나고 위험하다고 당장 치워버리면 학생들이 학교 나오겠냐? 뭐 나오는 애들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못 나와···. 으···오늘 왜 이래?”
덜덜 떨고 있는 현진에게 가방에서 꺼낸 손난로를 주었다.
“오···이런 것도 챙길 줄 알아?”
“엄마가 넣어줬지. 난 추위 안 타니까. 너 써.”
“잘 쓰마. 너의 헛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준 값이라고 생각할게.”
장난스럽게 씩 웃는 현진의 말에 나도 피씩 웃어버리고 말았다.
“당장 석유 난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버리면 어떻게 버텨···석유 난로가 마음에 안 들어서 처분하더라도 학교에서 다른 걸로 바꿔준다고 할 때까지는 써야지. 그리고 석유 난로 그냥 버리는 것보다 가지고 가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주는 게 더 낫고. 교실이야 애들이 많으니까 석유 난로가 불편한 거지 필요한데도 있을 거 아냐.”
“그게 당연한 거지?”
내가 현진의 말에 반색하듯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면서 말하자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면서 질색이란 표정으로 외쳤다.
“너 뭐 잘 못 먹었어?”
변화를 바라는 아이들도 체계적인 방식을 원하지 주먹구구식의 방식으로 많은 폐해를 일으키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다는 걸 확인받은 것 같아서 나는 현진의 과격한 반응에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교 시간이 다가오자 현진은 교무실에 다녀온다며 교실을 나섰다. 나는 현진과 함께 교실을 나서서 구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리 선배 오늘은 등교했을까?’
평소와 다르게 독서부실이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미리야 오랜만이다. 어머니는 몸 괜찮으셔?”
“어···응···많이 좋아지셨어. 아직 병원이지만 좀 더 차도를 봐야지.”
“빨리 건강해지시면 좋겠다. 너 오기 전까지 나하고 애들이 돌아가면서 열람실 청소도 하고 관리하고 있었어.”
“아···그래···.”
“독서부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어요?”
“누구?”
“후배요. 미리 선배가 독서부 열람실을 혼자 지킬 때 책 빌려보던 후배죠. 다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독서부에요?”
“어···.”
“이제 요일별로 사람이 바뀌는 건가요? 매번 미리 선배만 자리 지키고 있던데.”
다들 머뭇거리는 사이에 미리 선배가 나를 데리고 독서부 열람실에서 나왔다.
“나 때문이라면 굳이 미운털 박힐 말할 필요 없어···”
“다들 이래요?”
“어···?”
“다들 이렇게 이제까지 잘 지내왔던 것처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철면피냐고요."
“아···대부분 어려워하지. 방금은 좀 특이했달까···나도 당혹스러웠고.”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해요?”
“글쎄···서로 눈치 보는 느낌이랄까?”
“그럼 아무도 사과도 하지 않은 거예요?”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피해자가 한 명이고 가해자가 다수면 다수에 따르게 되는 것 같아.”
“···.”
답답해하면서 분노하는 내 등을 톡톡 조심스럽게 두드린 미리 선배가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여줬다.
“내 일에 이렇게 대신 화내주니까···기분이 이상하네. 그런데 너무 열 내지마. 나 전학 갈지도 몰라.”
“네? 피해자인 선배가 왜 전학을···.”
“지금 상황 때문이라기보다는 엄마가 치료 끝나면 안남시에서 먼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네? 외가댁이 안남시라고 하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데 엄마하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하고 좀 어색해져서···.”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난 엄마가···.”
한참 하늘을 보다가 나를 보더니 방금 전 같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강하다고 생각했어.”
“저번에 우희를 용서하시는 걸 보면서 단단하신 분이라고 저도 느꼈어요.”
“그런데 사실 엄마도 마냥 강할 수만은 없다는 거 그걸 알게 된 거야.”
“···?”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다투는 모습 처음 봤어.”
“···.”
“항상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 말씀을 잘 듣던 엄만데···.”
“그래서 그런 모습이 싫었어요?”
“아니···왠지 싫지 않아.”
“···?”
“나도 이유는 모르겠어. 그런데 나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