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태풍의 눈>
날씨가 추워져서 옷깃을 세워본다.
‘패딩 하나 살까?’
시내를 걸어가면서 보이는 불야성 같은 불빛 사이로 옷가게에 걸려있는 따뜻하고 두툼해 보이는 외투에 시선이 가지만 이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시내의 네온사인에 가려서일까? 하늘을 밝히는 빛은 거리의 가로등뿐이다.
‘지방에 내려오면 쏟아지는 별빛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아쉬운 마음을 추스르면서 차가운 바람을 피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넓은 기숙사 실이 익숙하지 않아서 다시 한번 문을 열었다 닫아본다.
‘2인 1실이라고 하던데···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자꾸 밖으로 흐르는 생각을 추스르면서 따뜻한 물에 자꾸 복잡해지는 상념을 씻어낸다.
‘이제 졸업까지 얼마나 남았지?’
따뜻한 물에 풀리는 몸을 즐기면서 졸업 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졸업하면 정말 정비소를 차려줄까?’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가 약속했던 정비소에 대한 꿈에 샤워기에서 튀는 물방울에 눈을 감는다.
‘정비소를 차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제대로 배웠으니까. 지방에서 몇 년 고생하면 외곽지에 내 가게를 낼 수 있을 거야.’
샤워가 끝나고 타월로 머리를 털고 나오자 냉랭한 기운이 도는 기숙사 방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히쭉 웃고 만다.
“여기에 입학했으니까···.”
차량 정비에 관한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국내 인력을 외국 취업까지 도와주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전문학교였다.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줬던 사람이 있던가?
“형도 재활이 잘돼서 한국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방학이니까 만나러 가볼까?”
속으로 생각하던 마음이 기숙사 방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첫 만남 이후에 이제까지 가슴을 누르던 미래는커녕 당장 내일도 장담하지 못했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고맙다.
감사하다.
그런 생각보다는 이 기회를 살려서 잘먹고 잘사는···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가 든다.
나도 기회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나쁜 짓 안 하고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세상에 외치고 싶다.
‘이번에는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사진에는 지금의 모습보다 앳된 모습의 나와 지훈이가 찍혀 있었다.
나의 뚱한 모습과 밝게 웃는 지훈이의 모습이 내 눈을 아프게 한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 방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파오는 눈을 가린다.
‘나 같은 것보다 네가 살아있었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기회를 준 지훈이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대로 주저앉아서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제대로 살아보자.’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이번에는 1차만 합격했지만 다음 자동차정비 시험에서는 2차까지 합격하고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거야.’
졸업반 중에는 대기업 자동차 공장에 취업한 선배도 있었다.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위치에 오자 그제야 자신 주위에서 자신을 도와주던 이들에게 고마움이 생겨났다.
깜깜하고 알 수 없는 두려운 미래를 앞에 두었을 때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막막함 때문인지 전부를 부정하면서 탓하기 바빴다.
하지만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자 자신이 운이 좋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도 평범한 삶을 꿈꿀 수 있게 되는 건가?’
미래가 막막할 때는 사회가 전부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갔고 이 세상에 외톨이로 버려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조차 버린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덕분에 스스로도 헛되다고 생각했던 꿈에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다가가기 시작한다.
‘지훈아···.’
그저 내가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서 외면하고 고개를 돌리면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전처럼 아니 없었던 것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했던 더러운 타협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날부터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면서 그저 그 자리에 묶여서 외면하는 것만으로 시간을 허송하면서 괜찮다고 자기 위안을 한 것밖에 되지 않았다.
감당하기 힘들다고 외면하기만 했던 사건을 억지로 마주하면서 스스로 부딪치자 오히려 앞으로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난 잘살고 있는 걸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우면서 오늘 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찰칵―.
선잠이 든 상태에서 기숙사 방이 열리는 문소리에 부스스 일어나면서 말했다.
“진수야 방학 동안 본가에 간다면서 벌써 온 거야?”
아무런 말도 없고 기숙사 불도 키지 않는 모습에 이상한 느낌을 받은 나는 잘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칠흑 같은 기숙사 방을 주시한다.
익숙하다고 느낀 기숙사 방이 형광등 불빛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생경하고 어두운 상상을 자극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지···진수야? 장난치는 거야?”
어두운 시야에 점차 기숙사 방 입구의 형체가 흐릿하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누··누구···?”
진수라면 분명 한 명이어야 하는데 기숙사 방의 좁은 입구에 보이는 형체는 한 명으로 보이지 않았다.
퍽―.
일어나기 전 어두웠던 침실과 다르게 너무 눈부신 조명에 인상을 찌푸리지만 상대는 이런 나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정신 차리기 전부터 했던 것처럼 내 뺨을 툭툭 치고 있었다.
아프기보다는 기분이 나쁜 터치에 입을 열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읍···읍···.”
“이제야 정신 차린 건가? 납치 와중에도 잘 자고 아주 건강해.”
“으읍···.”
“이렇게 건강한 친구들이 참 좋아. 왜냐고?”
시야를 막고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일어나자 그의 등 뒤로 보이는 같은 공구에 나는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비명을 질렀다.
갈고리 같은 송곳 끝에는 누르스름한 얼룩과 함께 누군가의 눈동자가 걸려있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구토가 입을 막은 테이프에 막혀서 역류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온몸을 뒤틀고 있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거라고는 양손이 뒤로 묶여있고 양발은 의자 같은 곳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워···워···진정하라고 앞 전에 손님이 있었는데 내가 제대로 뒷정리를 못했네.”
갈고리 같은 송곳 끝에 걸린 안구를 푸른색 수술용 장갑으로 보이는 장갑으로 잡더니 스텐처럼 보이는 통에 넣어서 닫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숨쉬기 어려움을 느끼고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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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건강한 놈인 줄 알았는데 허우대만 멀쩡한 건가?”
“돼지 새끼 네가 지독한 놈인 걸 안 거지.”
“형님?”
“적당히 겁만 주라니까. 죽인 건 아니지?”
“지가 지레 놀라서 난리 치는 것까지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흠···보니까 잠깐 기절한 거지 금방 정신 차릴 겁니다.”
돼지로 불린 남자가 아직 앳된 얼굴의 재민을 발로 가볍게 차면서 말했다.
“그래. 돼지 새끼 이놈 잘 가지고 놀다가 네가 시키는 일은 지 애비 애미 죽이는 일이라도 할 수 있게끔 조정해두라고.”
“알겠습니다. 제가 이런 쪽으로 한 두 번 거래한 것도 아닌데요.”
“이건 위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이니까. 업무 외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하면 안 돼.”
“뭐 정신 무너트리는 거야. 굳이 힘들다면 몸에 흔적 남기지 말라는 건 좀 거슬리네요.”
“내 방식은 그나마 신사지. 너 새끼는···.”
“말 그대로 돼지 아닙니까. 아무거나 입에 쳐넣는 크크큭···.”
“미친놈.”
“미쳤으니까. 주신 일 잘하는 것 아닙니까. 크크큭.”
“이번 일 끝나고 내가 일하나 줄 테니까. 그것도 잘 부탁해.”
“알겠습니다. 저야 일이 곧 취미니까요.”
“눈에 거슬리는 놈이 하나 생겼어.”
“형님 눈에 거슬리다니 편히 죽지는 못하겠네요.”
밝았던 공간이 어두워지더니 거친 손놀림으로 재민이를 깨우는 손길에 재민이 정신을 차린다.
묶인 상태에서 의자를 수영장 같은 곳으로 던져버리자 숨이 막히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하지만 차라리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가 더 나았다.
어푸어푸―.
오래된 목욕탕처럼 보이는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넘치기 시작한다.
꼬르륵―.
재민이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지만 의자 뒤로 묶인 손과 의자 다리에 묶은 다리에 생체기만 생길 뿐이다.
저 멀리 밝은 빛이 보이지만 네가 있을 곳은 밑바닥이라고 하는 것처럼 빛이 흔들린다.
재민은 숨이 막혀오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지만 더욱 고통스러운 건 자신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공포였다.
‘누가 나를···.’
재민의 질문은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아무도 답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누구를 향한 원망인지 모를 분노가 가슴 깊이 쌓이기 시작했지만 그 분노조차 표출할 대상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야 살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분노가 지나가자 깊은 슬픔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슬픔조차 같이 나눌 존재는 없었다.
그저 억눌린 신음만이 재민이 살아있고 버티고 있다는 걸 확인 시켜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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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작 이런 사람이었던가?’
흔들리는 물에 나의 정신이 녹아내린다.
휘몰아치는 포말에 나의 머릿속이 씻긴다.
내가 누구였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지 그것만이 중요하다.
‘이렇게 또 내가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외면하면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배우는 게 없다면 무슨 의미일까.
몸이 아프다.
산소가 고프다.
정신이 멍해진다.
살고 싶다.
하지만···
사람답게 살고 싶다.
지훈이가 가르쳐준 그런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
지금이라도 당장 나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훈이가 죽고 그저 살기 위해 살았던 순간.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저 숨을 쉬고 먹고 살아있다고 해서 진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매 순간 매분 매초 나 스스로에게 자책하고 스스로를 비난하면서 갈 곳을 잃어버린 내가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 수 있을까?
이 고통스러운 순간.
왜 몸은 힘들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가 미워서 어쩔 줄 몰랐던 방황하던 중학생 때의 기억이 떠오를까?
지훈이가 살아서 나와 같은 순간에 던져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점점 숨이 가빠온다. 밝은 빛이 내 주위에서 번져간다.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눈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눈을 뜨고 있는 건가?’
이렇게 고통받는 순간이 지나면 또 구원의 순간이 올까?
그렇다면 나는 이 순간의 고통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대로 포기하고 저들이 원하는 대답을 주면 마음과 몸이 전부 편해질까?
지훈이를 두 번 죽이는 결정이라도 내가 살기 위해서였다면 괜찮다고 해줄 사람들.
차라리 나를 비난한다면 그렇다면 살기 위해서 그랬다고 크게 외칠 텐데.
왜 미련하게 버텼냐고 타박할 지훈이 아버지···.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