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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42화 (142/205)

<142화 미워할 용기와 미움받을 용기 4>

“부모가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생각이 없어진 인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부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그 선택은 우희라는 아이가 한 것일세.”

“···.”

“마지막에 손속에 정을 두어서 결과가 다행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누군가 피해를 입을 것을 알고 했다면 그것이 잘했다고 말하지는 못하는 것을···.”

“하지만 우희는···.”

“어린 친구 정의의 저울은 움직였고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의미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텐데···.”

“정의의 저울이 움직인 이상 제가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면···.”

“그 칼날이 어린 친구 자네에게 향하겠지···.”

“차라리 제가 다치는 건 감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자네 어린 동생이 폭행으로 고소당했다고 했던가?”

“그건 말도 안 되는 날조에요.”

“그렇지만 우희라는 아이가 정당한 심판을 받게 하지 않고 도망치게 한다면···.”

“차라리 제가···. 그렇지만 동생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그래서 오늘 이정만이라는 남자와 함께 병실을 찾아갔던 거군.”

“우희가 정당하게 판결받고 하지만 사회에게 적응하도록 지원할 수 있게 피해자지원재단에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

“···.”

“제가···. 제 동생이 다치게 하기 싫어서···전 비겁하게···.”

“자네의 행동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나?”

“··네···.”

“어린 친구의 선배라는 아해에게는 미워해도 좋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미워하길 거부하고 있구만···.”

“선배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싶다는 필사적인 부분을 봤어요. 그래서 외면하지 못하고 저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던 조언을 했고요.”

“그 아해가 말한 다름과 틀림···.”

“···.”

“부모가 이혼하고 다른 이혼가정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자책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혼가정의 아이에게 폭력적이고 잔인한 공격을 당했지. 어디라도 원인을 찾고 자신을 보호하고 싶지 않았을까?”

“···.”

“사실은 부모의 잘못이고 원망하고 미워하면 간단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부모의 허물을 인정하고 미워하는게 쉽지 않지.”

“왜 그럴까요?”

“오랜 세월을 살았어도 인간의 감정은 나에게 어려운 문제이지. 다만 짐작하자면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두렵다고요?”

“부모의 허물을 미워하고 원망하기에는 자신을 사랑했던 부모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각을 막고 행동을 막고 그저 다른 부분에서 원인을 필사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지.”

“···.”

“그래도 자네의 선배는 지적 활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를 사람들의 행동을 냉정하게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을 틀리다고 인식해서 상처를 입히는 거라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한 것이지.”

“···.”

“만약 그 정도의 객관화와 거리감이 없었다면 부모의 이혼을 이유로 자기파괴에 빠질 수도 있었겠지.”

“자기파괴요?”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니까. 부모님의 이혼 나를 먼저 배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수치심 자존감 하락을 보상받고 싶어서 행하는 가출이나 반항 아니면 나쁜 길로 빠지는 것같이 자신을 괴롭게 함으로써 부모도 괴로워하기를 바라는 행동을 말할 수 있겠지.”

“그건···.”

“자녀를 사랑한다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이니 결말이 좋지 않다네.”

“···.”

“그런 면에서 자네의 선배라는 이의 다름과 틀림의 인식은 아직 어린 친구지만 놀라운 것이지.”

“···.”

“부모는 자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

“···?”

“그렇기에 부모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멀리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은 자녀에게 있다고 본다네.”

“그럼 부모님이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멀리하는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부모의 행동에 대한 결과일 텐데 그것이 서운하다면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일세.”

“···.”

“쉽게 말해서 자네 선배의 부모처럼 서로 미워해서 이혼을 결정했으면 자신의 자녀가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할 것은 인정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쉽지 않지. 부모라고 해서 자녀를 여러 번 양육해본 것도 아니고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 것을···.”

“그럼 부모와 자녀는 항상 대립하고 서로 미워하는 건가요?”

“하하핫. 그럴 리가 오히려 이 세상에서 가정 서로를 위하고 믿어주는 존재인 것이지.”

“···?”

“친구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감과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감과 예의가 있어야 한다네. 하지만 너무 가깝다고 나의 분신이라는 생각에 인격으로 생각하지 않고 동일시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

“너무 가깝다···.”

“어린 친구의 어린 선배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다르다고 다른걸 틀리다고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고 그건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가 아니었을까?”

“다르다 틀리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인격이라고 해서 서로 틀린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요.

어머니와 딸이 서로 다른 인격이라고 해서 서로 틀린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외친 것이지.”

“···.”

“쉽게 말해서 내 아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젊은 날 여자를 한 명도 못 만나게 했던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고 하자. 그럼 이후에 삶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모태솔로가 되는 거겠죠?”

“모태솔로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여자에 대한 적대감이 깔린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고 젊은 시절 당연히 연예로 풀었어야 하는 성에 대한 호기심을 적대감으로 눌러버린 존재···제대로 된 연예를 할 줄도 모르고 나이만 먹어간다면···.?”

“그럼···설마···.”

“여자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서 그렇지만 넘치는 호기심은 숨길 수 없어서 범죄 피해자가 괴거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

“평생을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돌보면서 살 수는 없을 테니 말일세.”

“평생···.”

“다른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른 인격의 인간을 평생 대신 살아준다는 건 힘든 일이지.”

“···.”

“아버지 입장에서는 젊은 날 너무 아픈 연예를 했던 것을 아들은 경험하지 않고 평범하게 결혼해서 잘살기를 바란 마음에서 막은 것일 테지만 아들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줄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

“···.”

“옆에서 지지하고 조언해주는 것과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고 상처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이지.”

“그래도 부모 입장이라면 자녀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정말 끝까지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 했다면 이혼 같은 선택할 수 있었을까?”

“···!”

“결국은 끝에 서로 다른 인격이라는 걸 인지하고 부부의 이혼에 대해서 아이에게 이해를 구한다네. 그렇다면 왜 자신이 원할 때만 동일시하면서 아이에게서 선택권을 빼앗고 자신이 변명하고자 하는 일에서만 나와 아이는 서로 다른 인격이라고 주장하는가?”

“그건 너무 아픈 지점이네요.”

“결국은 서로 다른 인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원할 때만 동일시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없지.”

“그렇지만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린 친구 자네의 선배처럼 배우고 익히고 고심해야 하는게 아닐까?”

“···!”

“부모가 처음이라 모르면 배우려고 노력하고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자세히 들어보려고 하는 기본적인 노력 말일세.”

“···.”

“결국 삶은 누구나 알지 못하는 길을 처음 걷는 것과 같지. 정답은 없고 답을 정해놓고 걷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헤매는 것과 같아.”

“답을 정해놓고 걷는다는 게···.”

“인생의 정답이 없는데 답을 정해놓았으니 그 길이 험난해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아···.”

“부모는 한국에 살고 자녀는 미국에서 살면서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가족이 있다네 그렇다면 한국에서 사는 부모는 인생에서 실패한 것일까?”

“아무래도 너무 멀리 살면···.”

“부모는 재력도 좋고 언제든지 미국에 갈 수 있지만, 굳이 먼 비행시간을 가지고 싶지 않아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고 자녀들은 미국에서 성공한 직장을 가지고 대우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면?”

“어?”

“삶의 겉에 보이는 모습에서 답을 찾으면 답이 없어지는 법이지. 삶은 자신의 만족이나 행복에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네.”

“···.”

“특이점으로 선택할 보상이 두 가지 있다면···자네는 돈과 가족의 평안 중 어느 것을 고를 것인가?”

“당연히 가족의 평안이요?”

“고민하지 않고 결정하게 된 이유는 당연히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잘 풀려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겠지.”

“아직은 수확을 기다리는 중인걸요.”

“자네의 대답처럼 정작 중요한 것은 여유를 가지면 보인다는 것일세.”

“여유···.”

대백공과의 문답으로 답이 보인 건 아니다.

그저 안갯속을 헤매던 기분에서 이런 모습도 나고 저런 모습도 나인 걸 그저 알게 되었을 뿐이다.

대백공은 어느 한 방향이 정답이라고 지정해주지 않는다.

차리라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라고 해준다면 편할 것 같은데.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든다.

대백공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하고 그대로 행한다면

나는 대백공이 움직이는 게임 속 캐릭터와 다를 바 없는 게 아닐까?

아프고 실수하고 부딪치고 넘어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그래도 다시 앞으로 향한다면

아프고 또 아플게 두려워도

그게 나의 인생이 되지 않을까?

내가 생각에 잠겨 복잡한 속내를 정리하는 동안 뒷짐을 지도 먼 하늘을 바라보던 대백공이 선문답 같은 말을 던진다.

“폭풍이 몰아칠게야. 폭풍이···이제까지 잘 지어졌다고 생각한 집도 폭풍을 대비해서 더욱 보강해야 하는 법이지.”

“그 말씀은···.”

“어려운 시기가 되면 별 것 아닌 틈 사이로 비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무너질 수 있다네.”

“···.”

“어려운가? 가끔은 단순하게 부딪치는게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네.”

대백공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하지만 순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듯한 부양감과 함께 멀리서 대백공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린 친구 다가오는 폭풍에 대비하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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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소리를 냈다고 생각했지만 소리 없이 내 침대 위에서 전신에 식은땀이 젖은 채로 일어나야 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적막한 집안만이 내가 방금 잠에서 깨어났다는 걸 알게 해줬다.

‘다가오는 폭풍에 대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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