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미워할 용기와 미움받을 용기 3>
흐릿한 안갯속을 헤맨다.
앞으로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걷고 있지만 내가 앞으로 가는 것일까?
앞으로 향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뒤로 가거나 옆으로 가거나 아니면 길을 완전히 잃어버린 게 아닐까?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열심히가 아닌 잘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럼···잘 하지는 못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던 나의 노력은 전부 안갯속에서 허망하게 헤매는 것처럼 사라지는 걸까?
앞을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이 점차 둔해져 간다.
둔해져 가는 만큼 더 앞을 파악할 수 없다.
악순환이 계속되지만 나의 발걸음은 멈추지 못한다.
내가 멈추는 순간.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발목이 잡혀서 두려운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진다.
체력이 떨어지고 손발이 떨리기 시작한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피로감이 나를 좀먹지만 멈출 수 없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나를 잡아먹을 것 같다.
앞이 아닌 뒤를 향하는 발걸음이라고 해도
두려움이 나를 재촉한다.
앞···아니 뒤···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이 나를 안심하게 한다.
하늘이 갈라지고 광풍이 분다.
무언가 강력한 힘으로 이 공간을 폭발하듯 비산 시킨다.
쿠과과―쾅.
안개가 순식간에 폭발음에 밀리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대백공?”
“어린 친구···심마에 들었구만.”
“아···.”
내가 있던 공간이 대백공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 익숙한 오두막이 멀리 보이는 오솔길에 나를 마중 나오듯 나와 있는 대백공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소리를 배경으로 대백공이 무언갈 감내하듯 이제까지와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오두막으로 배경이 변해있었다.
‘아니···내가 오두막으로 이동한 건가?’
“왜 이리 헤매는 걸 선택하는 인간들이 많은지···가끔은 그저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번뇌를 벗을 수 있는 것을···.”
“저는···.”
“어린 친구···자네의 선배라는 아해에게는 마음껏 원망하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원망하고 미워하길 주저하는 구만.”
“하지만 우희라는 아이는···불쌍한 아이에요. 아직 어리고 그리고 부모의 사랑도 모르고 큰 그래서 더 안타까운···.”
“···.”
“왜 부모의 잘못 때문에 우희라는 아이가 희생당해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그 아이가 행한 일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그렇지만···.”
“허허···. 그 당시에는 작은 씨앗이었지만 그 씨앗이 크게 자라 뿌리가 깊구나.”
“작은 씨앗이요?”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순간순간이 선택의 기로이고 그 선택이 항상 옳다 할 수 없는 것이니···과거의 아주 작은 씨앗이 이렇듯 크게 뿌리내려서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고통받을 줄 알았을까.”
“과거의 선택이요?”
“이 땅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보다···예를 중시하고 그 예를 통해서 스스로조차 믿지 못하고 있군.”
“···.”
“참 흥미롭지만 어린 친구 자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그 당시의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저주가 이렇듯 뿌리 깊게 내릴 줄 상상하지 못 했구만···.”
“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오래전 저주를 받은 이후로 이 땅에 태어난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목표조차 찾지 못하고 죽고 만다네.”
“저주요?”
“동방이라고 표현하는 것부터가 이족이라고 낮추어 부른 것인데 예의가 깊은 국가라고 하면 이족보다 높은 세상의 중심인 자신들에게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지. 하지만 예의지국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이 땅은 많은 이들이 그 단어에 고통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저주에 연연하고는 했지.”
“도대체 왜···.”
“명리에 밝지 않고 명명에만 의존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네···. 쉽게 말해서 이 땅에 오랜 시간 자리 잡은 기득권층의 필요에 의해서인 거지.”
“···?”
“명리에 따라 행동하면 천하다. 예를 중시해야 한다. 명리만 쫓아서 행동하니 행동이 경박하다.”
“···?”
“깨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나올 때마다 그와 다른 변화를 원하지 않는 기득권층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말일세.”
“···.”
“충이란 윗사람을 위한 아랫사람의 희생을 아름답게 포장한 것이고···.”
“의란 나라를 위한 희생을 정당화하며···.”
“효를 통해 부모가 자식을 소유한다.”
“거기에 예라는 규범을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확대해석하여 백성들을 호도한다.”
“유교 사상을 말하는 건가요?”
“모든 사상은 나쁜 게 아니지 혼란스러운 정세에서 나온 사상이라 인간의 도리를 담은 사상이기도 하고 하지만 기득권층은 그런 지자의 지식 중 자신들이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는데 탁월하다네.”
“그럼···.”
“처음의 인의예지신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곧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 믿음직함을 말했다네.”
“어르신이 말씀하신 충, 의, 효, 예하고 다른데요?”
“자네가 좋아하는 샌드위치가 있지 삶은 계란을 정성을 들여 다지고 거기에 오이와 당근 그리고 마요네즈를 섞어서 만든 상큼한 샌드위치 자네라면 먹겠나?”
“윽···다 좋은데 오이가 들어간 건 조금···어머니는 항상 오이는 빼고 만들어주셨는데···.”
“그것처럼 기득권층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지자의 사상 중 자신이 원하는 것만 확대 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이지. 오늘날 선동과 다를 바가 없다네. 사실의 극히 일부분을 확대해석해서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지.”
“그럼 예의를 지키는 게 나쁜 건가요?”
“예의를 알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쁘다? 아닐세. 다만 적정한 기준을 벗어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
“···?”
“무엇이든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하지. 예를 지키겠다고 국혼에 가채를 쓰고 예식을 치르다 죽은 국모가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
“좋지 않은 일이라 하여 정확한 수치가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서 그렇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이들도 많다네. 너무 과한 예를 취하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이지. 그게 옳다고 보는가?”
“그건 너무 황당한데요?”
“목숨보다 예가 중요하다. 인간은 말일세. 가끔 너무 어리석을 때가 있다네. 예보다 목숨이 더 중요한 걸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지.”
“···.”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갇혀 사는 것을 보면 인간은 참 흥미로운 존재이지.”
“···.”
“그렇듯 사회 분위기에 따라서 너무 과한 예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경우 너무 과한 예가 상대를 공격할 명분으로 사용해왔으니 그게 정말 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저 공격하기 위한 명분으로 쓰기 위해서 더욱 지키기 어려운 예를 서로에게 강요했다는 건가요?”
“상황에 따라서 다 다른 것이지. 어린 친구 자네와 선배가 다름과 틀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했지?”
“네.”
“예를 지키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해야 한다네. 지금 이 땅에서 옳다고 말했던 예가 다른 곳에서는 틀린 것이 되는 경우도 있지. 그런데 그런 다른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예가 과연 옳다고 생각하나?”
“···.”
“그렇듯 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그 생명과 그 생각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라네.”
“살아있는 인격체···생명···.”
“재미있는게 무엇인 줄 아는가? 가장 소중하고 귀한 물건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탐하게 되는 것이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장 소중한 아이···.”
“···.”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에 의한 동반자살···아니지 자녀 살해 후 자살을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지.”
“부모가 아이들의 생명을 어떻게···.”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니까 그런 거라네.”
“이렇듯 누구를 위한 예절 규범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네. 세상의 모든 이치는 그저 얻어지는 게 없는 법이니.”
“···.”
“그렇다고 예가 없는 인간은 뭐···짐승과 다를 바 없겠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좋다는 건가요?”
“내가 이 땅의 흐름을 원할하게 하는 일을 관장하고 있다고 했지?”
“아···천지인···말씀하신 거요?”
“인간은 선악을 너무 쉽게 판단하려 하지만 어린 친구 자네는 알지 않나? 삶이 그렇게 단조롭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걸 말일세.”
“···.”
“인간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그런데 유일하게 숨 쉴 곳이 가족인데 가족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내지 못하면 삶에 치여서 자신조차 놓아버리는 이들이 있지. 생령이 되는 거지.”
“···.”
“살아있고 이 땅 위에 걷고 있지만 영원히 떠도는 자들. 마음도 몸도 다 말라버린 이들···그러다가 이 땅에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끝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이 땅에 몸을 눕혔지.”
“···.”
“그런면에서 자네 선배의 부모는 자녀가 있는데 이혼을 결정했다면 그들이 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렇다면 자신을 사랑한다는 부모의 이혼을 이기적으로 막고 싶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혼한다는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자녀를 악하다 할 수 있을까?”
“···.”
“진정한 악은 이보다 더 순수하고 잔혹하다네. 그건 악을 막아내는 게 때로는 더욱 쉬울 때도 있지.”
“···.”
“하지만 인간이 가진 악은 너무 복잡하고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어서 인간의 힘으로 구분하기 힘들지.”
“···.”
“정의의 저울을 그걸 판단할 수 있다네···.”
“신기···.”
“모조품이라고 해도 신의 의지를 꿈꾸는 물건이니···.”
“하지만···.”
“우희라는 아이들 들여다보고 정의의 저울에 의구심을 품은 건가?”
“그 아이는 부모 아니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힘들게 커오다가 그 짐승 같은 여자한테 이용당한 거예요.”
“하지만 저울은 그 아이에 대한 처분을 논했을 텐데···.”
“미리 선배에게는 원망하라고 하면서 정작 저는 정의의 저울의 기준을 믿을 수 없었어요.”
“이 땅의 저주에 대해서 말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부모가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생각이 없어진 인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부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그 선택은 우희라는 아이가 한 것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