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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40화 (140/205)

<140화 미워할 용기와 미움받을 용기 2>

“그런데 나와 우희의 차이가 뭘까? 나와 우희는 틀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내 옆에 누군가 있어줬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누군가라면···.”

“엄마···나는 아빠하고 엄마하고 이혼하면 나는 버림받는다고 생각했어. 나를 정말 사랑하면 이혼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건···.”

“알아. 이기적이지. 그런데 나는 아빠하고 엄마하고 싸우더라도 나 때문에 같이 살기를 바랐어. 그런 나쁜 나를 엄마는 자기가 생명처럼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잃더라도 보호하려고 했어.”

“미리 선배 어머니는···.”

“그거 알아? 남성우월주의자 외할아버지 밑에서 엄마가 커오면서 자기 방어처럼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된 거야.”

“남성우월주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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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정신 차려.”

“김 중사···.”

“내 뒤만 따라와. 알겠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점차 잦아드는 숨소리가 계속 내 발걸음을 붙잡는 것 같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아내의 얼굴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자신의 앞에서 전방을 주시하면서 걸어가는 김 중사의 넓은 등을 보면서 속으로만 되새기던 말을 꺼낸다.

“김 중사 내가 죽으면 내 아내에게 아들이면 철수 딸이면 영희라고···.”

김 중사의 넓은 등이 한번 꿈틀거린다고 생각한 순간 난 참호에 구겨지듯 처박혀있었다.

퍽.

내 얼굴 바로 옆으로 김 중사의 주먹이 박힌다.

“소위님 정신 차리쇼. 여기서 정신 놓고 있다간 진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거니까.”

“김···중사···?”

“바닥을 벅벅 기어서라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라고 이 새끼야.”

끝에는 터지는 폭탄 소리를 잡아먹을 것처럼 크게 외친다.

‘살라고? 내가 이끌던 소대는 이미 첫 포격에 와해되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김 중사 뒤를 쫓아서 머저리처럼 걷고만 있는 나를?’

“이 ××새끼아. 지금 죽은···.”

항상 FM 모습이었던 김 중사의 처음 보는 감정적인 모습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 죽은 녀석들이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너 같은 ××이 살아야 한다고.”

“···.”

“죽어도 살아돌아가서 죽어. 내 소대원들한테 정말 얼굴이라도 들고 싶으면.”

김 중사가 넘기는 군번줄이 흙투성이에 끈적하고 비릿한 핏물이 스며들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너 같은 애새끼가 돌아가서 보고하지 않으면 그 녀석들 다 개죽음이라고. 정신 차려.”

짝―.

마지막에는 감정이 실린 듯 따귀까지 때렸지만 오히려 정신이 든다.

기분이 더러워지면서 살아야겠다는 악만 남는다.

‘살아간다. 살아가서 너희들 개죽음으로 만들지 않겠다.’

김 중사가 다시 내게 등을 돌리면서 말한다.

“간다. 살아 돌아간다.”

펑.

그 순간 폭탄이 바로 옆에서 터졌다. 김 중사에게 밀쳐져서 참호에 엎드리듯 있던 나에게 흙더미가 덮쳤지만 내 눈은 김 중사의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터지듯 나를 덮치는 흙더미와 함께 뜨뜻한 하지만 징그러울 정도로 순식간에 식어버린 핏물이 소름 끼친다.

“김···중··사···.”

아무런 대답도 없는 이를 부르면서 의식이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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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가 재미없지?”

나는 갑작스러웠던 전쟁통 한복판에서 갑작스럽게 내가 서 있는 곳이 미리 선배 어머니 병실 앞이라는 걸 인식하자 혼란스러웠다.

속이 매스껍고 어지러웠지만 나는 간신히 뒷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전쟁에 참전하셨어요?”

“어? 내가 말했던가? 엄마도 모를 거야. 외할아버지가 철저하게 엄마한테는 말을 안 했다고 하더라···”

“그럼 선배는 어떻게 아는 건데요?”

“이번에 아빠하고 엄마 이혼하면서 나한테 누구 쫓아서 갈 거냐고 판사가 묻더라고 그래서 고민해보겠다고 했는데···외할머니가 찾아와서 말해줬어.”

“왜 미리 선배 어머니한테는 말씀을 안 하고 선배한테···.”

“외할머니가 말씀하시는데 그냥 말도 안 되는 말인데 이해가 되더라고 나도 좀 설명하기 힘든데···.”

“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냥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살아서 괜히 힘들었을 때 이야기 하느니 하루하루 살기 바쁘기도 했고 외할아버지가 불명예제대하면서 그 이야기 하기 싫어하셨다고 하더라.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제대하고 나서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술만 마시고 힘들어하는데 괜히 자기가 먼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데.”

“···?”

“그런데 웃기는 게 한번 말을 안 하기 시작하니까. 말 꺼내기가 어려워졌다고···.”

“···.”

“너도 어이없지? 그냥 말 꺼내기 힘들어도 이야기하고 외할아버지가 전쟁통에 힘들었고 그래서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를 더 원해서 외할머니도 그 당시에 힘들었다고 그렇게 말하면 될 것 같은데 그저 침묵하고 힘든 세월이 지나가기만 바랬다는 게···.”

“가장 가까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오히려 힘들다니 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그런데 이해가 되네요.”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이해가 되면서 마음이 아프더라.”

“그럼 남자아이를 원했는데 여자아이를 낳아서 미리 선배 외할머니도 힘들었데요?”

“아니···외할아버지는 딸아이를 원했데···외할머니 닮은 예쁜 딸.”

“그런데 왜···.”

“전쟁통에 다들 남자아이를 원하니까 그냥 분위기에 휩쓸리듯 외할머니는 죄인처럼 숨죽이고 살고 외할아버지는 밖에서는 막 호통치면서 권위주의적으로 굴다가 집에서는 외할머니하고 엄마한테 잘해줬데···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외할머니가···.”

“그런데 웃기는 건 뭔지 알아?”

“뭔데요?”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나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지키고 싶어서 한 행동이 외할머니나 엄마한테는 상처가 되었다는 거야.”

“대화를 안 한다고 하시더니···.”

“이번에 아빠하고 엄마가 이혼한다니까. 외할아버지하고 외할머니하고 아주 제대로 싸우셨나봐. 이때까지 마음속에 응어리만 지고 있던 감정을 다 풀고 싸웠는데 사실 서로 대화를 안 해서 오해하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왜 정작 선배 어머니한테는···.”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상황이 안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는 그냥 말 꺼내기 어려우니까 변명하는 거야. 한 시간···하루···이틀···일주일···한 달이라도 미루려는 마음.”

“그건···.”

“그냥 당장의 어려운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눈 감는 거하고 같은데 어이없고···.”

“···.”

“···그런데 왠지 이해가 간다는 게 웃기는 것 같아.”

“그럼 아직도 미리 선배 어머니는 아직 모르고 계시는 거예요?”

“내가 자꾸 뒤로 미루지 말고 당장 말하라고 대화하라고 했어. 안 그럼 난 엄마 따라서 외가댁에 안 간다고 말하겠다고 했거든.”

“선배?”

“이렇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한마디도 못 할 것 같더라···서로 가족이면서 사실은 지켜주고 있으면서···속에 있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니···그게 바로 내 모습인 것 같아서 화가 나고 속상했어.”

“···.”

“정작 나한테 어리다고 어리면 몰라도 된다고 하다가 아직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은데···이제는 다 컸다고 알아도 된다고 하면서 말하는 말들이 이해하기 힘들어.”

“이제는 알아도 된다고요?”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아빠가 나한테 그러더라 엄마하고 도저히 참고 살 수가 없어서 이혼하려고 한다고. 난 충격을 받았거든. 엄마는 나한테 왜 말하냐고 아빠하고 싸우기 시작해서 당시에는 어떤 마음인지 잘 몰랐는데···.”

“어떤 마음이 들었는데요?”

“사실···이미 알고 있었어. 어른들은 어리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어릴수록 잘 볼 수 있는 것.”

“부모님 애정 그건 어릴수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잘 알잖아. 그게 어떻게 변하는지 아니 변해가는지 당장 눈에 보이는데 어리다고 몰라도 된다고 하는데···정작 진짜 말해줘야 하는 건 침묵하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말해주는 것 같아. 우희만 봐도 직접 듣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 알고 있었잖아.”

“우희가 사랑받지 못한 아이라는 거···.”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는 거요?”

거의 동시에 말이 나왔지만 나는 순간 내가 실수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실수했다는 생각에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미리 선배가 질문했다.

“우희가 원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고? 그게 정말이야?”

“그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사실 오늘 여기 온 게 우희에 대한 일 때문이에요.”

“···?”

“미리 선배 어머니는 우희에 대해서 용서하고 직접 후원하시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미리 선배 어머니한테 가혹한 것 같아서 피해자지원재단이라고 제가 아는 믿을 만한 지원단체가 있는데 그쪽에서 맡는 게 어떠냐고 언급이라도 하려고 온 거예요.”

“그래서 병실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서 있었던 거야?”

“그런 거죠.”

“사실 난 아직 그 아이 용서하기 힘들어. 이런 내가 이기적인 걸까?”

“미워하고 싶을 때까지 미움이 없어질 때까지 미워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너···.”

“미리 선배는 미워할 자격이 있잖아요. 우희가 잘못한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안타깝다는 게 잘못을 미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미리 선배 어머니를 설득하러 온 거기도 하고요.”

“···내가···엄마한테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내가 우희를···미워해도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사랑한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요. 마음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축복을 받았다고 일방적으로 상처받고 그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지도 못한다면 그건 축복이 아니잖아요?”

“···.”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그게 미리 선배 잘못이 아니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우희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

“우희가 한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미워하고 원망하는 건 미리 선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미운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미워하는데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 그런 만큼 우희도 미움 받기 위해서 용기 내서 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선배···.”

“아직은 용서하지 못하지만···.”

“···.”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어. 다름과 틀림에 대해서 인어공주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나는 다른걸 틀리다고 말하면서 살지 않겠다고···그렇게 부모님이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서로 다른걸로 싸워도 그게 다른 부분을 서로 틀리다고 느끼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

“그런데 나도 전혀 다르지 않았던 거야.”

“저는 선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

“미워하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도 상대를 미워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는 게 다른 것 아닐까요?”

“···.”

“선배가 그랬죠. 다름과 틀림은 의미도 다르고 그 결과도 다르다고요.”

“···.”

“그저 나의 안위를 위해서 항상 거짓말하고 잘되면 내가 한 잘한 업적 잘못되면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들 잘못이라고 미루는 사람도 있어요.”

“···.”

“미워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는 선배 같은 사람과 다른···. 틀린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미워할 만한 일이에요. 마음껏 미워하세요. 하지만 미워하는데···모든 힘을 쏟아붓지는 말아요. 그러기에는 선배가 할 일이 많잖아요.”

“내가 할 일···.”

“독서부 대출담당이잖아요?”

“그렇지만 이제 찾아오는 애들도 없는걸?”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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