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산다는 건>
“엄마?”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미리 엄마 앞에 왜소해 보이는 소녀가 눈물을 흘리면서 서 있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당황했던 순간이 지나자 이제까지 무표정에 냉랭한 표정만 지을 줄 알았던 미리 선배가 누가 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표정을 만들면서 어려 보이는 소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소녀가 눈을 질끈 감더니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 때문이었을까 갑작스럽게 미리 선배가 멈춰섰다.
“너···.”
“제가 촉법소년 나이라고 처벌도 안 받는다고 들었어요. 저···저는 그런 거 바라지도 않는데···전···정말 죄송해요.”
“···.”
“어···엄마가 시키는데 무섭고 더는 버림받고 싶지 않고 학교 가고 싶은데···그런데 이렇게 심하게 다치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염산이 위험하다는 건 학교에서 다 배우잖아. 그런데도 몰랐다고?”
“전 최대한 덜 위험하게 하려고 물을 많이 섞어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리고 잘못했으니까 제대로 벌도 받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경찰 아저씨가 저한테 집에 가라고 하고 집에서는 아저씨가 나가라고 하고 전···.”
덜덜 떨면서 말하는 소녀의 모습에 병실과 병실 밖에서 지켜보던 모두가 말을 잃고 침묵하고 있을 때였다.
“···이름이 뭐니?”
“엄마?”
“우희···. 이우희···.”
“우희구나···.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텐데···.”
미리 선배 어머니는 덜덜 떨면서도 자신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병원까지 혼자 온···작은 아이를 대견하다는 듯한 말을 했다.
우희라는 아이는 그런 미리 선배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냉랭했던 병실을 따뜻하게 만드는 한낮의 햇볕처럼 따뜻하게 만든 미리 선배 어머니는 잠시 말을 고르듯 말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안 하면 답답하다는 듯 우희라는 아이가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한테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어요. 전 엄마가 나쁜 일 시켰으니까. 엄마하고 같이 벌 받을 줄 알았어요. 전···엄마하고 같이 벌 받을 생각이었어요.”
“엄마하고 같이 벌을 받겠다고?”
미리 선배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우희라는 아이를 내려다봤다.
미리 선배의 흉흉한 기세에 움츠러들었던 상태에서도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미리 선배 어머니의 질문에 다시 대답했다.
“같이 벌 받을 줄 알았다고?”
“네···전 엄마하고 같이 벌 받을 줄 알아서 그래서···.”
우희라는 아이가 품에서 무언갈 꺼낼 동작을 하자 이번에는 내가 미리 선배 앞을 막아서고 우희라는 아이를 바라봤다.
미리 선배가 깜짝 놀라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염산 테러를 했다는 아이가 병실까지 찾아와서 품에서 수상한 물건을 꺼내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꺼낸 물건은 허탈하게도 휴대폰이었다.
“아주 오래된 휴대폰이네···.”
구형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자 우희가 흔들리는 눈망울로 작게 말했다.
“제 보물이에요. 엄마한테 처음으로 받은 선물···.”
“뭐? 엄마한테 받은 선물을 그렇게 소중하게 보관하면서 왜 엄마하고 같이 벌을 받겠다고 하는 건데?”
“진아가 그랬어요. 할머니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할거라고 그리고 할머니가 자기한테 나쁜 일 시키지 않는다는 거 믿는다고···.”
“···.”
“저도 엄마가 나한테 나쁜 일 안 시킬 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그래도 만약에 정말 그게 나쁜 일이라면···.”
“염산에 물 탄 거면 이게 나쁜 일이란 거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니야?”
선배의 날카로운 질문에 우희의 큰 눈이 금세 습기가 차오르면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엄마···믿고 싶은데···그런데···학교에서 염산은 과학실에서만 사용하고 위험하니까 항상 선생님 앞에서만 실험하는 거라고 배웠는데···그런데···. 엄마가···.”
마지막에는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리는 우희라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 침묵하고 말았다.
그런 침묵 속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이 아프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해줬다.
토닥토닥―.
미리 선배 어머니가 아프게 우는 우희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우희의 서글픈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동작하나에 속에서 천둥이 나를 내리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마음고생이 심했구나···그래서 염산에 물을 많이 타면 괜찮다고 생각한 거니?”
“선생님이 염산에 잠깐이라도 잘못 닿으면 물로 계속 씻어야 한다고···그래서 엄마가 준 게 염산이라 걸 알고 최대한 물을 넣었는데···그런데···.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엄마가 너한테 잘못된 일을 시켰는데 그걸 알면서 왜 계속한 거야?”
“엄마한테 맞기 싫고···그리고 엄마가 처음으로 저한테 바라는 행동이라고···하지만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처음에는 엄마가 나한테 바라는 일이 있다는 게 좋았는데···나중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잘못된 일이서 벌을 받더라고 같이 있을 수 있다면···같이 벌 받고 싶었어요.”
“···?”
“그런데 제가 나이가 어려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럼 저 때문에 피해 본 아줌마하고 아줌마 딸한테 너무 죄송하잖아요.”
“···벌 받고 싶었다고?”
“벌 받을 짓을 하면 벌 받고 반성해야 한다고 배웠는걸요.”
“그래···.”
“저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고 선생님이 칭찬해줬을 때가 가장 좋았어요.”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었을 때가 가장 좋았다는 우희의 말에 나는 온몸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 어린아이가···.’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지만 미리 선배 어머니가 붕대를 온몸에 감고 있는 모습에 답답한 마음만 커졌다.
“우희야. 그런데 휴대폰은 왜 꺼낸 거야?”
“아···이건···.”
미리 선배의 다독거림에 진정이 된 건지 얼굴에서 나던 홍수를 진정시키고 휴대폰을 켜자 녹음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주 통화하지 못해서 엄마하고 통화할 때면 엄마 목소리 항상 저장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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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야 엄마가 뭐라고 했어.”
“여기 병에 든 물 뿌리고 도망가라고.”
“붙잡히면?”
“우리 아저씨 뺏어가는 나쁜 아줌마한테 복수한 거라고···.”
“제대로 말해야지.”
“우리 아빠 뺏어가는 나쁜 여우한테 복수한 거라고···.”
“목소리를 좀 높이고 크게 크게 말하란 말이야.”
“근데 엄마···나 혼자 법원 앞에 가야 돼?”
“말해줬잖아. 버스 타고 가서 법원 정류장 앞에서 내리면 된다고 했잖아.”
“그렇지만 나 처음 온 곳이라서···.”
“몇 번 말하니? 엄마는 옆에 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알겠어···. 그런데 경찰 아저씨가 나 잡아가면 어떻게?”
“그럴 일 없어. 그리고 경찰이 너한테 질문해도 혼자서 했다고 하고 알겠지?”
“이것만 도와주면 학교 계속 다닐 수 있는 거야?”
“그래. 졸업까지 학비 넉넉하게 지원해 줄 테니까. 이번만 우희가 엄마 도와주는 거야. 알겠지?”
“응···. 알겠어.”
“이제 그만 끊자. 엄마 바빠.”
“엄마···.”
“···?”
“나 사랑해?”
“당연하지 그러니까 내일 늦지 않게 법원까지 버스 타고 가야 돼? 알겠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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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장된 통화 녹취록에 입을 열 수 없었다.
‘어떻게 자기 딸을 그것도 아직 어린아이를···.’
“엄마가 평소에는 잘 안 해주는데 이렇게 통화할 때는 가끔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그래서 항상 녹음하는데···.”
나와 병실에 들어와 있는 모두는 정적 속에서 우희를 바라봤다. 그저 통화 속에서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목소리에 매달리는 어린아이.
우리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래된 휴대폰을 품속에 소중하게 넣고 미리 선배 어머니에게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죄송해요. 정말···죄송해요. 전 벌 받을 짓을 해서 벌을 받으려고 했어요. 엄마도 같이 벌 받으면 조금 더 같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이기적이라서 죄송해요. 그런데 경찰 아저씨가 벌을 주지도 않는다고 해서 너무너무···혼란스러워서···.”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니?”
“네···.”
“그래. 그럼 벌 받아야지.”
놀라서 우리가 미리 선배 어머니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가장 큰 피해자인 미리 선배 어머니의 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가해자가 어리고 뉘우친다고 해도 용서할 수 있는 건 피해자인 당사자 뿐이니까.’
“우희는 잘못했으니까. 이제 평생 너희 엄마하고 만날 수 없을 거야.”
“네? 그건···그건 싫어요···. 엄마는···엄마는···.”
“우희한테 나쁜 일 시키고 우희 혼자 한 거라고 말하라고 한 엄마인데도 엄마가 좋아?”
“엄마도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우희 때문에 가정 지키기 힘들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우희가 참아야 한다고···.”
“그래···그런데 우희는 벌 받을 짓을 했다고 했잖아?”
“네···.”
“그 벌이 우희 마음에 안 든다고 거절할 거야?”
“···그건···아주 나쁜 짓이겠죠?”
“우희가 나쁜 짓을 하고도 벌을 받지 않거나 회피하려고 하면 아줌마나 아줌마 딸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겠지.”
“그건 싫어요. 지금도 충분히 나쁜 짓을 했는데···그건 정말 나쁜 아이가 되는 거니까. 선생님도 우희를 더 이상 칭찬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우희는 엄마하고 만날 수 없어. 만나더라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우희가 어른이 되고 주변에 선생님 같은 어른들이 많아지면 그때는 만날 수 있을 거야.”
“우희는 감옥에 가는 건가요?”
“아니···우희는 감옥에 가지 않아. 계속 다니고 싶다면 학교도 계속 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엄마만 못 만나요?”
“우희 엄마는 엄마라면 해선 안 되는 걸 해서 이제 우희를 만날 수 없어.”
“···엄··마···.”
엄마를 애처롭게 부르면서 우는 우희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릴 법도 하지만 미리 선배 어머니는 단호하게 하지만 우희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이가 들고 이 순간이 지나면 생각해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럼 평생 엄마를 못 보는 거예요?”
“우희가 커서 어른이 돼서 스스로 잘못을 제대로 돌아보고 만나기로 결정하면 만날 수 있어.”
“그럼 저 빨리 커서 어른이 될래요.”
빨리 크고 싶다는 어린 소녀를 보는 미리 선배는 이제까지 참고 있던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빠···나쁘다고···차라리 미워하고 원망하게 만들지 이게 뭐야.”
등 뒤에서 서글프게 속삭이듯 말하는 미리 선배의 오열을 못 보고 못 들은 것처럼 외면하면 병실 밖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봤다.
현진은 도저히 병실로 들어오지 못하겠는지 어느새 사라졌다가 의사 선생으로 보이는 흰 가운을 입은 사람과 허 순경 아니 허 경장과 들어섰다.
현진이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보라는 듯 허 경장의 등을 찌르자 허 경장이 의사 선생에게 눈짓을 하기 시작했다.
“험험···. 정밀 조직 검사결과 다행히 염산의 농도가 낮아서 상피세포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치료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다만 치료하면서 피부 박피가 여러 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햇볕과 같은 자외선에 노출되지 않게 옷차림에 신경 써주시면 일상생활도 무리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의사 선생의 치료 가능하다는 말에 미리 선배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고 나는 쓰러지려는 선배를 부축해서 병실에 준비되어 있는 의자에 앉혀주었다.
미리 선배 어머니도 후유증은 있지만 치료 가능성을 찾았다는 의사의 답변에 표현은 안하고 있었지만 큰 좌절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미리 선배 어머니의 모습에 우희는 울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계속 되뇌고 있었다.
우희는 그 울음 속에서 가슴속에 무언가 상실됨과 동시에 해방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꼭 다시는 자신의 엄마를 만나지 못할 걸 아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