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산다는 것 : 그 아이 >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아닌 엄마, 아빠, 오빠만 있는 가족은 더 완벽했을 것이다.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려 온다.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그래···난 왜 태어났을까?’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교실 안에서 친구들 아니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내 뺨을 때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위해 울어주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커왔다.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고···.’
하지만···
처음 본 오빠는 완전히 달랐다.
매일같이 초등학교에 데려다주는 엄마와 아빠가 당연하다.
자신이 배가 고프면 언제나 따뜻한 식사가 차려진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야?’
자신을 이제까지 버티게 했던 버팀목이 어딘가 어그러지는 것 같다.
당황해서 눈물이 당장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로 엄마를 향해 손을 뻗는다.
“호호···. 애가 너무 감동했나 봐요.”
“당신은 참 마음이 넓어. 그런데 다른 사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겠어?”
“당연하죠. 요즘 어느 정도 급이 되면 입양아나 후원하는 아이들이 있어야지···안 그러면 돈만 아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 당해요.”
“그럼···저 아이가 이제 나한테 아빠라고 하는 건가?”
“입양이 아니라 후원이니까···. 그냥 아저씨, 아줌마라고 부르게 해야죠.”
“이제 같은 집에서 생활할 건데···그건 아이한테 좀 그렇지 않을까?”
“아니에요. 오히려 커서 상처받는 것보다 처음부터 선을 정해주는 게 좋죠.”
“그런가···?”
처음 보는 아저씨가 나에게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인사를 건넨다. 따뜻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냉랭하게 내려다보는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우희야, 아저씨가 인사하잖니?”
“안녕하세요.”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배웠던 인사를 했고 그제야 엄마가 웃었다.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야?’
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제까지 있던 방보다 화려해진 방을 선물처럼 받았다. 하지만 난 기쁘지 않았다.
‘엄마하고 같이 살게 해준다면서···. 그런데 왜···.’
서러움에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울고 있을 때 방문이 언제 열렸는지 울고 있는 나를 향해 날카로운 고음 소리가 날 공격했다.
“야, 쪼끄만 게 자꾸 시끄럽게 할 거면 우리 집에서 나가.”
“끄··흡···.”
나는 집에서 나가라는 말에 입을 양쪽 손바닥으로 막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어디서 이런 못난이 인형을 데려온 거야? 데려올 거면 예쁜 애로 데려올 거지. 너 자꾸 눈에 거슬리면 원래 있던 데로 보내라고 해버린다? 알아서 잘해.”
나는 깜짝 놀라서 눈물이 멈춘 것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쾅―.
‘엄마···.’
처음 만난 오빠였지만 평생 좋아하게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한참 부은 눈이 아파서 눈을 문지르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덜컥―.
“엄마?”
“우희야, 엄마가 여기서는 뭐라고 부르라고 했어.”
방문이 덜컥하고 닫히면서 낮지만 경고성 섞인 엄마의 날카로운 음성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면서 말했다.
“아···아줌마라고···.”
“네가 엄마라고 부르면 엄마하고 이제 다시는 같이 못 사는 거야.”
“그건 싫어···. 근데 왜 나는 엄마를 아줌마라고 불러야 돼? 나는 아빠는 없어?”
짝―.
나는 너무 아픈 몸을 뒤틀면서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엄마, 엄마는 왜 나만 때려. 오늘 본 저 껌딱지는 짜증 나게 굴어도 한 번도 화도 안 냈으면서 엄마는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짝―.
“악···.”
나는 방바닥에 웅크리고 앞으로 있을 폭력에 대비하듯 덜덜 떨고 있는데 깊은 한숨과 함께 평소와 다르게 엄마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조용히 말했다.
“우희야, 엄마가 우희를 사랑하지 않으면 굳이 이곳에 데려왔겠어? 엄마하고 우희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려면 몇 가지 약속이 필요한 거야. 그걸 지켜주지 않으면 엄마도 우희를 지키지 못하고 서로 슬퍼지는 거지.”
“엄마···.”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 여기서 엄마는 아줌마, 오늘 봤던 그 찐빵 같은 남자는 아저씨 알겠어?”
“그럼 오늘 본 그 아이는?”
“오빠라고 불러.”
하지만 난 엄마와 아저씨 그리고 오빠라는 사람을 불러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먼 지방에 기숙사 학교가 있다고?”
“산속에 있어서 아이들이 집중해서 공부하기 좋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직 이렇게 어린데···.”
“저번에 보니까. 새로 생긴 가족이 아직 어색한 것 같으니까. 차라리 또래 친구들 많은 데서 생활하다가 오면 더 좋지 않겠어요?”
“뭐···. 당신이 알아서 해. 그런데 우희라는 아이한테 물어보긴 한 거지?”
“당연하죠.”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냉랭한 표정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여기서 가기 싫다고 해서 안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체념 어린 마음으로 간 곳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에 난 엄마에 대해서 잊고 편하게 학창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우희가 공부를 잘하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하하. 그렇게 말하면 친구들이 미워할걸?”
“아니에요. 제가 매일같이 책만 본다고 자기들하고 놀자고 해주는걸요.”
“우희가 처음에는 편입으로 와서 적응을 잘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감사합니다.”
교무실에서 나가자 친구들이 양쪽에 붙어서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편입으로 들어왔는데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고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말씀하신 거지 뭐···.”
“우희는 어른스러운 것 같아.”
“그런가?”
씁쓸하게 웃는데 그런 나의 볼을 친구가 콕 집더니 말했다.
“우희 여기 보조개 있다. 와 신기해···.”
“자주 웃어. 보조개 이렇게 예쁜데?”
“맞아. 맞아.”
그렇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교실로 향한 다음날 휴일을 맞이해서 나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는 말에 나는 기숙사 밖으로 향했다.
‘누구지?’
아무도 나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신기하다는 감정을 가지면서도 천천히 교정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향했다.
검은색 승용차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인형이 나를 불렀다.
“우희야.”
“아줌마?”
“아줌마라니 엄마 서운하게···.”
“그···엄마···.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1년만인가?”
“아뇨. 이제 3년 가까이···.”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우희야 엄마가 네 도움이 필요해.”
‘엄마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아저씨가 미쳤나 봐.”
“네?”
“미쳐서 여우 같은 년한테 완전히 빠졌어.”
“···?”
“엄마가 어떻게 유지한 가정인데 이렇게 너희 아빠가 배신을 하니?”
“···.”
‘엄마가 말하는 가정에 나도 들어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엄마를 보지 않고 엄마의 발끝만 보고 있었다.
‘엄마, 구두가 새로 바뀌었나 봐요. 아주 뾰족하고 아파 보이네요.’
나는 엄마의 구두를 향상 예의주시한다.
‘왜냐고?’
엄마가 기분 나쁘면 나를 때리고 내가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면 발로 차기 때문이다.
‘저 구두는 아플 것 같은데···거절하면 안되겠지?’
내가 엄마가 말하는 것을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당장 이 학교에서 짐 싸서 나와 전학 절차는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시···싫어요.”
“뭐?”
“엄마가 하라는 것 한다고 했잖아요. 나 학교 계속 다니고 싶어요.”
“너 미쳤니?”
소리를 꽥 지른 엄마가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손을 번쩍 든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기다렸던 고통은 오지 않았고 초조하게 시간만 흘렸다.
‘차라리 빨리 맞으면 좋겠다.’
내가 살며시 눈을 뜨자 인상을 쓴 엄마가 손을 내린 채 내 팔을 강하게 붙잡아 당기면서 말했다.
“그럼 학교 계속 다니게 해줄 테니까. 내가 말한 거 실수 없이 할 수 있겠어?”
내가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자 처음 봤을 때의 자애로운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거친 손길에 머리가 아팠지만 언제 또 돌변할지 모르는 엄마의 표정에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래. 그럼 엄마가 주말 외박 신청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나는 교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 정말 엄마 딸 맞아요?’
내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교문 앞에서 쭈그려 앉아 있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엄마?”
“우희 오늘 외박한다더니 엄마가 데리러 오신 거야?”
“진아?”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대부분 얼굴을 알고 친하게 지내지만 기숙사 동이 달라서 아직 얼굴만 알고 지내던 이진아였다.
“나도 오늘은 오랜만에 외출 가려고 앗! 저기 할머니 오셨다. 재밌게 놀다 와.”
손을 흔들고 달려가려는 행복해 보이는 진아에게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질문하고 말았다.
“넌 부모님이 무슨 짓을 시키든 할 거야?”
“뭐?”
진아는 인상을 잠깐 찌푸리더니 검은 승용차 옆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잠깐 보고서 말했다.
“나 부모님 없어.”
“어···아···미안···.”
“그런데 괜찮아. 할머니가 지켜주시거든. 그래서 할머니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거야. 왜냐면 할머니도 내가 부탁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줄 테니까.”
“아···.”
“그리고 할머니가 나한테 나쁜 일 시키지 않을 걸 믿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서 할머니를 향해 밝게 웃으면서 달려갔다.
한참 멍하니 진아의 모습을 되새기고 있는데 어깨에 차가운 손이 턱 올라왔다.
길고 예쁜 엄마의 손이었다.
“우희야, 서서 기다린 거야? 차에 앉아 있지.”
철컥―.
나는 이제야 열리는 차 문을 보면서 속으로 대답했다.
‘문은 열려 있지 않았어요. 처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