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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35화 (135/205)

<135화 사랑의 조건. 3>

우리는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전부 침묵하고 있었다. 서로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앉아 있었다. 선배가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것처럼 입을 열었다.

“내가 왕자, 공주가 나오는 동화에 대해서 언급했지?”

“···?”

“왕자하고 공주는 서로 몰라도 그런 왕자와 공주를 바라보는 사람은 많아.”

“설마···.”

유일하게 내가 석연치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선배가 쓴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합의 이혼하고 다르게 이혼 소송은 오래 걸리더라. 내가 1학년 때부터 했는데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거든.”

“그런데 엄마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생긴 거야. 한 학년 선배의 아빠였지.”

“네?”

놀랍다는 우리 반응에 쓴웃음조차 사라진 창백해진 낯으로 말했다.

“엄마가 첫사랑이래. 그래서 엄마가 이혼한다니까 자기도 이혼하겠다고 나선 아저씨···독서부에서 나한테 정말 잘해줬던 선배 아버지였어.”

“···.”

“이건 그냥 잘못된 만남 같은 거지 선배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 친구라는 사람이 잘못한 거잖아요. 선배 부모님이 이혼한다고 전부 말하고 다닌 건 그 친구인데···.”

“그건···.”

선배가 우울한 낯으로 대답하는 사이에 현진이 질문했다.

“선배 친구라는 사람이 혹시 이미우라고 2학년 선배 맞죠?”

“어떻게 이름까지···?”

“방송부에서 유명하거든요. 물론 가짜 방송부원인 종혁이하고 주인이야 모르겠지만···.”

“방송부에서 이미우라는 선배를 어떻게 아는 건데?”

내 질문에 나와 종혁이를 짠 눈으로 쳐다보면서 말을 하는 현진의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냥 이름만 방송부에 올린 종혁이와 주인이는 모르겠지만 1학년 방송부원 뽑고 나서 첫날 들은 이야기가 2학년 중에 이미우라는 선배 이야기는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고···.”

“왜?”

“관심받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고 멀리하라고···.”

“하지만 미리 선배 부모님이 이혼하시는 건 사실이잖아.”

“방송···그러니까 언론일 하다 보면 가장 더러운 게 뭔지 알아?”

“뭔데?”

“진실에 거짓을 적당히 버무려서 말하는 취재원이야.”

“···?”

“적당한 진실에 자기가 바라는 걸 적당히 섞어서 말하면 취재하는 입장에서는 전부 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부 거짓도 아니고 정말 진이 빠지거든. 그렇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서 기사를 쓰다가 오보 나면 다 뒤집어써야 하고···.”

“그럼 이미우라는 선배가 거짓말하기로 유명하다는 거야?”

“적당히 소문에 발을 올려서 유명세 얻고 싶어하는 선배로 유명한 거지.”

“아니 도대체 왜?”

“안남시에 예고 없는 거 알지?”

“그거야···뭐···그런데 그게 왜?”

“난 연예계 쪽으로는 잘 모르지만 각 지역마다 유명한 학생들을 기획사에서 한 번씩 체크한다고 하더라고.”

“그럼···.”

“유명해져서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거지. 그런데 이 선배는 질이 정말 나쁘더라.”

“무슨 소리야?”

“안남시에 예고가 없다 보니까. 방송부 인기가 하늘을 찌르거든. 방금 말했던 이유로 방송부가 되면 유명해질 기회가 더 많으니까.”

“아니 그런데 왜 독서부에 들어간 거야? 방송부 들어가고 싶었다면서.”

“그렇지만 이미우라는 선배는 독서부라면서요?”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독서부였다고 말해줬다.

“방송부에서 떨어져서 그나마 유명한 독서부에 지원한 거지. 지금이야 거의 폐부 상태지만 우리 입학 전까지만 해도 유명했다고 하니까.”

“그럼 관심받는 걸 좋아해서 거짓말도 막 하고 다닌다는 걸 방송부에서 그걸 알고 떨어트린 거야?”

“그건 아니야. 내가 방송부 드는데 종혁이하고 너하고 같이 들자고 왜 같이 들어가자고 했겠어?”

“그거야. 1학년 추천이 2표 필요하다면서?”

“그것도 그거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현진이 나와 종혁이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나는 대출 했던 책들을 다 내려놓고 자유로워진 양손을 들어 보였다. 잠깐 움찔했던 현진이 다시 표정을 가다듬더니 이어서 말했다.

“방송부가 인기가 많다 보니까. 좀 생긴 애들 위주로 먼저 뽑아.”

“그게 무슨 소리야?”

“외모지상주의 몰라?”

“뭐?”

“외모 보고 뽑는다고.”

“아니 그럼 너는 어떻게 뽑힌 건데?”

나의 순수한 물음에 현진의 이마에 핏줄이 서는 모습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에 한 방을 먹여준 내가 킬킬거리면서 말하자 종혁이가 그런 나를 말리면서 말했다.

“현진이가 섬마을에서 살다가 와서 피부가 까맣게 탔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 말이 더 상처거든?”

투닥거리면서 싸우는 우리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선배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뭔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뭐···뭐야? 저런 표정도 있었어?’

내가 선배를 보면서 당황스러워하는 사이에 현진이 잽싸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종혁이하고 주인이를 추천한 게 다 이유가 있지. 내가 너희 데리고 가면서 나 뽑으면 너네도 나하고 친해서 같이 온다고 했지.”

“헐···.”

“외모지상주의 무시하지 마. 세상을 이루는 핵심적 가치관 중 하나니까.”

“그래···그래···”

내가 한심하다는 듯 현진을 내려다보면서 답하자 열이 났는지 벌게진 얼굴로 현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외모지상주의가 세상을 이루는 큰 흐름이라고 TV 봐 봐 예쁘고 잘생긴 애들 나오지 그 아이돌그룹도 다 얼굴 보고 뽑잖아.”

“그런데 외모만 보고 세상이 이루어졌다는 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아니, 나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의 말다툼을 조용히 바라보던 선배의 말에 우리의 시선이 선배에게 집중되었다.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는 이유도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하니까.”

“네?”

“하지만 어머니가 돈도 많이 쓰고 사치품도 사서 이혼 소송 시작했다고···.”

“엄마가 결혼 전에는 안 그랬다가 결혼 후에 그런 행동을 했다면 모르지만, 엄마는 결혼 전하고 지금 하고 달라진 거라고는 결혼해서 나를 낳고 키운 것밖에 없는걸?”

“···!”

“아빠는 엄마가 나이 든 게 싫은 거야.”

나는 선배의 기억 속에서 봤던 선배 아버지의 외침에 침음성을 삼켜야 했다.

“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냐고? 아빠가 젊은 여자하고 바람을 피우니까.”

“···!”

“그리고 아빠가 바람피우는 상대는 회사 여직원이야.”

“그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해요?”

“나도 몰랐는데 직접 겪어보니까···.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해. 재미있는 건 아빠하고 엄마가 이혼하는 건데 내가 이상한 아이가 되더라···소문도 그렇고···. 그래서 독서부에 사람이 없는 거야.”

“독서부에 부원들은 그럼···.”

“나를 원망했어.”

“원망이요? 선배도 피해자나 다름 없잖아요. 원해서 부모님이 이혼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오히려 미안했어.”

“네?”

“처음부터 아빠하고 엄마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각자 어긋난 사랑을 헤매지 않았지 않았을까?”

“그럼 선배는 태어나지 못하잖아요.”

“나···솔직히 태어나고 싶다고 아니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어.”

나는 선배가 어둡고 씁쓸해 보여서 냉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냉랭해 보이는 표정 뒤에 그런 아픔이 있을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태어난 게 죄가 된 게 아닐까? 나만 없었다면 다들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무슨···말도 안 되는 말이에요?”

“아빠하고 엄마하고 싸울 때 들었거든 사귀다가 서로 너무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겨서 결혼 서둘렀다고 원망스럽다고···.”

“아니 어떻게 그딴 소리를?”

“그런 소리 듣고 친구 부모님도 나 때문에 이혼한 것 같아서 소문이 이상하게 돌아도 반박하지 못했어. 아니 안 한 거지.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무력감이 어떤 일을 해도 어떻게 행동해도 변화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거든.”

“그럼 저희에게는 사실을 말해주시는 건데요?”

“그거 알아? 사람을 미워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만큼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네?”

“나 아빠하고 엄마 미워하는 걸 그만뒀어. 그리고 사랑도 안 믿기로 했지.”

선배의 쓴웃음은 우리와 한 학년 차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무채색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선배의 얼굴에서 생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

“그런데 이 바보가 나한테 와서 자기 짝사랑 상담을 하는 거야.”

“종혁이가요?”

“아니···그게 아니라···.”

“자기 딴에는 또래 여자인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나한테 와서 혜림이가 좋아하는 걸 물어본다고 물어본 거지만 딱 봐도 알 수 있잖아?”

“아니···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잖아요.”

선배를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면서 말하는 종혁이에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선배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처음으로 쓴웃음이 아닌 웃는 표정을 본 것 같아.’

“항상 아프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아니 사랑하는 게 이렇게 포근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이란 걸 알게 해줬거든.”

“뭐···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이 만드는 능력이 있긴 하죠.”

내가 종혁이의 머리를 꾹 누르면서 말하자 내 힘을 피해서 고개를 돌린 종혁이 삐쭉거리면서 대답했다.

“그거야 너하고 현진이가 삐딱하게 봐서 그런거고 선배가 얼마나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는데···”

나는 종혁이의 말에 선배를 보다가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언제 웃었냐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모르겠어. 그냥 냉랭한 표정만 있어서···.’

처음으로 웃는 표정을 보여줬을 때의 그 오묘한 느낌은 뭐라고 표현은 하지 못하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감정은 세상에 넘쳐나···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하고 긍정해 주는 밝은 감정은 정말 세상에 한 톨 밖에 없는데···.”

“···.”

“그건 정말 소중한 것 같아. 누군가를 좋아하고 배려해 줄 수 있는 따뜻한 그 감정 말이야.”

그러면서 종혁이를 바라보는 선배의 눈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감정이라···.’

회귀 전 나의 삶은 부정적 감정의 홍수에 떠밀려서 하루하루를 버티기만 했다.

나중에 아내를 만나서는 미혼모에 이혼까지 했으니까.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어렸을 때 나의 모습을 투영했던 게 아닐까?

사랑이란 감정이 아닌 내가 필요했던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았던 게 아닐까?

누군가를 미워하기를 결정하는 건 너무 쉽다.

하지만 미워하는 동안의 에너지 소모는 크다.

사람들은 미워하면서 힘이 든다고 다시 미움에 에너지를 쓴다.

누군가를 좋아하기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좋아하는 동안의 에너지 소모는 적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그 피로를 풀어주는 어떤 존재가 되어서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좋아하기보다는 미워하기를 선택하고 있다.

남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남을 미워하면서 자신이 미움을 발산한 만큼 자신은 미움받지 않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그렇게 발버둥 치면서 살아간다.

‘나는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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