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사랑의 조건 : 그 남자 2>
나는 과분한 사랑을 그녀에게 주었다. 집안일은 가정부를 들여서 했고 신혼여행도 그녀의 몸 상태를 생각해서 짧게 갔다.
“정말 이렇게 짧게 다녀와도 괜찮아?”
“네.”
그녀의 대답은 짧았지만 도도한 그녀의 행동에 나는 더욱 빠져들고 말았다.
“오늘은 신상 원피스가 나와서 당신 생각나서 사 왔어.”
“고마워요.”
“한번 입어봐.”
“새 옷 태그는 외출할 때 떼고 싶어요.”
“그럼 태그 조심해서 입어봐.”
아내는 내 말에 수줍다는 미소를 짓더니 갈아입고 나왔다.
“역시, 지나가면서 봤는데 한눈에 알아봤지. 당신에게 어울릴 거라고 말이야.”
“그래요?”
“다음에 장인어른 만나러 갈 때 입고 가자고.”
“친정에 또요?”
“당신을 위해서야. 결혼하고 친정에 자주 가야지 사랑받는 남편이 된다고 하더라고.”
“아···.”
“시댁은 당신 어렵잖아. 미리가 좀 더 큰 후에 편해지면 가자.”
“네···.”
“그럼 빨리 씻고 들어가서 쉴까?”
“저녁은요?”
“저녁? 밖에서 먹고 왔지.”
“그렇구나.”
“왜? 당신 안 먹었어?”
“아뇨 아주머니가 해주신 미역국 먹었어요.”
“역시 미인이라서 그런가? 미역국을 잘 먹어. 당신은.”
“그럼 씻고 와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 난 미리한테 인사하고 들어갈게.”
“미리한테 나쁜 병균 옮으면 안 되니까. 씻고 가요. 알겠죠?”
“알았어. 우리 공주님 보려면 빨리 씻어야겠네.”
아내를 위해서 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아내가 변해갔다.
“철영야, 아내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오늘은 또 무슨 일인데?”
“이번에 나온 신상 가방을 사고 싶다잖아.”
“매년 하나씩 사주지 않았어?”
“야, 그러니까 말하는 거잖아. 그 여자는 한번 산 가방은 한 일주일 정도 쓰고 그대로 팔아버린다고 정말 어이가 없지 않냐?”
“뭐···. 남편이 사준 가방인데 팔면···네 입장에서 서운할 수는 있겠네.”
“그리고 생활비도 웬만한 임원 월급만큼 주는데 항상 부족하데.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워낙에 공주마마셨잖아. 너도 알고 결혼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결혼하면 가정을 위해서 조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도 제수씨 덕분에 회사 운영은 잘되고 있잖아. 장인어른이 힘써줬다고 했던 거 아니야?”
“장인어른이 안 도와주신 건 아니지만 도움이 있다고 해도 그 기회를 잃지 않고 추진한 내 공도 인정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회사 일에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너도 잘 알잖아.”
“잘 알긴 하지.”
“너도 그러는 거 아니다. 내 한 몸 희생해서 결혼하고 회사가 승승장구하면 매번 배당금 악착같이 받아가는 게 아니라 재투자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요즘 힘들어서 그렇지. 그래도 내가 옆에서 열심히 서포트 한 덕분에 제수씨하고 결혼한 거 아니냐?”
“이건 완전히 내 인생을 희생해서 회사도 살리고 어? 공주님을 여왕님으로 받들고 그러는 건데 다들 내 고생을 너무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내가 잘 알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인지.”
“역시 내 친구! 아니 내 사업파트너 배철영밖에 없다.”
“그래. 그런데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가도 돼? 나야 싱글이지만 넌 가정이 있으니까.”
“사업하다 보면 남자가 집에 좀 늦게 들어갈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런 거 가지고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래···그래···그래서 가고 싶은 데가 어딘데?”
“오늘은 네가 쏘는 거냐?”
“배당 나왔으니까. 쏠게. 너 이거 노리고 오늘 보자고 한 거 아니냐?”
“설마. 가정을 유지하는 게 이렇게 힘들다고 하소연하려고 나온 거지. 내가 유부남의 괴로움을 아냐고?”
“나야 모르지. 그런데 널 보고 있으면 결혼에 회의적이게 되기는 한다.”
“그렇지? 역시 남자는 솔로가 좋아. 내가 결혼해보니까. 알겠더라고.”
“그래. 그래서 오늘 어디로 가?”
“강남의 더스트 어때?”
“야, 미쳤어? 거긴 룸살롱이잖아.”
“접대할 때 자주 갔는데 분위기가 좋더라고.”
“미친···. 방금 유부남이라서 괴롭다던 놈이 너무 괴로워서 미친 거냐?”
“아니. 사람이 한식만 먹고 살 수 있냐? 가끔 일식도 먹고 디저트도 먹고 그렇게 살아야지 사는 거지.”
“미친놈. 모르겠다. 가자니까 가는 건데···.”
“걱정마. 어차피 이번 브랜드 가방 중에 하나 아내한테 던져주면 한동안 조용할 거야.”
“허···.”
나는 회사와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친구를 만나 잠깐의 일탈을 즐겼지만 그 잠깐의 일탈로 점점 가정을 유지하는 삶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일찍 결혼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개기를 만들어 준 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였다.
“이제 사업이 막 안정화 되려고 하는데 신입사원?”
“언제까지 사무실에 칙칙하게 남자들끼리 있을 거야? 투자자들이 오거나 손님이 올 때 너나 내가 음료수 꺼낼 때마다 서로 미루잖아.”
“그렇다고 직원을 뽑자고?”
“철영야, 내가 사업 시작할 때도 그랬잖아. 초반에 투자는 당연하다고.”
“후···.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대표는 너니까. 회사 잘 운영해서 배당이나 잘 챙겨줘라.”
“내가 언제 배당 잊은 적 있어?”
“배당을 잊은 적이 없지. 배당해줄 때마다 싹싹 긁어먹는 놈이.”
“우리 사이에 쩨쩨하게 그러지 말자.”
“우리 사이가 뭔데?”
“사업하는 친구 사이?”
“아휴···징그럽고 알아서 해. 나 먼저 들어간다.”
“오늘 면접인데 안 보고가?”
“내가 승낙 안 했어도 진행했을 놈이네.”
“내가 실행력이 좀 좋잖아.”
“미친놈 알아서 해. 난 간다.”
철영이가 퇴근 아닌 퇴근을 한 다음 나타난 첫 번째 면접자를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외치고 말았다.
“합격.”
“네?”
가녀린 그녀는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검은색 양장차림에 불안한 듯 초조하게 내 눈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서 통통한 볼살만큼이나 동그란 눈이 커다래져서 나를 쳐다봤다.
‘귀엽다.’
“우리 회사가 인력수급이 당장 급해서 바로 합격입니다.”
“저···아직 이름도 말하지 않았는데···.”
“귀염둥이.”
“네?”
“우리 회사의 막내 사원이라서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왔네요.”
“하하···.”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말았다.
‘이건 서로를 향한 그린라이트?’
그녀가 출근한 뒤 나의 삶은 활력이 생겨났다.
“대표님 여기 결재서류입니다.”
“편하게 해. 편하게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회사니까.”
“아···네···. 그런데 철영 이사님이.”
“철영이가 왜?”
“그···제 월급이 경력직만큼 받는 게···.”
“철영이한테는 내가 말할 테니까. 우리 미스 소는 걱정할 필요 없어.”
“감사합니다. 대표님.”
“자꾸 대표님 하니까. 너무 거리감 있네. 오빠라고 해봐. 오빠.”
“네?”
“하하 농담이에요. 미스 소가 내 딸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오네.”
“아···따님이···.”
“내 딸이 벌써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된 거 있지. 이렇게 세월이 무상하게 흐른다니까.”
“금방 가는 것 같기는 해요.”
“내가 정말 가정을 위해서 헌신했는데 아내는 무심하고 딸도 애교도 없고 정말···.”
“아···힘드셨겠어요.”
“누구나 가정을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하지만 난 정말 남다르지. 아내가 사치벽이 있거든.”
“사치요?”
“매년 유명 브랜드 신상 가방을 사야지 직성이 풀린다니까.”
“신상 가방이요? 유명 브랜드면···.”
“에××스, 샤×, 버×× 나도 잘 모르는 브랜드를 어디서 그렇게 알아오는지···.”
“우와 명품···.”
“사업을 하는 나하고 만나다 보니까. 아내가 사치에 눈을 뜬 거지.”
“사모님은 대표님 같은 분 만나서 정말 좋으시겠어요.”
“그런데 아내는 그런 고마움을 모르고 나한테 정말 냉랭하다니까.”
“어머···. 정말요? 이렇게 회사도 운영하면서 바쁘실 텐데 사모님한테 선물도 매번 하는 데요?”
“그러니까. 복에 겨운 걸 모른다니까. 옆에 매번 있으면 그게 당연한 줄 알고 말이지.”
“정말 그런가 봐요.”
“미스 소도 남자 볼 때 나 같은 사람 만나야 돼. 괜히 젊고 잘생긴 남자라고 쉽게 만났다가 잘못 엮이면 삶이 피곤해지는 거거든. 지금 사귀는 사람 있나?”
“아···아뇨. 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직한 거라서···여유도 없고···.”
“그래? 그럼 나를 보면서 남자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라고.”
“저도 사모님처럼 저를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 만나고 싶네요.”
“그렇지.”
답답한 나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미스 소의 둥근 얼굴과 귀여운 행동에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걸렸다.
집에 들어가는 데 거실 불이 갑자기 켜지면서 아내가 나타났다.
“헛···. 무슨 인기척이라도 내지.”
“매일 늦게 오는데 대화라도 나누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대화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하면 되는 거 아냐.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는 사람을 놀라게 해서 되겠어?”
“새벽에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데 언제 대화하자는 거야?”
“뭐가 문제야? 이번에 신상 가방 늦게 국내로 들어오는 게 내가 만든 문제는 아니잖아.”
“내가 가방 이야기 때문에 이 시간까지 당신을 기다린 것 같아?”
“그럼 뭔데?”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서 시달리고 온 나를 괴롭히는 아내는 꼭 마녀 같았다.
“아버지한테 연락받았어.”
“장인어른이? 웬일로?”
“이번 명절에는 친정에 같이 오냐고···.”
“당신하고 미리만 가면 충분하잖아. 내가 가도 반가워하지도 않는데 내가 왜 불편한 자리에 가? 그러는 당신은 시댁은 제대로 갔어?”
“그건 당신이 불편하면 안 가도 된다고 했잖아.”
“말이 그런 거지 진짜로 안 가도 되겠어? 무슨 사람이 그래. 시댁은 안 가고 친정은 내가 꼭 같이 가야 하고?”
“당신이 결혼 때···분명···.”
“결혼할 때는 누구나 공수표 날리는 거야. 누가 그걸 다 지키고 살아? 어?”
“당신···변했어요.”
“나만 변했어? 당신도 변했지? 매번 집에서 구질구질···정말 이놈의 집구석 답답한 내가 나가야지.”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