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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31화 (131/205)

<131화 사랑의 조건 : 그 남자>

사랑을 믿지 않는 건조한 삶이었다. 나에게 최우선은 사람이 아닌 돈이었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도 믿지 않는다.

그런 나의 생각을 바꾸게 한 여자가 있었다.

100미터 전방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나에게 인사를 하던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살짝 웨이브 진 긴 머리를 등 뒤로 넘기면서 투피스 양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자였다.

샤×의 가방조차 그녀를 위한 액세서리로 보였다.

사업차 찾은 연말 호텔 연회장은 분위기만큼이나 초청장을 구하기 힘들어서 올해 처음으로 참가한 행사였다.

그녀의 주위에 파리 떼를 헤치고 말을 걸었다.

‘운명인가?’

나만 아닌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사업이 잘 나간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둘러보더니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녀도 나를?’

“한참 찾았구나.”

“아빠? 왜 이제 왔어요.”

“하하. 미안하구나. 오늘 회사에 일이 갑자기 생기는 바람에···엄마는 어디 있니?”

“저기 사모들한테 또 둘러싸여서···.”

“집에서는 편하게 말해도 이런 행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으···. 알았다고요. 저쪽에 여사님들하고 대화하고 있어요. 저는 불편해서 자리 비켜준 거고요.”

그녀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장인어른이신가? 여기 행사에 익숙해 보이는데···.’

이런 생각을 나만 가진 게 아닌지 그녀 주위에 있던 파리 떼 중 한 명이 인사를 한다.

나는 기분 나쁘지만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아···오랜만이네. 동화군.”

“하하···저번 모임 때도 인사를 들였는데···.”

“저번 경제인의 밤 행사에도 참여했나? 내가 미쳐 자네가 온걸 모르고 있었군. 아버님은 아직 정정하시고?”

“네. 아직도 활발하게 경영 일선에 참여하시는걸요.”

“그래도 자네 같은 후계자가 있어서 든든하시겠어.”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물류회사도 영희 씨 같은 후계자가 있어서···.”

“영희야 내가 아끼는 딸이지만 후계자라니 어불성설이지. 다른 쪽 업계는 몰라도 물류 업계가 좀 험하나? 난 내 딸이 고생하는 걸 볼 생각이 없네.”

“아···그러시군요.”

“이 문제는 여기서 할만한 대화 주제는 아닌 것 같군. 난 여사님들 사이에서 내 아내를 좀 구해와야겠어.”

“영희 씨 덕분에 여사님들 사이에서 영희 씨 어머니가 인기가 많으시죠.”

“나는 생각 없다고 해도 아내가 저렇게 나서니···.”

“사장님 덕분에 영희 씨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잘 만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보는 눈이 좀 있구만. 난 내 딸을 고생시키지 않을 놈으로 콕 집어서 결혼시킬 생각이네.”

아버지와 날 파리의 대화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난 확신했다.

‘저런 놈들보다 나를 보는 게 분명해.’

나는 확신을 가지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처음 만나는 게 분명하지만 익숙하게 나에게 인사를 건네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우리 구면인가요?”

“아닙니다. 이번에 처음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아···그러시구나···.”

“옆에서 대화를 듣다 보니 성함이···.”

“제 이름을 묻기 전에 먼저 이름을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저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서진태라고 합니다.”

“정말 작은 회사 인가 봐요. 이름 처음 들어보는 것 같네요.”

“그렇지만 곧 아무나 알게 되는 회사가 될 겁니다.”

“그런가요. 열정이 큰 모습 보기 좋네요.”

‘역시 그녀도 내가 마음에 있는 게 분명해.’

경제인의 밤 모임이 끝난 후에도 나는 계속 전화기만 노려보고 있었다. 사업파트너인 배철영은 나에게 꿈 깨라고 말했지만 나는 확신했다.

‘분명 그날 그녀도 나를 향해서 웃어줬어.’

“내가 그녀에게 연락받으면 회사 대표는 내가 한다?”

“무슨 소리야. 공동 대표로 하기로하고 시작했는데!”

발작하려는 철영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모르겠어? 내가 영희 씨와 잘되면 우리 사업은 날개를 단 거라고.”

“뭐?”

“영희 씨 아버지가 어디 회사 대표인지 모르는 거야?”

“화물 물류 쪽은 꽉 잡고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그래. 그러니까 우리 사업에 최고의 파트너지. 그런데 자녀는 영희 씨 밖에 없고 말이야.”

“설마···너? 그 영희 씨라는 여자한테 한눈에 반했다면서?”

“그래 반했지. 그녀만 얻으면 우리 사업도 날개를 다는 거고 거기다가 넌 그날 못 봐서 그렇지 그녀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주변에 쓰레기 같은 놈들이 전부 영희 씨만 보고 있더라.”

“너 그거 정말 사랑이 맞는 거냐?”

“이렇게 절절한데 사랑이 아니면 뭔데?”

철영이의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보면서 나는 내 바람을 외쳤다.

“그녀하고 만나는데 너하고 공동 대표라고 하면 어떻게 보이겠어. 최소한 대표는 돼야지 그녀 앞에 제대로 나설 거 아니야.”

“너 정말 그 영희 씨라는 여자하고 잘할 자신 있는 거야?”

“나 몰라? 압구정 서라운드?”

“하···나도 모르겠다. 뭐 대표는 몰라도 지분은 50프로 그대로인 거 확실히 해.”

“당연하지. 내가 지금 바로 지장이라도 찍을까?”

“헛소리하지 말고 계약서나 제대로 만들어와. 안 그럼 국물도 없을 테니까.”

회사를 차리기 위해서 부족한 자금을 보태줬던 철영이지만 이럴 때는 정말 한 대 때려버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갈무리하고 계약서를 작성해서 도장까지 서로 찍고 나서야 표정이 풀린 철영이 자신의 계획에 동조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역시 내 감은 죽지 않았어.’

신나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간 자리에는 경제인의 밤 행사에서 그녀 옆에서 똥파리처럼 출몰했던 남자가 서 있었다. 약간 찌푸린 그녀의 모습도 근사했다.

‘저런 놈이 옆에 있으니까. 기분이 나쁜 게 분명해. 내가 그녀를 구하겠어.’

내가 그녀를 만나는 날이면 사업파트너인 철영이 나를 구박했다.

“야, 지금 사업이 안정화도 안됐는데 이렇게 회사 자금을 막 가져다 쓰면 어떡해?"

“그럼···. 영희 씨하고 잘되는데 그 정도 투자도 안 하려고 했어?”

“뭐?”

“영희 씨 옆에 붙어 있는 파리 새끼가 하나 있는데 손이 크더라 그런데 내가 그놈보다 쪼잔하게 영희 씨한테 하면 잘해볼 수 있겠어?”

“너 정말 헛 돈 쓰고 다니는 거 아니지?”

“영희 씨에게 줄 선물하고 데이트하는데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가고 그건 당연한 투자인 거지.”

“미친놈.”

“넌 그런 미친놈 사업파트너고 그러니까. 너도 노선 확실히 해. 알겠어?”

“난 모르겠다. 이렇게 된 거 잘 안되면 회사 자금 횡령으로 고소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야, 배철영 너 정말 이렇게 할 일이냐?”

“그럼 사업파트너라는 놈이 공동 대표에서 내가 물러나자마자 회사자금을 마음대로 쓰는데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거냐?”

“너···.내가 영희 씨하고 잘 돼서 사업 제대로 안착시킨다고 했잖아.”

“미친놈. 너 말고도 그 여자 쫓아다니는 한량 있다면서 그럼 내가 꼭 선택된다는 보장이 있어? 그 여자 아무리 봐도 추종자들이 쫓아다닐 정도로 미모도 재력도 있는 것 같은데 너 정신 차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는 가랑이 찢어지는 거야."

“너 이 새끼 그 말 후회하게 해준다.”

나는 미친 듯이 열이 올라서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연락할 새도 없이 그녀를 보기 위해서 그녀의 위치를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철영이 그 새끼 나를 무시해? 내가 어떤 놈인지 제대로 보여주겠어.’

그녀가 평소에 자주 가는 호텔 커피숍과 백화점 라운지를 돌아보다가 익숙한 호텔 커피숍에서 눈이 풀린 채 주저앉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꾹 내리누르면서 그녀에게 뛰어갔다.

“영희 씨, 영희 씨 정신 차려봐요.”

“으···머리가 머리가 너무···.”

혀가 꼬인 것처럼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한 그녀가 내 품에 기대자 나는 철영의 말에 화가 났던 게 순식간에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나에게 기대고 있어. 이래도 그녀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그녀와 나의 마음을 확인하고 상견례를 하는 날 나를 마땅찮다는 표정으로 보는 영희 씨 아버지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크흠···자네가 영희 남자친구라고.”

“네 그렇습니다. 장인어른.”

“왜 내가 자네 장인어른인가?”

“영희 씨하고 제가 서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희 씨 아버지는 얼굴은 술이 올라오셨는지 붉게 달아 올라있었지만 더는 말하지 않고 나와 영희 씨를 한눈에 담더니 말했다.

“내가 딸을 아주 귀하게 키웠다네. 그래서 집안일이나 그런 건 하나도 할 줄 몰라 그런데도 내 딸을 귀애하게 대우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장인어른 영희 씨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습니다.”

“그래···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아빠···.”

장인어른이 불편한 심기를 숨기면서 내가 영희 씨를 잘 보살피겠다고 하자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아버지 말에 심정이 불편할까 봐 걱정이 되는지 자신의 아버지를 불렀지만 나는 괜찮다고 그녀의 손을 톡톡 두드려줬다.

그리고 우리는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영희 씨와 결혼한 나를 대단하다는 듯 치켜세웠고 결혼식장에서 영희 씨의 모습을 본 철영은 나에게 엄지 척을 해줬다.

결혼식장에서 양가 부모님께 인사할 때 나는 영희 씨 부모님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에 큰절을 했고 결혼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임마···그렇게 좋냐?”

“너 같으면 안 좋겠냐?”

“너도 참 대단하다.”

“뭐가?”

“결혼 전에 속도위반부터 하고···.”

“결혼할 건데 무슨 상관이야?”

“그건 그렇지. 그런데 신혼여행을 왜 이렇게 짧게 가?”

“영희 씨 몸 상태도 고려해야지.”

“그래. 잘 다녀와서 회사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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