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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23화 (123/205)

<123화 열대야 2>

폭풍 같은 기주 아저씨와의 대화 이후에 더운 여름날의 뜨거운 열기로 잠을 자기 힘들었다.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이 든 순간.

방금 열대야로 인해서 더위에 지친 나를 품어주듯 시원한 계곡물이 나를 반겼다.

‘대백공.’

더위 속에서 잠이 오지도 않는데 억지로 잠을 잔 이유였다. 대백공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친구 오늘도 대단한 일을 해냈다지?”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서 있는 대백공에서 성마르게 다가가면서 외쳤다.

“이번 기주 납치 사건 저 때문에 일어난 건가요?”

나는 김씨가 약물중독에 의한 사망 사건이라는 기사를 보여줬을 때부터 계속 나를 조급하게 만드는 질문을 외쳤다.

“왜 자네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말하기 어렵겠지. 이제까지 있던 일은 단순히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렵겠지.”

“···.”

“그것처럼 일련의 행동이 인과를 만들어 낸 뒤 그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나의 영향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태어난 모든 이들이 모든 인과에 조금씩 관여한다고 말해줄 수 있겠군.”

“그런 원론적인 말은···.”

“물론 자네가 기주 납치 사건에서 기주를 구하면서 일어난 인과로 또 납치가 일어난 것은 맞다네.”

“윽···.”

대백공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상처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쓰라린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저 때문에···.”

“자네 덕분에 살아난 거지.”

“···?”

“처음 납치됐을 때 죽을 운명이었지. 그걸 바꾸지 않았나? 덕분에 두 번째 납치가 시도되었으니 자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은 맞지.”

“그건···.”

“자네가 아니었다면 죽을 운명이었어. 기주라는 아이는 어른스러운 아이일세. 그래서 결국 죽게 되는 것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 아이는 자신 때문에 가족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동생이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에 좌절해서 스스로 죽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지.”

“···!”

“어른들은 흔히 말한다네 아이가 철이 들어서 편하다고 말이지.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철이 든 아이는 행복할까?”

“아···.”

“철이 든 아이라···. 인간들 식으로 하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하고 같겠군.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는 거지.”

“···.”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해야 한다네. 그 아이가 실수를 해도 그 웃음 한 번에 모든 게 날라갈 정도로 말일세. 하지만 인간은 아이가 어른스럽기를 바라지. 그건 어른의 모진 맘이네. 아직 어린아이인데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기를 바란다는 건 참 잔인한 일이야.”

“그럼 기주가 어른스러운 건···.”

“그 아이에게는 행복이 아니지. 그 아이의 부모나 주변의 어른들은 편할지 몰라도 그 아이에게 그게 행복한 일일까? 그 아이가 정작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래서 너무 빨리 철든 아이가 되는 것이 그 아이의 행복일 수는 없지. 아이는 철이 없어야 하고 어른은 어른스러워야 하는데···.”

“그 말씀은···?”

“아이가 나이를 먹고 큰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어리다고 어른이 함부로 하는 인격이 없는 존재가 아닌 것인데···인간은 참.”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것인가요?”

“이 땅은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호기롭게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안타까울 뿐이지.”

“어리석은 선택을 호기롭게 한다는 건···?”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핑계를 하고 어린아이가 어른처럼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선택을 하니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해들이 안타까운 걸 어쩌겠나.”

“···.”

“내가 천, 지, 인에 대해서 말했던 걸 기억하나?”

“어르신 같은 토지신은 기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흐르게 만든다고···.”

“기억하고 있군. 그 말처럼 흐름은 이어지지 끊어지지 않는다네. 누군가 더 가져간다면 누군가는 더 가져다 받쳐야 하는 것이지.”

“나이는 먹었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면···.”

“그렇게 되면 어린아이들이 철이 들어서 그 짐을 나눠 들어야 하는 게 이치인 것이지.”

“···!”

“철이 든 어린아이가 좋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무거운 짐을 어린아이들에게 떠넘기고 싶어 하는 것이라네. 어린아이가 배고프다고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귀찮고 잘 모르는 걸 설명해달고 하는 아이가 귀찮아 하지.”

“···!”

“그래서 아이가 배가 고파도 아파도 울지 않고 물어보고 싶어도 부모에게 묻지 않아 힘들어해도 철이 들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

“···!”

“소년병들이 동원되고 아이들에게 같은 인간을 죽일 무기를 쥐여주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자신의 삶이 약탈당해도 부당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세상. 잠을 재우지 않고 밤새 노동을 시키는 세상. 생각보다 당장 배고픈 배를 채울 수 있다면 부당한 선택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세상.”

“···!”

“왜? 그런 세상이 과거에는 있었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하고 싶은 건가?”

“···!”

“이 땅은 아니더라도 저 바다 건너 저 대륙 너머에서는 일어나고 있다네.”

“···!”

“천, 지, 인이라···. 흐름은 결국 돌고 돌아 그 균형을 이루는 데 있지. 철든 어린아이가 좋은가? 그렇다면 그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자신의 편의를 취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일세.”

“···.”

“이 땅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자네 부모세대가 어떻게 이 땅을 기름지게 했는지 아는가? 그들의 젊음과 순수함을 피와 땀으로 바꿔서 이 땅에 뿌렸지.”

“···.”

“부모 세대는 철든 아이들의 세상이었지. 나이에 상관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나가서 일을 했다네.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태였어.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어린아이들이 어린아이로 남을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 것이지.”

“···.”

“그런 부모세대가 무엇 때문에 철든 어린아이가 되어 그런 막막한 세월을 보냈는지 아는가? 잘먹고 잘살고 싶어서. 하지만 잘먹고 잘살고의 앞에 빠져있는 단어가 있지.”

“···?”

“내 가족이 잘먹고 잘살면 좋겠다. 그래서 전쟁통에 나가 총탄 위를 뛰어다니고 숨쉬기도 힘든 탄광에서 검은 먹물과 주먹밥을 먹으면서 대화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일을 했지.”

“···!”

“가족···. 그 안에 자신의 어린 자녀들이 자기처럼 배 곪지 않고 위험하지 않고 따뜻한 집에서 크기를 바랐던 이들의 피와 땀 덕분에···.”

“···.”

“회귀하기 직전 자네가 살던 세상은 어떻게 이들을 대했던가?”

“그건···.”

“자신의 가족들을 건사하고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이들에게 뭐라고 했는가?”

“···.”

“죄인처럼 대했지. 왜? 그 재산으로 자신의 가족들만 잘먹고 잘살려고했다고 말이야.”

“···.”

“그 재산을 이룩하는 동안에 사회가 발전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빼고서라도 불법으로 만든 재산이 아닌 다음에야 죄인으로 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

“내가 이 땅에서 인간들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게 무엇인 줄 아는가?”

“···?”

“진실은 필요 없고 그저 선동과 날조···. 쉽게 말해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것일세.”

“그런 말도 안 되는···."

“누군가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말에는 지루하다는 반응이면서 말도 안 되는 선동의 목소리가 크다면 거기에 끌려가는 게 인간이지. 참 신기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네.”

“···.”

“아니라고 말하고 싶나?”

“···.”

“어린 친구의 표정을 보니. 이해가 가지 않나 보군. 쉽게 말해서 광우병 집회를 들 수 있겠지.”

“···?”

“광우병 집회가 무엇인지 궁금한 표정이로구만···. 수입 쇠고기를 먹으면 머릿속 뇌에 구멍이 생기니 수입 쇠고기를 막아달라는 집회라네.”

“그런 일이···.”

“그런 일이···집회가 이 땅에 실제로 일어났다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무엇인 줄 아는가? 무역장벽이 낮아지면서 무역 수지 흑자를 기록한 나라는 한국이라는 것이지.”

“···.”

“그리고 자네가 증명하고 있지 않나? 수입 쇠고기를 먹어도 머릿속 뇌에 구멍이 안 난다는 사실을 말일세.”

“수입 쇠고기. 햄버거 많이 먹었죠.”

“진실은 버려지고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대규모로 광우병 집회를 했지.”

“···.”

“누군가 큰 소리로 앞에서 외쳤다네. 수입 쇠고기를 먹으면 머릿속 뇌가 망가지고 치매까지 온다고 아이들을···어린아이들을 위해서 앞장서야 한다고···.”

“···.”

“광우병 집회 때 촛불이 모여들었어···어두운 광장 안에서 붉은 촛불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네. 따뜻한 날씨 청계천 개발로 가족끼리 나들이하기 좋은 날 아빠, 엄마 손을 잡은 꼬마들과 유모차를 밀고 온 많은 이들이 산책을 하다가 지나가면서 들려주는 촛불을 손에 들고 그 시위자들의 뒤를 따라갔지.”

“···.”

“광우병 집회에 나섰던 이들 중 정말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어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이들보다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나온 김에 나도 한차례 이 순간 월드컵 경기 때의 그 열기처럼 사람들과 즐기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나온이들이 있었지.”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정책에 대한 어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있는 사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광우병 사태에 대해서 말도 안돼는 선동에 그렇게 단순하게 휩쓸리지 않았겠지.”

“그렇지만 당시에 언론은···.”

“어린 친구 자네도 자네의 친구를 보면서 언론이라는 게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서라면 사실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않나?”

“···.”

나는 말도 안 되는 오보에 현진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봤던 기억에 입을 반박할 수 없었다.

“어른이지만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이들이 결국 철든 어린아이를 만드는 것이지.”

“···?”

“순리라는 것이 참으로 지켜보기 힘들 때도 있다네.”

“···!”

“철든 어린아이들이 산이고 들이고 피땀을 흘려서 어린아이 같은 어른을 만들고···. 어른이지만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이들이 결국 철든 어린아이를 만드는 것.”

“그게 순리라는 건가요?”

“누군가 받게 되면 누군가는 더 내놔야 하는 것이지. 다만 선동에 앞장서는 이들은 받게 되는 것을 강조하고 내놔야 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것이지.”

“그럼 그런 선택을 바라지 않는 아이들 아직 어린아이들은 선택권조차도 없잖아요.”

“그래서 안타까운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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