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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22화 (122/205)

<122화 열대야>

어머니가 동생을 달래면서 병실 밖으로 나가면서 병실은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병실 사이로 창밖을 보다가 병실에서 가까운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겨 벤치에 앉아 있었다. 서늘해야 할 밤바람이었지만 날이 더워서인지 시원하게 느껴졌다.

‘상처는 이제 거의 아문 것 같은데···다 나았다고 병실 밖으로 탈출하려고 하면 외삼촌이 날 잡아먹으려고 들겠지?’

어떻게 해야 무사히 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서일까?

내 옆에 앉은 인형이 나에게 밀크티를 내밀 때까지 김 씨 아저씨가 온걸 알지 못했다.

“김 씨 아저씨?”

“···.”

“병문안 오신 거예요? 잘 마실게요.”

“이번 납치.”

“네?”

밀크티는 평소와 다르게 캔 옆에 빨대도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빨대 포장을 뜯는 중에 김 씨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했다.

“재정국 차관이 연관되어 있다. 자세한 건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어째서 재정국 차관이···.”

김 씨 아저씨는 지난 신문 기사 중 기사 하나를 가리키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건···약물중독에 의한 사망 사건 기사···.설마?”

“여기 문모 씨라고 되어 있는 남자가 재정국 차관의 아들이다.”

“···.”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놀라서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이에 김 씨 아저씨가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알아내지 못한 선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 한동안 연락이 안 돼도 기다리지 마라.”

“아저씨. 김 씨 아저씨?”

내가 김 씨 아저씨가 넘겨준 신문에 시선을 뺏긴 사이에 김 씨 아저씨는 홀연히 사라졌다.

‘술법은 내가 쓰고 있는데······. 나보다 더 신출귀몰하네.’

홀린 표정을 정리하고 병실에 들어오면서 어떻게 보면 내 멋대로 행동해서 주변에 걱정거리만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고민이 들었다.

‘외삼촌 덕분에 1인실에 머무르네. 나중에 감사하다고 하면···. 다치지나 말라고 하려나?’

잠깐 상념에 잠긴 사이에 병실 안에 누군가 있다는 인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기주 아버지?”

기주 아버지는 입원했다고 하지만 걸어 다닐 정도의 내 상세를 보고 안심했는지 처음 봤던 표정에서 조금 나이진 모습으로 말했다.

“고맙네.”

“운이 좋았죠.”

들어올 때부터 기운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병실에 준비된 의자에 앉으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덮는 기주 아버지의 행동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내 딸은 운이 없어···.”

“네?”

“나 같은 아버지를 만나서 벌써 두 번이나 힘든 일을 겪고···나 같은 경찰이 아닌 다른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여자아이라고 할머니에게 괄시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

“내가 정년을 눈앞에 뒀는데도 기주나 성주 나이가 어린 이유를 아나?”

“늦게 결혼하신 건가요?”

“그것도 그렇지만···.”

“···?”

“잔소리하는 어머니를 아내에게 떠넘긴 채 일이 바쁘다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 손에 꼽혔기 때문이야.”

“···!”

“그런데도 어머니는 항상 아내 탓을 했지. 자기 자식은 나에게는 한마디도 안 하고···. 그럼 난 그런 모습이 진저리가 나서 다시 경찰서에서 범인 잡겠다는 핑계로 집에 안 들어갔지.”

“···.”

“그러다가 생긴 기주는 정말 선물 같은 아이였어. 집에 자주 들어가고 싶을 만큼···.”

“그럼 왜···.”

“왜 그렇게 아내와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데···가만히 있었냐고? 어머니가 혼자서 나를 힘들게 키우셨던 기억이 나를 막아 세운 거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변명이네. 결국 나는 집안에서 나쁜 역할을 하기 싫었던 거야.”

“···.”

“그게 결국 가장 나쁜 선택이었지만···. 기주가 납치된 후 생각했지. 정말 기주, 성주 그리고 아내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그래서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 분가했지.”

“기주가 이사 오고 정말 좋아했다고 주신이한테 들었어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기주 아버지의 말에서 이내 한숨 아니 물기 어린 긴 신음과 함께 토해내듯 말을 이었다.

“그래. 나도···진작에 이런 선택을 했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

“기주가 또 납치된 거야. 머릿속이 하애지면서 어쩌면 우리 아이들 그리고 아내 옆에 내가 있는 게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 아닌지···차라리 아이들과 아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내가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저번부터···말씀드리지만 저한테 말씀하시는 것보다 기주 어머니하고 상의하셔야 하는 문제 아닐까요?”

“이상하지? 동료나 전혀 모르는 사람한테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데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니 말이야.”

“그리고 기주 아버지가 가족하고 멀어져서 생활한다고 해도 기주 납치는 멈추지 않을지도 몰라요.”

“뭐? 너 이번 사건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게 있는 거냐?”

방금 전까지 무거운 가장의 무게를 양어깨에 올리고 한탄하는 평범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던 기주 아버지였다. 하지만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자 노련한 형사의 눈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천상 형사네.’

“기주 아버지 정년 이제 얼마 안 남았죠?”

“그래. 그래도 연금 나오니까. 아이들 다 클 때까지 소소한 일이나 할까 계획 중이었지.”

“소소한 일이라면?”

“퇴직 경찰들 모임이 있거든. 거기에서 나를 부르더라고 그래서 거기 모임 일이나 도우면서···.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지?”

“이런 말 하면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주 납치하는 이유. 돈 때문이 아니라는 건 기주 아버지도 알죠?”

“한 번도 돈 요구하는 전화가 없었어.”

“집에도 안 들어가고 자주 얼굴 마주하면서 일한 현장직 경찰이 고위직까지 올라갈 정도면 경찰 내부에서 인기도 많을 거고요.”

“그럭저럭···그저 비슷한 친구들 모아서···.”

“잠깐. 퇴직 경찰 모임을 기주 아버지 주도로 만드신 건가요?”

“어···집에 들어가는 게 힘들어서···아니 싫어서 늦게까지 남아있는 친구들이야 빤하니까. 모임 만들어서 나도 나중에 거기에 들어갈 생각이었지.”

“그래서···.”

“···.”

내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이전에 동네 아저씨 같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날카롭게 주시는 기주 아버지의 시선에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번하고 이번에 기주를 납치한 놈들은 분명 얼굴은 달랐지만···.”

“얼굴은 달랐지만?”

“새긴 위치는 달랐지만 같은 문신을 하고 있었어요.”

“···!”

“고위직 경찰이지만 이제 퇴직을 앞둔 경찰의 가족을 일부러 납치한다? 솔직히 목적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든 방식 아닌가요?”

“그렇지. 뭔가 내가 경찰 내부에서 일을 벌이기 원했다면 퇴직 직전의 경찰을 노리지는 않을 거야. 자기네들이 리스크를 진 만큼 오래 이용해 먹고 싶을 테니까.”

“그리고···전 씨가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를 때의 말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서···.”

“전씨가 외친 말은 그저 의미 없이 저주 같은 말만 외쳤다고 하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신경 쓰이네요.”

“날 버리고 행복하게 살게 둘 것 같냐고 했다고 하던데···.”

“기주를 향해서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너만 행복하게 살게 놔둘 것 같냐고도 외쳤죠.”

“그저 피해망상이 심한 걸로 보이는데?”

“전씨가 실제로 범죄의 표적이 된 건 사실이잖아요?”

“그걸 어떻게···.”

“당시에 유명했다면서요.”

“하긴 그 난리를 쳤으니 모르는 게 더 어려우려나?”

“···?”

“그 사건까지는 모르나 보군. 당시에 전씨가 피해 진술을 하려고 경찰서에 왔는데 전 씨 아버지라는 사람이 와서 전 씨 뺨을 때리고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한동안 경찰서가 소란스러웠지. 그리고 전 씨하고 피의자가 결혼한다는 소식만 나중에 들었지.”

“결혼했다고요? 아니 어떻게···.”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는 그런 경우가 많았어. 뭐···그래서 전 씨 같은 대학생들이 표적이 되곤 했지.”

“네?”

“그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생각은 못 했는데···전 씨 같이 좀 고위직이나 잘사는 집안의 여성을 약을 먹이고 강제로 결혼까지 가는 사건들이 종종 있었어. 내가 사건 담당자라면 절대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정도였지.”

“그럼 그 사건 담당하던 형사님은···.”

“퇴직 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듣기만 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큰 돈을 마련했나 싶은···.”

내가 생각에 잠기자 기주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번 납치가 전 씨 사건이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전 씨는 대학생이었고 내 딸은 초등학생인데···.전씨가 자기처럼 불행해지라고 납치한 거라는 거냐?”

기주 아버지는 아픈 표정으로 나에게 간절히 아니라는 대답을 바라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나는 그런 기주 아버지의 눈을 직시하면서 말했다.

“아니요. 전 씨도 이용당한 것으로 생각돼요.”

“뭐?”

“기주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상류층 자녀 중 딸만 노려서 강제로 결혼에 성공한 거잖아요. 그럼 그걸 뒤에서 조종한 세력이 있다면? 그런데 전 씨는 부모에게 의절 당했죠.”

“···!”

“적당한 세력이 자신들의 조직력을 이용해서 납치 혼인을 시도해요. 그리고 성공하죠. 이제는 재산과 지위도 손에 넣었어요. 그 다음은 뭘까요?”

“권력.”

“국회의원선거가 곧이죠. 거기다가 외환위기 때문에 사실상 민국당에서 입후보만 하면 이번 선거에서 이긴다는 언론이고요.”

우당탕.

앉아 있던 의자에서 큰 소리와 함께 생각지도 못한 걸 깨달았다는 듯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기주 아버지를 쳐다보자 침중해진 눈빛으로 쓰게 말했다.

“민국당 입당제의가 있었다.”

“···!”

“하지만 입당제의만 있었지. 공천이나 그런 건···.”

“아마 기주 아버지가 민국당에 입당하게 되면 이곳 지역 공천은 기주 아버지가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경찰 고위직에 인맥이나 평판도 좋고···.”

“나는 전혀 생각도 안 하는데···. 어째서.”

“그걸 상대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당장에 선거에 집중한다면···.”

“잠깐···그럼 전 씨를 끌어들인 것도?”

“···?”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뱉는 와중에 기주 아저씨가 무언가 생각난 게 있는지 갑작스럽게 전 씨에 대해서 말하더니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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