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여름밤 4>
칼을 든 상대를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기주 옆에서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놈들을 제압하는 것보다는 기주를 안전하게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게 더 중요했다.
‘물론 생각 없이 이곳으로 돌진한 건 아니다.’
삐용삐용―.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이 울린다. 그제야 당황했는지 꺾인 손가락을 붙잡고 썩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칼잡이 옆에 서서 외친다.
“경··경찰···?”
“경찰 쪽에 신고 안 한다고···.”
“미친 새꺄 꼬맹이가 저쪽이 데리고 있잖아.”
“그럼 빨리 꼬맹이만 확보하면···.”
“윽···. 경찰이 오기 전에 저 자식 제압해도 꼬맹이하고 우리하고 같이 있는 거 다 알게 될 텐데···. 형님이 가만두겠냐? 난···.”
두려운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도망칠 구석을 찾는 것 같았다. 그때 엉망인 전씨가 나타났다.
특유의 멍한 표정에 맨다리 맨발에 얼굴은 푸른 멍이 들어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그저 움직이는 인형인 것 마냥 천천히 그렇지만 명확하게 우리를 향해서 걸어왔다.
나는 전 씨의 처량한 모습에 화가 난다기보다는 기주를 두 번이나 납치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지고 기주 앞을 막고 뒤로 물러섰다.
천천히 뒤로 물러서다 보니 이내 벽에 막힌 상태였다.
멍한 표정의 전 씨였지만 기주와 가까워지자 맹렬한 적의와 함께 공허한 웃음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캬하하하핫―.
“너만···. 너만 행복하게 살 게 놔둘 것 같아?”
기주가 내 등 뒤에서 내 옷자락을 꽉 쥐는 게 느껴졌다.
“나··날···버리고 행복하게 살게 둘 것 같냐고!”
“무슨 헛소리야?”
내가 미친것처럼 웃다가 울다가 외치는 전 씨를 향해서 참지 못하고 외치자 그 말에 자극을 받은 것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더니 나를 껴안으려고 들었다.
“나는 구해주러 오지도 않았잖아. 왜 너만. 왜 너만!”
팔다리에 매달리는 전 씨의 힘은 하찮았지만 하찮았기 때문에 함부로 밀치기도 힘들었다.
‘몸이 상해서 여기서 조금만 힘을 줘도 망가질 것 같아.’
다치는 게 아니라 망가질 것 같은 느낌. 사람이 아닌 인형을 상대하는 것 같은 거북스러움이 느껴졌다.
내가 전 씨와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덩치들이 서로 합심했는지 아니면 돌파구는 기주를 다시 납치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내 뒤의 기주를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날 묶어두려는 전 씨를 힘줘서 덩치들을 향해 밀쳤다.
콰당―.
누구 하나는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큰 소란과 함께 세 명이 얼기설기 엉키면서 넘어졌다.
“이 미친년이 저리 꺼져.”
캬하하하―.
“으윽···.”
칼을 들고 있던 칼잡이는 넘어질 때 잘못 다쳤는지 한쪽 손을 감싸고 있었고 감싼 손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썩은 내와 칼을 들고 있던 칼잡이보다는 넘어진 채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전 씨가 더 소름 돋고 경계심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그런 내 의문점에 답해주듯 넘어진 채 엉거주춤하고 있는 덩치들 사이에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피가 묻은 칼을 들고 기주를 향해 몸을 던지는 전 씨.
나는 기주 앞에서 전 씨를 막았다.
“윽···.”
전 씨를 무자비하게 던져버리면 내가 다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차마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칼에 제대로 찔렸다.
자신이 사람을 찔렀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놀란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바로 상황은 급변해서 피를 보자 더 강한 힘으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살벌한 칼춤에 자신의 팔에 자상이 생겨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피가 베여나오는 상처를 손으로 막고 기주를 등 뒤로 보내면서 생각했다.
‘허 경장 왜 이렇게 늦어?’
허 순경···아니 허 경장은 오늘 낮 근무였다. 하지만 내 부탁으로 야간근무를 하면서 모텔촌 순찰을 돌고 있었다. 거기에 휴대폰으로 이곳 여관에 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사이렌 소리가 난 거면 출동한 거 아닌가?’
내가 전 씨의 살벌한 칼춤.
아니 자신의 목숨도 필요 없다는 자살테러 희망자를 보면서 초조함을 느낄 때였다.
여관주인과 함께 이 난장판에 허 경장이 나타났다.
“에구머니나···이게 무슨···.”
“신···신고해요···.”
“아니 경찰이 신고하라니 어디로?”
“아···그러니까? 본부에?”
당황해서 만담을 하고 있는 허 경장과 여관주인을 보고 내가 외쳤다.
“신고도 좋지만, 이 여자 좀 말려봐요.”
“누구···? 전 씨?”
원래도 오래된 형광등이었지만 방 안을 난장판을 만들 정도의 소란 덕분에 깜빡거리기 시작한 형광등 아래서 칼춤을 추고 있는 전 씨는 누가 보더라도 소름이 올라올 모습이었다.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허 경장이지만 믿을만한 경찰이었기 때문에 전 씨의 살벌한 칼춤에 정신이 나간 덩치를 피해서 허 경장에게 기주를 맡겼다. 내 옷자락을 놓지 않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기주의 표정에 나는 기주의 손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
“이 순경님은 좋은 경찰이야. 잠깐 경찰 아저씨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기주 어머니하고 아버지 볼 수 있을 거야.”
“주인 오빠?”
“···.”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진정하라는 듯 기주의 손을 꽉 잡고 눈을 마주한 채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물론 정신 사나운 곳에서 미친 것 같은 여자가 웃으면서 칼춤을 추는데 어디까지 통할지는 모르지만, 기주는 주신이가 인정한 멋진 아이니까.
끄덕.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꽉 잡은 내 옷자락을 놓고 여관주인과 허 경장 사이로 몸을 피하는 기주였다.
나는 전 씨의 칼춤에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썩은 내의 뒷덜미를 팔로 감아 몸을 졸랐다. 내 팔을 잡고 탁탁 치던 손길이 약해지자 팔을 풀고 전 씨의 칼춤을 빙 둘러서 방구석으로 피하려는 칼잡이의 오금을 워커를 신은 발로 찼다.
퍽―.
“윽···.”
쓰러진 칼잡이의 뒤로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허 경장이 수갑을 채우는 모습을 뒤로하고 아직도 신내림을 받을 것 같은 비주얼로 칼춤을 추는 전 씨를 바라봤다.
“저건···기운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으려나?”
나는 두려운 표정으로 전 씨를 보는 기주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고 전 씨가 위에서 아래로 칼을 위협적으로 내려칠 때 끌어안듯 전 씨의 양팔을 구속하고 힘을 줬다.
내 팔 안에서 미친 듯이 칼을 흔들어대면서 이곳저곳 상처를 냈지만, 조금씩 힘이 약해졌다. 거기다 움직일 반경 자체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생체기만 날뿐이었다.
‘생체기라도 쓰라리긴 하겠지만···.’
전 씨를 제대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기주가 앞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지.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기를 바라는 건 그래야만 그 피해를 이겨내고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전 씨의 칼춤이 살벌하다고 그 힘이 다할 때까지 기다렸다 제압하면 나와 허 경장에게는 편하지만, 기주에게는 분명 전 씨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 깊숙이 심어질 것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내 동생이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다. 그런 상황에 놓이게 둘 수 없어.’
나는 쓰라린 창상을 무시하고 전 씨를 계속 제압하고 있었다.
결국 지친 걸로 보이는 전씨가 내 팔에 의지에 서 있을 정도가 되어서야 칼을 손에서 놓았다.
철그랑―.
땅에 떨어진 칼을 내려다보는 전 씨는 이제까지 날뛰던 모습 하고 완전히 다르게 멍한 표정인 상태로 온몸에 힘을 뺀 숨 쉬는 인형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삐용삐용―.
경찰차 사이렌과 다른 구급차가 도착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자 연락을 받은 건지 외삼촌이 응급실에 날 듯이 들어왔다.
“주인아. 도대체 또 무슨 일이야?”
“하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외삼촌을 외면하다가 복부에 제대로 칼 맞은 부위가 쑤셔와 배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이게···.”
응급실 담당 의사로 보이는 사람과 내 차트를 들여다보면서 대화를 나누고는 내가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자 타박하면서 억지로 눕혔다.
“어떻게 이제 조용하다 싶으면 병원 그것도 응급실이라니···이래서 이번에 연미 이사까지 시켰는데 굿이라도 한 판 해야 하나.”
“의사가 무슨 굿이에요?”
“의사는 굿 하면 안 돼? 전문의시험 붙게 해달라고 부적 덕지덕지 붙이고 다닌 동기들만 숫자만 세도 여기 의사들 숫자보다 많을 거다.”
“하하···윽···.”
“웃지 마. 횡격막 쪽 잘못하면 찢어질 뻔했어. 제대로 찌른 것 같은데 운 좋게 급소는 피한 것 같다.”
‘그것보다는 재생능력 덕분인 것 같지만···.’
나는 내 재생능력에 대해서 입을 꾹 다물고 몸 여기저기 피딱지가 앉은 자리를 살살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 자상도 복부에 칼 맞으면서 생긴 거니?”
“아니요. 피가 튀기면서 여기저기 묻은 것 같아요.”
내 말에 의심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외삼촌이 알코올 솜으로 상처주위를 문지르듯 닦아내자 상처 없이 피딱지만 벗겨지자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표정이 풀렸다.
전 씨를 제압하면서 생겼던 자상들 대부분이 얇고 전씨가 힘이 약해서인지 스치듯 난 상처들은 재생능력으로 이미 대부분 구급차를 타고 오면서 피가 멈추고 딱지가 앉았다.
‘물론 복부 상처는 피하지 못하고 제대로 우찔렀으니···. 며칠 병원에 있어야겠지만···.’
허 경장은 내 신고로 출동했지만, 기주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뒤처리를 하는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
대신에···
“주인아···.”
나를 붙잡고 우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돌려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울지 않고 나를 보고 있는 주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머니 몰래 조용히 귓속말했다.
“기주 무사해.”
그 말이 기폭제가 된 걸까.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내면서 우는 주신이의 모습에 어머니가 오히려 놀라서 달래느라 무사히 진땀 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