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여름밤 2>
“그럼 기주가 납치된 건 우연이 아닐 수 있겠네요.”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우연이라고 해도 한번 자세히 조사해 주세요. 제대로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요.”
“그러지.”
김 씨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인다. 점퍼를 입은 모습이다.
어두운색 점퍼가 멀어진다고 생각한 순간.
내가 보는 김 씨 아저씨가 검은색 상의를 입은 상태로 눈앞을 지나간다.
‘이건 김 씨 아저씨 기억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김 씨 아저씨의 기억을 읽어내는 건 오랜만이었다.
‘정신이 단단할수록 술법이 발동하기 어려운 거겠지?’
내가 김 씨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으면서도 장면이나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중하고 있었다. 동시에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감각을 조절했다.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익숙하다.
아니 익숙하고 싶지 않은데 익숙해진다.
김 씨 아저씨의 생각이 흘러들어오다 막히는 둑을 넘는 것처럼 흘러넘친다.
단단해 보이는 표정과 변화 없이 걷는 걸음걸이와 다른 생각이 나를 적신다.
내가 좀 더 감각을 조절하는 사이에 어두운 조명 사이로 익숙하다는 듯 잠긴 문 앞에 김 씨 아저씨가 서 있다.
아니 단순히 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추악하다.
무언가와 나를 가로막는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가르는 문처럼 느껴진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내부에 깜박이는 백열 조명 아래에 붉은색 피가 장식처럼 펼쳐져 있다.
지독한 피비린내는 오히려 코를 마비시켜 감각을 조정하는 것만 같다.
“왜 이래. 남의 영업장에 자꾸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오네?”
그냥 말을 하는 것뿐인데도 입에서 지독한 악의를 뿜어내는 것 같은 사내였다. 그 사내가 앉아 있는 의자는 방에 유일한 의자였다. 다리를 꼬고 담배를 한 개비 든 그의 손.
‘커다란 보석 반지?’
나는 놀라서 김 씨 아저씨와 사내의 대화를 놓쳤다.
‘저 보석 반지를 낀 남자와 무슨 관계지?’
다시 술법에 집중하자 김 씨 아저씨의 음울하고 잘라서 버리고 싶어 하는 유쾌하지 못한 감정이 올라온다.
“3팀장 선을 넘지 말아라.”
“1팀장이라고 자꾸 지시하려고 하시는데···알다시피 우리 회사가 각자 도생 아닌가?”
“···.”
“그렇게 남의 일에 나대다가 골로가는 수가 있어.”
“···.”
퍽―.
보석 반지를 낀 사내가 어두운 방 안 살려달라는 듯 손을 뻗는 피비린내 나는 형체에 발길질 하면서 눈은 김 씨 아저씨를 본다.
“빨갱이 새끼···.”
“3팀장···자네는 선을 넘고 있어.”
“선을 넘은 건 너지. 남의 업장에서 이 무슨 추태야? 지금 빨갱이 새끼 취조하는 거 안 보여? 계속 방해하면 1탐장이라도 서로 어떤 관계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설마 회사까지 들어와서 빨갱이들이 불쌍하다는 헛소리라도 하려는 건가?”
“증거라도 있나?”
증거를 찾는 김 씨 아저씨의 말에 미친 듯이 웃던 3팀장이라는 보석 반지를 낀 사내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삭막한 방안의 의자는 단 하나의 위치를 뜻하는 것처럼 볼품없지만 유일해 보였다.
“증거? 증거라고? 아··하하핫···내가 오랜만에 쌈박하게 웃었네. 이봐 1팀장···자네가 하는 일은 내가 뭐라고 안 해. 왜? 자네 업무니까. 그런데 3팀? 우리 팀 일에 자꾸 기웃거리잖아? 위에서 그 뻣뻣한 모가지 꺾어버리는 수가 있어.”
3팀장이 으르렁거리는 짐승마냥 김 씨 아저씨를 위협했지만 김 씨 아저씨는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
“왜냐고?”
하지만···.
“우리 팀 뒤에는 위에서 지시를 내리는 분이 있기 때문이지. 이 멍청한 새끼야.”
3팀장의 마지막 말에 굳어진 표정을 펼 수 없었다. 눈앞에서 닫힌 철문이 이쪽과 저쪽을 갈라놓는다.
“위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에 반응하는 이는 어두운 복도 위 백열등뿐이었다.
깜박깜박.
수명을 다한 듯 꺼질 듯 꺼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자신처럼···.’
김 씨 아저씨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그 감각을 조절하느라 내가 다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그 보석 반지 낀 남자···. 김 씨 아저씨와 아는 사이인 건가?’
내 머릿속은 치열했지만, 여름 특유의 후덥지근함은 내 몸을 늘어지게 만들었다.
‘악연으로 보이는데 계속 조사해달라고 해도 되는 걸까?’
김 씨 아저씨는 회사에서 나와서 잊고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자꾸 그곳과 연관된 의뢰를 하는 게 아닌지 치열하게 고민한 게 무색한 연락이 왔다.
띠리링―.
“으···엉···혀··엉··형···.”
“주신이? 주신이야? 어디야 지금?”
내가 연락을 받고 아파트 입구로 향했을 때 이미 주변 상인들에 의해서 소란스러운 상태였다.
“아니 글쎄 내 차를 박고 그냥 달려갔다니까.”
“이 사람이···그렇다고 이렇게 해놓으면···.”
“나라고···.”
서로 목청을 높이는 사이에 익숙하지만 느끼고 싶지 않은 내 가슴을 북으로 치는듯한 울음소리로 향해서 달렸다.
“엉··엉···.”
크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지만 크게 놀란 듯 딸꾹질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어제 스치듯 봤던 영어 선생님이라는 대학생이 주신이를 감싸고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주신이를 안고는 진정시키면서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마음속에서는 먹구름처럼 혼란하고 안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그게···기주 엄마가 성주 데리고 장 본다고 나가면서 집에서 놀고 있으라고···.”
“근데 왜 밖에 있어? 시원한 집 놔두고?”
“영어 선생님이 불러서···.”
내가 영어 선생님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앳된 얼굴의 대학생을 바라보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손발을 흔들면서 말했다.
“나··나는···주신이 어머니가 주신이 좀 불러달라길래···.”
“우리 엄마 아냐!”
“그게···. 난 주신이 어머니인 줄 알고···.”
“설마 얼굴이 퀭하고 몸이 좀 호리호리한 여자가 주신이 엄마라고 불러달라고 했나요?”
“어···. 그래. 좀 퀭한 안색인데 도저히 거절하기 어렵더라고 그리고 이상한 사람으로는 안 보였어. 좀 피곤해 보여서 그렇지.”
“왜요? 아이라도 엎고 있었어요?”
“아니···.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끌고 있던데···난 주신이 동생인 줄 알았어.”
으득―.
‘같은 수법이다.’
젊은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 의심의 강도가 한차례 낮아진다. 좀 이상해 보여도 아이 때문에 피곤해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주신아···형 말 잘 들어. 형이 기주 꼭 데려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엄마하고 기다리고 있어.”
저 멀리서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뛰어오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는 등을 돌려 뛰어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주변에서 어떻게 된 건지 탐문이라도 하고 싶지만 저런 걱정 어린 표정의 어머니가 나를 붙잡으면 발걸음을 뗄 자신이 없다.
나는 도망자가 된 심정으로 열심히 뛰어서 재민이가 다니던 PC방에 갔지만 재민이가 없었다.
‘아···내가 차량정비 제대로 배워오라고 전문학교로 보내 놓고는···.’
지방에 있는 차량정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지원해줬다는 사실도 잊어먹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대백공이 경고하고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면서···.’
기주가 잘못된다면 나 스스로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붙잡고 김 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
“김 씨 아저씨. 기주가 납치됐어요.”
“···!”
신음 같은 짧은 음성이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듯했다.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상황이 이상한 거 알고 있었는데···그런데···.”
“후···잘 들어 남주인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넌 충분히 이상하다는 상황을 느꼈고 나한테 부탁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대낮에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거야. 그리고 이건 돈을 바라는 단순 납치가 아닐 수 있다.”
“네?”
“어제 네가 봤다는 전 씨는 분명 기주 아버지 즉, 기주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조직적으로 행동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그 부분은 의문이다.”
“그럼···.”
“누군가 뒤에 있다는 거지. 네가 어제 봤다던 그 나이트클럽에 대해서 조사해 봤는데···. 어쩌면 이건···단순히 돈을 노리고 일으킨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네?”
“자세한 건 좀 더 조사해보고 연락하마. 아마 이들이 노리는 게 단순한 돈이 아니라면 기주는 아직 무사할 테니까.”
“김 씨 아저씨? 아저씨?”
내 물음에도 급한 일이 있는 듯 휴대폰을 급하게 꺼버린 김 씨 아저씨였다.
나는 학원가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발걸음을 서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정확한 목적지는 도서관 앞 파출소였다.
다행히 허 순경 아니 허 경사가 나를 반겨줬다.
소란 없이 나를 반겨주는 허 경사의 모습에 아직 사건에 대해서 모른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에서 왜 사건에 깊숙이 관여해있지 않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형···도와줘요.”
“뭐야. 인사도 하기 전부터···이러니까 무섭다. 나 도망가도 되는 거냐?”
“아뇨.”
나는 허 경위의 팔을 단단하게 붙잡고 지금 내가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경위를 설명했다.
“뭐? 기주가 또 납치됐다고?”
허 경위는 내 말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면서도 내가 납치에 대해서 말을 꾸며냈다고 생각하지 못한 듯 멍하게 사고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네. 그리고 이번 납치도 저번에 잡았던 전 씨와 관련 있는 것 같아요.”
“아니···. 그 아줌마는 이번에 집행유예 받고서 같은 범죄를 또 저지른다고?”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집행유예 기간에 범죄를 저지르면 이전 형량에 추가해서 더 받는 거지.”
“처음부터 돈이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혹시 기주 아버지가 맞았던 사건하고 관련된 걸까요?”
“기주 아버지야···일선 현장에서도 일했으니까. 범죄자 중에 원한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그렇지만 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요?”
“기주 아버지가 일선 형사에서 고위직으로 올라간 특이 케이스라고 했잖아?”
“그게 그렇게 특별한 건가요?”
“보통 고위직은 일선 형사보다는 엘리트들이 꽉 잡고 있다고 그런데 일선에서 뛰던 형사가 진급만으로 올라갔다는 건 다른 경찰들과 다른 게 있다는 거지.”
“그게 뭔데요?”
“사람이 좋아.”
“네?”
“너무 좋아.”
“그건···딱딱하고 되게 말 없는 사람으로 보이던데요.”
“그거야 경찰 일하느라 인상들이 다 그런 거고···보통 사건 조사하면 처음에야 사명감에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뭐랄까···그냥 일이거든. 경찰이라고 특별할 게 없지. 월급 잘 나오고 퇴근 시간 기다리는 직장인이라는 거지···물론 일반인이 경찰도 그렇다고 하면 국민 피 같은 세금 그렇게 말하지만, 솔직히 이름 모를 그 경찰도 누구의 아빠고···부모 입장에서는 하나뿐인 아들이고···내가 말하고 싶은 건 경찰이라고 철인은 아니라는 거야.”
“···.”
“그런데 기주 아버지는 유명했어. 신참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사수까지 들이받으면서 사건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고···. 물론 그 당시 상황이라는 게 신참 한 명이 바꿀 수 있는 경찰 문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변화를 시작한 사람 중 하나라고 들었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경찰로서 훌륭한 건 알겠는데 범죄자들이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는 건···.”
“자신이 잡은 범죄자도 찾아다니면서 오지랖을···나도 소문만 들은 거지만 잡은 놈들 중에 가정 형편이 힘든 놈들은 면회도 자주 가고 영치금도 챙긴다고 들었어. 월급 대부분을 써서 집에 가져다주는 것도 없다는데 어떻게 생활하는지가 미스터리라고···.”
‘기주 아버지는 기주 어머니 아니었으면 길거리에 나앉았을 사람이네.’
“그런데 납치범이 돈 요구를 안 하는 거면 뭘 바라는 거지?”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