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 3>
“많은 인생의 함정을 피해서 무사히 자라난다는 것만으로 인간은 대단한 것이지.”
“보통 대부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눈에 보이는 총구나 포탄만이 인생을 종결짓는 커다란 폭력이라고 생각하나?”
“아주 하찮은 먼지 조각이 폐에 들어가서 인간을 죽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말과 함정으로 이루어진 사회라는 정글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는 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네.”
“그건 그저 평범한···.”
“허허···평범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걸 어떻게···.”
“자네가 어째서 선택되었다고 보나?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관념이라는 울타리의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많은 인간 중에서 선택된 이유 말일세. 자네는 인간들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했다는 인생을 살았지만 나와 같은 존재가 볼 때 자네는 쉽지 않은 그 험난한 인생의 여정에도 자신이라는 존재를 놓지 않았다네.”
“평범한 삶···.”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말게나. 평범한 삶이 있기 때문에 지금 사회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없다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네.”
“실패한 삶···.”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게. 성공만 하는 삶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네. 실제로 성공만 하는 삶을 산다면 자신이 성공을 했는지 실패했는지조차 모르다가 단 하나의 작은 실패에도 일어나지 못하는 삶이지. 그런 삶을 진짜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나?”
나를 둘러싼 무엇인가가 점차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무언가 나를 묶어두고 족쇄처럼 걸리적거리던 것들이 점차 떨어져 나간다.
“허허···이 말을 잊을뻔했군. 이번 보상은 주위를 잘 살펴보라는 것일세. 이미 지나간 인연이 자네의 발밑에서 자네의 발목을 잡아채기 위해서 숨죽이고 있다네.”
“어···어르신?”
내가 질문을 날리기도 전에 나는 눈을 떠 이제는 익숙해진 천장이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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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살인사건으로 떠들썩했지만 학교는 평소와 같았다. 야자로 인해서 혼자만 하는 하굣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미 지나간 인연이 내 발목을 잡는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악연으로 묶인 사건은···
띠리링―.
“안나?”
“안녕. 자주 연락한다는 걸 시차 때문에 힘드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연락하잖아요. 그런데 오늘 왜.”
“좋은 소식 하나 안 좋은 소식 하나 이렇게 있어. 뭐부터 들을래?”
“좋은 소식 먼저 들을게요.”
“하하···나도 좋은 소식 먼저 전해서 좋네. 좋은 소식은 내가 그렇게 찾던 물건이 나왔다는 거야. 그것도 내가 말한 금액에서 한치의 차이도 없이. 그래서 바로 계약금 걸었어. 처음에는 조금 디스카운트할까도 했는데 물건을 얻는 게 먼저인 것 같아서.”
“잘했어요. 그럼 바로 계약 진행되는 건가요?”
“여기서 안 좋은 소식 하나. 대표가 직접 방문해 달라고 하네?”
“그럼···?”
“조만간 한국 가서 계약 완료해야겠지. 겸사겸사 내 얼굴도 보고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 투자하려는지도 궁금하고.”
“그건···.”
“물건 확보에 성공하면 알려준다고 했잖아?”
“그렇죠. 언제 들어올 계획인데요?”
“아마···너 여름방학 때쯤 아닐까? 아무리 빨리 일정조절해도 그 이상은 힘드니까.”
“바쁘게 지낸다니까 보기 좋네요.”
“음···나도 바쁜 게 좋은 것 같아. 그런데 다들 메가존처럼 투자가치가 높은 주식에서 돈을 빼서 위험한 나라에 투자를 한다니까 다들 뜯어말린다고 이번에 들어가면 단단히 물어볼테니까···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야.”
“하하 얼굴 본다니까 좋네요. 그럼 일정 잡히면 연락 줘요.”
“그래. 그럼 나중에 직접 만나서 말하자.”
‘설마 안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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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을 하면서 기말고사 준비하고 시험을 치르고 나니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표정이 어두운 종혁이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띠리링―.
“여보세요···. 안나?”
“하이. 이제 방학이지?”
“네. 벌써 도착한 거예요? 미리 알려줬으면···.”
“미리 말하면 마음의 준비하려고?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물어봐야지. 그래야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그럼···약속···.”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문 앞으로 빨간색 스포츠카가 서더니 안나가 운전석에서 손짓했다.
경악하는 종혁이와 현진이의 표정이 눈앞에 그러지는 것 같았다.
“야 타.”
“안나?”
나는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음성 뒤로 안나의 빨간 스포츠카에 재빨리 탑승해서 재촉했다.
“제발 빨리 이대로 멀리 사라져주면 좋겠네요.”
“하하핫. 부끄러워하긴.”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교문을 보면서 나중에 어떻게 친구들에게 변명의 말을 늘어놓아야 할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밝은 은영 누나의 옆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옆에서 힐끔거리지 말고 제대로 말하라고···.”
“안나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넌 정말···.”
빠르게 달리는 스포츠카 덕분에 바람 소리에 휘말려서 안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물어보자 대답하지 않더니 외진 길로 빠지더니 갓길에 주차를 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안나는 한국의 여름 날씨에 더운지 붉어진 얼굴에 손 부채질을 하면서 나한테 질문했다.
“그런데 외환위기까지 겪고 있는 거기다가 북한 때문에 위험한 한국 부동산을 사라는 거야?”
“물건은 확보했어요?”
“계약금은 너하고 통화할 때 보냈고 오늘 계약서 쓰고 왔어. 잔금만 남았지. 하지만 납득이 안가면 잔금은 고민해보라고 널 설득할 거야.”
“왜요?”
“물론 내가 명목상 대표고 네가 대주주니까 최종 결정을 네가 하는 게 맞는 건 아는데···어쨌든 대표로서 높은 수익률만큼 성과급을 받는 입장이니까···설득은 해봐야지.”
“거기 사무실 빌딩이에요. 그리고 벤처업체들이 셰어하우스 비슷하게 사무실을 나눠쓰는 건물이죠. 공유 오피스라고 나중에는 많이 알려져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벤처업체들이 활성화될 수 있는 건물은 지금은 거기뿐이에요.”
안나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나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나중에는 비슷하게 운영하는 빌딩이나 사무실이 우후죽순 생기지만 현재로서는 서울에 그런 건물은 거기뿐이라고요. 다행히 외환위기에 버티지 못하고 건물주가 건물을 내놓아서 기회가 생긴 거예요."
“음?”
“메가존은 자기 집 주차장 창고에서 만들어진 회사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사무실이 없으면 사업자를 만들 수 없어요.”
“그 말은···.”
“메가존 같은 IT업계의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갈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벤처업체가 엄청 들어와 있다는 거죠. 거기다가 당장 임대료와 관리비도 밀려있는 상태로요.”
멍한 표정을 짓던 안나가 손뼉을 짝 치더니 놀랍다는 듯 외쳤다.
“상장 전 주식!”
“그래요. 전 임대료가 밀린 업체들에게 돈 대신에 주식으로 받고 그중에 유망한 업체는 직접 투자까지 해서 투자 지분을 확보해 놓으려고 하는 거예요. 물론 지금 메가존 같은 파워는 없겠지만 그만큼 다다익선이 될 테니까. 나쁘지 않겠죠.”
‘사실 거기에서 시작하는 업체 중에 코코아톡이나 네임, 다이버 등 업체가 크게 성공할 걸 알고 투자하는 거라고 말은 못 하지만···.’
“거기다가 골드 코인 확보해 달라고 했잖아요?”
“그렇지만 아직 한국에는 코인거래소도 없잖아?”
“조만간 생길 거예요. 아니 생기게 할 거예요."
“뭐?”
“오늘 안나가 계약하고 온 빌딩에 들어가 있는 업체 중 하나는 코인거래소를 준비 중인 업체니까요.”
코인거래소가 한국에 늦게 들어선 이유 중 하나가 IMF다. 그런데 내가 안정적으로 투자금을 준다면 거래소가 한층 빨리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야···주인이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
“골드 코인 확보는 어때요?”
“처음에 살 때 만해도 1달러도 안 했는데 빠르게 오르는 추세야. 물론 나오는 족족 확보하고는 있는데···수량 자체가 워낙 적어서···.”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시장에 나오는 걸 놓치지만 말아주세요.”
“그래. 내가 생각해도 암호화폐는 실패할 수 없는 아이템이니까.”
“···?”
“내가 바로 한국에 못 들어온 이유가 골드 코인에 대해서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이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던데?”
“···.”
“국경이나 세금과 관계없이 화폐거래를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네.”
“다크웹 상에서는 이미 골드 코인은 아니지만 이미 가상화폐로 거래되는 곳도 있다더라.”
“벌써요?”
“응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대부분 수면 아래에서 바쁘게 움직이니까.”
“네가 말한 대로 라면 지금 구입한 건물을 통해서 미래에 가치가 높은 업체와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다는 거지?”
“네.”
“지금 한국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스타트업 업체는 더욱 현금이 말라버렸을 거예요. 이럴 때 좋은 조건으로 협상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긴 아무리 긴축 재정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사무실 임대료하고 관리비는 내야지.”
“그렇죠.”
“하지만 마냥 전부 감당하기에는 힘들잖아. 대부분 자금이 건물 사는데 들어가고 여유 라고 해봐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벤처업체가 들어와 있는 층은 2개 층 밖에 안돼요. 나머지 건물은 이미 중견업체가 된 업체들이 임대하고 있고 1층 2층 같은 경우는 상가라서 나머지 업체에서 임대료를 받아서 건물 관리는 가능할 거예요.”
“흠···계획대로만 되면 버티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수익이 날것 같은데···그럼 기존 주인은 왜 이렇게 급하게 건물을 내놓은 거야?”
“그건 무리하게 대출을 끼고 산 건물이라서 그럴 거예요."
“음?”
“대출이자가 얼마길래 대출 때문에 건물을 이렇게 급하게 정리해?”
“대출금리가 10% 넘을 수도···?”
“뭐? 한국 금리가 이렇게 높다고?”
“뭐···그렇게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한동안 제1금융권에서도 평균 7~8% 정도 유지될 거예요."
“그럼 현금만 많으면 한국은행에 투자해도 괜찮겠다.”
“그래도 큰손들은 안 들어올걸요?”
“왜?”
“코리아 디스카운트.”
“아...북한?”
“그래서 지금이 더 기회에요.”
“왜?”
“큰 손들은 IMF보다는 북한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고 리스크 큰 투자를 하는 자본은 크지 않으니까···그 틈을 노려보는 거죠.”
“···리스크가 큰 만큼 돌아올 것도 크다고 보면 되는 건가?”
“네···그리고 길어야 5년 버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길어야 5년이라고?”
“네.”
“보통 외환위기는 10년 넘게 보는데?”
“대한민국은 화수분이니까요.”
“무슨 소리야?”
“국민이 화수분이에요. 분명 국가가 국민을 부르면 국민이 화수분이 되어서 해결할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