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마리오네트 5>
나는 오늘도 저 소리와 함께 일어난다.
“머저리, 멍청이”
처음에는 가슴에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모르는 무기력감이 나를 물속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다.
유치원 때 엄마 아빠가 제일 좋다는 친구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좋다고? 어떻게 좋을 수 있지?’
밥 먹는다고 때리고
운동화 끈 예쁘게 못 묶는다고 때리고
밥상 앞에서 흘리면서 먹는다고 젓가락을 던지는
엄마, 아빠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조금 커서는 답답한 마음에 그린 그림을 내 눈앞에서 찢어가면서
그림쟁이나 될 생각이면 집을 나가라고 했던 부모님.
‘그때 집을 나갔다면 조금 나았을까?’
오랜 시간 각인된 무력감에 나는 오늘도 그들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살아있나?’
‘나는 살고 있나?’
‘나는···.’
이런 무력감이 하루하루 쌓일수록 알 수 없는 답답한 무엇인가가 나를 내리누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도망가기에는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걸.
“착한 아들이에요.”
“말이라도 잘 들어야죠.”
“이번에 명문대에 입학했다면서요.”
“대학 빼고 애가 볼 게 있나요?”
주변에서 에두르듯 나에 대해 말할 때마다 기를 쓰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를 사랑할 수 있나?
“내가 너희들을 키우는 대신 너희들도 내 기대에 부응해라”
거래 관계를 계속 강조하는 군인 같은 강압적인 아빠를 사랑할 수 있나?
‘아니? 그들이 내 부모이기는 했을까? 내 진짜 부모님은 다른 곳에서 나를 애타게 찾으면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오늘도 창문틀에 걸터앉아서 아파트 화단을 내려다본다.
‘내가 죽으면 슬퍼해줄 사람이 있을까?’
자조 섞은 웃음만 지으면서 나는 내려다보던 시선을 위로 올려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 구름이 떠다니는···그런데 그게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거지?’
초등학교 시절 내가 그리던 그림이 찢어진 순간 나의 감정도 찢어진 것 같다. 아무리 아름답고 감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들어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망가졌다.’
언제부터?
어디까지?
‘망가진 나도 살아갈 이유가 있는 걸까?’
아니면···
‘죽어야 할 이유가 되는 걸까.’
오늘도 나는 아파트 창문틀에 걸터앉아 화단과 하늘을 한 번씩 바라본다.
내가 엄마가 바라던 기대를 그대로 충족할 수 있었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내밀지 못해서 나는 이렇게 사는 건가?
나 같은 놈이 없어지면···
나만 없으면···
가족도 행복하고 세상도 깨끗해지는 걸까?
오늘도 나는 창틀에 아슬아슬 걸터앉아 나의 죄에 대해서 생각한다.
‘태어난 게 죄가 아닐까?’
‘나 같은 건 원하지도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낳은 게 아닐까?’
‘아니···내 진짜 부모님이 따로 있을지도 몰라···.’
희망 사항을 말하듯 나를 이유 없이 끝도 없이 그저 사랑해주는 부모님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나는 창틀에 묶인 것처럼 앉아 있다.
“형 이사 가는데···빨리 가서 돕지 않고 멍하니 뭐하고 있어?”
엄마 특유의 고음과 날카로운 소리가 나를 부른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익숙하게 보이지 않는 칼날 앞으로 향한다.
“네, 엄마.”
대답하는 순간 내 심장은 이미 추락하고 있다.
이삿짐을 나르느라 진이 빠졌을 때 형이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한다.
“자유야 고맙다.”
“뭐가?”
“내가 신용이 안 좋아서 대출을 못 받는데 네 이름으로 대출해서 지원해줬다면서···.”
형은 말을 하다가 내 표정을 봤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형과 나는 안다. 이 침묵의 의미를···
몸이 지친 걸까?
아니면 마음이 지친 걸까?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땅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한참을 바라만 보던 문을 연다.
어둡고 음습하지 않다. 보통의 가정집이다.
아니 보통의 가정집보다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집이다.
문을 열자 엄마가 보인다.
“형 이사는 잘 했니?”
“···.”
“집은 어때?”
“···.”
“인테리어 봤어?”
“···.”
나는 도저히 입을 열 힘이 없었다. 몸은 무기력하고 눈은 점차 몽롱하게 풀려간다.
‘어떻게 이사를 돕고 고생한 나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는 걸까?’
“대답 똑바로 해. 그렇게 교육받았어? 남들이 보면 가정교육이 어떻다고 생각하겠어!”
엄마의 평소와 같은 날카로운 칼날 앞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런 열기가 나에게 남아있었나 싶을 정도의 폭발에 말을 꺼내면서도 스스로에게 놀랐다.
“엄마는 왜 형한테만 관심을 줘요? 집까지 구해줬으면 됐지.”
“너···너···엄마한테 그게 할 소리니?”
“싹수없는 놈 같으니···. 네가 학벌 말고 볼 게 뭐가 있니? 형이 힘들게 이사하는데 도와준 게 뭐가 대수하고 엄마한테 큰소리야?”
익숙한 엄마의 날카로운 칼날이 내 몸 이곳저곳에 박혀든다.
아프다. 아니 아픈 건가?
어딘가 점점 무뎌지는 것 같다.
아픈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 속에서 타오르는 이 불길이 진정되기를 바라면서 내 유일한 탈출구가 있는 창문가로 향한다. 창턱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이제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붉게 노을 지는 하늘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가 죽으면 저런 붉은 빛을 볼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회색빛이었던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전율이 일 정도의 감동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더 밖으로 향했다.
기우뚱.
턱.
떨어지려는 몸을 간신히 창턱을 붙잡아 멈췄다.
‘난 살고 싶은 건가?’
나도 모르게 창턱을 붙잡은 손은 얼마나 힘을 줬는지 한눈에 부르르 떨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살고 싶었구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자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만이 내 온몸을 지배했다.
‘난 죽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처음으로 내 안에서 불타올랐던 불꽃이 이제까지 타오를 줄 모르던 초에 불을 붙인 것처럼 타오르기 시작한다.
한번 붙은 불길은 점차 더 독한 연기와 암흑을 만들어냈다.
중학생 때부터 준비했던 망치를 옷장에서 꺼내본다.
‘정말 할 거야? 정말 부모님을 죽일 거냐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양쪽으로 나눠서 싸우는 것 같았다.
‘살고 싶다면서 이곳에서는 죽는 것 외에는 탈출구가 없다는 것 알잖아? 내가 죽던지···가짜 부모가 죽던지.’
‘가짜부모라니···.’
‘가짜부모가 아니라면 어떻게 나를 그 어린 나이 때부터 학대하면서 키웠겠어? 내 진짜 부모는 다른 곳에서 애타게 나만 찾고 있을 거야. 엄마가 형을 위하는 걸 봐. 부모라면 정말 내 부모라면 나도 저렇게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
‘그건···.’
‘거짓말로도 나한테 부모에 대한 애정을 바라지 말라고 엄마, 아빠가 말했잖아. 자식과 부모도 계약관계라고 주고받는다고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그럼 엄마, 아빠도 죽어야 하잖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괴로워하면서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새웠다. 새벽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간 거실에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서 방에서 나온 나를 무심하게 본다.
‘뭐라고 하실까?’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나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다.
‘나는 아빠에게 아들이기는 한 걸까? 차라리 엄마에게 왜 큰소리를 내면서 대들었냐고 혼내기라고 했으면 좋겠다.’
아빠의 아무것도 아닌 무기물을 보는 것 같은 시선 앞에서 나의 치열했던 전투는 승자가 결정되었다.
‘누가 도와줘···제발···.’
이런 나의 가슴 깊은 외침은 익숙한 침묵 속에 그대로 묻혔다.
아무도 없는 익숙한 어두운 거실에서 나는 아버지 몰래 양주를 꺼내서 마셨다.
크윽―.
‘이 독한 걸 왜 마시는 걸까?’
의문이 가시기 전에 몽롱해진 정신 속에서 중학생 때부터 계획했던 동선을 따라 익숙하게 움직인다. 각방을 쓰고 있는 엄마의 침실에 먼저 들어갔다.
끼익.
익숙한 문을 여는 소음이 천둥처럼 느껴지지만, 엄마는 일어나지 않는다.
턱.
큰소리가 나지 않게 망치에 감아둔 수건이 둔탁한 소음을 만들어내고 장난감 사이로 흐르는 붉은 케찹 같은 끈적한 붉은 피가 방안을 물들인다.
한참을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어디론가 외출한 정신을 억지로 붙잡아 본다.
아무도 나에게 독촉하지 않지만 이대로 엄마의 옆을 떠나버리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다.
‘아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데? 왜?’
이런 의문이 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빠 방문을 열고 이번에는 여러 차례 망치를 내려친다.
중학교 때부터 계획한 데로 움직인 나는 망치를 그 자리에 두고 거실로 와서 멍하니 소파에 눕는다.
‘나는 이제 자유로워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