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마리오네트 4>
나는 나를 안타깝게 보는 어머니 눈초리에서 도망가듯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어썼다. 아무도 없는 방이지만 동시에 누군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어두워지는 방 안에서 나는 어느 사이엔가 아주 작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이 작은 침대 안에서 벗어났을 때 어른처럼 행동했던 게 거짓말처럼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나는 이 작은 침대 안 세상에서 나는 아주 작고 어린 소년이 되어버린다.
“엄마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배은망덕한 놈.”
“엄마가 어떻게 내 삶을 조종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어머니를 나한테 뺏어가고 그런 어머니 사랑도 의심하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이를 먹은 이제는 볼 수 없는 회귀 전 내가 보육원에 버리고 도망치듯 갔을 때 주신이의 원망스러운 눈빛이 나를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끌어당긴다.
나는 점점 작아져서 이 세상에서 곧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달린다.
달린다.
그래도 제자리에 서서 계속된 원망스러운 눈빛이 나를 점차 작게 만든다.
도망가고 싶다.
도망갈 수 없다.
나이를 먹은 이제는 볼 수 없는 회귀 전 내가 보육원에 버리고 도망갔던 주신이의 원망을 원망스러운 눈빛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나를 끌고 간다.
계속 그 눈빛에서 도망가기 위해서 숨이 턱에 올라오도록 달리고 달리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건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이 나를 잠식한다.
드르륵―.
나는 식은땀 속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드르륵―.
계속 울리는 핸드폰 진동이 아니었으면 깨어나지 못했을 정도로 짓눌린 악몽이었기 때문에 연락이 반가웠다.
“여보세······.”
“벌써 11시가 넘었는데 지금 일어난 거야?”
“아···시간이 그렇게 됐나? 어제 중간에 한 번 깼다가 잤더니···근데 오늘 일요일이라서 늦잠자도···.”
종혁이의 놀랍다는 말에 나는 담담하게 대꾸를 했다. 이런 내가 답답했던지 종혁이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나를 재촉했다.
“어제 경찰서에서 우리가 목격자 진술하면서 뭘 들었는 줄 알아? 그걸 알면 이렇게 담담하게 있지 못하지.”
“음?”
내가 못 미더워 하는 반응이자 종혁이가 서둘러서 약속 장소를 외치듯 말하더니 당장 나오라고 했다.
‘꼭 가야 하나’라는 귀찮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제부터 눌어붙어 놓아주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이 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간단하게 씻고 바로 종혁이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
익숙한 햄버거 가게에 종혁이와 경수 그리고 현진이 앉아 있었다. 종혁이와 경수는 예상했지만, 현진은 의외여서 현진의 어깨를 치면서 그 옆자리에 앉았다.
“현진이도 왔네?”
“이 빅 뉴스의 실체를 밝혀주실 우리의 구세주다 맛있는 걸로 사.”
“내가 사는 거야?”
“너 때문에 다들 기다리고 있었거든? 점심은 먹고 왔으니까 음료수나 사와.”
나는 종혁이의 타박 아닌 타박을 들으면서 탄산음료와 커피를 사서 자리에 갔다. 그러자 종혁이와 경수는 익숙하게 탄산을 현진은 나와 같은 커피를 골라 들었다.
“내가 커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거 모르면 너랑 같은 반이 아니지.”
종혁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자 현진은 말없이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여기 원두 좋네?”
“공룡 유통 업체에서 하는 체인점이니까. 원두는 커피전문점하고 같은 걸로 쓴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경수가 현진을 재촉하자 현진이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내가 오기 전까지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더니 경수의 말에 대답했다.
“너 오기 전에 살인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아마 확실히 사형 나올 거야.”
“무슨 사형? 사형···이제 집행 안 하지 않나?”
“사형수는 가석방이 없으니까 종신형이나 다름없지.”
“어떻게 자기 부모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냐.”
“그러니까···. 나도 아빠하고 엄마한테 화날 때가 많은데 그래도 살인은···.”
“뭐야? 해인이 사건 말하는 것 아니었어? 존속살해 사건이라도 났어?”
“정확하네. 그것도 명문대생이 부모님을 살해해서 잔인하게 토막까지 했데···. 막 화가 나서 죽인다고 해도 토막까지···. 그건 선 넘은 거 아니냐?”
“명문대생이 죽였다고?”
“그래서 한바탕 난리였잖아.”
“어제 목격자 진술하고 있는데 형사들이 전부 튀어나가고 경찰서 앞은 기자들이 지키고 있어서 뒷문으로 조심스럽게 나왔지.”
“나하고 경수는 경찰서 앞에 언론이 진을 친 게 해인이 하고 해아 때문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자세한 건 현진이 만나고 알았지.”
“현진이하고 어제 경찰서에서 만났다고?”
“응 경찰서에 목격자로 우리처럼 진술하고 있던데?”
내가 현진을 바라보자 양손을 들더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내가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바닥인 걸 알 거야.”
나와 종혁이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신문 배달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거지 머리가 나쁜 건 아니거든. 고등학교 때까지 대학등록금만큼 바짝 모아놓고 공부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중학교 과정이 중간에 다 날아가니까 솔직히 버겁더라고.”
“종혁이도 중학교 과정부터 다시 해서 잘 알 텐데? 같이 야자시간에 공부한 거 아니야?”
“나도 머리가 좋은 편인데···. 종혁이 애는···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현진의 모습에 경수가 종혁이를 보면서 타박하듯 말했다.
“너는 옆에서 공부 도와주는 게···.”
“종혁이한테 뭐라고 하지마. 이건 인종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니까. 경수 너하고 친하게 지낼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녀석 천재라고 머리가 너무 좋아. 막 뭐라고 쏼라쏼라 하더니 알았지? 모르겠다고? 그걸 왜 몰라? 이러는데 하···참···.”
“그럼···.”
“공부를 가르쳐준다는데 뭐, 너무 똑똑하니까 그 기준이 보통하고 다른 거지. 어쨌든 제는 선생님이나 교수 같은 거 하면 안 돼.”
“그런데 내가 종혁이하고 공부하는 게 잘 안 된 거하고 경찰서에서 목격자 진술한 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너네도 우리 때부터 수시 생기는 건 알지?”
“음 입학식 때 뭐라고 말하는 걸 듣기는 했지만···관심 없어서.”
“그럴 줄 알았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수시 정책을 잘 살펴보면 말이야. 공부를 못해도 특정 기준에 부합 하면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제도야.”
“어? 그럼 열심히 공부한 애들은?”
“개들은 정시로 가는 거고···성적은 안 나오는 애들 중에 부모가 돈 좀 있고 학력도 되고 위치도 높은 사람들이 만든 예외를 위한 자리지.”
“뭐? 그런 제도가 시행되는 걸 보고만 있다고?”
“나쁠 게 없으니까.”
“뭐?”
“요지는 자녀가 공부 못해도 한 번쯤 기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입을 다문다면요.라는 거지. 그럼 아직 어린 자녀를 가진 교육관계자들이 이 제도를 거절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명목상으로는 ‘학력만으로 아직 어린아이들의 재능을 재단하지 말고 다양성을 가질 수 있게 해줍시다’니까. 찬성해도 욕먹지도 않고 좋은 거지.”
“하···나는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어.”
"어쨌든 난 기자가 되고 싶고 성적은 안 나오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 거지.”
“그게 경찰서에 목격자로 앉아 있는 것하고 관련 있는 거야?”
“그럼. 주인이 너도 내가 저번에 말한 거 기억해?”
“음?”
“용감한 시민상 타서 경찰 쪽으로 미래를 선택한다면 유리하겠다고 말했던 거.”
“아···. 그냥 한 말 아니었어?”
“아니야. 분명 수시든 정시든 전형에 가산점이 있을 거야. 그래서 교내나 도내 경시대회에 치마바람 쌘 녀석들만 가서 수상하고 하잖아.”
“음···하긴 경수한테는 권유도 안 하더라. 괜히 시간만 뺏는다고.”
“그것보다는 자기네들이 높게 불러서 받을 지원금을 쥐고 있는 권한 있는 사람들 눈치를 보고 뺀 거지. 사실 경수가 나갔으면 1등으로 백신 재단을 더 널리 알릴 기회였을걸?”
“하긴···그런데 관심 있는 친구들만 어디 경시대회니···어디니···나갔던 거 같긴 해.”
“돈으로 기회를 만든 거지. 돈으로 기회를 만드는 게 귀찮으면···위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으니까. 어쨌든 나도 기자가 되고 싶은데 학력인 좀 부족할 것 같으니까 수시전형에 관심을 가진 거야.”
“그래서?”
“기사를 쓰는 거지. 메이저 언론사에 들어갈 정도의 기사 그게 아니라도 시도하다 보면 지역신문에 실리기라도 하면 수시에 넣어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경찰서까지 취재하러 온 거야?”
“아니···내가 조사하던 기사가 갑자기 살인 사건이 되어서 나타난 거지.”
“뭐?”
“내가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 게 교회에서부터였어.”
“갑자기 교회?”
“이래 봬도 나 모태신앙이거든? 뭐 엄마가 강제로 가게 하는 것도 있는데 다양한 사람들하고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나한테도 나쁘지 않았어. 너네 아냐? 목사 중에 성범죄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뭐?”
“온갖 사람들이 모인다는 건 범죄자들이 그들의 목표물을 찾는 장소로 이용한다는 말도 되는데 엄마는 같은 교회 사람이라면 간도 쓸게도 다 내주려고 한다니까?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어?”
나와 종혁이 경수가 교회의 실상이 이렇다고 말하는 모태신앙이라는 현진을 보면서 경악 섞인 침묵을 보여주자 다시 어깨를 으쓱한 현진이 계속 말했다.
“거기서 가장 착하다고 말하는 명문대학생 형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지.”
“갑자기?”
“보통 내 나이 또래쯤 되면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으면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말 안 듣는다는 소리를 듣고 부모님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으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애가 좀 이상해라는 소리를 듣잖아?”
“뭐···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상하게 친구도 없고 자기 부모한테도 욕을 먹는데 정작 주변 사람들은 착하다고 하는 형이 있는데 공부까지 잘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호기심이 생기더라고 거기다가 나는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사도 필요했으니까.”
“그럼 교회의 실상을 밝히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 접근했다는 거야?”
“뭐···다른 사람들과 다른 반응도 내 관심을 끌기도 했고.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이 형이 참···.”
“왜? 다른 사람들 말하고 다르게 사람이 별로였어?”
“아니···뭐라고 할까···사람이 생기가 안 느껴진달까?”
“뭐?”
“그런 거 있잖아. 빈집하고 사람이 머무는 집하고 집안 공기가 다른 거 알지?”
"며칠 여행만 다녀와도 집안 공기가 다르긴 하지.”
“그것처럼 그 형이 사람 냄새가 안 나더라고.”
“뭐야? 좀비야?”
“글쎄···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까 좀비라는 생각도 좀 드네.”
“뭐?”
“이 형 덕분에 기자를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
“갑자기?”
“나는 내가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을 다 가져갔다고 생각했거든.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주위의 사람들한테 그 죽음조차 모욕당하고 도망치듯 고향에서 떠나서 중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로 돈이나 벌고 엄마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걱정이고···.”
“···.”
나와 종혁이 경수가 눈만 커지고 싶게 입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현진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형 부모님처럼 두 분 다 살아있고 집도 좋고 가정형편도 괜찮고 공부도 잘해서 명문대에 가도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은 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