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중간고사 2>
나는 종혁이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툭 건드렸다.
“괜찮아 다 싸우면서 크는 거야.”
“뭐라고? 그게 싸운 거야? 일방적으로 떠드는 거지.”
“그래그래. 복도에서 고생했다.”
“친구라는 게 어느새 뒷방 늙은이마냥 구경거리 보듯 구경이나 하고.”
원망하던 눈초리가 나를 향하자 현진이 어느 사이에 다가와 한마디 보탰다.
“전교 1등하고 전교 2등이 붙었으니 제대로 볼거리이긴 했지.”
“뭐?”
“종혁이 너는 성적에 관심 없어서 몰랐을 수도 있는데 강혜림 개가 중학교 내내 전교 2등이었어. 경수 때문에 만년 2등 자리에 머문 거지.”
“아···.”
그제야 방금의 뭣 같은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 된 종혁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상태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1등 자리 주면 괜찮으려나?”
“그럴 리가 없잖아?”
1반에서 들릴 리 없는 여학생의 목소리가 끼어들더니 귀를 쨍하는 특유의 고음으로 답했다.
방금 들었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는 종혁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방금 전 냉랭했던 표정 그대로 강혜림이 1반에 강림했다.
나와 현진은 이번에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한걸음 떨어져서 지켜봤다.
“너 머리 좋은데 공부를 안 했다면서?”
“응?”
네가 말했냐는 듯 쳐다보는 시선에 나와 현진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미심쩍은 표정으로 혜림을 향해서 말했다.
“그건 어떻게···.”
“너 따라다니는 애들을 모른다고? 날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계속 말해주던데? 어떻게 종혁이한테 화를 낼 수 있냐고?”
“뭐?”
당혹 섞은 반응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는 표정을 짓던 혜림이 한숨을 내쉬듯 하더니 복도에서 말했던 어조와 다르게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성적을 올린 줄 알았어. 그래서 화가 났던 거고. 경수라면 1등을 뺏기더라도 어쩔 수 없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름이 나보다 성적이 높다고 하니까···쉽게 말해서 뚜껑이 열려버렸거든.”
“아···.”
“그런데 네가 친구 때문에 공부도 안 한 거라며···.”
“그건 너무 생략된 이야기 같은데···사실은···.”
“사실 따위는 관심 없어. 이번에 성적이 내 실력이라면 다음에도 진지하게 붙어보자. 방금처럼 2등 줘버린다 따위로 말하면 넌 진짜 나한테 죽을 줄 알아. 그런 말은 공부를 열심히 한 우리 학교 학생 전부를 비웃는 거나 다름없어.”
“그럴 생각은···.”
“네 생각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기말고사 최선을 다해.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알겠어?”
‘거절은 거절이다’라는 분위기에 종혁이는 압도당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 몸을 훽 돌리고는 나와 현진이를 한차례 보더니 이내 1반 교실에서 사라졌다.
멍한 표정의 종혁이의 어깨를 흔들어 보려고 하는데 몽롱한 종혁이의 목소리에 나와 현진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예쁘다···.”
‘불치병이네.’
첫사랑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종혁이는 시험 기간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기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종혁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현진이 말하는 소리를 정작 종혁이는 듣지 못했다.
“예림이는 종혁이가 갑자기 나타난 라이벌로 보일 텐데···.”
"내버려 둬···자기가 좋다는데···거기다가 첫사랑은 망한다잖아.”
이제까지 꿈쩍도 안 하고 공부만 하던 종혁이 나와 현진을 노려보더니 음산하게 말했다.
“누가 첫사랑이야? 그리고 첫사랑이 왜 망해?”
나와 현진이는 종혁이의 말에 말없이 눈을 마주하고는 복도로 나왔다.
“불치병인데 자신이 병에 걸린 것도 모르다니.”
“그러게 치료방법도 없지.”
“강예림이면 치료 불가지.”
나와 현진이 소리를 죽여 웃다가 현진이 나를 복도에서 계단 아래 인적 드문 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거리낄 게 없었기에 현진이 이끄는 데로 향했다. 주변에 다른 학생이 없는지 한번 살펴보고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너 뉴스에서 떠드는 택시 연쇄살인범 잡은 게 너야?”
“뭐···어쩌다 보니.”
“중학교 때는 납치 사건 때 초등학생 구출하더니 장난 아니구나? 이번에도 용감한 시민상 주는 거야?”
“엄마가 그건 거절했어.”
“응? 왜?”
“자꾸 상주면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내가 위험한 일만 하러 다닌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 그래서 이번에는 요란한 시상식은 없지.”
“그럼 받기는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안 줄 수는 없으니까 조용히 상장하나 보내지 않을까?”
“너는 그렇게 지나가도 괜찮아?”
“뭐···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욕심이 없냐?”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대백공을 통해서 보상을 받는다고 할 수도 없고···옆에서 보면 욕심이 없어 보이려나?’
“그런데 이건 갑자기 그것도 애들 없는대서 물어보는 건데?”
“갑자기는 아니야. 계속 묻고 싶었는데···내가 나서는 거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조용할 때까지 기다린 거지.”
“그런가···.”
“그럼 너 범인 이름도 모르겠네?”
“뉴스에서 온 모 씨라던데?”
“온현보라는 사람이래.”
“넌 어디서 그렇게 알아내는 거야?”
“어쨌든 기자가 꿈이니까?”
“너 기자가 꿈이야?”
놀랍다는 듯한 내 반응에 오히려 왜 놀라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왜 놀랐는지 말하기 어려웠다.
‘현진의 기억 속에서 언론사에 대한 원망을 봤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다들 아는데? 뭐? 내 성적 때문에 놀리는 거냐?”
“아니야.”
“아니긴···나도 공부할 시간만 충분하면 성적 올릴 수 있다고 이제 신문 배달도 그만뒀으니까.”
“신문 배달 그만뒀어?”
“응. 대학교 등록금까지만 모으면 그만두려고 했어. 등록금 마련한다고 공부를 못하면 그거대로 말이 안되잖아?"
“어디 가려고?”
“안 비웃을 거지?”
“안 비웃어.”
“서운대.”
“힘내라.”
“그래도 비웃진 않아서 좋네. 아직 중학교 과정 보느라 중간고사는 망했지만 1년 정도 후에는 우습게 보이지 않을걸?”
“좋네.”
“뭐? 경쟁자가 생기는 건데 좋다고?”
“그냥 꿈이 확실한 게···.”
“너도 꿈 확실하잖아.”
“내가?”
“몰랐어? 너 범인한테 진심이던데···경찰 되고 싶은 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게 또 무슨 소리야?”
“내 꿈을 주변 사람의 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난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했어.”
이런 내 말에 현진은 종혁이가 혜림을 볼 때 같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야···. 너는 비웃지 말라더니 왜 내 말은 그렇게 웃는데?”
나는 화도 나지만 현진이 웃다가 숨넘어갈 것 같아서 등을 두드리면서 진정시켰다.
“아악―! 아프다고 그만 때려 너 감정 실린 거지? 지금?”
“아니거든?”
웃음이 멈추자 내가 등 두드리는 게 멈췄다.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현진이 아직도 웃음기가 남아 있는 표정을 말했다.
“주체적으로 사는 게 나쁜 건 아닌데···남의 말을 안 듣겠다는데 매몰돼서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 알아채는 게 너무 웃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음···뭐라고 해야지?”
“···.”
“이건 예시야. 화장실 중에 왼쪽 칸이 고장 났어. 그래서 그 고장 난 칸에서 더러운 걸 보고 나온 A라는 학생이 다음에 들어오는 B라는 학생한테 ‘왼쪽 칸 고장 났어. 가지마.’라고 말했다고 하자고.”
“갑자기 화장실은 왜?”
“그냥 예시야. 예시. 들어봐. B라는 학생이 왼쪽 칸은 안 가고 가운데나 오른쪽 걸 선택했어. 그럼 B라는 학생이 주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인상을 쓰고 말하자 현진이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헤집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A라는 학생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B라는 학생은 그걸 참고해서 자기가 들어갈 칸을 선택했단 거지. A라는 학생이 말한 왼쪽 칸이 고장 났다는 말은 거짓 일수도 참 일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온 B라는 학생은 A라는 학생의 말을 무작정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무작정 수용하지도 않고 자기한테 필요한 부분만 받아들인 거야.”
현진의 설명을 들을수록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현진이 나한테서 한걸음 떨어지면서 말했다.
“내가 이해가 안 간다고 때리면 안 되는 거야.”
현진의 진지한 헛소리에 내가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말했다.
“내가 뭘 때리냐? 그냥 내가 말한 예시라는 걸 생각하는데 머리가 아픈 거야. 그래서 말하려는 의도가 뭔데?”
“주변의 말이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주변에서 하는 말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고···.”
“음?”
“만약에 B라는 학생이 너무 주체적이어서 A라는 학생 말을 무시했다고 쳐 그럼 화장실 고장 난 칸을 들여다보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뿐이지.”
“그 말은···”
“주변의 말 중에 그래도 너한테 관심 있고 그래도 내 뒤통수 안 때리겠다 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볼 만하다는 거지. 휘둘리는 것하고 이것저것 정보를 모으는 것하고 다르다고.”
“정보를 모은다고?”
“그래. A라는 학생이 준 것도 정보야. 이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참고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런가···.”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않겠다’라는 명제에 너무 매몰된 건가?
“딱히 오픈해서 물어보면 안 되는 게 아니라면···내가 잘못 판단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여러 사람한테 물어보고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생각에 잠긴 표정일 때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서 우리는 교실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고 야자를 하지 않는 나만 하교하는 길에 나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마주했다.
‘내 아내···. 아니 회귀 전 아내···진이수.’
젊은 시절의 그녀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안녕. 네가 날 구해줬다고 들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서···. 잠깐 대화 괜찮을까?”
곤란한 표정으로 멈춘 나를 향해 아내가 웃으면서 다가온다.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그 자리에 동상처럼 멈추고 말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밝은 그녀의 모습이 아닌 과거의 피곤하고 지친 그녀의 모습이 나를 과거의 기억 속으로 침잠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