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인연? 악연?>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범인이 눈앞에 있다.
기억을 제대로 둘러봤다면 범행에 대한 장면에서 증거를 찾아내서 경찰에 신고하면 끝날 사건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충격에 기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저 더러운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찝찝함과 으스스 한 느낌만이 남는 것처럼.
마지막 놈의 말도 혼잣말인지 아니면 누구에게 말하는 장면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이용하는 물건쯤으로 취급한다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거···쓸만하겠는데···?’
그 말 한마디에 매달려 오랜 시간 미행과 행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택시기사 일을 쉬고 있다고 한다. 사실일까?
처음에 어설픈 내 미행이 들킨 것일까?
아니면 놈의 범행에 필요한 시간이 긴 것일까?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바로 그저께까지는 말이다.
김 씨 아저씨가 알려준 놈의 행적 중 택시기사들이 자주 모이는 기사 식당에 놈이 식사를 하는 걸 보면서 나도 근처 직장인이 야근을 하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하러 온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야구모자챙으로 얼굴을 가리고 저녁을 먹었다.
‘기사 식당이라서 그런가? 음식이 맛있네.’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놈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놈이 저녁을 먹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자 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강화된 감각으로 기사 식당 특유의 매콤 달달한 제육볶음 냄새를 뚫고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희미하지만 피 냄새가 난다.’
손에 감긴 붕대 안에 피가 날 정도의 상처를 입은 거라면 작은 크기의 상처는 아니다.
‘교통사고로 손만 다치는 경우가···?’
보통의 가벼운 접촉사고에서는 목이나 척추에 충격이 가지 저렇게 손에 창상을 입는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다.
피를 볼 정도의 손에 난 창상의 크기를 봤을 때 저 정도의 상처가 날 사고라면 다른 곳은 멀쩡하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범행을 저지르다가 다친 건가?’
범행을 시도하다가 다치게 된 거라면 이제까지 놈의 움직임이 말이 되었다.
‘갑자기 개과천선한 게 아니라면···.’
지금 내가 용의자로 추정하고 있는 남자가 붙잡히는 건 앞으로 1년 뒤의 일이다. 처음 마주쳤을 때 택시 연쇄살인범이라고 특정하지 못한 건 기억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이 범죄자의 인권도 보호한다. 그래서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상처···.’
처음 택시기사로 만났을 때는 입지 않았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해서 흉터가 된다면 경찰에게 검거돼서 찍힌 사진에서 봤던 흉터가 틀림없다.
‘택시 연쇄살인범이라니···.’
나는 두려운 마음이 떠오르는 걸 무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해 봤다.
‘내가 갑자기 저놈이 연쇄살인까지 한 범인이에요. 한다고 해도 믿어줄 사람이···우리 가족 빼고는 없나?’
친구들이나 나를 믿어주는 몇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해도 수사당국이 믿어주지 않으면 의미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것이다.
‘거기다가 놈이 도망갈 수도 있어.’
택시 강도나 부녀자 성추행 범인 정도로 생각했던 놈이 연쇄살인범이라는 확신이 들자 눈에 열기가 돌면서 정의의 저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놈을 주시하면서 도는 뜨거운 열기와 고통에도 놈을 주시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망막 위로 떠 오른 메시지를 읽기도 전에 놈이 식당 밖으로 나가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했다.
바쁘게 놈을 쫓아가면서도 아직 정형화하지 못한 질문이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회귀를 경험한 채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지 못하고 깜깜한 바다를 빛 한 점 없이 헤매는 느낌이었다.
회귀를 통해서 어른의 삶까지 경험했던 나인데 정작 나에 대해서 모르고 산 느낌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회귀 전 삶은 스스로에게 답을 찾기보다는 주변의 말에서 답을 찾는 삶이지 않았을까?
지천명이 되도록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그런 파국이 나를 기다린 게 아닐까?
내정된 사람이 있는 걸 알게 되어도 면접자리에 나가서 면접을 본다.
내가 정말 원하는 직장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인사 담당자에게 항의를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불공정하다고 외쳐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에 들어가면 좋지만···굳이 이렇게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싸울 정도는···.’
이라는 말로 피한 것이 아닐까?
내가 정말 가고 했던 회사인가?
아니면···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이기 때문에 지원을 하고 내정된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들러리나 다름 없다는 걸 알아도 화가 나지 않은 게 아닐까?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높은 분이 꽂아 넣은 낙하산 인사이기 때문에 신입사원을 상전 모시듯 할 때도 남들이 하니깐 한다는 생각이었다.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였지.’
하지만 동시에···
내가 정말 부당함에 눈을 감지 못하고 내 권리를 위해서 다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까?
회사에서 계약직 직원이 성희롱을 당해도 나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이기 때문에 못 본척했었다.
‘나만 아니라 전부 그렇게 지나가는 일에 내가 총대를 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살아온 삶의 끝은 결국 벼랑 끝이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일까?’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가까운 친지들을 생각하면 이 남자를 따라가면 안 된다.
‘위험한 사람이니까. 그저 제대로 조사를 받든 말든 신고만 하면 끝날 일···.’이라는 판단.
누구나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당연한 판단이지만 내 눈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내 발걸음은 소리를 죽이면서 눈앞의 남자를 조심스럽게 따라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렇다면 나는···.
생각이 멈춘다.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버린 내 눈앞에 익숙한 인형이 보인다.
‘어째서···네가···.’
아직 앳된 모습의 함께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눈앞에 여대생 무리에서 한 명이 빠져나와 놈이 모는 택시로 다가간다.
긴 생머리에 청순한 얼굴이지만 큰 눈동자는 누군가를 익사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맑고 깊다. 검은색 주름치마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가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넓은 머리띠 아래로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는 순간 난 마법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돼!”
하지만 이미 출발한 택시에 허공에 손을 뻗고 있는 내 모습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놈의 택시를 쫓아 달리다가 잡히는 보이는 택시를 잡아타고 다급하게 말했다. 내 의심스러운 행동에 내가 탄 택시기사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앞에 가는 택시 잡아주세요.”
“손님?”
“앞에 가는 택시에···도망친 계주가 타고 있어요.”
“도망친 계주라고? 그럼 꽉 잡으쇼. 내가 꼭 잡게 해줄테니까.”
내가 탄 택시는 앞의 택시를 미친 듯이 쫓아갔다. 놈이 뒤에서 쫓아오는 택시의 모습에서 누군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눈치를 채고 무사히 그녀를 내려놓는다면 내가 한 무식한 행동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이수가 여기에 있는 거지?’
진이수···
회귀 전 나의 아내였던 나를 비참하게 버린 여자다. 원망스러운 기억 속의 그녀와 완전히 다른 젊고 앳되고 밝은 그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서 나는 순간 사고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진이수 그녀는 아름답지만, 그늘이 진 표정으로 항상 억지로 끌어올리듯 입꼬리만 살짝 올리는 정도의 미소 밖에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의 해맑은 표정과 큰 웃음은 나에게 혼란을 주었다.
‘어째서···그녀가···.’
그녀가 사는 곳은 수원이었다.
‘이곳 안남시에는 무슨 일이지?’
혼란스러운 심정을 억누르고 눈앞의 택시를 눈으로 좇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과 함께 큰 소리가 울렸다.
쾅―.
그리고 블랙아웃.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누군가 어두운 물속에서 내 다리를 붙잡고 숨 막히고 두려운 알 수 없는 곳으로 나를 이끄는 느낌이었다.
“왜···왜 이러세요?”
“크크큭. 그렇게 곱게 치장하고 날 만나러 왔으면서 왜 이러냐고 물어보면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드는 거냐? 그런 거냐고!!!”
택시기사 아니 살인범의 표정이 된 놈이 이수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가 칼날을 들이민다. 이수는 큰 눈동자가 익사할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지만 입을 막고 최대한 놈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ㄹ···.”
살려달라고 말하려다가 주변의 음습하고 어두운 숲의 광경을 보고는 눈을 꾹 감고 잠깐 생각을 하는 것 같은 이수의 말꼬리를 잡고 놈이 말한다.
“살려달라고? 크크 살려달라는 년들이 왜 이렇게 다녀?”
“사··사랑해요.”
“뭐?”
처음으로 살인마의 표정이 깨졌다.
‘사랑한다고?’
나도 놀라서 이수의 모습을 돌아봤다. 이수는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큰 눈에서는 눈물이 바로 쏟아질 것 같고 입꼬리는 끝에만 간신히 올라간 상처 입고 곧 죽어버릴 것 같은 그런 어린 사슴 같은 모습이었다.
“첫눈에 반했어요.”
이수가 정말 놈에게 반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수야···넌···.’
내가 격동되는 심정을 가다듬는 동안 이수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녀의 심정이 들리는 것 같았다.
‘살고 싶어.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그녀가 젊은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다고만 알고 있었다. 이수는 도대체 어떤 일을 겪으면서 살아온 것일까?
내가 아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그녀의 모습일까?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단지 내가 보고 싶었던 면만 바라봤던 건 아닐까?
나는 나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밀어낸 증오스러운 이수의 모습과 택시를 탈 때 보여주던 밝고 싱그러웠던 그녀의 모습에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픔과 아픔이 전신을 내달리는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 상태와는 다르게 놈과 이수의 대화를 끝으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