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98화 (98/205)

<98화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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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3학년은 오늘 졸업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각자가 지원한 고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생이 될 겁니다.

졸업.

입학.

우리가 익숙하게 겪고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과 입학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입니다.

정확하게는 제 어머니는 초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생활전선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제 어머니처럼 초등학교 졸업 후 생활전선에 뛰어든 사람이 훨씬 많은 시대였습니다.

한때 저는 어머니의 학력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어머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어머니가 바라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기 단상에 서 있을 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단지 열심히 한다고 학력이 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도와준 친구와 친구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그런 친구 부모님은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높은 학력을 가진 친구 부모님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말처럼 공부 열심히 하면 저런 훌륭한 사람이 되는 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같은 나이의 중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정의롭고 놀라울 정도로 물욕이 없는 제 기준 그리고 제 부모님 기준에서도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저 친구는 성적도 좋지 않은데···심지어 나와 같은 나이인데 어째서 저렇게 커 보일까?’

그리고 어머니가 공부를 열심히해서 좋은 학력을 가지게 되면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했던 말을 굳게 믿던 저는 모든 게 혼란스럽고 동시에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아직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 질문에 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이번에 많이 아프신데···이런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제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평생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적 없을 정도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물론 퇴원 후에는 다시 무뚝뚝하고 입이 무거운 아버지로 돌아오셨지만···이전에 무섭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가 아닌···표현할 줄 모르는 목석같은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아버지가 제 고민을 물어보고 그 질문에 제가 오랜 시간 고민하던 질문을 던졌을 때 아버지의 아픈 그리고 자랑스러운 표정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엄마를 존경한단다.’

한 번도 표현하지 않으셨던 그래서 더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그 당시 대부분이 초등학교 졸업에서 끝나던 시대에 대학까지 간 석학이라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초등학교를 나온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말에 제 의문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씻어내듯 아버지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너희 엄마가 비록 초등학교 졸업 밖에 못했지만···.’

이라는 말로 시작된 어머니의 삶은 슬프고···그리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당시는 가족 중에 학교를 전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가정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젊다고 말하기 힘든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업했다고 말입니다.

HY 무역 여공사건을 아는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979년 더운 여름 가발수출업체인 HY 무역의 여성 생산직 노동자들 중 한 명이었던 어머니는 앞장서서 부조리한 당시 상황에 맞서 싸웠습니다. 지금도 그저 일하던 공순이들이 농성시위를 벌인 사건이라고 알고 있지만···현재의 노동투쟁과 비교하면 슬프고···무섭고···동시에 놀라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셨지만···동시에 제가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경험한 당시 사건은 결국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합니다.

언론의 당시 정부의 힘에 굴복해 기사를 내지 않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자 했던 여공들은 길거리로 쫓겨날 뿐만 아니라 강제로 연행되고 구타도 있었다고요.

비극적인 사건이 희극 거리가 되었다면서 힘없는 정의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한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건 힘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서 사회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 결정을 해달라는 의미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아직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아니···가슴 먹먹한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학생이라는 위치에 맞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리고 졸업하는 동급생 여러분과 앞으로 학업을 계속해나갈 후배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학창시절을 누리지 못했던 부모님 세대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학창시절을 소중하게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성적을 높이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래서 후회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 우리 부모님 세대의 불공정했던 그리고 아팠던 그런 결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자신의 사고를 키우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시절 저를 지켜주고 훌륭하게 키우려고 최선을 다하신 아버지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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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의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라는 말에 강당의 모든 학생이 자신도 모르게 사랑한다는 외침이 한참 울리다가 졸업식이 끝났다.

강당을 나서는 나와 종혁이 경수는 밀가루에 계란을 뒤집어 쓰고 친구들과 정신이 없이 인사하느라 몰랐는데 나중에 어머니가 말씀하시길···경수 어머니가 우는 것보다 경수 아버지 우는 모습이 더 놀라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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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졸업한다.

회귀 첫날부터 달려오던 나의 발걸음을 돌아본다.

후회가 남지 않게···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에게 온 천운을 허무하게 보내지는 않았는지.

그와 동시에 몸이 어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안일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종혁이와 경수는 나처럼 회귀를 한 것도 아닌데···’

종혁이는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도 친구를 믿고 끝까지 도와줬다. 경수는 나처럼 회귀를 하지도 않았는데 생각의 깊이가 나라면 저 나이에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처럼 나이를 먹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몸이 크는 걸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3.1절 만세운동의 중심에 당시 학생들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1960년 3·15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실종되고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십여 명 중 학생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나이의 많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라···생각의 차이가 아닐까?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며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라 불린 이완용의 나이를 생각하면···.’

나이가 먹을수록 세상과 타협하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서 착하다는 말에 속아서 내 행동의 기준이 내가 아닌 주변 사람이 되어버린다.

나이를 먹으면서 평범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치게 된다.

나만 아니라 평범한 다른 이들도 나처럼 부조리한 일에서 앞장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 지나간다. 후회를 하게 되어도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로 세상을 배워간다는 말로 위안을 얻는다.

‘세상을 배워간다.’

아픔이 섞인 한마디 말로 그저 지나간다.

내정된 사람이 있는 걸 알게 되어도 면접자리에 나가서 면접을 본다.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높은 분이 꽂아 넣은 낙하산 인사이기 때문에 신입사원을 상전 모시듯 한다.

계약직 직원이 성희롱을 당해도 나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이기 때문에 못 본척한다.

그런 나의 행동이 결국 내가 중앙선 침범한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가 났을 때 주위에서 도와주는 손길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내가 사회와 타협해서 사는 만큼 내 주변의 사람들도 사회와 타협해서 살고 있었다.

내가 눈을 감은 만큼 내가 당한 사고가 부조리하다 해도 사람들은 익숙하게 눈을 감는다.

누군가 나서서 총대를 메고 이런 부조리함을 바꿔주기를 바라지만 그게 내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살기 바쁘다. 적당히 세상살이를 알면 맞춰간다.’

많은 이유를 말하지만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분위기는 높은 곳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손쉬운 먹잇감을 내주는 것이다.

나는 오늘 졸업한다.

이제는 후회가 지겹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내 삶을 살 수는 없다.

공부조차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다는 이유로 하려는 게 아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고 내가 해나갈 앞으로의 일에 필요하기 때문에 하려고 하는 것이다.

삶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남의 기준에 맞춰서 사는 삶이란 얼마나 고달프고 보람이 없는지 살아봐서 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그런 삶을 살 것이다.

비록 그 길이 편하지 않고 험난하더라고 그길로 향할 것이다.

‘문재아 일처럼 끝내 피를 보게 된다고 해도···내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오늘 졸업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나를 옭아매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간다.

회귀 전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용기를 내서 반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나 혼자가 편하다는 변명으로 하루를 버티는 미련한 행동에서 벗어나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간다.

지금은 한 발자국이지만 결국은 내가 원하는 곳까지 도달하기 위한 첫발자국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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