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재능 2>
다음날 중장동 도서관에 익숙한 인형 셋이 모여 있었다.
“너 어제 공부하다가 도망가더니···오늘 웬일로 나왔냐?”
종혁이의 말에 나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
“뭐···공부하기 싫다고 안 올까 봐 걱정했는데 그래도 나왔네.”
경수의 말에 종혁이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자기가 스터디하자고 해놓고 그렇게 가버리냐?”
“오늘은 다르다고.”
‘재능이라는게 놀라울 뿐이지.’
“놀라운 건 어제는 한 시간도 못 앉아 있고 도망치듯 집에 갔으면서 오늘은 점심시간까지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앉아 있었다는 거야.”
내가 어제 한 시간도 자리에 있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나갔다는 것까지는 몰랐는지 종혁이의 말에 경수가 영어단어장에서 시선을 돌려 말했다.
“어제 한 시간도 안 있고 갔어?”
“너야 한번 책을 보면 주변에 관심이 없으니까 몰랐겠네.”
“너네는 어제 몇 시까지 있다가 갔는데?”
내 질문에 종혁이가 대답하고 경수가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난 3시쯤?”
“3시에 갔어?”
“주변에 관심 좀 가지라니까. 난 어제 학습 목표 잡은 곳까지 다 봐서 그냥 일어났지.”
“머리 좋은 놈.”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는 않은데···.”
종혁이가 경수를 질린다는 말투로 대꾸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책을 자세히 안 보고 한 페이지씩 펼치기만 하던데 공부하긴 하는 거야?”
“열심히 보고 있지.”
내 대답에 앞으로 시험이 걱정된다는 듯한 종혁이의 표정에 씩 웃고는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파는 돈가스를 맛있게 먹었다.
‘맛이 없어도 입맛이 돌 판 인데···이거 소스가 맛있네?’
나는 어제 대백공을 통해서 재능을 보상으로 받았다. 그 재능에 대한 효과를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대백공이 계속 대단한 재능이라고 말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움이 될 줄은 알았지만, 어제하고 오늘 완전히 달라. 솔직히 공부 하는게 재미있다고 느낄 정도라니···.’
기억책 능력 덕에 난 한번 본 책은 그대로 저장된다. 아직 효과를 시험해보지는 않았지만 한번 독파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볼 수 있을 정도였다.
‘기억 책에 저장한 상태에서 불러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장점이야.’
문재아와의 충돌이 후 처참했던 상황이 자꾸 떠오르면서 그 당시의 내 숨소리 하나까지 자세하게 기억이 떠올라 잠을 설쳤는데···기억책에 저장해서 넣어버리면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만 생각난다.
‘쉽게 말해서 책 제목과 목차는 기억나지만 내가 그 상세내용을 불러내지 않는 이상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있는 느낌?’
책에 저장되는 내용이 많아지면 목차가 없으면 내용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인식은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억을 불러내지 않는 이상 망각한 상태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방학기간 동안 기억 책이라는 재능 덕분에 떨어진 학력을 빠르게 채워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단순히 기억한 내용을 어떻게 활용할지 활용능력은 별개지만···’
암기과목에서만 선전해도 지금의 처참한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을 개기가 될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모르는 종혁이는 책을 펼쳐보기만 하는 나를 걱정스럽게 보다가 맞은편의 경수가 밥을 먹는 도중까지 외우는 영어단어집을 뺏으면서 말했다.
“밥은 편하게 먹자.”
“무슨···.”
“그런데 경수···너네 아버지 오늘 퇴원하신다면서 안 가봐도 돼?”
“내가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계속 뭐라 하신다니까.”
“왜?”
“자기 돌볼 사이에 한 글자라도 더 보면서 공부하라고 등 떠미니까. 그 등쌀에 그냥 도서관 왔지. 이제 졸업까지 얼마 안 남았지?”
“이번에 퇴원하신 거면 졸업식은 오실 수 있는 거야?”
“졸업식에 아빠도 오실 수 있을 것 같아.”
“졸업하고 나면 이제는 서로 다른 학교로 가는 건가?”
“다른 학교라고 하니까 되게 어색하네.”
“너라면 어디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경수는 얼굴을 굳히면서 한마디 보탰다.
“뭔가 급격하게 시간이 간 것 같은데···공부한 부분보다 못 본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경수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런 경수의 말에 종혁이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고등학교 교과목 전부 독파하고도 네가 방학 동안 한 개 없다고 말할 셈이냐?”
종혁이가 너무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너네는 중학교 과정을 다 보고 고등학교 1학년 과정 예습한다는데 나도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않겠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 정도인지 모르겠다만 놀랍다. 놀라워.”
“애들아 나는 거기서 빼주지 않을래?”
“뭐?”
“난 이제 간신히 중학교 과정 다 본 거고. 너네가 괴물인 거지···.”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하자 경수가 발끈하면서 말했다.
“야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고 엄마가 나한테 항상 하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종혁이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문장이 있어서 대답했다.
‘가볍게 읽었던 속담집도 누군가 떠오르는 단어를 말하면 생각이 나네?’
나는 기억책의 새로운 사용법에 설렘을 느끼면서 답했다.
“상황이 어떻든지 말은 언제나 바르게 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네.”
“너는 그거 어떻게 알고?”
“속담 100선 읽다 보니?”
‘하도 열심히 공부하는···솔직히 질릴 정도로 하는 종혁이와 경수가 옆에 있으면 학습지나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이 보고 싶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
교과서를 펼쳐보고 전부 기억책에 집어넣고 그런 기억책의 내용을 활용하기 위한 훈련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혁이와 경수가 도서관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작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도서관에 있어야 했다.
‘덕분에 책을 많이 읽었네. 아니 기억책에 저장을 많이 한 건가?’
장점이라고 말하는 점도 너무 극단으로 치우치면 단점이 되는 것처럼 기억책의 내용이 방대해지는 만큼 문제를 풀 때 기억책에서 불러내야 하는 내용이 너무 커진 건 문제가 있었다. 그 부분은 실제 시험을 보면서 익숙해지면 될 것 같았다.
‘오픈 북 시험이라고 해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미리 공부해야 펼쳐서 시험을 볼 수 있는 것하고 비슷하다고 할까?’
나는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서로 타박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종혁이와 경수의 모습에 같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
·
·
·
·
나와 종혁이는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중학생 마지막 방학을 보냈다.
경수는 집, 병원 도서관을 바쁘게 오간 방학이 끝을 맞이했다.
·
·
·
·
·
오랜만에 들어선 교정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 장식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백신중학교 졸업식이라고 크게 붙은 플렌카드가 나와 종혁이, 경수를 반겼다.
어색하지만 익숙하게 교실로 향했다. 교실 칠판은 이미 졸업식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친한 친구에게 장난스럽게 남긴 메모가 정신없이 붙어 있었다. 그걸 보니 정말 졸업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에서 만난 반친구들과 인사하는 소란으로 떠들썩하다.
하나둘 떠드는 소리마다 아쉬움이 담겨 있다. 경수가 졸업식에서 학년 대표로 단상에 올라가야 해서 교무실에 간 사이에 종혁이가 복도에서 후배들에게 붙잡혀 곤란해 하는 걸 빼내서 강당으로 향했다.
나는 졸업식이라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왔던 종혁이의 교복이 여기저기 뜯긴 흔적이 가득한 걸 보고는 놀라서 물어봤다.
“야 너 교복이 왜 그래?”
“아···후배가 단추 하나만 달라고해서 하나씩 주다보니까 단추가 하나도 없네.”
상의 여밈 단추는 물론 소매단 끝에 달린 단추도 하나도 없었다.
“이제 줄 단추 없으면 그냥 나오지 거기 서 있냐?”
종혁이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밀치고 나오기도 그래서···너 아니었으면 졸업식 늦을뻔했다.”
나는 종혁이의 배려심 있는 성격 덕에 쉽게 친해질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장점도 단점이 되는 것처럼···사람 좋은 것도 병이라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면서 화제를 돌렸다.
‘우리 어머니도 사람이 너무 좋아서···그것도 병이야···병.’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자신의 모습이 많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교복 이곳저곳 손보느라 바쁜 종혁이를 끌고 강당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전부 오신 거야?”
“졸업식 시간에 맞춰서 온다고 하셨어. 아 저기 있는 것 같은데?”
어머니가 동생 손을 꽉 잡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면서 보자 종혁이 부모님과 경수 부모님이 웃으면서 서로 인사하는게 보였다.
경수도 부모님께 멀리서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하는 사이에 우리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단상 뒤에서 준비된 연설문을 보고 연습하는 경수의 모습에 웃으면서 말했다.
“경수 긴장했나보다···.”
“응···?”
경수의 긴장된 표정을 보면서 나와 종혁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그 넓은 강당은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마냥 빽빽하게 들어섰다.
이미 한번 졸업했던 졸업식이었지만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묘한 감상에 빠지고 말았다.
‘두 번째 졸업식이라···.’
종혁이가 경수의 굳은 표정과 딱딱한 말투에 웃으면서 나중에 놀리겠다는 다짐을 들으면서 첫 번째 졸업식이 오버랩 되었다.
첫 번째 졸업식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이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들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느껴졌지.’
내 상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반에서 나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다.
‘아니 무서워 보이는 내 인상에 아이들이 나를 피한 걸지도···.’
이제는 회귀 전 반 친구들에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은 장소 같은 사람이지만 내 위치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아무도 대화를 걸지 않던 맨 뒷자리는 종혁이와 경수 뒷자리가 되었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던 반 친구들은 이제는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이제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한 발자국 용기 내서 다가간 것뿐인데···회귀 전 삶과 다른 상황이 만들어졌지.’
한 발자국의 용기···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반 친구들은 그저 과묵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친구로 기억하던 그 당시의 학창 생활.
사회에 나와서 어쩌면 가장 빛나고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나날을 나는 그저 나에 대한 연민과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원망으로 하루하루 채워 넣었다.
‘결국···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
내 생각이 깊어져서일까? 졸업식은 이제 끝에 다다라 재학생의 졸업 축하에 경수의 답문 순서만 남았다. 긴장된 듯 굳은 표정으로 올라간 경수가 졸업식 내내 단상 뒤에서 뚫어지게 보면 준비된 연설문을 단상에 올려놓고 나와 종혁이 그리고 부모님이 계신 곳을 돌아보고는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