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피해자? 가해자? 3>
미래에 우리나라는 범죄 검거율이 90%에 달하는 선진국이 된다.
하지만 사법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였냐고 묻는다면 물음표가 따라온다.
힘 있는 이들의 기준에 따라 심판받거나 풀려난다.
판사나 검사 경찰이 이 정도는 용인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불기소처분이 나오는 일도 많다. 특히 성범죄나 가정폭력의 경우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탑승해서 제대로 수사가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자신을 강간하려던 남성의 혀를 물어 상해를 입힌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뀐 채 피해자에게 유죄 선고가 내려진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나 가족에게 그런 운 나쁜 경우가 생기지 않기만을 기도하면서 외면하는 사이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사건이 있을 뿐이다.
‘내가 갑자기 이 생각을 하는 이유라면···.’
인하의 아버지 기창수와 같은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소리다.
‘슬프게도···.’
인하의 어머니는 도망갔다.
실제로 인하의 어머니가 도망갔다고 해도 괴물의 폭력에서 아니 계속된 범죄의 연속 선상에서 도망친 것이다.
인하의 어머니를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유일하게 원망할 수 있는 인하가 죽었는데···
인하의 어머니는 강간 피해자였다.
하지만 강간 가해자와 결혼했다.
강간 피해자와 가해자가 미혼이면 결혼을 시키던 시대였다.
‘자신의 인생을 짓밟은 범죄자에게 매일같이 이유 없이 맞아가면서 가정을 지키라고 하는 세상.’
CCTV도 전화도 거의 없던 시절 그저 매일 이웃끼리 하는 안부 인사로 서로의 안전을 확인 하던 그 시절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자리에 넣어두고 잘 살기를 바란다는 건 그저 귀찮은 일에서 눈 돌리고 싶었던 사회의 무책임 아니었을까?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가 눈가를 떨리게 만든다.
‘후···진정하자···.’
나는 빛나는 눈을 손으로 막고 철창 너머의 기창수라는 이름의 괴물을 바라본다.
‘이제 시작이야.’
전과자가 아니니까 폭행으로 합의가 안 된다고 해도 집행유예가 최선이다.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되면 2심으로 갈 이유가 없어서 거의 확정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폭행죄는 합의가 없으면 유죄는 확실해···집행유예가 나와도 결국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집행유예 기간에 사건을 일으킬 거야.’
아주 경미한 처벌이라도 괜찮다.
나는 뜨겁게 올라오는 울분을 깊게 내리면서 계속적으로 기창수를 주시했다. 재민이 폭행으로 유죄를 받고 감옥에 가서 출소한다고 해도 계속적으로 기창수의 위치를 팔로우할 예정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고 출소해서 또 다른 상대와 폭행을 일으키게 되면 내 계획은 완성이다.
‘상습폭행이라고 판단되면 그때부터는 형량이 무거워질 거다.’
그렇게 자신의 죄과를 다 받게 끝없이 관찰하고 주시할 것이다.
‘내가 특별히 무언갈 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길 사람이니까.’
집에서 샌드백처럼 때리던 아내와 딸이 없어진 상태에서 자신의 폭력성을 어디다 풀겠나?
지나다니다가 만만해 보이는 사람과 시비가 걸리겠지.
‘그때를 노린다.’
피해자가 공갈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닌 이상 돈을 벌자고 폭행당하는 게 아니다. 피해 상태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가슴속 울분을 감내하고 합의를 한다. 내가 피해자에게 금전적 여유를 제시한다면 굳이 피해자가 기창수가 제시한 합의금에 합의해 줄 이유가 없다.
사실 처음 유죄가 나오는 사건이 중요한데 미성년자 폭행으로 입건되었기 때문에 선처될 이유 또한 없다.
‘기창수가 비싼 전관 변호인을 산다면 모르겠지만···.’
체육 선생에게 합의금을 더 받겠다고 인하를 벼랑 끝으로 몬 기창수가 전관 변호인을 구할 정도로 돈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수렁에 빠져 천천히···.’
스스로가 제 목을 조르는 걸 알지 못하게 바닥에서부터 침식한다. 결국 발버둥 쳐도 숨이 막히는 순간 빠져나갈 수 없는 깊은 수렁을 만든다.
이걸로 인하에게 속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건 내 만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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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지해주는 어머니,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부모님이 이 혼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붉은 벽돌집과 체육 교사 그리고 인하의 일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당연한 건 없다.’
누가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연에서는 새끼를 낳고 새끼를 잡아먹는 생물도 있다.
물론 대부분 생물은 자신이 낳은 존재에 모성애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태어나서 모체를 잡아먹는 새끼와 새끼를 잡아먹는 생물도 분명 존재한다.
‘인간은 이 사이 어디쯤 아닐까?’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바치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연을 듣다 보면 우리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왜 그럴까?’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존재가 인간 중에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다는 걸 동시에 실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상식은 평범한 가정에서 통용된다.
‘평범하다.’
우리는 이 말에 깜박 속는다.
평범하기 위해서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희생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하찮게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보는 일상의 평범한 가정의 모습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기 때문에 유지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귀를 찡하게 울리는 굉음 같은 울음 속에서 잠도 자지 못하고 자신의 자녀를 돌보고 아프지는 않은지 하루에 몇 번이라도 살피는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인간이라는 아주 작은 생명은 살아남을 수 있다.
작은 생명체가 크기 위해서 관심과 사랑만으로 가능할까?
주위에 모든 위협에서 최소한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그런 울타리를 만들고 만족감과 안정을 주기 위해서 오늘도 아버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희생한다.
그런 희생이 항상 값지기만 할까?
보답 없는 사랑의 끝은 얼마나 비참한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돼서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공경한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있던 도덕률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들만 있는 걸까?
힘들게 애써 키워도 몸만 큰 아이가 제 둥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어머니 아버지를 핍박하고 때리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부모는 어떻게 살든 자신만 잘 살고자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자녀라도 없으면 최저생계비 수급자가 될 텐데 자신이 애써 키운 자녀 때문에 그런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럼 사회는 왜 이런 평범하다는 이들의 사연을 부각할까?
왜 이들이 평범하다고 그렇게 외치는 걸까?
이들이 정말 평범하고 당연하기 때문에?
아니다.
평범하다는 말에 속아서 많은 이들이 대가 없이 이걸 기준에 맞추려고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말하는 평범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고 들린다.
하지만 삶이 너무 팍팍해 살아남기 힘들어서 부모님을 자주 못 보고 삶이 바빠서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대다수의 현실 어디에도 사람답게 사는 모습은 없다.
그저 산다.
이 복잡하고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다운 사람다운 삶을 가끔 눈감고 지나간다.
외면한다.
그런 외면 속에서 자라난 아픔이 점차 커져서 안에서 곪고 있어도 바라보지 않는다.
‘평범하다.’
평범하다는 말에 속아서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버틴다.
아이에게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오늘 하루를 버틴다.
바쁜 삶 속에서 나 외의 것은 모두 외면하고 애닮지만 어색한 부모님에게 한 번이라도 연락하기 위해서 바쁘게 뛰어다닌다.
삶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5월이면.
평범함이라는 말에 속아서 숨 쉴 곳 없이 바쁘게 삶을 달리는 많은 이들에게 외치고 싶다.
평범하다는 말에 속아서 예단하지 말자.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5월이 버겁고 힘겹다면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사는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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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우리가 눈 돌리지 않으면 볼 수 있는 인하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
재단을 통해서 피해자를 지원하지만 결국 그때뿐이다.
‘누구도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범죄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계속 양산되는 피해자 숫자를 줄일 수 없다.
그저 평범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은 지원금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뿐이다.
‘피해자에게 숨 쉴 곳이 되겠지만 그게 해결 방법이 될 수는 없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또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인하의 아버지 기창수 만큼은···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겠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경찰도 검찰도 판사도 아니다. 저 위에서 법을 주무르는 이도 아니다.
하지만···
인하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평범한 이들 사이에 섞여서 세상을 활보하는 게 두렵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이 사회와 격리되어야 한다고 본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눈이 침잠하듯 침침해진다.
어두워지는 시야 사이로 언 듯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어머니와 동생의 시선이 느껴진다.
‘괜찮아요. 한 숨자면 괜찮아질 거예요.’
이런 말을 한 마디하고 싶은데···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빨리 가족을 위해서 미래 지식으로 돈을 벌어야 돼.
빨리 친구를 위해서 친구 가족들에게 피해가 될 사건을 막아야 돼.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한 듯한 한 달의 긴박했던 사건들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짐이 된 것 같다.
마음은 어머니와 동생이 걱정하지 않게 입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눈꺼풀이 너무나 무거워 뜨지 못한다.
멀리서 아스라이 따뜻하지만 걱정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인아? 괜찮아.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도 엄마가 항상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거···꼭 기억하고 힘들면 언제든지 엄마한테 기대렴.”
“형? 형 이거 먹고 힘내.”
주신이가 아껴 먹던 간식을 놓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침대 맡에 들린다.
어머니가 쓴웃음을 짓는 게 눈에 선하지만 내 정신은 휩쓸리듯 익숙한 공간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