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피해자? 가해자? 2>
“그래서 돈 안 받겠다고?”
그제야 제 나이대로 보이는 웃음을 입가에 띄우면서 자기 손에 들린 현금을 주머니에 순식간에 넣고는 말했다.
“안 받는다고도 안 했어.”
“그럼 장소 정해지면 나와.”
“언제든 불러.”
처음에 PC 방에서 나와 마주쳤을 때의 표정과 완전히 달라진 표정으로 달려가는 재민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재민이에게도 평범한 가정이 있었다며 좀 더 많은 걸 누리고 생각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깊어지려는 생각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면서 김 씨 아저씨에게 전화했다.
통화음이 가는 동안 이사 간 집이 있는 둔방 양정2단지 쪽 공원을 지나갈 때였다. 평범한 아저씨가 자신의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익숙한 검은색 봉지가 들려있었다.
“김 씨 아저씨?”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품에서 꺼낸 전화를 수신 거부하더니 나에게 밀크티를 건네면서 말했다.
“말했던 사람은 찾았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그 사람을 왜 찾는 거지?”
“글쎄요···.”
내가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말하지 않자 김 씨 아저씨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난 불법적인 일은 안 한다.”
“불법적인 일 아니에요.”
나를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쓱 보더니 밀크티가 들어 있던 봉지에서 쪽지를 꺼내 건네줬다. 쪽지에는 내가 요청한 아저씨가 있는 가게의 위치가 거길 벗어났을 때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나는 쪽지를 읽다가 놀라움에 김 씨 아저씨를 찾았지만 김 씨 아저씨는 나에게 경고하듯 한마디 하고는 공원을 산책하던 인파와 함께 순간 이동한 것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번 선을 넘게 되면 돌아올 수 없다.”
‘불법적인 일은 하지 말라는 거겠지?’
나는 쓴웃음을 삼키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뻔뻔하게 거리를 거닐고 다니면 속이 뒤틀리잖아.’
나는 쪽지에 적힌 장소로 재민이와 함께 향했다. 재민이는 이미 나에게 몇 차례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상태였지만 표정이 굳고 긴장한 걸 숨길 순 없었다.
“직접 맞지 않고 폭언만 들어도 되니까 위험해 보이면 바로 몸부터 사려.”
“알겠다고 몇 번이나 들었다고.”
“후···내 얼굴을 아니까 내가 직접 할 수도 없고 부탁한다. 할리우드 액션 알지?”
내 신신당부를 오는 내내 들었던 재민의 얼굴에서 질린다는 표정이 떠오른 다음에야 놓아줬다. 목표물을 향해서 껄렁하게 걸어가던 재민이 목표물과 어깨가 스치듯 지나갔다. 어깨를 부딪치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어긋난 것 같았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나?’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큰 고함이 귀를 아프게 했다.
“야···이 새끼 너 뭔데 그따위로 걸어 다녀?”
재민이는 그저 멀뚱히 고함을 지르는 목표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목표물은 자신의 고함에 재민이 겁에 질렸다고 생각한 듯 더 기가 살아서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타입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걸어 다녀 어?”
하면서 재민이의 어깨를 크게 밀었다. 재민이는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큰 동작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저씨 낮술 하셨으면 집에나 가요. 집에 와이프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목표물은 인정사정없이 재민이의 얼굴을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퍽.
큰 소리가 상점가 앞을 울리고 나는 예상보다 큰 소요에 놀라서 빠르게 재민이에게 다가가면서 신고했다.
“여기 중장동 먹자골목인데요. 학생이 어떤 아저씨한테 폭행당하고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근처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순찰차가 있었는지 멀리서 경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민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괜찮아? 많이 다쳤어?”
나는 술 취한 취객에게 제대로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짠 계획이 어긋나서 재민이가 다쳤다는 생각에 자책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내 얼굴을 알아도 내가 했어야 했는데···.’
“아···이빨이 나간 것 같아.”
“뭐? 빨리 병원 가자. 부축할 테니까···.”
하지만 재민이는 아프다는 곡소리만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구급차도 부르기 위해서 휴대폰을 누르려는데 그런 내 손을 막아서더니 재민이가 나를 향해서 자꾸 눈짓을 했다.
“눈도 다쳤어? 눈뜨기 힘든 거야?”
이런 내 대답에 머리가 아픈 듯 머리에 손을 올리는 모습에 나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이런 나를 진정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주인이 아니야?”
“허 순···아니 허 경장님?”
평소처럼 형이라고 부르라고 할법하지만 사건 현장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나에게 일별하고 재민이 상태를 살피더니 흥분한 목표물에게 다가가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협조해서 경찰서까지 동행 바랍니다.
허 경장이 흥분한 목표물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렸지만 흥분한 취객이 경찰의 말을 제대로 들을 리 없었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허 경장의 손을 뿌리쳤다.
평소에 다정하다 싶을 정도로 나와 친구들 말을 잘 들어줘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강압적이다 싶을 정도로 제압하는 허 경장의 모습은 새로웠다.
“아악···경찰이···민중의 지팡이가 사람을 때린다.”
“때리는 게 아니라 제압한 겁니다. 처음에 경고했을 때 조용히 경찰차에 타셨으면 없었을 일입니다.”
목표물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고함을 치면서 나와 재민이 그리고 주변의 구경꾼을 향해서 위협적인 고함을 계속 치면서 강제로 연행되다시피 경찰차에 구겨 넣어졌다. 잠깐의 소란 후 허 경장이 나와 재민이 앞으로 다가와 부축하면서 질문했다.
“이게 무슨 일이니?”
“그게···.”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곤란해하는 때 재민이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내가 경찰이 출동했을 때 하라고 한 말을 그대로 하면서 나한테 다시 눈을 찡긋하는데 눈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었다.
“저 아저씨가 갑자기 지나가는 저를 잡고 때렸어요.”
“뭐?”
학생이 지나가다 술 취한 성인 남성에게 맞았다는 사실에 허 경장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더니 우리를 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담당 형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재민이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도 목격 조서를 작성하고 바로 경찰서를 나설 수 있었다.
“너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괜히 나 때문에 무리한 부탁한 것 같아서···.”
“너 아까부터 왜 그래?”
“뭐?”
“할리우드 액션 하라면서?”
“어?”
“그 아저씨 주먹에 그대로 맞아줄 정도로 내 짬이 낮지가 않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왕따로 2년 넘게 살아남았는데 집단구타도 아니고 한 명이 때리는 주먹은 그냥 아픈 척하고 쓰러지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지.”
“하···.”
“물론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할 때는 나도 깜짝 놀랐는데 순간적으로 얼굴을 틀어서 약간 스친 것뿐이야. 냉찜질 한 번이면 하루면 나을걸?”
“하나도 괜찮지 않아. 내가 무슨 생각으로 너한테 부탁했는지···내가 하는 게 속편 했을 것 같다.”
“너···기주 일 때문에 저 아저씨하고 한 판 해서 얼굴 알아보니까 안된다며···.”
“그렇지만 이렇게···.”
“크흠···그럼 이제 저 아저씨 이제 감옥 가는 거지?”
“네가 합의 안 해 주면 가능하지. 그런데···괜히 널 끌어들인 것 같다.”
난 피해자 역할을 해준 재민이의 팔을 부축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재민은 밝게 대답했다.
“난 내가 나한테 그런 부탁 해줘서 더 좋았어.”
“뭐?”
“난 보육원 출신이잖아. 부모 있는 아이들하고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거든···. 지금 생각하면 자격지심도 있었던 것 같아.”
“···.”
“그런데 부모도 부모 나름이라는 걸 알게 해줬잖아. 방금 저 아저씨 아니 저런 놈이 아버지라면 내가 도망가고 싶었을 것 같아.”
“한집에 살면 도망도 쉽지 않지.”
“난 부모면 무조건 자식을 사랑해주고 좋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내가 보육원 다니니까. 그런 좋은 모습만 찾으려고 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이번 기회가 나한테는 행운인 것 같아.”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지.”
“어?”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아끼고 사랑할 것 같잖아. 그런데 기하 아버지처럼 기하가 받은 피해를 이용해서 더 큰 돈을 벌 생각만 하고 매번 미안하다면서 이유 없이 때리고 자격 없는 부모도 있다는 거니까.”
“그래서 고맙다는 거야. 이번 기회로 그저 보육원생이 아닌 이 세상의 다양한 삶을 사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줬으니까.”
“···.”
“난 보육원 출신이라는 게 너무 싫었거든. 그런데 이번에 네 부탁받고···.”
“···?”
“생각이 많아지더라.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것만으로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거든. 지훈이 덕분에 그런 생각은 안 하게 됐지만···그런데 학교만 아니라 집에서도 문재하 같은 놈이랑 같이 산다고 생각하면 너무 소름 돋잖아.”
“24시간 문재하랑 갇혀 있다고 하면 소름 끼칠만하지.”
“그런 일을 기하가 당하는지도 몰랐어.”
“피해자보다 체육이 죽은 사건이 더 이슈가 됐으니까.”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그게 뭔지 모르겠다.”
이해가 안 가는 지금 상황이 답답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마구 흩트려 트리는 재민이었다.
“나도···누가 이것만 바꾸면 다 해결됩니다. 하는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어.”
나와 재민이는 서로 부축하며 노을 지는 거리를 천천히 발맞춰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