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용감한 시민상>
혼자 걷는 등굣길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굽이굽이 꿈틀거리는 듯한 골목길은 언제나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여···.”
“벌써 나와 있었어?”
“엄마 등쌀에 그냥 미리 나왔지. 이거”
“이건 뭐야? 저번에 미숫가루?”
“매번 죄송하네.”
“그것도 오늘까지 아니야? 오늘 종업식이잖아. 방학 때 계획 세웠어?”
“아직···?”
“그럼 다 같이 여행이라도 갈까?”
“우리만 보내주시겠냐? 가족여행은 이래저래 힘들지 경수 일도 있고···.”
“그런가.”
아쉽다는 티를 내는 종혁이었지만 지금 이사 후 미니 스탑을 준비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족여행은 힘들었다. 나도 나지만 경수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경수도 여행은 힘들 것이다.
종업식이라고 특별한 건 없었지만 경수도 아버지 병실이 아닌 학교로 왔다.
오랜만에 병원이 아닌 학교에서 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반갑게 달려갔다.
그런 나를 달려오는 덤프트럭을 본 것처럼 피하는 경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종업식이 무사히 끝나고 오랜만에 셋이서 교문을 나선 순간.
“종혁아 애들아 여기야. 여기···.”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종혁이 부모님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
내가 당황해서 어머니를 부르자 밝게 웃으시면서 주신이의 손을 잡고 나와 친구들에게 다가왔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벌써 까먹은 거야? 하긴 요즘 정신없기는 했지. 종업식 끝나고 오후에 경찰서에서 용감한 시민상 표창받는다고 했잖아.”
“아직 시간이···.”
당황스러워하는 사이에 종혁이의 부모님이 종혁이와 경수를 반겨주더니 말을 하셨다.
“종업식도 했고 오후에 상 받으러 갈 텐데···다 같이 점심 먹고 가는 게 어떻겠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종혁이 어머니가 발 벗고 나서서 가족 식사 자리를 준비한 것 같았다.
인원수가 많아서 어떻게 이동할지 고민하는데 어머니가 나와 주신이를 잡아끌면서 말했다.
“엄마 차 뽑았어···.”
“엄마? 운전면허증은?”
“엄마 면허증 있어. 차가 없었지.”
밝게 웃으면서 말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말았지만, 순간 드는 생각은···
‘종혁이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타고 간다고 하면 화내실까?’
언제 합격했을지 모를 장롱면허였던 어머니 차를 타고 무사히 식당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주신이가 내 팔을 잡으면서 당기길래 상체를 숙이자 귓속말을 했다.
“엄마 차 엄청 좋아. 그런데 차는 좋은데 엄청 느려···.”
나와 주신이의 행동에 뭐가 못마땅한지 샐쭉한 어머니 표정에 나는 주신이를 안아들고는 바로 어머니 뒤로 다가가 말했다.
“주신이가 엄마가 안전운전한다고 칭찬하네요.”
“그래? 엄마가 오랜만에 운전하기는 하지만 무사고 10년이 넘는다고···.”
‘10년 이상 운전을 안 하신 건···?’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하지 않았다.
‘이게 가정의 평화지···.’
식당에 도착하자 경수 어머니가 미리 도착해 있었다.
“저희가 데리러 가야 하는데···.”
“한 번에 데리고 올 수 있는데 굳이 여러 걸음 할 필요 없죠. 경수 아버지는 괜찮으신 겁니까?”
“병원에서는 이제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직 식사는 조심해야해서···.”
“몸이 많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이네요.”
종혁이 아버지와 경수 어머니의 대화를 뒤로하고 종혁이가 다가와서 툭 치면서 말했다.
“길이 막힌 거야? 왜 이렇게 늦었어?”
나는 종혁이의 질문을 어머니가 듣지 못하게 화장실로 끌고 가면서 말했다.
“그래 봤자···얼마나 늦었다고?”
“그런가? 이미 주문은 해놨다고 하는데 고기 구워 먹고 뒤에 나오는 식사메뉴는 뭐로 할 거야?”
“뭐가 있는데?”
“물냉이랑 비냉 그리고 뭐더라···.”
경수가 뒤따라 나왔는지 덧붙였다.
“누룽지도 있더라.”
“죽 같은 건가?”
“궁금하면 먹어보던지···.”
“그래도 고기 먹고는 물냉이지.”
“무슨 소리야 고기 먹고는 비냉이지.”
종혁와 경수가 물냉이다 비냉이다를 놓고 다투기 시작하자 나는 또 시작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씻고 세팅되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구워진 고기를 잘게 잘라 한입에 먹을 수 있게 탄 부분을 정리해서 주신이에게 먹이고 돌아보자 다들 배부르게 먹은 듯 벽에 기대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 나 배불러.”
“더 안 먹어도 되겠어?”
“응.”
나는 주신이의 손과 입을 준비한 손수건으로 닫아주고는 내 식사도 빠르게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계산대에는 나보다 먼저 어머니가 서 있었다.
“엄마?”
“배부르게 먹었어?”
“네. 엄마는요?”
“엄마도 많이 먹었어.”
“여기 영수증입니다.”
“벌써 계산한 거예요?”
대답하지 않고는 웃는 얼굴로 나를 식당 한쪽으로 데리고 가면서 말했다.
“식후에 수정과 한잔 씩 준다는데 먹고 경찰서 가면 시간이 딱 될 것 같아.”
“용감한 시민상요?”
“그래. 우리 아들이 상 받는다니까 엄마가 너무 좋은 거 있지. 그래서 계산한 거야.”
“그날 엄마 걱정하게 만들어서···.”
“우리 아들이 기주라는 아이 구했잖아. 자랑스러워. 엄마는 그래도 같은 상황이 된다면 아들을 말리겠지만···.”
“엄마니까···당연하죠.”
엄마는 나를 대견하다는 듯하지만 갑자기 커버려서 아쉽다는 듯 나를 보더니 이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경찰서는 파출소와 다르게 안남시청 근처에 위치했다. 큰 강당처럼 마련된 자리에 플렌 카드들이 걸려 있는데 다들 바쁘게 행사 준비를 하는 것 같아서 쉽게 말을 걸 수 없었다.
준비되어있는 자리에 앉아 행사가 시작되자 이번에 진급이 거의 확실하다고 했던 허 순경이 굳은 표정으로 제복을 입고 단상에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와 친구들은 허 순경의 굳은 표정을 웃으면서 서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 형 이번에 진급한다더니 알고 있으면서도 떨리는 걸까?”
“나도 갑자기 저기 올라가야 한다면 표정이 바로 굳을 것 같은데?”
“이번 일로 진급하는 건가?”
“바로 신고받고 출동했으니까. 저 형이 원래 성실하기도 했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엄마가 그러는데 늦은 시간에도 신고하면 출동해서 해결해주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하긴 같은 파출소에 있던 다른 경찰하고 다른 것 같기는 해. 우리말도 잘 들어줬잖아.”
“그런 다른 속셈이 좀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아직도 경찰 생각 없어?”
“모르겠어.”
점심을 먹고 졸린 표정이었던 주신이가 눈을 반짝이면 단상을 바라봤다.
“주신이는 형이 경찰되면 좋겠어?”
경수의 웃음 섞인 물음에 주신이가 경수를 보면서 반짝이는 눈동자로 크게 대답했다.
“응.”
나는 당혹스러움에 주신이에게 질문하는 경수를 타박하는 눈초리를 보냈지만, 못 본 건지 주신 이에게 집중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멋있어요.”
“하···이 꼬맹이 취향이 한결같네.”
“응?”
“뭐가?”
나와 종혁이의 반문에 경수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뭐긴 자기가 좋아하는게 한결같다는 거지.”
“···?”
“저번에 기주 좋다고 할 때도 멋있어서 좋다고 했잖아.”
“아···.”
지루했던 행사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느라 우리 차례가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종혁이 어머니가 우리를 잡아 일으키면서 조용히 말했다.
“다음이 너희 차례야 호명하면 다 같이 나가면 돼···.”
“네.”
“다음은 용감한 시민상 수여가 있겠습니다.”
평소에는 용감한 시민상 수여로 간단하게 끝낸다고 들었다. 그런데 연말에 경찰 행사와 합쳐지면서 규모가 커진 느낌이었다.
번쩍이는 플래시 사이로 내 이름과 친구들 이름이 불리자 우리는 우르르 몰려나가서 단체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용감한 시민상 받기는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이곳저곳 끌려다니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끝난 것 같았다.
우리를 끝으로 행사가 끝났는지 처음 행사 시작 전에 봤던 사람들이 나타나 정리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저기···행사장 치우기 전에 부모님하고 사진 찍고 싶은데 잠깐만 괜찮을까요?”
내 말에 행사장을 정리하던 사람 중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뭐라고 말하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단상은 가장 나중에 치우겠다면서 멀어졌다.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오히려 고맙지···.”
“네?”
“우리 기주를 무사히 구해줬잖아. 이런 상으로 끝낸다는 게 아쉽지···.”
“어···기주를 아세요?”
“당연하지···. 지금은 부총경이지만 그전에 현장에서 뛸 때 같이 일했었거든. 그때 꼬물거리던 기주가 초등학생 입학식 때 보고서 얼마나 기특하던지.”
“기특해요?”
“경찰이라고 매번 집에도 거의 안 들어오는 아빠를 원망도 안 하고 씩씩하게 컸던데···.”
“아···.”
“그런 기주가 납치당했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머리에 열이 올라서 메뉴얼이고 뭐고 생각도 안 나더라고. 그런 기주를 구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고 있었지.”
“부총경님 안남시에서는 유명하셨나 봐요?”
“현장에서 일한 경찰이 수뇌부가 되기 어려운데 그 어려운 진급시험도 척척이고 유명했지.”
“그렇구나.”
“오늘도 서울 경찰청에서 행사가 없었으면 직접 주관 하셨을 거야. 나한테 특별히 부탁하고 가셨거든.”
“하하···.”
나와 종혁이 경수가 과한 칭찬사례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사이에 부모님이 단상에 올라오셨다.
“아빠?”
경수 어머니가 잠깐 안 보인다고 생각했더니 경수 아버지를 모시고 오신 것 같았다.
“이런 좋은 일에 아빠가 빠지면 안 되는 거죠.”
경수 아버지는 무표정으로 경수를 바라봤지만 나는 단상에 올라오기 전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억지로 끌어내리는 경수 아버지의 모습을 봤다.
‘경수 아버지도 참···.’
빨갱이 딱지가 붙은 자신의 아들이 경찰에게 상을 받는다는 것에 무언가 심기가 복잡하신 것 같았다.
다들 자리를 잡고 서자 우리에게 폭풍 같은 칭찬을 해주던 경찰이 사진을 찍어주고는 자신도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인상되면 보내드릴게요. 안남시 경찰서 누구라고 보내드릴까요?”
“여기 명함하고 사진 민원실에 맡기면 알아서 찾아가게 연락 올 거야.”
‘안남시 지방경찰청 생활지도과 조수만 경위’라고 적힌 명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