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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90화 (90/205)

<90화 거짓된 사도 함정 2>

사무실에서 이상한 제의를 해온 통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정실장이 주의를 당부했던 내용이 이제야 기억났다.

‘정 실장이 만약 외진 곳으로 나를 끌고 가면 먹고 마시는 걸 주의하라고 했지?’

정 실장의 말은 노파심이 아니었다. 많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놈들은 변호사나 검사 아니면 경찰 등에게 사적으로 접근해서 독이 든 음식을 먹게 한다고 말했다.

독이 든 음식은 진짜 독이 든 음식이 아니고 마약을 탄 음료나 음식을 먹게 함으로 중독시켜서 목줄을 채워 자기네들이 이용해 먹거나 아니면 수면제로 나체사진 등을 찍어서 협박하는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변호사는 정신이 멀쩡해야 하니 보통 수치심을 가하는 사진을 찍어서 협박한다고 들었다.

사내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나방이 되어 버렸다.

긴장 때문일까 아니면 운전수가 자신에게 보여준 충격적인 사진 때문이었을까.

저 큰 덩치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데도 눈치를 못 챘다는 사실에 사내는 다시 한번 손안에서 땀이 났지만 모르는 척 주머니에 땀을 딱 아내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건강한 성인 남녀가 서로 만날 수도 있는 겁니다.”

“호오···역시 말발이 좋은 친구야. 그렇지 않나?”

보석 낀 중년 남성은 사내의 호기로운 대답에 흥미롭다는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뭐···우리로서는 새로운 친구를 만날 때 반갑다는 인사 정도 일세. 뭐, 보다시피 쉬운 직종이 아니잖나?”

“···.”

사내는 어금니는 꽉 다물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이 수모는 꼭···.’

사내는 분노하고 있었지만 사내의 반응이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성에게는 더 좋게 보였던 것 같다.

“우선 정신 차리고 속이 말이 아닐 테니 간단한 식사부터 들지.”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따뜻한 죽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갖은 나물 반찬이 깔려서 사내의 뱃속을 자극했지만 사내는 수저를 들지 않았다.

“변호사 선생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식사인데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구만. 어쩔 수 없지. 치워라 그리고···데려와.”

사내는 보석 반지를 낀 중년남성의 날카롭게 웃는 웃음에 긴장하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제와 달리 긴장하지 않았다는 듯한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사내를 구원하듯 멀리서 들리는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데려왔습니다.”

방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예감할 수 있을 정도로 푹 젖은 남자가 급하게 물기를 닦고 왔는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서재의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았다.

“앉지. 이쪽은 허대포하고 하네. 여기는 네 담당 변호사다. 허심탄회하게 말하면 된다.”

보석 반지를 낀 사내의 말에 허대포라는 남자는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크게 외쳤다.

“제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네?”

사내는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성의 태도만 보아도 심상치 않은 사건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지만 면전에서 확인한 사건이 살인 사건이라는데 놀라고 말았다.

사내의 당혹 섞인 반응에도 대포라는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같은 말을 했다.

“제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지금···그러니까···살인을 자백하시는 겁니까?”

“네···.”

사내는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이내 보석을 낀 중년 사내와 대포의 뒤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서 있는 덩치 있는 운전수를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 그저 살인을 했다고 말하는 대포라는 남자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정상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변호사라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신감정을 요청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진정이라도 된 다음에 변호 준비를 해야겠지만 지금의 상황마저도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가 만들어낸 상황일 것이다.

사내는 이렇게 끌려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데서 분노했지만 그건 피의자라고 자백하는 대포라는 남자의 억울할 수 있는 상황에 공감해서가 아니었다.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자의 손에 만들어진 지금의 상황에 놀아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분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처음 통화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저 정상적인 변호가 진행될 경우에 물어봐야 할 간단한 몇 가지 사실만 짚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호사 선생. 아쉽게도 이 동생이 큰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는단 말일세.”

“그 말씀은···.”

“이번이 마지막 면담이라는 걸세.”

“···허···하지만 이 친구가 자수를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속 수사를 받게 될 텐데요.”

“아쉽게도 내 동생이 말이야. 생긴 것하고 다르게 낯을 가린다지 뭔가.”

허대포라는 남자는 황소도 잡아서 매칠 것 같은 큰 덩치와 그런 덩치와 다르게 풀린 눈동자를 내려다본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 답하고 말았다.

“네?”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이 앞에 있으면 긴장을 해서 질문을 하면 질문을 이해를 못 해. 그래서 대답도 못하는 거지.”

“자수하고 나면 무조건 묵비권이라는 말씀인가요?”

“원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어쩌겠나. 내 동생이 그런 성격인 걸 어쩌겠나.”

“그럼···그 부분도 감안해서 변호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이렇게 말이 통하는 변호사 선생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내가 아주 운이 좋군.”

“저 말고도 많이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글쎄···.”

사내의 질문에 가죽 재질의 시가 케이스에서 시가를 꺼내 들자 대포의 뒤에 있던 운전수가 언제 움직였는지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성의 시가 끝을 나이프로 잘라냈다.

휘익.

언제 칼을 꺼내 들었는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사내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면서도 최대한 담담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면서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변호를 위해서 가봐야겠습니다.”

“그래. 바쁜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아두면 안 되지."

“그럼···.”

“가는 길은 여기 이 친구가 도와줄 거야. 보기보다 참 여러 가지 일을 능숙하게 해준단 말이지. 운전만 아니라···.”

“···.”

“칼 솜씨도 좋아. 이렇게 힘줄 곳도 없는 허공에서 시가 끝을 이렇게 깨끗하게 날려버리는 건 웬만해서는 힘들거든.”

“···네···솜씨가 좋겠네요.”

“그렇지만 운전은 더 깔끔하지. 언제 어떤 순간에도 판단이 아주 빠르거든.”

“···.”

“그리고 보니까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가 얼마더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OECD 상위권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 참 운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단 말이야. 하지만 난 그런 운이 없을 일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내는 보석 반지를 낀 중년 남성의 호의로 가장한 명백한 협박을 등 뒤로 하고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앞에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내 사무실 위치 정도는 이미 파악했다는 건가?’

사내는 멀어지는 검은색 차량의 번호판을 봤지만 이내 의미 없다는 듯 머릿속에서 지우면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정 실장이 일어나서 외쳤다.

“변호사님 도대체 연락도 안 되고 어제 어떻게 징계처리되었는지···.”

“하아···정 실장 오늘은 내가 도저히···말할 힘이 없으니까. 이 사건이나 좀 알아봐.”

“이건···살인 사건 자백이네요? 이런 사건을 어디서···.”

“어디긴 어디겠어. 납치당해서 받아온 사건이지.”

“네? 그럼 하루 동안 연락이 안 된 게···.”

“맞아. 나 작업당한 것 같아.”

“네?”

“얼굴도 모르는 여자하고 이상한 사진 찍혔더군.”

“뭐···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외진 곳에 가면···.”

“조심한다고 했는데 놈들이 작정하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건···.”

“그럼 살인 자백을 한 사건을 승소해 달라는 겁니까? 자백까지 하고?”

“그건 아닌 것 같아. 자수한 거니까 징역 기간을 좀 줄여달라는 정도인 것 같아.”

“그런데 누굴 죽였다는 겁니까? 몰라 나도. 기분 나빠서 아무나 붙잡고 죽였는데 증거 인멸까지 다 하고 나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자수했다고 하더군.”

“그건···.”

“나도 알아. 그냥 희생양으로 던져 넣는 거지. 그런데 자수하는 녀석도 이미 눈이 풀린 게 작업당한 눈치야. 우리도 적당히 놈들이 원하는 데로 박자 맞춰주면서···.”

“이대로 끌려다니면 끝이 안 좋을 텐데요.”

“그러게···나 말고도 변호사 여럿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지 말을 안 해주더라···.”

“이미 다 외국으로 날랐다니까요.”

“어떻게 도망갈 방법이 없을까?”

“결혼하세요.”

“뭐?”

“사진 찍힌 그분하고 결혼하라고요.”

“무슨 헛소리야?”

“놈들이 작업용으로 들이민 여자면 얼굴은 예쁠 거 아닙니까?”

“···.”

“뭐 대답 들은 걸로 치겠습니다. 그런데 놈들이 다행히 약은 안치고 여자로 후린 것 같은데···.”

“뭐?”

“약 먹고 뽕쟁이 된 변호사는 자기네들도 필요 없을 테니까요.”

“중독도 시킨다고?”

“그러니까 최악은 벗어났네요.”

“그런데 왜 갑자기 결혼이야.”

“그 사진에 나왔던 분하고 결혼하면 그야말로 연예 기간 때 도촬 당한 거고. 사적인 사진을 뿌리는 놈들이 되는 거지만···.”

“그래도···.”

“뭐, 변호사님이 결혼 시장에서 돈 많은 여자분 찾는 건 알지만···.”

“아니거든. 그쪽에서 연락 오는 거지···.”

“뭐···그렇다고 치고요.”

“하아···그건 좀 더 고민해보자고. 정 끌려다닐 것 같으면 그렇게 돌파하는 것도 방법이겠지.”

“변호사님 그렇게 달변이면서···요즘 왜 이런답니까?”

“그러게. 뭔가 나를 도와주던 우주의 기운이 안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 상황에서 농담이 나옵니까?”

“하하···진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어쩌라고···. 우선 오늘은 좀 쉬어야겠어···. 나 먼저 들어간다. 그 살인 사건 좀 더 조사해봐. 아무래도 이놈들도 이 사건 제대로 파기 전에 덮으려고 용을 쓰는 것 같은데 우리도 무슨 패라도 들고 있어야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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