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84화 (84/205)

<84화 A와 B의 사이 5>

달칵.

어두운 거실.

‘오늘 이사하느라 다들 피곤했겠지.’

나에게도 고단한 하루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으로 내려와 인적이 드문 공원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건다.

“네. 김 씨 아저씨 저예요.”

“부탁드린···차량 넘버 ××××···.”

“지금 출발했다고요?”

“아니요. 괜찮아요. 시내에서 벗어난 것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 네.”

아직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조용히 집에서 내려온다고 했지만, 비상계단에 커지는 불빛을 보고 누군가는 나를 봤을 수도 있다. 나는 파란색 학교 운동복을 입고 나온 상태에서 공원 화장실에 들어가 검은색 후드에 검은색 작업 바지를 입고 나왔다.

‘아직 공원에는 CCTV가 없어서 다행이네.’

인적을 피해서 공장까지 달리기 시작한다. 오늘 혹사당한 허벅지 근육이 오랜만에 통증을 호소하지만 무시하고 달린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지금 악연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

숨을 몰아쉬면서 쓰고 있는 마스크를 다시 한번 고쳐 쓴다.

공장에는 이미 검은색 승합차가 도착한 상태였다.

엔진이 있는 쪽을 만져보니 장갑을 끼고 있는데도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옆의 다른 승용차는 승합차가 도착하기 전에 도착했는지 엔진이 식어 있었다.

‘이 실장 차는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군.’

끼익.

오늘 공장에서 탈출할 때 뜯어놓은 철판을 조심스럽게 들어냈다.

비밀장소는 콘크리트 구조물이었지만 그 외 공장 뼈대는 패널을 엮어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 공장에서 탈출할 때 일부러 패널 하나를 시간 들여서 뜯어놓았다. 조심스럽게 들어내고 안쪽의 소리에 집중했다.

‘역시···이 실장 말고···다른 놈이 있나?’

공장 입구에서 승합차 말고 다른 차량이 있었던 걸 보고 예상했던 대로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 자식 나하고 장난치냐?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수작 부린 거지?”

“너야말로 돈 어디로 빼돌렸어?”

두 명의 남자가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대치하고 있었다.

‘이 실장? 한 놈은 누구지? 통화했던 상대방인가?’

내가 ‘금고’를 통해 챙긴 고액 엔화를 챙기기 위해서 왔다가 서로 의심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보였다.

이 실장과 상대 남자 둘 다 어두운 밤 공장의 불빛이 먼 거리까지 흘러나가 목격자가 생길 걸 우려했는지 공장의 불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공장 안 비밀문이 활짝 열려있고 비밀공간 안쪽의 불빛으로 흐릿하지만 대치하고 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무언가 차갑고 묵직한 어두운 묵광을 발하고 있었다.

두 명이 서로 거리를 두고 무엇인가를 상대방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저건 카빈 소총?’

저 총에 내가 맞은 건가?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총을 개조했는지 소총치고는 짧은 손잡이를 한 상태로 서로 겨누고 있었다.

‘같은 사람은 개조한 건가?’

카빈 소총의 나무 손잡이를 떼어내고 붙인 손잡이 모양이 동일해 보였다.

멀리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불빛에도 반사광을 보일 만큼 관리가 잘 한 것으로 보였다.

‘저 손잡이···상아를 조각해서 붙인 거야? 배보다 배꼽이 더 클 텐데?’

두 명이 동종의 총을 소지한 걸 보면 같은 조직에 속한 건가? 아니면 둘이서 조직을 배신?

아무도 답해주지 않을 질문만이 계속 쌓여간다.

“너···이 자식 약속시간 보다 먼저 도착해서 챙기다가 나한테 들킨 거 아냐?”

“무슨 헛소리냐. 네 녀석이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청소하려고 먼저 온 것 뿐이야. 피바다 청소하는 게 쉬운줄 알아? 그리고 내가 도착했을 때 시체도 피도 없었다고 네가 나한테 구라친거 아니냐고.”

상대의 외침에 내가 쓰러져 있을 방향을 바라보는 남자가 뒷걸음 치면서 당혹성을 내뱉는다.

“무슨 헛소리야 내가 분명 여기서 한 놈···어···.”

패널을 조심스럽게 들어내고 바라보는 시야에서는 그 둘의 얼굴까지 확인할 수 없었다. 뒷걸음치면서 당혹성을 내뱉는 목소리···

‘저쪽이 이 실장인가?’

“너 이 새끼 약 치다가 약쟁이 된 거 아냐? 돈 어쨌어. 그거 아니면 내가 여길 왜 와?”

“미친 새끼 네가 먼저 와있었으면서 무슨 헛소리냐.”

“너야말로···.”

생각이 깊어지기도 전에 공장을 공명시키듯 총성이 들렸다.

탕.

털썩.

이 실장이 대치하면서도 총을 쏘는 걸 망설이던 상대에게 겨누던 총을 먼저 당겼다.

“쿠···쿨럭···시발···진짜···쏘면···.”

이 실장과 상대편 남자 둘 다 공장의 불빛을 키우지 않아 시야가 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장의 총구에서 작지만 강렬한 불꽃과 함께 상대 남성이 쓰러지는 소리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건가?’

“지랄···내가 안 쏘면? 넌?”

이 실장이 든 소총이 상대방에게 명중한 것으로 보였다. 상대방도 이 실장을 향해 겨누던 총구를 들려고 했다.

하지만 복부 총상 때문에 힘이 부족한 듯 총구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애원하듯 외치기 시작한다.

“그만···진짜 죽겠어. 내가 아니면 시체 처리하고 밀항은 어떻게 하게···.”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미친···새끼···.”

“시발···꼬이려니까 별개···나한테 총구 겨눈 놈 뒤에 두고 갈 생각 없으니까.”

쾅.

공장의 먼지 날리는 답답한 공기가 다시 한번 화약 특유의 향이 깔린다. 이전의 소리와 다르게 폭발적인 소음이 발생했다.

“으으악···.”

아무리 관리를 잘했다고 해도 카빈 소총은 오래된 구식 총이다. 거기다가 불법개조까지 했다면···

‘두 번 쏠 때까지 버틴 게 대단한 거지.’

총열이 터진 것처럼 구부러진 상태로 이 실장이 피범벅이 된 한쪽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파편이 운 나쁘게 얼굴로 향했는지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이 실장이 바닥에 쓰러지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확인한 상대편에 있던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실장을 상대하던 남자는 복부를 한 손으로 잡더니 장기를 쏟아낼 것 같은 기침 소리와 함께 지팡이처럼 카빈 소총을 짚더니 끌면서 천천히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이 실장 쪽으로 향했다.

‘설마···방탄복?’

근거리에서 총상을 입어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지만 그 이상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카빈 소총이 터질 걸 예상한 건가?’

그리고 보니 남자는 이 실장을 자극하면서도 먼저 발포하지 않았다.

‘통화하면서 이 실장이 누군가를 쏴서 죽였다는 걸 알았는데도 먼저 사격하지 않았다는 건···.’

“젠장···두 발이나 버틸 줄은 몰랐는데 쿨럭···.”

“으으···사···살려줘···.”

“그래···. 살려줄 테니까 돈 어디다 숨겼어?”

“아···안 숨겨···.”

“으아아악···.”

“지금 이 상황에서도 헛소리가 나와?”

이 실장의 다친 손을 들고 있던 카빈 소총으로 무자비하게 짓누르면서 남자가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붉게 물든 바닥 위로 다시금 덧칠하듯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은 공장이 아닌 도살장 같은 냄새가 피어나는 것 같다.

“아니··아니···.”

“총상 시체가 있다고 거짓말이나 치고 돈 치우려고 시간 벌려고 한 거잖아.”

“으윽···아니···.”

“자꾸 거짓말하면 이대로 병신 만들어서 중국 가는 배에 실어버린다?”

“으···ㅊ··차라리···주···죽여···.”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 돈 어디 있어.”

“크으···차···차 안···.”

이 실장을 고문하던 남자는 복부를 한 손으로 잡더니 지팡이처럼 카빈 소총을 짚으면서 허리를 폈다. 공장 밖 승합차 문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가.”

후욱 후욱.

이 실장을 고문했던 남자의 분노가 느껴질 정도로 큰 심호흡 소리와 함께 다시 이 실장이 있는 곳으로 뛰듯이 다가왔다.

“누굴 바보로 알아? 감히···나를 가지고 놀아?”

“···크··크큭···.”

“이 미친 새끼가···.”

미친 듯이 이 실장을 폭행하던 중 이 실장의 품 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공장 바닥으로 튀어나왔다.

‘휴대폰?’

“너 이···.”

“크크큭···내가 병신 돼서 끌려가느니···차라리···.”

남자는 이 실장에게 극도로 분노한 것 같았지만 이 실장의 휴대폰을 보고는 잠깐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빠르게 공장에서 벗어났다.

공장 밖에서 이 실장이 끌고 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승합차를 타고는 바로 급발진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제는 비명을 지를 힘도 없는지 신음하면서 바닥을 구르고 있는 이 실장을 향해 다가갔다.

저벅저벅.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 다가온다는 걸 알았을까?

내가 아닌 방금 급발진으로 공장에서 도망가듯 사라져버린 남자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천하에 리시엔쩐, 내가 병신 돼서 본국에 끌려가 짐승 새끼 마냥 팔려나갈 것 같아? 차라리 여기···여기서 잡히면···.”

나는 떨어진 이 실장의 휴대폰을 손으로 들어 통화종료를 누르면서 말했다.

“여기서 잡히면?”

“너···넌?”

고통 속에서도 발작하듯 놀란 이 실장이 나를 향해 두렵다는 듯 한쪽 눈을 찡그리고 바라봤다.

“어떻게···.”

“질문할 위치의 사람은 나라고 보는데···.”

‘내가 그대로 이 실장의 손에 죽었다면 내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외할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고도 범죄수익이 아니냐고 물어뜯기지 않았을까?’

“너···넌···분명히···.”

“네가 쏜 총에 맞았다고?”

피가 부족한지 점차 안색이 파래져 가는 이 실장을 두고 나는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무언가 내 안의 소중한 것을 상실해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저 지켜보기만 하자 온몸이 피투성이인 상태에서도 떨리는 손으로 내가 던져놓은 자신의 휴대폰을 줍기 위해 사력을 다해 기어가는 이 실장의 모습이 보였다.

‘살고 싶다 인가?’

나는 차분하게 이 실장이 자신의 휴대폰을 잡는 걸 보고는 발을 들어 이 실장의 손목을 밟았다.

“아악···.”

평소에도 내 힘을 생각하면 고통스러웠을 텐데 내 발에 밟힌 이 실장의 손은 총열을 터질 때 난 상처가 내 힘에 눌려 더 벌어지면서 코끝을 괴롭히는 생생한 피비린내가 신선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흘린 피바다 속에서 폐가 잠기면서 느끼던 지독한 피비린내와 이 실장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의 피비린내는 전혀 다른 감상을 남겼다.

내 피 내음은 지독하게 따뜻하고 숨쉬기 어려워지는 순간은 미친 것 같지만 순간 황홀하기까지 했었다.

‘더는 더러운 삶 속에서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삶을 선택했다.

회귀 전에도···

현재도···

그런 내 피 내음과 다르게 이 실장의 피는 비릿하고 질척거리는 그저 붉은색 유화물감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실장의 피···공장 바닥을 적셔가는 흐르는 붉은 피······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웠다.

후웁···후···

나는 삶을 원하면서도 누군가의 삶을 뺏고자 한다.

후읍·····후···으···

가슴 깊은 곳 심장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깨어지고 잘게 조각나는 것 같다.

아릿한 통증이 올라오지만 계속된 통증에 마비가 되어버린 것처럼.

아니 익숙해지는 것처럼.

이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상을 알 수 없는 미련과 그런 미련한 내 행동에 대한 어리석음이 내 발밑에서 나를 끌어당기듯 점점 다리에 힘을 주게 만든다.

빠각.

무언가 짓눌리다 못해 바스러지는 듯한 소음.

깊은 바닷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허우적거린 것 같은 감상과 함께 등 뒤로 소름이 올라오듯 긴장감이 올라왔다.

이 실장의 손목에서 나는 파열음에 현실 공간으로 인식하고 처음 호흡하는 것처럼 숨을 가다듬는다.

후우···

‘후··자칫 잘못했으면···여기 누워있는 건 나였어.’

오늘 이 실장에게서 죽을뻔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마음을 다잡는다.

‘재생이라는 능력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실혈로 이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나는 내 발아래서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는 이 실장의 몸부림을 내려다봤다.

숨을 내쉬기조차 힘들었던 방금과 달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감흥이 안 드는 건 내가 어딘가 망가진 걸까?’

나는 무거운 기계에 끼인 것처럼 꼼짝 조차 못 하고 손가락만 꿈틀거리고 있는 이 실장의 붉게 물든 손을 보면서 생각했다.

손끝이 저릴 정도로 주먹을 쥐면서도 무언가를 잡다가 아쉽게 놓친 것처럼 다시 손을 펴서 빈손을 들여다보게 된다.

자조 어린 한숨이 끝나기도 전에 이 실장의 단말마와도 같은 꿈틀거림이 끝났다.

이 실장이 그토록 손에 닿고자 했던 휴대폰의 재다이얼을 이 실장의 검지 손가락으로 누른 다음 바로 앞에 내려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