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A와 B의 사이 3>
사람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감정적으로 진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선택일수록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지금 적극적으로 실행되는 괜찮은 계획이 다음 주의 완벽한 계획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저지르고 보라는 말이지.’
아니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A와 B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을 보였다.
그 결과가 내 가족과 친구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내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내 적이 이성적일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오류.’
내 적은 찌질하고 비겁하며 도저히 갱생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정의의 심판이 단호하게 사형을 선고한 거겠지.’
거짓의 모든 것조차 1단계 봉인만을 허용했던 업을···
‘어떻게 보면 대단한 업적치를 모은 거네. 미친 쓰레기 놈들···.’
모르고 지나갔더라면 그랬다면 좋았을까?
모르겠다. 지금 하는 생각마저도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없다.
그저.
‘저질러 버렸다.’
쓰윽.
어제와 같이 공장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다른 점이 있다면.
끼이익.
어제와 다르게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 듯 조용히 들어섰다.
공장의 하나뿐인 출입구가 되는 공장문을 손수 잠금장치까지 걸어가며 닫았다.
‘어제 주위를 돌아본 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철컥.
오감을 최대로 키운 나에게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될 정도로 큰 소음이었지만 공장으로 들어선 찐따 패거리의 주의를 돌릴 정도의 소음은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판을 키우려고 하는 순간.
내 머리를 잡고 누군가 손을 넣어서 뇌를 주무르듯 당기는 고통에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무방비하게 쓰러질 수 없었기 때문에 어금니가 부러질 듯 이를 악물었다.
파각.
이가 갈리는 듯 어금니가 부서지는 느낌과 함께 눈앞이 깜깜해졌다. 황홀함. 어지러움. 구토감. 그러면서 정신이 멍한 느낌이 들더니 불이 덴 듯 볼이 아파졌다.
“미련한 놈. 조용히 학교만 졸업해도 내가 내 앞에 좋은 것만 깔아줄 것인데 그새를 못 참고 일을 벌여?”
“죄송···.”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이번 일은 조용히 덮기 힘들다. 한동안 외국에 나갔다 와.”
“아빠···.”
“아빠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차라리 제가 자금···.”
볼에서 불이 난다고 생각한 순간 내 발치에 재떨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스치고 지나간 듯 볼에서 스미듯 피가 났다.
“미친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저는 그냥···.”
“평생 밝은 양지는 밟지도 못하고 돈이나 세고 다니는 쓰레기 같은 짓이다. 그런 걸 내 직계가 하겠다고?”
“···.”
“이 실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도련님이···.”
“설마···약은 아니지?”
“···.”
“이 미친 새끼 넌 내 자식도 아니야.”
“그럼 저 자금관리 시켜주시는 거죠?”
“미친놈···넌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내 아들만 아니면···.”
‘우욱···.’
속에서 매스꺼움과 함께 구토감이 올라왔지만, 공장 안에 조용히 침입한 상태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야 했다.
‘뭐지 이 자식? 자금관리라고? 설마 그런 걸 아버지하고 대화하는 순간까지 약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귀속에서 벌떼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순간이 지나자 그나마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가 가라앉았다. 공장 특유의 습기 가득한 축축한 흙을 잔뜩 쥐어짜듯 잡고 있는 내 모습이 인식되었다.
찐따와 그의 아버지 대화에서 잠깐 등장했던 이 실장···
‘저 운전수?’
어제 부지불식간에 공장에서 만났을 때 다른 덩치들은 나에게 덤빌 때 불리하다 싶으니까 찐따 옆으로 피했던 새끼였다.
‘혼자만 다치지 않아서 오늘 운전수 노릇을 한 건가?’
이 실장이라는 운전수의 동선을 살피자.
어제 덩치들과 싸울 때는 미쳐 보지 못했던 공장 정경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었다.
‘이상한데 불법적인 일을 하는 놈들이 퇴로를 안 만들어 놨다고?’
어제는 미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덩치들의 보폭을 기준으로 눈대중으로 거리를 제기 시작했다.
밖에서 공장 주변을 둘러볼 때와 다르게 공장 안쪽은 공간이 협소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밖에서 확인한 공장 넓이와 맞지 않아. 숨겨진 공간이 있는 건가?’
띠리릭.
전자패드를 누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장 벽면 한곳이 전면으로 개방되고 있었다.
쿠우우웅.
“이거마 아니며···펴하게 벼워네 이쓰거데···.”
찐따의 괴로워하는 음성과 함께 이 실장이라는 사람이 대답했다.
“주사 한 방이면 아픈 건 기억도 안 나실 겁니다. 도련님.”
“그거때메 어거지로 오꺼자낭.”
“그럼 이 친구들은···.”
“애드도 나저 그래야 히믈 쓰지.”
“알겠습니다.”
‘저기가 숨겨진 공간인가?’
이런 내 의문에 응답이라도 하듯 공장 특유의 철커덩하는 소음과 함께 벽 한쪽이 완전히 열렸다.
문이 열려도 안쪽을 쉽게 확인할 수 없도록 고무 패딩이 내려져 있었다.
‘어제 굴러다니던 고무 패딩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겠네.’
나는 위기의식보다는 머릿속을 끓어오르게 하는 분노만이 내 생각을 한쪽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는 계획 없이 찐따 패거리에게 돌진했을 것이다.
그런데 찐따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나에게 선사해줬다.
나는 분노로 타오르듯 뜨거웠던 머리가 급격하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찐따는 뭐 하는 놈이지? 진짜 머저리인가? 아버지가 분명 고위직이라고 했는데 꽃길을 깔아준다는 것도 걷어차고 더럽고 위험한 일에 뛰어든다고?’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은 상황에서 소란스럽던 비밀문이 열리고 찐따 패거리가 전부 들어가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어두운 공장 안 비밀문에서 한사람이 나타났다.
쿠우웅.
비밀문이 닫혔다.
찐따 패거리 중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이 실장만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 실장이라는 사람만 검은색 낚시용 가방을 어깨에 메고 공장 안의 비밀문 밖으로 나왔다.
‘저건 가방? 들어갈 때는 빈손이었는데 안에서 들고 나온 건가?’
이 실장이 유일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공장 입구로 다가오자 나는 숨소리조차 죽였다. 무언가 불안한 듯 좌우를 살피지만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잠겨있는 문을 보더니 잠깐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문을 열고 주차되어있는 차량 쪽으로 향했다.
‘설마···눈치챘을까?’
나는 공장 안 유일한 광원인 형광등을 매달아둔 철재 구조물에 매달려 이 실장이 공장 밖으로 향하는 소리를 들었다.
공장 밖에 주차된 차량이 출발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조심스럽게 매달려있던 자세에서 고양이처럼 공장바닥으로 내려섰다.
‘육체가 강화되니깐 이런 묘기도 가능하군.’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운동능력을 벗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매몰되기 전 닫힌 비밀문 앞으로 향했다.
숨어서 지켜보던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비밀 문이 다시금 열리기 시작했다.
쿠웅.
눈으로 확인하는 데 방해를 하던 고무 패딩을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 몰아치는 한겨울 날씨보다도 차가운 냉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들 뭐 하는 거지?’
이 거리라면 아니 내가 비밀 문을 여는 소리를 들었다면 이미 나를 적대시해야 하는 찐따 패거리들이 전부 실신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의문을 품고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모습에 나는 섬찟함을 숨길 수 없었다.
탕.
공장을 둔중하게 울리는 소음과 함께 매캐한 화약 냄새가 순간 휘발되듯 사라졌다.
“윽···.”
“한 방에 처리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이게 맞추기가 어렵네.”
“허···ㅋ···.”
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코끝을 아릴 정도로 넘치는 비릿한 피 내음에 그제야 내가 총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너 어제 그 새끼지? 운도 없는 놈이네.”
빠져나가는 피만큼 무거워진 눈꺼풀 마냥 나는 몸을 돌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자빠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이 목소리···이 실장인가?’
“창고 문 닫으라는 잔소리를 안 하면 닫을 줄도 모르는 머저리들인데 잠금장치까지 했다고? 바로 의심이 들 수밖에 없지.”
“커헉···.”
칼로 뱃속을 휘젓는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이 실장이 내 총상을 자기 신발로 짓밟고 있었다.
“뭐 그런 머저리들로 만든 건 나지만 가끔 피곤하단 말이야. 어제 일처럼 말이지. 그런데 그런 머저리 덕분에 쥐새끼를 잡았네?”
“쿠···쿨럭···너···.”
총상을 입을 때 폐까지 손상이 있었는지 숨을 쉬기 힘들면서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 피가 목구멍에서 넘어왔다.
목에서 바로 넘어온 피비린내로 온몸이 피바다 속에 잠겨버린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뭐, 조용히 있었으면 내가 알아서 쓰레기들 청소도 하고 겸사겸사 내 몫도 챙기고 그러려고 했는데 왜 이런 변수가 끼어드는 건지···.”
고개를 돌려서 노려보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피가 부족한 상태였다.
“깔끔하게 약물 중독자들 파티에서 오남용으로 사망하다 이렇게 끝내려고 했는데···말이야.”
내 등을 뜨거운 총구로 찌르면서 불만을 표출하듯 이 실장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너···뭐, 이제 죽어가는 놈한테 말해봐야 소용없지.”
이 실장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낸 듯 통화음과 함께 전화통화를 했다. 기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거리가 되어서인지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야. 여기 돈 말고 총상 시체도 하나 처분해야 할 것 같은데···.”
“뭐 나도 일이 이렇게 꼬일지 몰랐지. 총? 나도 깔끔하게 끝내려고 했지. 그런데 어디서 나타난 놈인지 ×새끼가 좀 날아다니더라.”
“뭐? 네가 그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나한테 선택권이 없었다고 네가 자랑하던 칼잡이도 맥도 못 추던데···뭐. 내가 지금 헛소리할···목숨 걸고 벌인 거···서로 한몫 잡아야지.”
“문 차관?”
“버린 자식이나 마찬가지라서···오히려 돈 찾는다고 혈안이 될 거야? 내가 몇 년간 약 좀 쳤지. 머저리 새끼가 멍청해지면서 좋아하던데?”
“그래, 혼자서 옮길 양이 아니니까 지금은 사람들 눈에 띌 거고 약속된 시간까지 오라고···나도 그 사이에 기름칠 좀 하고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