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A와 B의 사이 2>
‘그런 일이···그래서···언론 쪽에···관심이 많았구나···.’
현진이와 종혁이의 대화를 듣는 것처럼 서 있었지만 나는 감각을 제대로 조율하는데 진땀을 빼고 있었다.
대백공에게 받은 첫 번째 술법이 점차 강해지면서 술법에 빨려갔을 때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내고 나면 휩쓸린 감정에 내 자아가 흔들리고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건조하게 바라보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이 감각의 조율하는 느낌이 어려워서 쉽지 않았다.
‘최고 속도로 달리는 레이싱 카를 원하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 미세하게 틀면서 조율하는 핸들 느낌인데···.’
잠깐만 아차 하는 순간에도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감각이 확장되어 버리는 경우가 생기 버리곤 했다. 심적으로 지친 상태였지만 티를 내지 않고 현진이와 종혁이 대화가 끝나가자 원래 물어보려고 했던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송태연이라고 알아?”
“아무래도 너도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지?”
“내가?”
“넌 사건 관계자나 다름없잖아.”
“뭐?”
‘어제 송태연하고 만난 걸 벌써 알았다고?’
내 당혹스럽다는 반응에 더 놀란듯한 현진이 말했다.
“저번에 유괴 사건에서 그 형하고 엮었다고 소문이 파다하던데?”
‘다행히 어제 사건은 아직 모르나 보군···.’
“너는 그 송태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
“그 형은 날 모르지 나야 신문배급소에 있다 보면 별의별 소리를 다 듣게 되는데···자주 언급된 사람이라 심적으로는 친한 느낌?”
“그 송태연 아니 형이라는 사람 보육원 출신이지만 태권도 유망주였다는데 왜 갑자기 퇴학까지 당한 건지 알아?”
종혁이가 덧붙였다.
“대충 도는 소문이 알고 싶은 거야. 아님···내 사견이 섞여도 좀 깊게 알고 싶은 거야?”
“물론 후자지···.”
“대충 도는 소문은 그 형이 태권도 유망주로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 잘 다니다가 퇴학 당했다까지 일 거야.”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사건이지.”
“뭐?”
“그 형이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힘이 없어서 가해자가 된 거야. 그래서 퇴학당하고 뭐 다리도 다치고 나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태권도도 강제로 그만두게 된 거지.”
“어떻게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 건데?”
“그 형하고 악연으로 엮은 사람이 문재아라고···.”
“유명인이네.”
종혁이의 말에 나는 되물었다.
“뭐? 문재아?”
내 질문은 현진이 대답해줬다.
“유명해. 동급생은 물론 상급생도 계속 괴롭히고 그랬다고 하던데···그나마 집에 돈이 많아서 돈은 안 뜯었다고 하는데 하는 짓이 돈을 뜯어내는 것보다도 질이 나쁘다고···들리는 소문 중 절반만 사실이어도 최소한 소년원?”
“이제 성인이니까 감옥 가야지. 그런데 아쉽게도 소문뿐이라서 말이야. 사건을 잘 덮는 건지 아니면 정말 소문인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겠지.”
‘정말 죽일 놈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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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 나는 평소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종혁이와 함께 가 아닌 혼자 걷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입에 쓴맛이 났다.
‘결국 이사할 예정이기는 했는데···.’
‘나는···.’
저벅.
저벅.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힘을 가지자···사람이 변하는 건가?’
오늘만 해도 문재아가 이 세상에 해악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한 것 아닐까?
어제 송태연을 구한 공장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발걸음이 자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 피해서 다니는 건 이제 거의 습관화가 된 것 같네···.’
쓴웃음을 지으면서 천천히 다가간 공장은 어제와 달리 검은색 승합차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건가?’
나도 모르게 공장으로 발걸음 하게 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나는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읽었다.
[문재아 외 5인 사형.]
변하지 않은 정의의 저울 심판 문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간을 돌려서 어젯밤.
나는 송태연을 구하면서 정의의 저울을 사용했다.
체육 교사가 죽었을 때 대백공이 나에게 업이 늘어나지 않은 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정의의 저울을 사용하면 상대가 쌓은 업만큼 사적으로 징치를 해도 나의 업이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의의 저울을 사용하면 그 당사자와 나는 인연으로 엮이는 것이다.
‘보통 악연이 되겠지만···.’
한번 엮인 인연은 쉽게 떨쳐낼 수 없다.
즉, 정의의 저울이 심판한 업을 내가 청산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제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대백공의 말을 통하면 사회가 가한 사법적 처벌이 약하거나 사회가 가하는 사법적 처벌을 피한 죄인에게 남아 있는 업을 사적 제재하는 것은 업을 쌓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인간의 업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때문에 사적 제재가 시작되면 누구나 그 시작은 정의로울지 모르지만 결국 파멸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죄인이 받아야 할 업을 넘어서 치죄했다가 결국 업을 쌓게 되어 복수의 업이 무한 루프가 된다.
그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제대로 심판받지 못한 체육 교사가 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죽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어도 업이 쌓이지 않고 넘어간 것을 두고 대백공이 운이 좋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 딜레마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정의의 저울이다.
정의의 저울은 상대가 지은 죄를 저울의 기울기로 알려주고 내가 상대의 업을 넘어서지 않는 지점을 판단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힘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는 법.
정의의 저울로 심판하겠다고 한 존재에 대해서는 끝까지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심판받은 내용보다 적은 처벌이 이루어지면 오히려 그 업이 나에게 화살이 되어서 돌아온다.
나는 그래서 어제 순간 심판의 내용이 전원 사형이라는 데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손에 피를 묻히기보다는 법의 심판대에 올리기로 결심했다.
찐따와 그 패거리에 대한 심판이 사형이라고 해도 사법적 심판을 받고 난 후 남은 죄에 대해서 처분을 한다면···
내 생각이 이어지기 전에 멀리서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인적이 없는 길을 찾아서 걸어온 것처럼 본능적으로 공장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겼다. 어제 보았던 봉고가 도착하자 신음 소리와 함께 덩치를 타박하며 붕어빵처럼 부어오른 뺨을 잡으며 찐따가 차에서 내렸다.
“띠바···너넹가 으제···.”
말하다가 뺨이 아픈지 한참 참으면서도 속에서 올라오는 열불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찐따가 크게 외쳤다.
“그 때끼···모자바서 내꼬이 머냠.”
어제 내 뒷통수를 노리다가 오히려 맞고 넘어간 철근을 쓰던 덩치가 재빠르게 찐따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놈이 나대는 건 이제 끝 아닙니까? 끝.”
“그겡 아니 어뜨면 너넹 다···후읍···.”
“···.”
철근을 쓰던 덩치 뒤로 인상을 찌푸린 상태로 엉거주춤 차에서 내리는 놈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어제 덜 맞았구나?’
어제 스스로 손속이 과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내가 손속에 정을 너무 준 것 같다고 자아비판을 하고 있는 사이에 사시미가 복대를 한 상태로 강제로 발레리노가 된 녀석을 부축해서 나왔다. 자전거 체인은 철제 의자하고 랑데부한 덕분에 코 뼈가 삐뚤어졌는지 안면 보호대를 쓰고 있었다. 마지막에 뒤통수 노리다가 줄행랑친 놈이 운전석에서 내리면서 찐따 앞에 부복하고 섰다.
‘그런데 다들 입원해 있어야 할 수준인 것 같은데···어째서?’
“그겅···구내와써?”
“네···그런데 이번에도 그걸 사용하실 건지···.”
“왜 누가머랭?”
“그 형님 아버님께서···.”
“너냉가 제대···으윽···모때서 그렁거자낭”
“죄송합니다.”
“제대···루···세팅해낭 아게쏘?”
“네. 그런데 어제 그 고×리도 아니던데요. 그리고 녀석 아직 깔×도 없는···.”
“그렁···개네 어마라도 자바와···아니···느근거 시른뎅···누나···여도새 업써?”
“아직 가족관계는···.”
“이른···머저리···그니깡 니네가 안뎅···.”
찐따는 고통이 심한지 한참 부들거리더니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치나게 지내느 거들부터 다 자바와···아주 주···줄초상 지내게 마드어주꺼양.”
“그 지금은 조용하게 지내라고 아버님이···.”
“너붜터 초상 치르게 해주깡.”
“아닙니다.”
나는 순간 머리가 까매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라고?’
‘엄마, 동생, 친구들 뭐?’
나는 어제 공장에서 A와 B 사이에서 선택을 했다. 사적 제재가 아닌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법적 절차를 통한 정당한 심판을 기다리기로···
‘내가 만약 이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나는 어제 송태연의 기억 속에서 몰아치면 절규 그 비통한 심정이 내 몸을 섬찟하게 만들었다.
두근두근.
내 심장 박동 소리가 점차 커진다.
‘나는···.’
양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전 생에서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주위에서 말하곤 했다.
그 말은 내 삶이 버거울 때도 그래도 사람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세상은 짐승의 길로 더 빠르고 편하다는 걸 알게 해줬지···.’
내 삶을 돌아볼 절벽에서의 처절했던 순간.
나는 살고 싶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어쩌면 지금의 분노를 잠재우고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을 피신시키면서 그저 이 또한 지나가는 태풍이라고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힘이 생겼다.’
계속 가슴속에서 응어리지듯 뭉친 불꽃이 이제 시작이라는 듯 타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방해하는 모든 것을 짓밟고 지나간다고 해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내 삶의 방향은
‘내가 정한다.’
붉게 타오르는 듯 눈두덩이가 뜨거운 기운이 몰려왔지만 이럴수록 냉정을 찾아야 했다.
‘내가 올 때 정말 마주친 사람이 없나?’
‘내가 얼마나 시간을 비울 수 있지?’
시간을 확인해보려고 핸드폰을 꺼내려고 했지만, 핸드폰이 없었다.
이사 가는 곳의 주소를 확인한다고 꺼내놓고 보다가 담임이 종례시간에 들어오면서 급하게 서랍 속에 넣고는 그대로 잊고 나왔다.
이전에 쓰던 스마트 폰이 아니다 보니 전화통화를 위해서만 들고 다니는 휴대폰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놓고 다니기 일쑤였다.
‘차라리 다행인가?’
나는 내가 집에 가는 하교 시간이 늦어져도 얼마 정도까지 어머니나 동생이 나를 찾지 않을지 가늠해 봤다.
‘최대 3시간 정도···최소로 잡으면 2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