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거짓된 사도 탈출구 2>
나와 종혁이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경수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을 지키는 경수를 데리고 병원 밥이 아닌 점심을 같이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안색은 좀 괜찮아 보이던데 괜찮은 거야?”
“몰랐는데 아빠 담당 의사 선생님이 우리나라에서 암 관련해서는 알아주는 전문의라고 하더라···.”
“정말? 그럼 이제 괜찮으신 거야?”
“수술 일정은 잡았고 수술 전 상태가 나빠지는지 살펴 본데.”
“벌써 수술 일정 잡혔다고?”
“개복 없는 수술이라서 바로 날 잡았데 의사 선생님 수술 일정 중에 잠깐 시간 내서 빠르게.”
“그게 가능해?”
“운이 좋은 거지.”
“너무 급하게 수술 날 잡은 거 아니야?”
걱정스러운 내 말에 경수는 밝게 말했다.
“아빠 담당 의사 선생님 진료받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더라. 그리고 암 수술은 빨리하는 게 암 전이율이 낮데.”
“그럼 수술만 몇 개월씩 기다리는 건? 신중하게 해야 하는 수술이라서 그런 거 아니었어?”
“나도 몰랐는데 우리나라에 암 전문의 그러니까 수술까지 가능한 의사 선생님 중에 유명한 사람한테 몰리면 그렇게 대기하는데···대기하다가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도 왕왕 있데.”
“와···진짜?”
“맛집 줄서기보다 살벌한 거 아니냐? 목숨 걸고 줄서기 하는···.”
“그러니까 운이 좋았지 유명한 의사 선생님 진찰받으려고 몇 달씩 걸리는데.”
“진찰에 수술까지 한 번에?”
“그럼 아버지 몸 상태는 괜찮으신 거야?”
“항암치료까지 갈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좀 더 상태를 두고 보자고 했어.”
“다행이다 진짜···.”
경수 아버지 상세를 듣자 나는 입맛이 돌면서 점심을 해치울 수 있었다. 종혁이와 경수에게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했다.
종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자 내가 덧붙여 말했다.
“집으로 바로 가게? 주신이가 뭐 해달라고 한 거야?”
나는 곤란한 마음에 살짝 주저했지만 말하지 않으면 따라나설 것 같은 종혁이를 보고는 낮고 빠르게 말했다.
“아니···선산에 들렸다가 가려고.”
“아···.”
종혁이도 이심전심인지 퇴식구에 그릇을 가져다주고 오는 경수에게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경수한테는 주신이가 너 찾아서 먼저 갔다고 말할게.”
“그래 그럼 부탁한다.”
종혁이가 경수 아버지 상황을 보고 내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선산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더 말하면 오히려 오해가 깊어질 것 같아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혁이의 태도를 보면서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가까운 위치에 있는데도 자주 오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회귀 전에는 남의 땅에 있게 된 아버지 묘를 향해 제사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던 슬픈 기억이었는데···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버지 산소 앞에 도착했다.
동시에 꿈인 듯 현실인 듯 감각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른 붉은 피부의 노인이 구부정한 자세로 처음 만났던 그 장소에 서 있었다.
‘대백공···.’
나는 대백공을 만나기 위해서 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마음속에 이는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면서 당장 시급한 사안에 대해서 질문했다.
“어린 친구 기다리고 있었네.”
나는 어제 종혁이 아버지 서재에서 들은 대화를 곱씹으면서 인하의 죽음을 이용하려던 변호사를 찾아갔었다. 강화된 육체는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거리를 사람 눈을 피해서 달리기 좋았고 순식간에 그 변호사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두렵고 두려운 알 수 없는 형체에 둘러싸인 말 그대로 숨 막히는 압박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숨쉬기 힘들었던 그 검게 타오르는 그 형체를···
정의의 저울을 통해서 봤던 메시지 중 마음에 걸렸던 내용을 가장 먼저 질문했다.
“1단계 봉인이라고 뜨던데···그걸로 안심할 수 있나요?”
“완전 봉인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할걸세.”
“완전 봉인은 안 된다고요?”
“왜 놀랐나?”
“전 당연히 정의의 저울이 있으니···.”
“신기는 아무 때나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네. 어린 친구 자네가 거짓된 모든 것을 잠재운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올바르게 행한 것이네.”
“네?”
“신기의 힘에 취해서 그 범위를 벗어나는 힘을 쓰려고 한다면···.”
어제 변호사 사무실에서 정의의 저울을 사용했을 때 선택지를 주었다. 1단계 봉인을 하지 않고 거짓된 사도가 모아둔 업. 즉 카르마를 이용해서 힘을 취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경고 메시지가 뜨던데요?”
물론 거짓된 사도의 업. 즉 카르마를 내가 취하게 되면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그렇지.”
“그럼 누가 그렇게 힘을 쓰겠어요.”
“그렇지 않은 자들도 많다네.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고.”
“그럼 거짓된 모든 것이 1단계 봉인만으로 성공이라는 건가요?”
“그렇지. 옅은 잠이지만 자신의 사도에게 직접적인 힘을 쓰지는 못할 테니까.”
“정의의 저울은 1단계 봉인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르신이 말하는 옅은 잠하고 차이가 있나요?”
“표현의 차이겠지. 정의의 저울은 정의의 여신이 사용하던 신기일세. 그렇지만 정의의 여신은 이곳의 신이 아니지.”
“그 말씀은···.”
“저 먼 땅의 기준과 이 땅의 기준이 다를 뿐 가리키는 방향은 비슷하다네.”
“그럼 저 먼 땅의 신기가 여기까지 온 건···.”
“그걸 언급하기에 자네의 지기가 너무 부족하다네. 자네에게 당장 필요한 질문은 신기가 이곳에 온 이유가 아닐 텐데···.”
‘저 먼 땅의 신기가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다는 건···혹시 전리품 같은 건가?’
나는 단순한 호기심에 필수적인 질문들을 흘려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은 그대로 마음속에 내려놓고 복잡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대백공에게 질문했다.
“그럼 1단계 봉인으로도 안심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 이걸로 거짓된 모든 것에 대한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닐세. 사도를 징치해야만···자네가 원하는 수준의 봉인을 할 수 있을 것이야.”
“거짓된 사도를 징치한다고요?”
“그렇지만 거짓된 사도를 징치하기 위해서 필요한 선결 과제가 있다네.”
“네?”
“다른 어떤 사도보다도 거짓된 사도는 그 원죄를 찾아내기가 어렵다네.”
“원죄라면···.”
“거짓된 사도가 된 그 근원이 되는 죄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
“하아···그럼 지금 인하를 자살로 몰고 간 것 말고도···.”
“거짓으로 덮은 죄를 누구나 인식해야만 그래야만 징치가 가능할걸세.”
“그 뜻은···.”
“단순히 자네가 거짓된 사도는 거짓을 만드는 타락 자라고 외쳐봤자 의미가 없다는 거지. 제대로 된 증거와 증언으로 올가 매야 사람들이 저 사람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다들 동의해 줄 때 그때가 되어야 제대로 징치 할 수 있다네.”
“어렵네요.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없는데.”
“그래서 거짓된 사도가 탄생하게 되면 거짓된 모든 것을 잠재우기 힘든 것이지. 그런데 어린 친구 자네가 옅은 잠이라도 자게 만든 것은 대단한 것이라네.”
거짓된 사도의 징치에 대해서는 당장 답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나는 두 번째로 고민하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 친구 아버지가 타락자가 될뻔했다고 정의의 저울이 메시지를 내던데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요?”
“인간의 선악의 기준에서 볼 게 아니라 하늘의 눈에서 볼 때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우는 것은 흐름에 좋지 않다네···.”
“그 말씀은···.”
‘대백공은 너무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말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니까···.’
“아마도 가슴에 쌓인 한이 켜켜이 커져 타락자가 될 위험에 노출되었나 보군.”
“그럼 어떻게 해야···.”
“이미 자네는 해결하지 않았나?”
“네? 설마···.”
“자네 친구가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았으니···자네 친구가 원하는 일에서 승승장구를 할 때마다 그 아버지의 한이 풀려갈 걸세.”
“그게 가능한가요?”
“혈연의 진함은 하늘도 인정한 것이니 안 될 리 없지.”
“그럼 일반인이 경수 아버지처럼 극에 달하게 되면 타락자가 된다는 말씀인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속에 쌓인 한이 타락자를 불러오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네. 어린 친구 자네가 생각하는 타락자는 무엇인가?”
“그···신적인? 초월적인?”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인간의 기운이 만들어낸 썩어가는 찌꺼기라고 보면 된다네.”
“네?”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답변에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자네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신적인 존재가 어떻게 인식된다고 생각하나?”
“전능한 신들의 존재를 사람들이 인식한다고요?”
“인간들은 호기심과 상상력이 왕성하지 그렇기에 끝없이 탐구한다네.”
“그런가요?”
“동물은 그저 자신들의 주변 환경에 대해서 인식하고 그 속에서 생존하는 것만 본능에 의존해서 생을 불태우지. 그에 비해서 인간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 중 놀랍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숭배하고 인격화하고는 하지.”
오래전 역사 시간에 배웠던 정령이 깃들었다고 믿었던 원시족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쉽게 말하자면 아주 오래전 인간들의 생각이 단순하던 시절 큰 바위를 이정표 삼아 떠돌던 시절 큰 바위를 신성시하거나 오래 사는 동물을 정령이라고 표현하거나 그렇게 인식하게 되면.”
“되면?”
“그런 큰 바위와 오래 산 동물은 힘을 얻게 되는걸세. 인간의 인식이 세상의 흐름을 만들어내 힘을 부여하는 것이지.”
“그럼 타락자라는 건···.”
“그런 흐름을 통해 힘을 얻다가 함부로 사용하게 된 존재들이 행하는 잘못된 흐름으로 세상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통틀어 말한 것일 뿐이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난해하달까.”
“그럼···어르신도?”
“나는 조금 다르다네. 인간의 인식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관념체들과 다르게 나는 인간들이 밟고 서 있는 대지요. 땅이니.”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과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관념이 모여서 만들어진 정령 같은 존재는 본질이 다르다는 말인가요?”
“크게 분류하자면 하나의 흐름이요. 그 안에서 나누자면 자네가 말한 것처럼 물질적 존재에서 탄생한 것과 비물질적 관념에서 탄생한 것으로 나눌 수 있겠지.”
“그럼 관념체가 타락하기 쉬운 건···.”
“더 큰 힘을 급속도로 늘릴 수 있고 또 그 형체가 인간의 인식에서 시작되는 존재이다 보니 인간들의 인식이 급격하게 한곳으로 치우치게 되면 큰 힘을 얻음과 동시에 타락하기 쉬운 것이지.”
“거짓된 모든 것은···.”
“인간이 사실과 진실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회귀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가족과 친구들을 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어렵게 대답했다.
“어렵지 않을까요?”
“그렇다네. 인간은 진실 속에서만 살 수도 그렇다고 거짓 속에서만 살 수도 없지. 그렇지만 세상은 진실보다는 거짓이 더욱 달콤하기에 거짓이 난무하게 되고 거짓된 모든 것은 더욱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지.”
“너무 큰 힘은 타락하기 쉬워지고요.”
“그렇다네.”
“그래서 어르신이 가진 힘은 크지 않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거짓된 모든 것처럼 관념 존재에게서 나오는 힘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지. 타락한 존재는 힘을 탐하기 때문에 사도나 세상에 그 힘을 크게 풀지 않는데도 그 영향이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법이지.”
“아···거짓된 모든 것을 1단계 봉인이라는 얕은 잠이라도 자게 한 게···.”
“대단한 일인걸세.”
“그럼 그런 존재를 봉인 잠들게 하려면 거짓된 모든 것들의 힘이 약화 되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만 이 세상은 거짓이 너무 난무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존재보다 거짓된 사도를 파헤치기 어럽다는 걸세.”
“정의의 저울이 있어도요?”
“있기 때문이지.”
“···?”
“제대로 된 흐름을 잡아 저울 위로 올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라도 심판할 수 없다네.”
“그럼···.”
“큰 힘과 동시에 그에 걸맞은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지.”
‘좋은 아이템일수록 사용할 때 필요한 필수 스탯이 높아지는 것 같은 느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