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연계 2>
“나는 임무에 실패했다.”
그 씁쓸하고도 모든 감정이 담겨있는 음성에 정신이 흔들린다 싶었을 때 나는 골목길 벽을 부여잡고 나올 것도 없는 속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면서 김 씨 아저씨가 나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따뜻하지만 단단하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나는 왠지 외할아버지가 김 씨 아저씨를 어떤 시선으로 봤을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김 씨 아저씨에게 의뢰는 실패가 아니라고 해도···.’
내가 고민이 깊어져 가는 가운데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김 씨 아저씨가 급하게 집으로 나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문을 열고 현관문을 여는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나는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었다.
‘오늘 너무 무리하기는 했나? 세 명의 기억 아니 감정까지 전부 받아들이면서 몸에 무리가 간 거겠지.’
급하게 자리를 뜨려는 김 씨 아저씨를 잡았다. 강한 힘으로 잡은 게 아니였지만, 김 씨 아저씨는 그저 힘이 빠진 내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김 씨 아저씨···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난···.”
“아저씨는 의뢰를 다 해결해 줬잖아요. 인하가···인하···그렇게 된 건···.”
“내가 너무 늦어서···.”
“아니요.”
나는 내가 지금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단호함을 표현하면서 대답했다.
“인하게 그렇게 된 건 그 변호사 때문이에요.”
“뭐?”
김 씨 아저씨는 어린아이의 치기로 누군가를 원망할 대상을 찾고 그게 인하가 자살할 때 옆에 있던 변호사를 지칭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 변호사가 거짓된 사도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나는 외삼촌과 통화하면서 들었던 내용을 언급했다.
“병원 CCTV 보면 좀 이상하다는 걸···알 거예요.”
“···.”
한참 과거와 현재의 실패한 임무에 대한 고심에 보이지 않는 게 보였다는 듯 김 씨 아저씨 눈에 기광이 스치면서 내게 내밀었던 봉지 속 노트를 잠시 노려보더니 날 듯이 낚아채 꺼내서 휘리릭 넘기면서 읽기 시작했다.
‘경수에게 전해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에서 안 읽어 본 건가?’
나도 내용이 궁금했지만, 점차 싸늘해지는 김 씨 아저씨 표정이 나에게 대답한 듯한 느낌이었다. 한참 멍하니 노트를 읽은 시간보다 멈춰있는 시간이 더 길다고 느낀 순간.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 씨 아저씨를 보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의뢰 실패가 아니에요. 이건 악의적인 제 3자에 의한 별도의 사건이죠.”
‘임무의 실패가 아니에요. 악의적으로 죽으라고 보낸 임무에서 살아나는 게 어떻게 실패겠어요.’
정작 전달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나는 내 의식이 흐려져가는 순간에도 김 씨 아저씨 잘못이 아니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김 씨 아저씨의 기억 속 장면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지만, 최소한 알 수 있었다. 김 씨 아저씨는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다급하게 사라지는 김 씨 아저씨의 등을 보면서 나는 뒤집히는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냉수를 한잔 마시고 봉지를 들고 종혁이네로 향했다.
‘육체가 강화되었는데도 이렇게 후유증이 생길 정도면 술법의 강도가 강해진 건가? 이전하고 다르게 감정이 전부 흘러들어와서···.’
후우···.
나는 차가운 골목길 공기 속으로 내 속에서 불타는 숨을 불어넣듯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만들어내고 종혁이네 현관문을 열었다.
마침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종혁이 어머니가 식사 준비 끝났다고 다들 불러오라는 말에 나는 종혁이 방으로 향했다. 마침 방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면서 나오는 종혁이와 함께 종혁이 아버지 서재로 향했다.
“주신이는?”
“자고 있어.”
“벌써?”
“침대에 머리만 눕히면 자는 것 같아. 그런데 그 봉지는 뭐냐?”
“설명하자면 긴데···.”
“그럼 우선 아버지하고 손님부터 부르고···늦게 내려오면 엄마가 무슨 소리를 할지 몰라. 저번에는 수제비가 전부 불었다고 하루 종일 하소연하는 소리를···덕분에 수제비 한 조각 한 조각의 최후가 어땠는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잔소리를 하셨지.”
“빨리 가자. 난 오늘 메뉴를 한 달 동안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다니고 싶지는 않거든.”
“내가 한 달 전 일이라고 말했던가?”
“아니···그런데 멍하니 있을 때마다 노트에 이상한 지렁이 같은 그림을 그리길래 물어보니까 수제비라고 답하기는 했지.”
“허···.”
허탈한 듯한 종혁이 등을 밀며 서재로 향했다.
똑똑.
내 노크 소리가 작았는지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화하는 소리가 문틈으로 들렸다.
종혁이 아버지의 서재에서 열띤 토론에 가까운 음성에 나는 멈칫했지만, 인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나도 모르게 종혁이를 붙잡고 들려오는 대화에 집중하고 말았다. 문틈으로 보이는 서재의 모습은 노크 소리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는지 종혁이 아버지와 그 앞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로 인하 관련해서 종혁이 아버지는 침착하려고 하지만 정장을 입은 남자는 흥분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아저씨···저번에 보상금 문제로 종혁이 아버지가 소개해준 변호사잖아?’
“인권변호사라고 주장하는 놈들을 믿을 수가 없어요.”
“정말 존경받을 분들도 많다네···.”
“그런 분들이야···손가락에 꼽히고 나머지는 그저 자신들 이미지메이킹에 써먹기 위해서 피해자들을 들러리 세우는 순 양아치 아닙니까?”
“그래서 이번에 수임료는 얼마인가?”
“저번하고 같죠. 그런데 이번에는 안 받겠습니다.”
“음? 자네가?”
“변호사도 사람이 하는 직업이고 직업이 돈 벌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적정수임료를 항상 요구하는 저이지만···.”
“수임료 요구할 때 멘트를 지금 들으니까 좀 신기한데?”
“기인하 학생 수임료를 받은 상태에서 이런 개뼈다귀 같은 상황이 되었으니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까지가 제가 받은 사건과 같은 결로 봐야죠.”
“난 자네가 항상 돈만 신경 쓰는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변호사라고 난데없이 인권 변호사라면서 나대는 놈들이 이상한 거죠.”
“거참 존경할만한 분들도 있다니까.”
“그분들도 냉정하게 따져서 다들 자신이 아는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인권 변호사를 부르짖는 거 아닙니까?”
“뭐···시작은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변호사가 정당하게 자신의 수임료를 요구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렇게 언론플레이하면서 인권 변호사네 하는 놈들은 전부 사기꾼이라고요.”
“음···석간 뉴스 내용만 보면 그 변호사는 아주 영웅인데?”
“그걸 믿으십니까?”
“내가 믿고 있다면 내가 지금 박 변호사 이야기를 시간 내서 듣고 있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지금 언론 플레이를 하는 인권 변호사가 수임료도 안 받았기 때문에 사기꾼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지 않나?”
“후우···당일 수임을 요청하고 받아들였다니 반박할 증거가···.”
“어···.”
“누구···?”
정장을 입은 남자는 종혁이는 아는 눈치였지만 나는 누군지 기억하기 위해서 눈가를 찌푸리면서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자 종혁이 아버지가 나서서 말했다.
“이쪽은 종혁이 친구일세. 아내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건가 보군.”
“저녁 준비 끝났다고···그런데 혹시 이게 도움이 될까요?”
나는 검은 봉지를 들어 종혁이 아버지와 박 변호사라는 사람 사이의 탁자에 내려놓았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부스럭거리면서 수첩을 꺼낸 박 변호사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날카로워졌다.
“이걸로 자살방조죄까지는 어렵겠지만 고인의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하면 지금 하는 언론 플레이는 멈추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증거가 될 수 있는걸 찾아오다니 대단하구나.”
종혁이 아버지 말에 종혁이가 내 등을 쿡쿡 찌르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대답할 말을 찾아 헤맬 뿐이었다.
“아···그건···.”
‘제가 찾은 건 아니고요.’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종혁이 아버지는 박 변호사라는 사람을 데리고 식사를 하기 위해 내려가자고 했다. 나는 먼저 내려와 종혁이와 주신이와 함께 식탁에 먼저 앉았다.
“식사하세요. 오늘 다들 너무 놀라서 속이 말이 아닐 것 같아서 진정하라고 맑은 육수로 대구탕 끓였어요.”
“우와 사모님 솜씨는 언제나 감탄하고 만다니까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시간은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일상적인 이야기라도 오고 갈법했지만 어제 인하 자살 사건 이후에 오늘 경수 아버지가 입원까지 하면서 다들 머릿속에 복잡한 것 같았다.
‘아니면 아이들 앞에서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식사시간이 끝나자 평소처럼 종혁이 어머니가 하는 정리를 도와드리고 우리는 종혁이 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종혁이 침대를 차지한 주신이가 졸린 눈을 감더니 나한테 단단히 경고하고는 침대에 녹아버리듯 잠들었다.
“형, 전화 오면 깨워야 돼. 아니 문자 소리만 들려도 알았지?”
“알았어. 졸리면 자.”
“이상하게 종혁이 형네만 오면 졸려···하암···.”
종혁이가 금세 잠들어버린 주신이를 보더니 책상 앞으로 다과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너 이사 가면 주신이 침대부터 사줘야겠다.”
“그러게.”
“침대에만 누우면 잘 자는 걸 보면···.”
“잘 자는 것도 복이지 부럽네.”
“왜 요즘 잘 못 자?”
“너는?”
“나? 나도 좀···아무래도 이래저래 뒤숭숭하고 학교도 좀 분위기 그렇잖아.”
“하아···.”
‘이건 전부 내가 회귀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갈 일을 전부 파헤쳐서 그런 게 아닐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관심 없이 지나갔을 때 그 피해자들이 느낄 소외감과 괴로운 상황을 주변에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발생할 2차 가해를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문제였다.
“왜 이렇게 심각해?”
“그냥 내가 그저 침묵하고 넘어갔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뭐?”
“내가 사건을 키운다는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어···.”
종혁이는 한참 나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더니 말했다.
“야, 너나 나나 학생이야. 너하고 내가 문제를 키운다고 없던 문제가 불거지는 게 아니라는 거지.”
“어?”
“네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 다들 그러니까···친구들 말고도 어른들도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커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넘어갔는걸···오히려 조용히 넘어가는 게 나은 게 아닐까?’
“글쎄···이게 비교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응?”
“나 별거 아니라고 경수하고 국민···아니 초등학교 때 있던 사건 넘겼으면···.”
“···??”
“아마 평생 후회했을 것 같아···.”
“뭐?”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지 않았을까? 경수든···아버지든···.”
“설마···그럴 리가···.”
“이제 마음이 가벼워지니까 느끼는 건데···이전에는 몰랐는데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사는 건 삶에 족쇄를 달고 사는 거라고 생각해. 그 족쇄가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도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고 족쇄가 옆 사람을 치고 힘들게 만들어도 모르고 그런 느낌···그런데 그 족쇄에서 벗어나니까 뭐든지 다 잘 될 것 같고 발걸음도 가볍고···아···뭐야···너하고 있으면 꼭 이런다니까.”
“뭐가?”
“온몸이 오글거린다고 짜사 음료수나 마셔···.”
“대구탕 맛있던데 그 맛을 오래 음미하고 싶다.”
“내방에 생선비린내 배게 만들면 죽여버린다. 빨리 음료수 마셔라.”
“크크큭···.”
“하하···핫.”
나와 종혁이는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뭐가 되었든 눈감고 넘어갈 생각이 아니라면 눈앞의 일에 충실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