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연계>
경수 아버지 입원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분위기로 나와 종혁이는 종혁이 어머니를 따라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미리 어머니와 통화한 것처럼 어머니가 주신이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아니 굳이 주신이 어머니까지 병문안 가지는 않아도 될 텐데.”
“경수 어머니한테 신세 진 것도 있는데 가봐야죠.”
“주인이하고 주신이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엄마 금방 갔다 올게.”
“그러지 말고 저녁도 먹고 종혁이하고 놀다가 주인이 어머니 오시면 내려가. 어차피 오늘 손님 온다고 해서 큰 상으로 차렸거든.”
“어머, 안 그러셔도 되는데 매번···.”
“같이 먹고 그러는 게 좋죠.”
“그럼 잘 부탁드려요. 저도 인사만 하고 금방 올게요.”
바통 터치하듯 종혁이 어머니에게 나와 주신 이를 부탁한 어머니가 어두워져 가는 골목길을 서둘러서 걷기 시작했다.
종혁이 어머니가 차에 실린 짐을 내리자 나와 종혁이는 집안의 부엌으로 열심히 날랐다. 종혁이 어머니의 분주한 뒷모습이 언뜻 보였다.
나는 주신이가 서운해하지 않게 손을 꼭 잡아주고는 종혁이에게 말했다.
“주신이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을래?”
“응?”
“어머니가 급하게 나오시다가 가스불을 껐는지 걱정돼서.”
“아···하긴 경수네도 오늘 가스불 때문에 위험했었지?”
“다행히 누가 도와줘서 큰 불로 나지는 않았어도 방안에 연기가 가득하고 위험했다고 하던데···어머니가 급하게 나가신 것 같아서 괜히 걱정되네···.”
“알겠어.”
주신이는 나와 종혁이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핸드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기주 연락 기다리나?’
오늘같이 마음이 무거운 날이라도 주신이 모습을 보면 온몸을 끌어당기는 무거운 추가 가볍게 느껴지면서 기운이 나고는 한다.
‘어머니 마음도 비슷할까?’
가슴속 따뜻한 온기를 품고는
나는 대문을 벗어나 어두워진 골목길을 보면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여보세요?”
“주신이니? 자주 연락하라고 해놓고 정작 전화를 못 받았네.”
“아니에요. 자꾸 부탁만 드려서 죄송해요.”
“조카 친구 일인데 당연히 내가 알아야지. 오히려 말 안 했으면 서운했을 거다.”
“그런데 경수 아버지 담당하시는···.”
“삼별 의료원 오랫동안 근무하신 전문의로 암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 안에 드시는 전문가야. 이번에 내가 근무하는 둔방 서운 대학 병원으로 모시고 오는데 힘 좀 썼다.”
“감사해요. 무리한 부탁인데···.”
“완전히 이쪽으로 소속이 바뀌는 건 아니고 월요일만 진료하고 나머지는 암 관련 환자들만 돌보는 조건이기는 한데···. 그래도 그분이 있고 없고 암 환자 입장에서는 큰 차이지.”
“그···오늘 경수 어머니 말로는 개복수술 안 해도 된다고 하던데요.”
“암을 초기에 발견한 경우만 레이저로 절단하는 새로운 기술이라고 하더구나 아마 내시경하고 레이저만 들어가게끔 극소 부위만 절재하고 수술하는 걸 거야. 암 환자들은 아무래도 자가 치유력이 떨어지니까. 암도 문제지만 수술하고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거든. 그런 의미에서 혁신적인 거지. 아마도 내가 설득했다고 하지만 둔방 서운 대학병원으로 발걸음 하게 된 이유도 수술 횟수를 늘려서 새로운 치료기법을 제대로 안착시킬 생각이겠지.”
“새로운 치료법이면 혹시나···.”
"후유증이나 잘못될 걸 걱정하는 거라면 개복수술에 비해서 거의 없다고 봐야지. 단점을 굳이 꼽자면 수술 효과가 떨어지는 게 문제인데. 그 부분 때문에 애초에 암초기 발병 환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무래도 초기에는 암 절재가 3기 혹은 말기 환자들처럼 어렵지 않으니까.”
“물론 그···의사 선생님 대단하신 건 알지만 외삼촌이 옆에서 참관해 주시면 안 돼요?”
“말하지 않아도 여기 수술일정 끝나고 올라가게 되면 참관할 생각이었단다. 새로운 기술로 사람들을 더욱 많이 살릴 수 있다면 나도 한번 봐두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야.”
“힘든 부탁 여러 번 드려서 죄송해요.”
“친구 아버지 병상 1인실로 잡아둔 거 말이냐?”
“둔방 서운 대학 병원에서 1인실은 돈 있어도 못 잡는 다면서요.”
“뭐, 미리···예약하면 누구나 잡을 수 있지만 사실 미리 아플걸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잖니? 내가 병상 담당하는 수간호사에게 부탁했지.”
“자꾸···.”
“하하···핫. 나는 네가 나한테 미안해하는 게 더 서운하구나···친구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나한테 다급하게 전화하면서 고맙다고 할 때가 더 좋았는데 말이야.”
“아···외삼촌 쫌···.”
“왜? 나 그때 통화한 거 녹음까지 해놨는데.”
나는 붉게 타오르는 듯한 볼을 골목길 벽에 붙여서 식히면서 숨을 한참 참다가 진정이 된 것 같자 다시 외삼촌과 통화를 시도했다. 그 사이에 전화기 너머에서는 외삼촌 특유의 웃음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 사이에 느껴지는 따뜻한 포근함에 용기를 얻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오···내 조카는 너무 어른스럽다고···. 아직 너도 중학생이야. 좀 더 어른들한테 의지해도 좋아.”
약간 안쓰럽고 대견하지만 안타까운 듯한 외삼촌의 말에 나는 답하지 않고 그저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돼요. 어리광을 어떻게 부리는지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이런 한 번의 통화조차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는걸요.’
익숙하지 않는 포근함이 너무 안락해서 쓴웃음이 나왔지만 다행히 통화상에 표정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데 문제는 없었다.
삐삐삐삐.
나와의 통화가 즐겁다는 듯 오래 붙잡고 있던 외삼촌이었지만 호출기가 울리자 다급한 음성과 함께 통화가 끊겼다.
“호출이다. 나중에 수술일정 끝나고 올라가게 되면 보자.”
뚜뚜뚜.
끊어진 음성 너머로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다. 새로운 번호를 입력해 전화를 걸기 무섭게 골목길 어귀에서 익숙한 형체가 보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걸음걸이지만 얼굴이나 행동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네 아저씨로 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
‘김 씨 아저씨?’
나는 김 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려던 행동을 멈추고 멍하니 그가 다가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은 저 멀리 희미하게 깜박이는 가로등에 의지해 사람의 형체를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지만 강화된 육체는 어두운 배경 속 김 씨 아저씨의 옷소매 끝부분이 오르라 들며 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씨 아저씨?”
“···.”
“오늘 경수 아버지 도와주신 거···김 씨 아저씨죠?”
어떻게 알았냐는 듯 의아함이 가득한 눈초리가 순간 평범해 보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경수 아버지 일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했던 김 씨 아저씨의 순간 지나갔던 표정에 대답하듯 말했다.
“오늘 경수 아버지 병문안 가서 경수하고 이야기하는데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가 한 명 쾅쾅 문을 두드리면서 깨어났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나는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해요. 정말······.”
나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최대한 가다듬으면서 더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김 씨 아저씨의 보기와 다른 강한 악력에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렸다.
마주 본 김 씨 아저씨와의 시선은 어느새 희미한 빛마저 사라져 표정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그저 느껴지는 건 따뜻한 온기가 있는 손이 내 어깨를 잡고 있었다.
“나는···후···.”
한참을 말을 고르던 김 씨 아저씨가 내가 검은 봉지를 건넸다.
“이건···.”
평소의 밀크티와 다른 메모지처럼 보이는 수첩과 볼펜 그리고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이걸 전해주고 싶었다.”
“누구···경수요?”
“그래.”
“이거 설마···.”
“난 이번 의뢰에 실패했다.”
“아니···그건···.”
“어떤 변명을 해도 변하지 않아. 난······.”
헛구역질과 함께 내가 골목길 벽에 붙여 흐트러지듯 기대자 걱정된다는 듯 김 씨 아저씨가 급하게 부축하면서 장면이 전환되듯 급격하면 화면이 꺼지는 느낌과 함께 눈을 뜨자 김 씨 아저씨처럼 보이는 남자가 각종 무기를 매달고 지친듯한 얼굴로 불이 꺼진 듯 어두운 창고에 손을 뒤로 묶인 것처럼 보이는 자세로 서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또 이번에도 혼자만 살아왔다면서?’
‘못 들었어? 죽으라고 보낸 임무에서 살아 온 거잖아.’
‘그럼 같이 간 동료들은 무슨 죄야?’
‘상부에서 제대로 미운털 꼽힌 거지.’
‘뭐? 자기 혼자만 잘났어?’
‘이제 강제은퇴잖아. 벼르고 있는 놈들 많을걸?’
딸칵.
빛이 깜빡 깜박하고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희끄무레한 시멘트 벽 위로 지지 직하는 소리와 함께 이전에 들리던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존경합니다. 김 중사님 이대로 전역하시는 겁니까?’
‘김 중사 상사로 진급이 코앞인데 어디로 가는 거야?’
‘군대에서 김 중사 같은 참된 군인이 또 어디 있겠어?’
‘이번에 외국인 요인 구출 작전 때도 활약했다면서요?’
‘후배들의 귀감이죠.’
깜박깜박하던 전등이 결국 힘을 잃고 어두워지자 다시금 음습한 목소리들이 침범하기 시작했다.
‘혼자만 잘난 새끼. 그렇게 나대다가 자기 대원들 다 죽이는 거지.’
‘이제 상부에서 찍힌 거 제대로 알려져서 아무도 저 자식 팀으로 안 간다는데?’
‘군대에서 말뚝이나 박을 것이지 왜 우리 회사에 와서 이런 불란만 일으키는 거래?’
‘회사는 빨갱이 잡으라고 있는 거지. 지만 잘났어. 아주.’
‘강제 은퇴식에서 살려달라는 꼴을 봐야 하는데···.’
어두운 창고와 같은 장소에서 김 씨 아저씨가 지친 얼굴로 읊조렸다.
“나는 임무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