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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73화 (73/205)

<73화 소년은 커서 어른이 된다 2>

먼저 입을 열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입을 열려고 하자 경수와 내가 동시에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종혁이가 이제까지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긴장이 풀린 듯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는 경수에게 먼저 말하게 어깨를 툭 쳤다. 경수는 피곤해 보이는 거친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더니 나와 종혁이의 시선을 피해서 병원 쪽을 보면서 말했다. 목소리에 느껴지는 그늘에 나는 바짝 긴장하고 만다.

“나 외고 갈지도 몰라.”

나와 종혁이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응”

“우리하고 같이 백신고등학교 간다고 한 거 아니었어?”

“그러고 싶었지.”

“그럼···.”

“아빠가 오늘 갑자기 외고 안가겠냐고 하더라.”

“너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아빠가 저렇게 누워있으면서까지 가라고 하면···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어서”

“아무리 부모님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닌 거 아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말하는 종혁이의 말을 막아서면서 말했다.

“난 경수 아버지가 왜 그러시는지 알 것 같아.”

“응?”

종혁이와 경수가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나는 경수 아버지가 특유의 무뚝뚝함 때문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진심을 어떻게 오해를 받지 않고 경수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심하면서 신중하게 말했다.

“힘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기 때문 아닐까?”

“뭐?”

“이번에 인하일 겪으면서 느꼈잖아.”

경수가 담담하게 하지만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나 이렇게 무기력한 느낌 처음이었어.”

나도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

“우리나라는 혈연, 지연, 학연이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어.”

“말도 안 돼. 문민의 정부인데?”

“언젠가는 끊어내야 하겠지만 아직 까지는 그러지 못한 거지. 그런데 경수 아버지 고향이 전남 쪽이라고 했잖아.”

“전남이 왜?”

“어···현진이가 그랬는데···지역 차별?”

“그래. 경수 아버지는 평생 지역 차별 속에서 힘들게 사셨을 거야. 그럼 아들인 너도 당연히 연결되고.”

“지금 시대에 연좌제야? 뭐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우리 아버지 세대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아버지 세대가 우리 상관이 되는 거니까.”

“아···그럼?”

“경수 아버지는 경수가 그런 괴로움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 경수 아버지가 그런 차별 속에서 사셨다고 생각하면 혈연으로 경수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할 테니까···거기에 경수는 공부를 잘하니까···.”

“학연!”

“그래. 거기다가 경수 너 사실 이공계 좋아하지?”

경수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알아봐 준 것이 기쁜 듯 양가 적 감정이 얼굴에 나타났다.

“어? 어떻게···알았어?”

“일부러 싫어하는 티를 내려는 게 더 티 나는 것 같더라.”

“어···.”

“판검사가 꿈이라는 것도 부모님이 종용하는 거 아니야?”

“뭐···딱히 하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니라서···.”

종혁이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 놀란 표정이었다.

“야, 네 꿈인데 부모님 생각대로 한다고?”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게 나만 잘해서가 아니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재능은 부모님이 유전적으로 물려준 거고···거기다가 나 공부시킨다고 엄마가 밖에서 안 좋은 소리 들어가면서 맞벌이로 일하고 아빠하고는 말도 잘 안 하지만···험한 일 하고 상처투성이가 돼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거든. 어쨌든 그렇게 부모님 고생하시는 것 다 알면서 어떻게 나 하고 싶은 데로만 하냐? 뭐 진짜 정말로 하고 싶은 꿈이 따로 있으면 모르겠는데···그렇게까지는 아니니까.”

“경수 재능이 너만의 것이 아니라고?”

종혁이가 놀란 듯이 다시금 묻자 경수가 답했다.

“물론 내가 노력을 안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너네도 알다시피 우리 집 형편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잖아. 부모님이 희생해서 내가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건데···그렇다는 거지.”

“나는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어.”

“뭐, 이야기하고 다닌 적은 없으니까.”

잠시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자신의 재능이 자신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한참 멍하니 각자 생각에 잠겼다.

‘경수조차 자신의 재능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나는···.’

내가 내 생각에 침잠하려고 할 때 종혁이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 없었어. 내 재능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이게 좀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시작된 거라서 지금 사회현상에 딱 맞는다고 볼 수는 없는데···그냥 엄마 아빠한테 미안해서 도서관에 간 날 철학책에서 읽었거든.”

“너 원래 책 많이 보잖아.”

“그렇기는 한데···.”

“무슨 일 있었어?”

“그런 대단한 건 아니고 그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있었던 일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경수가 담담하게 풀어 놓는 이야기는 가슴 한쪽이 울컥해지면서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되는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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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아버지는 얼굴을 보기 힘들다. 새벽같이 일용직 일을 구하기 위해서 나가서 그날 일을 구하면 밤늦게 들어오고 허탕치면 소주를 한 병들고 집 근처 공원에서 한참 헤매다가 들어오시고는 했다.

주말에 어쩌다 마주치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화를 나누는 건지 싸우는 건지 모를 말들을 서로에게 하고는 했다.

“아니 추운데 이 시간까지 밖에 있다가 오면 어떻게요. 귀 빨간 것 봐. 일찍 와요.”

“오늘 일 공쳐서.”

“그럼 일찍 오지···이 시간에···.”

“내가 집에 있으면 경수 공부하는데 방해되잖아.”

경수는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로는 학교에서 일찍 끝나도 도서관에 가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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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도서관에 자주 간 거야?”

“원래 책보는 걸···좋아하기도 했고···난···.”

“그래서 ‘내 재능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야?”

“부모님 희생 없이 내가 그렇게 공부에만 열중할 수는 없으니까. 너희도 현진이 알지만, 학교에서는 잘 대화 안 나누잖아?”

“현진이? 매일 잠만 자니까 대화 나눌 시간도 없지. 그런데 소문은 빠르고 그것도 능력이야.”

“현진이는 공부가 하고 싶어도 새벽에 나가서 신문 아르바이트한다고 피곤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데.”

“뭐?”

“나하고 현진이가 친해진 게 신문 아르바이트 얼마 버는지 궁금해서 물어봤거든.”

“그걸 내가 왜···.”

“그냥···빨리 돈을 벌고 싶었던 것 같아.”

나는 경수의 담담한 고백에 가까운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경수 아버지가 외고 가라고 하는 게 아닐까?”

“응? 이야기가 왜 갑자기 그렇게 되는 거야?”

“생각해 봐. 외고가 학비가 비싸니까 일부러 네가 가고 싶다고 말을 안 꺼내는 거라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 그래서 본인이 일부러 언급한 게 아닐까?”

“나는 경수가 자신들보다 편하게 살기를 바라서라고 생각해. 외고는 학벌 좋은 아이들이 모여있지? 거기다가 경수가 공부를 잘하니까 사법고시 패스하면 그게 학연이고 지연이지 뭐야. 경수 아버지는 자신에게 붙어있는 그걸 경수에게 물려주기 싫어한 거야.”

“경수 아버지한테 뭐가 붙어 있어? 그게 뭔데?”

‘빨갱이 딱지라고 어떻게 말하냐?’

속으로 답답해 하는 순간 경수가 말했다.

“가난?”

“그것보다는 힘없는 정의로 겪는 아픔을 물려주기 싫었던 게 아닐까?”

“응?”

“이번에 인하일도 무력하다고 느꼈잖아. 그런데 만약에 경수가 판사라거나 검사였어 봐. 이 사건이 이렇게 흐르게 그냥 뒀겠어?”

“최소한 체육 선생 평생 햇빛 못 보게 만들어 줬을걸?”

“그건···그렇지?”

한참을 말없이 주문 나온 햄버거를 노려보던 경수가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공부 잘한다. 전교 1등이라더라 그런 식으로 주변에서 띄어줘서 내가 진짜 잘난 놈인 줄 알고 살았거든.”

“대단한 거야. 아무나 못해···.”

“알아. 난 전교 1등 꼭 해야 했거든. 뭐 종혁이는 알 거야.”

“···.”

“거기에 취해있던 것 같아.”

“너···.”

종혁이가 경수를 향해 보자.

씩 웃으면서 말하는 경수의 모습을 보는 종혁이의 표정은 하루 만에 부쩍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를 향한 안타까움 이었다.

소년은 자라서 어른이 된다.

간단하고도 당연한 명제이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어른이 될 거라는 믿음은 자신이 실제로 나이를 먹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가볍고 철없는 모습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된 사람과 되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서 깨지게 된다.

소년은 자라서 몸은 커질 수 있지만 진정한 어른은 시간이 지난다고 되지 않는다.

그런 친구가 몸이 다 자라기도 전에 어른이 된 모습을 보는 종혁이의 표정은 깨닫지 못했지만 전해지는 마음으로 안타까움을 자신도 모르게 표현해낸 것이다.

“나 외고 가서 조기 졸업 할 거야. 그리고 빨리 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경수야···.”

“종혁이 너하고 함께하는 학창 생활 그립고 정말 계속하고 싶은데···.”

“너···.”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더라.”

“너무 멀리 가지마.”

“응?”

“나도 빨리 따라잡을게. 분명 너무 혼자 앞서가면 외로울 테니까 옆은 무리라도 뒤에서는 든든하게 받쳐줘야지?”

쑥스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경수가 고개를 들더니 이내 얼굴을 두 손에 묻듯 하고는 나를 향했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뭐?”

그리고는 손에 쥔 쪽지를 나에게 건내 줬다. 종혁이고 궁금하다는 듯 보더니 놀라서 외쳤다.

“이거 린지 아이디하고 비밀번호 내가 그렇게 달라고 해도 꿈쩍도 안 하더니.”

“이걸 왜···.”

“몰라. 나도 모르겠어. 너는···몇 달 만에 정말 친해지긴 했는데···그런데···너 정말 뭐냐?”

“주인이한테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몰라···내가 미친 건지 어제 한숨도 못 자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기는 한데 저 녀석 정말···나한테 병하고 약하고 다 주는 놈 같아서···인하 생각하면 미친 듯이 주먹질하고 싶은데 아빠 생각하면 고맙고 근데 밉기도 하고 아주···.”

“딱···.”

“×같은 친구네. 크크큭.”

종혁이와 경수가 웃기 시작하자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같이 웃기 시작했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게 친구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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