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소년은 커서 어른이 된다>
경수의 생각이 길어지기 전에 병실 문이 열리고 이제까지 마주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향해서 한 발자국 걸어간다.
병실에서 아버지를 내려다보는 경수의 마음은 혼란 그 자체였지만 멀리서 바라볼 때는 그저 아이답지 않게 담담해 보이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머니는 경수를 아버지 곁에 두고 자리를 비웠다.
경수는 아버지 침상 옆에서 그저 튼튼해 보이기만 했던 아버지를 찬찬히 보았다.
아버지의 손끝이 갈라지고 굳은살이 배긴 그저 고단했던 삶을 인내해온 한 남자의 굳은 손이었다.
경수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전교 1등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펜을 잡는 손가락에는 굳은 살이 배겨있지만 다른 곳은 힘든 일을 한 번도 안 한 것 같은 고운 흰 손이었다.
그 순간.
경수는 참을 수 없는 가슴속 울분이 터지듯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음속 무언가 가로막고 있던 뚝이 터지듯 흘러내린 눈물은 굳은살이 박인 손등 위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뜨거운 그렇지만 차가운 물방울이 시작이었을까?
응급실에서 조치 덕분인지 산소마스크를 벗은 아버지가 눈을 힘겹게 뜨더니 손을 뻗어 경수의 팔을 잡았다.
아니 잡았다는 말보다는 경수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미약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몸짓이었다.
경수는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에 기쁘지만 슬펐다. 자신의 팔을 잡는 아버지의 행동은 항상 자신이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때 잠깐 멈춰 세우는 브레이크 같은 행동이었다. 강하지만 아프지 않게 단단하게 잡아주던 아버지의 손아귀 힘.
하지만 지금 경수의 팔을 잡는 아버지의 힘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슬픔을 느껴야 했다. 그런 감정 사이로 아버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경··수야·····.”
울컥하는 감정에 대답하지 못하고 경수는 그저 아버지를 바라봤다.
“네 아비는···.”
한참 말을 고르는 듯 긴 숨을 내쉬던 아버지가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말할 자격이 안 된다는 건 알지만···네가 외고로 진학하면···좋··겠···.”
갑작스러운 말에 경수는 놀라서 눈물마저도 멈췄다.
‘이건 어머니가 항상 하던 말인데···어째서?’
경수의 어머니는 경수가 과학고나 외고 같은 특수 목적고에 입학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경수는 학비도 비싸고 친구들을 볼 수 없는 특수 목적고에 가는 걸 꺼려 했다. 그런 모습에 아쉽다는 마음을 표현하셨지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학업성적이 좋으면 티 내지 않고 좋아하셨지만 한 번도 어디로 가면 좋겠다든지 아니면 꿈을 어느 것을 가지라든지 말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만 항상 ‘경수는 판검사되야지.’라고 말했기 때문에 경수는 주위에서 전부 판검사가 꿈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수는 사실 꼭 판검사가 되어야 하는지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은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거기에 더해 종혁이 덕분에 알게 된 공부 하는 방법으로 학업 성적이 좋아지면서 아버지가 티는 안 내려고 하지만 좋아하는 모습에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이다.
하지만 학업성적이 좋아지자 어머니가 항상 강조하던 판검사의 꿈을 경수는 무시할 수 없었다.
힘든 가정 형편에 경수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건 어머니가 주변에 안 좋은 소리를 듣고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밖에 나가서 맞벌이로 일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수는 누구도 자신의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는 상황이 야속하면서도 자신의 재능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자신이 그저 책을 보는 게 좋다.
아직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은 없다라고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부모님이 좋아하시기 때문에 틈틈이 법 관련해서 관련 책을 보고는 있었지만 딱딱하고 어려운 법률용어는 경수에게 재미있게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벽을 느끼게 했다.
‘아버지도 내가 판검사가 되길 바라셨었나?’
뭔가 허탈하면서도 그저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질 때쯤···
아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리던 대화가 엿가락처럼 느려지면서 감각이 점차 종혁이의 부축을 받아 경수 아버지 병실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병실 문 쪽에서 나와 종혁이를 본 경수의 표정을 살피기 무섭게 경수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경수 어머니가 경수를 안고 병실로 끌고 들어오다시피 하면서 뛰어들어왔다. 그 뒤를 종혁이 어머니가 울먹이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경수 아빠.”
큰 소음과 함께 경수 어머니가 병실로 들어서자 깜짝 놀란 경수가 어머니 손을 잡고 그대로 경수 아버지 침상 가까이에 섰다. 경수 아버지가 힘겹게 눈을 뜨자 그 모습을 보고 아픈 표정으로 바라본 경수 어머니가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행이다.”
경수 아버지에게 다가가 큰 웃음과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
경수 어머니가 경수를 보듬더니 힘겹게 하지만 안도감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간단한 수술만 하면 하루 이틀 입원하고 바로 퇴원할 수 있데.”
“네?”
경수는 깜짝 놀라서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을 왔다 갔다 하면서 봤다. 경수 아버지는 얼굴이 벌게지시더니 경수와 경수 어머니를 보면서 큰 소리를 내셨다.
“환자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를 내면 어떻게?”
“아니 이 사람이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니까. 아주 목소리 봐···걱정할까 봐. 좋은 소식 전하려고 한달음에 왔더니.”
“뭐?”
경수는 다투는 것 같은 경수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에 결국 크게 웃고 말았다.
나는 무언가를 꾹 움켜쥐려는 것처럼 주먹을 쥐는 경수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온기를 꾹 움켜쥐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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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내 정신···어제부터 정신이 없어서···. 경수 친구들하고 종혁이 알지? 종혁이 어머니가 병문안 오셨는데···.”
“···끄흠···그··와주셔서···.”
“이이가 그렇다니까. 고맙다는 말인데 그런 말을 안 해봐서 부끄러워한다니까?”
“어, 환자 절대안정 몰라. 모르냐고?”
얼굴이 붉어지던 경수 아버지가 크게 외치는 모습에 우리는 전부 병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경수 어머니는 알겠다면서 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가족들이 쉴 수 있게 만들어 둔 벤치로 향했다.
“···경수 아버지는 괜찮아?”
종혁이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경수 어머니가 굳게 믿고 있다는 듯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늘 나올 때 만해도 침대에서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병실에서 방금 남편이랑 대화하는 것 봤지?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나와 종혁이는 어머니들 말씀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가고 있었지만, 귀는 경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경수 어머니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종혁이도 옆 사람과 부딪치려는 걸 잡아당기면서 우리는 속도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어머니들 뒤를 따랐다.
“아니 쓰러지신 건 괜찮은 거야?”
“남편이 고혈압이 좀 있었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혈압이 높아져서 의식을 잃어서 쓰러진 거래.”
“그럼··위험한 거 아니야?”
“이제 약만 잘 먹으면 된다고 하네. 병원을 안 가니까 자기가 혈압이 높은 것도 몰랐던 거지.”
“약만 잘 먹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다행히···.”
“다행히?”
“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암!!”
암에 걸리면 대부분 집안 경제는 파탄이 나고 암을 완치한다는 보장도 없던 시기였다.
“나도 그래서 의사 선생님 붙잡고 울고불고···.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는데···방금 종혁이 엄마하고 있을 때 부른 의사 선생님이 치료 방법 있다고···. 단지 새로운 치료법이라서 병원비가···.”
“병원비는 내가···어떻게든···.”
“아니야···이번에 든 보험으로 입원비하고 치료비는 다 돼. 거기다가 진단비도 있고···.”
“그럼 치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거야?”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거기다···새로운 암치료기법으로 하면 개복수술도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하는 경수 어머니였지만 수술 이야기에서는 목소리에 울컥하셨지만 종혁이 어머니는 오히려 경수 어머니 손을 꼭 잡으면서 밝게 대답했다.
“어머···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지.”
경수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달음에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씀하셨다.
“주인이 덕분이야.”
“네?”
당혹스러운 표정의 종혁이와 나를 돌아보면서 경수 어머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주인이가 말해서 강제로 보험가입 안 시켰으면 치료하면 살 수 있는 치료 법이 있어도 치료 못 받았을 거야.”
“다행이기는 한데 그러니까···그래도 입원해있으신 경수 아버지가 다행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횡설수설하면서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크게 웃고는 처음에 병원으로 출발할 때와는 다들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벤치 쪽으로 향했다.
“아···, 경수 아직 밥도 못 먹었을 텐데.”
한참 뒤에서 같은 일행인지 알 수 있을까 싶은 거리에서 걸어오던 경수를 보면서 경수 어머니가 우리 쪽을 눈짓하고는 말했다.
“엄마도 못 먹었잖아.”
“엄마는 병실 지켜야지. 저렇게 소리 지르는 것도 잠깐이지 또 아무도 없으면 섭섭해하는 게 너희 아빠거든.”
“아빠가?”
“너희 아빠처럼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경수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병실을 지켜야 한다는 건 수긍했는지 병원지하에 마련된 식당으로 향하려고 했다.
“병원 밥 맛없으니까 나가서 먹고 와 너희가 맛있는 거 먹고 오면 엄마하고 교대하고.”
그렇게 말하면서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시는 경수 어머니의 억센 손길에 휩싸여서 우리는 어어 거리는 사이에 병원 밖에서 식당을 찾고 있었다.
“주인이 너 여기 식당 맛집은 알고 찾는 거야?”
“사람 많은데 가면 되는 거 아닐까?”
평일 시간이라서 그런지 한산한 가게들을 보면서 고민하던 우리는 익숙하게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세 명이 둘러앉듯 앉았다. 종혁은 가운데 앉아서 나와 경수를 동시에 돌아보면서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