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경수 아버지의 이야기>
다음날 경수의 모습을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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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나자 학교 앞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종혁이 어머니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나와 종혁이는 빠르게 달려서 교문 앞으로 향했다.
“경수···경수는 괜찮데요?”
“놀라기는 했지만 괜찮은 것 같아.”
“갑자기 이런 일이 연속으로···.”
“그러게···이럴 때일수록 친구가 옆에 있어줘야지. 우선 병원으로 바로 출발하자.”
택시를 타고 병원 앞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경수 어머니가 우리를 반겨줬다.
힘겨운 표정이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병문안을 온 경수 친구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손수 나와주신 것 같았다.
“와줘서 고마워.”
“주인이 어머니는 주신이 때문에 같이 못 왔어. 주인이 들어가면 늦게라도 온다더라.”
“굳이···.”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던 경수 어머니가 무너질 듯 휘청이자 종혁이 어머니는 근처 벤치로 바로 부축해서 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병실 쪽으로 먼저 가보라고 손짓을 해서 나와 종혁이는 조용히 경수 아버지가 입원해 있다는 병실로 향했다.
병실이 가까워진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하면서 익숙해지지 않는 두통과 함께 아찔한 괴리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속 장면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과 멀리서 들리는 듯한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흐릿한 흑백사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마르고 추워 보이는 배경에 비해서 얇은 옷을 입은 아직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모여있다는 느낌이었다.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대화를 놓치지 않도록 우선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자신의 정신이 어디론가 빨려가는 느낌과 함께 이전까지와 다르게 좀 더 시야가 낮아지고 직접 듣고 느끼고 감정까지 읽어내리는 이상한 느낌은 꼭 다른 사람에게 빙의한 것처럼 모든 감정이 공유되었다.
‘이건··경수 아버지?’
생각이 더 길어지기도 전에 장면이 전환되듯 하면서 감당하기 힘든 감정과 정보가 물 밀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텅 빈 논과 밭 사이로 싸늘한 바람이 자신을 때리고 지나간다. 형과 형의 친구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마산으로 간다는 나를 따라 시내로 나왔다. 버스를 오랜 시간 타본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지만 참을 만하다. 형하고 처음 나오는 나들이이기 때문이다.
‘엄마하고 순자도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
“역시 원광이는 유학 갈 줄 알았다니까.”
‘역시 형은 우리 동네 자랑이야.’
“원광이 어머니가 대단하시지. 혼자서 원광이 유학까지 보내시는 거잖아.”
어머니가 밭일을 끝내고도 밤늦게까지 달빛이 밝은 날이면 삯바느질을 하고는 했다. 순자도 어머니 돕는다고 옆에서 귀찮게 했지만, 아직 어린 순자가 도움이 될까? 항상 바늘에 손가락을 찔리고 어머니에게 아프다며 한 번이라도 품에 안기기 위한 수작일 뿐이다. 하지만 항상 바쁘신 어머니 품에 안기기 위해 바느질이라도 한번 하려는 순자가 밉지는 않다.
“너 나중에 어머니한테 효도해야 한다.”
“알아. 어머니나 동생들 생각하면 꼭 합격해야지.”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집에서는 항상 말이 없다가 친구들 앞에서만 이렇게 말하는데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떼를 쓰고 쫓아오고는 했다.
“원광이가 합격 안 하면 누가 하냐?”
친구들의 격려를 받고 시험을 보고 나오는 형의 모습에 나는 자랑스럽다는 듯 형 옆에 바로 자리 잡았다. 농사짓고 사는 동네에서 원광이 형은 항상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다. 5형제 중 어렸을 때 열병을 앓다가 죽은 동생들 때문인지 원광이 형은 자신과 순자에게 참 든든하고 좋은 형이었다. 순자도 원광이 형이 유학 갈 학교를 구경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차비 때문에 형만 올 수 있는 걸 자신은 형 친구 중에 선유 형에게 부탁해서 따라왔다. 형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나를 혼냈지만, 미리 사둔 차표를 버리지 못하고 따라오게 한 것이다.
나는 당연히 형이 합격할 거라고 믿고 있지만, 형과 친구들은 시험결과 발표를 위해서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시내가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독재철폐”
치직.
확성기 특유의 소음과 함께 단조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민 여러분 이성을 찾고 귀가하십시오."
“부정선거”
“독재철폐”
“부정선거”
“민주정치 바로잡자.”
치직.
단조로운 목소리에 귀찮다는 느낌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상사가 생깁니다."
사람들이 물밀 듯이 큰길로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일행은 너도나도 흩어지고 말았다. 원광이 형은 내 손을 꼭 잡고 자신이 합격하면 머물려고 마련한 하숙집 앞에 나를 두고는 나를 꼭 안아줬다.
“호광아, 여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형 금방 올 게.”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형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지만 든든한 형이 옆에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형은 나를 가만히 쓸어내리더니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형이 금방 돌아올게.”
형의 모습이 눈앞에 사라지고도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형. 금방 돌아온다면서···.’
타타타탕.
두두두두.
푸쓩.
알 수 없는 폭음에 하숙집 앞에서 엉엉 울고 있었더니 멀리서 몇몇 아이들을 데리고 뛰어오던 아주머니가 대문을 활짝 열고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들과 나를 집안에 들여놓더니 문을 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도 한참 어두워진 하늘을 밝게 수놓겠다는 듯 알 수 없는 불꽃과 매캐한 내음이 하늘을 점령할 때까지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배려로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지친 몸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이 번쩍 떠졌다. 뛰쳐나가듯 나가자 골목길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호광아.”
“호광아, 어디 있어.”
“여깄어. 형 나 여기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형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 그래도 혼자 밤새 울다가 잠들어서 불안한데 우리 동네에서 잘산다는 선유형이 나를 붙잡고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두려움에 같이 다급하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형···형···우리 형은 유광이 형은?”
“···네··형···유광이는···.”
나는 대답을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형···.’
“유광이는 나 때문에···.”
“무슨 너 때문이냐. 이 망할 부정선거 때문이지.”
“하지만 날 구하다가 유광이가···.”
“학생들한테 총구를 들이미는 미친놈들이 잘못한 거지.”
“···미안···내가···내가···시위에 참가하지만 않았어도···.”
“너만 아니야. 다들 인정하잖아. 이건 잘못된 거야.”
나는 유광이 형 친구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형이 보고 싶었다.
전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이 든든하게 우리의 버팀목이고 아버지나 다름없던 형이 이제는 더 이상 없다.
나는 그저 멍하니 매캐한 탄 내와 울컥거림 목 아픔 매운 듯 눈을 아프게 하는 그런 어린 시절 소중했던 아버지 같은 형을 잃어버렸다.
‘용서할 수 없어.’
나의 민주주의 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유광이 형만큼 나도 머리가 좋았는지 서운대에 합격했다.
“호광아, 축하한다.”
“···.”
나는 말 없이 선유 형이 주는 꽃다발을 받았다. 선재형의 잘못이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선유 형을 원망하고 있는 걸까?
나는 분노를 풀어내듯 다시 들어선 독재정권에 대한 규탄과함께 학생운동의 선두에 섰다. 공부라고는 뒷전이고 속에서 알 수 없는 분을 풀듯한 그런 운동이었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는 학생회 건물 앞에서 눅눅한 목소리의 교수가 나에게 진지하게 충고하고는 했다.
‘정말 제대로 된 교육자셨는데···.’
“호광군, 자네 뜻은 잘 알지만, 학교도 계속 압박을 받고 있어서 더 이상의 재적을···.”
‘나는 지금 어떤 정의를 바라는 걸까.’
“이대로는 대학 졸업도 불가능해요. 주위를 둘러봐요. 학생운동을 한다고 하는 친구들은 다들 얼굴도 가리고 시험기간 때는 시험도 보고 해요. 호광군의 의지는 잘 알지만 그래도 각자 살길을 찾기 위해서는 약간의 유연성을 발휘해서···.”
‘내일 대규모 시위를···.’
밤새도록 학생회관 불을 밝히고 내일 있을 시위를 준비하던 중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들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나의 매캐한 대학 생활도 끝을 고했다.
“박호광 유죄.”
나는 공산주의자라는 빨간 딱지를 받고 감옥에서 나와 무언가에서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갔다.
“호광아 고생했다.”
선유 형을 만난 순간 알 수 있었다.
나는 단지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어딘가에서 외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유광이 형이 죽고 경찰들이 어머니를 몰래 감시할 때 그때부터 가슴속에 담겨있던 불꽃을 어디에라도 터드리고 싶었던 게···
“형···.”
고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먼저라는 듯 말문이 막히고 소리 없이 숨죽여 울었다.
‘누구를 찾는 눈물일까.’
선유 형은 내가 학생 운동한다고 학비만 날리다가 감옥에서 썩고 있을 때 우리 가족을 돌봐주고 있었다.
‘형도 속에서 울분이 터질 텐데···나는···.’
“형이 그래도 광주에서는 택시회사 사장이잖아. 너도 택시 기사 하다가 나중에 개인택시 하나 사서 잘해봐. 이게 의외로 잘만하면 괜찮다니까.”
무슨 이유에서 울고 있는지 묻지도 않고 그저 나에게 잘 왔다. 어떤 일이든 같이 하자는 선유 형의 말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울타리 안 아직도 유광이 형이 그리운 작고 어린 나를 꺼내게 만들었다.
흐르는 눈물처럼 모든 일은 과거로 넘기고 앞을 생각하면 택시 기사 생활을 하기 무섭게 8월 뜨거운 한여름 나에게는 다시 한번 선택의 시간이 넘어오고 말았다.
누가 그랬던가.
한번 시작한 레이스는 자신이 포기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걸.
뜨거운 피가 흐르고 어쩌면 익숙한 포성과 굉음 그리고···
피비린내.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강경한 진압군의 특유의 무미건조하고 귀찮은 일을 떠맞았다는 그 확성기 소리를 다시 듣자.
습관처럼 아니면 훈련된 어떤 존재처럼.
가장 앞에 나서서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