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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69화 (69/205)

<69화 거짓된 모든 것 3>

대백공이 눈앞에 있다는 걸 인식하자 내 정신은 대백공과 만난 그 장소로 돌아와 있었다.

“이···이게···.”

“어떤가? 이것이 이 땅의 기억이라네.”

“···.”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둘려서 대백공을 만나게 되면 해야 하는 질문을 정해놨던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볍게 생각했던 거짓과 진실이 현실에서 어떻게 혼재되어 있는지 직접 눈앞에서 바라보게 되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말했던 아이가 두려움에 거짓말을 한 상황에서 거짓이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너무···혼란스러워요.”

“거짓이 가득 찬 세상에서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그런···.”

“거기에 더해서 거짓 자체는 잘못이 아니라는 걸세. 그렇지만 거짓을 통해서 죄를 짓는 것이 문제인데···거짓된 모든 것은 짓는 죄조차도 거짓으로 죄가 아닌 것으로 덮을 정도로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일세. 아주 교묘하게 기만하는 거짓된 모든 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이 저것이 거짓이라고 확신할 때만 거짓된 모든 것을 심판할 수 있는데 과연 지금의 세상에서 그것이 쉽게 가능할까?”

“···.”

나는 대백공의 말이 방금의 장면과 섞이면서 너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저 듣고 있기에 벅찬 상태였다.

“인간이 그런 인간사의 흐름을 깨우쳐 중심을 찾는다는 것은 선각자의 반열에 올라야 가능한 것일세. 나조차 이런 세상의 거센 흐름 속에서 그저 지켜볼 따름이지.”

“그 말씀은···.”

대백공은 이제까지 내가 아닌 석상을 보고 있던 모습 그대로였는데···갑자기 들고 있던 지팡이로 석상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회귀를 할 때처럼 강하게 내려쳤던 것처럼 어떤 규칙이 있는 듯 춤추듯 석상의 위에서 아래까지 순식간에 내려쳤다. 그러자.

‘우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석상이 무너져 내리듯 하더니 그 속에서 별빛이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의 별빛만큼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빛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신비한 모습이었다.

‘공중에 떠 있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물건은 저울 모양으로 보였다. 저울처럼 보이는 물건은 누가 잡고 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공중에 떠 있는 모습 그대로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울로 확신을 하지 못한 이유는···.

‘···깨졌잖아?’

저울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금이 가고 부서져 도저히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금가 있는 상태였다. 당장 손에 들어 올리기라도 하면 부서질 것 같은 모습과 달리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은은한 빛까지 뿌리는 모습은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내가 신비로운 모습에 홀리듯 생각지도 못하고 손을 들어 잡으려고 했다. 대백공이 내 손을 지팡이로 막아섰다.

“대가 없는 힘은?”

“···타락자?”

내가 홀린 듯 저울에 이목을 집중한 상태인 순간에도 대백공이 했던 말을 기억해 대답했다. 기특한 아이를 보듯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대백공이 곧 품에서 자루를 꺼내더니 허공에 떠 있는 저울 위로 뿌리기 시작했다. 대백공이 뿌린 무언가는 내 눈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꼭 흐릿한 안개나 아주 고운 모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허공에 떠 있는 저울과 같이 은은하게 빛난다는 게 신비로웠다.

“이것은 신물이지. 인간들은 신물을 쉽게 생각하는데 인계에 뿌려진 신물은 전부 모조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네. 이것처럼.”

대백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서지고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던 저울은 어느새 새로 만든 것처럼 반짝이고 금하나 없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이게 모조품이라고요?”

모조품이라고 하는 대백공의 말이 아니었다면 지금 보고 있는 정의의 저울이 진짜 신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처음 나타났던 깨지고 부서질 것 같은 모습보다 더 반짝이고 금하나 없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더해 처음보다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운 빛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신물이 인간의 손에 닿게 되면 인간의 격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가 아닌 이상 신물의 격이 떨어지거나 인간의 격이 올라가거나 아니면 둘 중 하나는 파괴되고 말지.”

“그럼···.”

“비록 신물을 그대로 복제한 모조품이네. 하지만 이 저울을 통해서 자네는 자네의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걸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그와 동시에 다른 이에게 사용했을 때 이 저울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저울의 기울기만큼 심판을 받아야지. 아무리 악인이라도 인간의 기준으로 개인적인 원한으로 사적 복수를 한다면 또 다른 범죄일 뿐이야. 그렇지만 이 정의의 저울 위에 올라간 죄악이라면···.”

“그럼 세속의 재판과 이중으로 심판받게 되는 건가요?”

“아하하 핫. 어린 친구 참···나를 즐겁게 해주는 재주가 있구먼···."

“네?”

“자네는 인간들의 재판이 공정하다고 느끼나?”

나는 체육 선생이 집행유예로 바로 풀려나왔던 상황에서 느꼈던 분노와 황당함을 기억하자 도저히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느끼고 싶은 사회가 이미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듯 죄인의 죄를 판단하는 인간들의 재판은 한마디로···서로의 사익에 따라서 그 결과가 아주 많이 달라진다네. 이번에 자네가 체육선생을 죽게 만드는 행동을 했는데도 오히려 특이점을 늘어난 이유는 죄인이 죄를 지었는데도 인간들의 재판에서 풀어주었기에 제대로 된 심판을 받지 않았기 때문일세. 말했던 것처럼 죄인의 죄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 했을 경우에만 저울이 움직일 걸세.”

“저울이 기울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죄인은 심판을 받아야겠지. 이것은 권한이자 과업일세.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도 찾아올걸세. 이 정의의 저울을 받아들이겠나?"

“저는···.”

“거기다 이 정의의 저울을 사용할 때마다 특이점도 소모될 것일세.”

“네?”

“특이점은 자네의 보상일세. 어린 친구가 쉽게 이해하려면···그래. 마일리지 같은 것이지. 많이 쌓게 되면 자네가 원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전에 정의의 저울을 이용하게 되면 특이점을 소모하게 되고 원하는 보상까지는 더 모아야겠지.”

“그럼···.”

“자네가 정의의 저울을 선택하지 않아도 이해한다네. 대가 없는 힘은 없다고 그래야 한다고 말했었지. 하지만 이 세상은 이미 너무나 많은 이들이 대가 없는 힘을 사용하고 타락해가고 있다네. 결국 그 덕분에 세상은 멸망이 시작되었다네. 하지만 대가 없는 힘을 사용하는 인간의 기준에서는 멸망은 아직도 먼 후의 일일세···. 자신이 아닌 얼굴도 모르는 후손이 받을 피해일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지. 편한 길을 선택하자면 얼마든지 쉬운 길이 있는 법이지.”

대백공이 말한 멸망은 언제쯤 벌어지는 일일까?

회귀 전에도 사회면에서 뉴스는 심각하다는 듯 기사를 올리곤 했다.

지구 온난화가 급속화되어서 이대로 방치하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 그저 살았다.

당장의 일이 아닌 것이다.

위기다 위험하다 해도 당장 내일 멸망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일상을 박차고 환경운동가로 변할 수 없다.

사는데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그들이 잘 못 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

당장 환경 운동가가 된다고 하면 그들의 생계는 누가 챙겨주는가.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던 나는.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대백공의 말처럼 멸망이 시작된다고 해도 나와 가족들이 당장 당할 일이 아니라면 그리고 내 주변의 친구들이 편하게 살수만 있다면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니라면···.’

대백공은 내 마음을 읽듯 나를 보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친구, 경수···심장이 멈출 것처럼 비참하게 울었던 경수. 한 줌의 핏자국만 남기도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 인하···경수와 인하의 마지막 모습이 어떠했던가···이제는 더는 못 보게 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내 욕심에 친구라면···경수라면 이해해줄 거라는 알량한 마음가짐 아니었을까?

경수에게는 미안했지만, 인하가 이민 가더라도 행복하게 살다가 웃으면서 경수와 고마웠다고 그런 이야기를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프기만 한 사랑 후에 결국 내 죽음으로 끝났던 내 사랑만 보고 내가 쉽게 생각한 것 아니었을까?

아프기만 한 사랑이라도 아파할 선택마저 주지 않는 게 옳은 것일까?

회귀 후 모든 게 잘 흘러간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쉽게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여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런데 대백공이 말한 진실은 나를 기쁘면서 동시에 분노하게 만들었다.

‘복수할 수 있는 기회···.’

경수와 인하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뻐할 수 있는 기회, 슬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존재.

아파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존재···

그 모든 기회를 앗아간 거짓된 모든 것의 존재에 대해서···

“······그런 존재를 심판할 수 있다면 전 뭐든지 감당할 준비가 됐습니다.”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

그저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가는 것 밖에는···

“선재라···. 그렇게 쉽지 않을 걸세. 거짓된 존재와 싸운다는 건···오랜 세월이 걸리겠지.”

‘솔직히 후회할지도 모른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 스스로를 모질고 험한 길로 몰아붙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쉬운 길을 선택하고 경수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어머니와 동생의 얼굴은?

한번···

이번 한번은···

이번만···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아···.

이런 생각으로 눈을 감고 지나갔던 모든 일이 결국 내 삶을 덮쳐 나를 짓누른 건 저번 회귀 전 삶으로 충분하다.

“솔직히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회귀 전 죽는 순간 가장 내가 바란 건 단순했다.

살고 싶다.

사람답게··

사람답게···살고 싶다···.

잠깐 눈감으면 편한 길이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또, 다시 사람답게 살 기회를 스스로 버리게 될 것이다.

어린아이가 맨발에 비틀거리면서 한겨울 비틀거리면서 문밖으로 힘겹게 손을 내밀어도.

남의 가정사라고 눈을 감으면 나는 그날 하루도 평소와 같이 마무리될 것이다.

회사에서 상사가 여직원들에게 커피나 만들어 오라고 하면서 시작하는 하루도 눈살을 찌푸리고 넘어가면 그날 하루도 평소와 같이 마무리될 것이다.

뉴스에서 대기업 이사가 컵을 던지고 직원들에게 막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와도 나와는 별개의 일이라고 넘어가면 그날 하루도 평소와 같이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장애진단을 받고 더 이상 사회의 평범한 무리에서 벗어나고 나면 나는 어느새 뉴스에서 나오는 한 줄 짜리 사건 사고가 되어 외로운 곳에서 믿었던 사람들의 등을 보면서 차갑게 죽어갈 것이다.

살고 싶다.

하지만.

사람답게 살고 싶다.

지금 경수의 일은 그저 안타깝다고 그저 생각만 하고 눈감고 넘어가면 대백공이 말한 것처럼 보상을 받으며 살 수 있다.

어머니의 따뜻한 성채와도 같은 품에서 그저 그 안락한 곳에서 경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평안하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삶이라면 이미 지겨울 정도로 살아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는 친구 경수···앞에서 떳떳한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허어···어린 친구 자네에게 너무 과중한 업을 넘기는 것이 아닌지···.”

신비롭고 상서롭기까지 하던 정의의 저울이 순간 소멸하듯 사라졌다. 나는 경악성을 내뱉기도 전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눈이 터질 것 같은 열이 올랐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기화돼서 연기로 흩어지고 있었다. 눈동자가 산 채로 녹아내리는 느낌에 바닥을 굴러다녀야 했다. 육체가 강화되고 재생이라는 능력을 얻게 된 이후로 고통이라는 걸 느낀 적도 있지만···가슴의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의 중상도 순식간에 나을 정도였기 때문에 영원에 가까운 고통에 나는 비명을 멈출 수 없었다. 산 채로 눈동자에 낙인이 찍히는 고통에 나중에는 목 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그런 내 귀로 대백공의 말을 의미 없는 읊조림에 불과했다.

“허어···정신을 잃었으면 오히려 편했을 것을 술법의 힘으로 기절조차 못 하는구나···.”

‘이···××××.’

내가 입을 열 정도의 여력이 되었다면 욕을 주야장천 날려주었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바닥을 구르면서 바닥청소를 하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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