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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65화 (65/205)

<65화 오늘은···>

햇빛 가득한 옥상정원은 아침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작은 문소리와 함께 옥상을 향한 유리문이 빼꼼 열리더니 몸집이 작은 소녀가 요정처럼 나타났다.

문소리와 함께 환자 특유의 슬리퍼 소리가 아니었다면 요정이라고 착각할 것 같은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소녀였다.

소녀의 옆에서 찬바람을 막을 담요를 덮어주는 간호사의 모습에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진다. 작은 노트와 차갑지 않게 손으로 꽉 쥐고 있다가 넘겨주는 볼펜을 소중하게 잡은 소녀의 눈망울이 작게 반짝이면서 눈부신 빛의 산란을 만들어 낸다.

그런 소녀는 햇볕이 가장 빛나게 비추고 있는 벤치에 앉더니 준비해온 노트를 열어 동글동글한 글씨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합니다. 아니 내가 느끼는 세상이 포근해서 이렇게 닭살이 올라올 정도로 찬바람이 부는데도 따뜻한 것 같습니다.-

“오늘 찬바람이 불기는 해도 햇볕이 좋네. 인하도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어때?”

간호사는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웃음을 입가에 매달면서도 소녀가 춥지 않게 가까이 앉습니다. 소녀가 작은 몸으로 작은 노트를 가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보지 않고 있었지만 소녀가 자신에게 숨기는 게 있다는 사실에 작은 심통이 난 것처럼 계속 소녀를 보던 시선을 멀리 옥상공원 너머로 던집니다.

그 사이에 소녀는 빠르지만 동글동글한 글씨로 작은 노트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나는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내 삶은 버려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빠는 술을 마시면 항상 나를 때렸습니다. 아프다고 말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그렇다면 들어줬을까요?-

-엄마가 보고 싶으면 항상 맴돌던 안남산 자락으로 향합니다. 엄마가 좋아하던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곳입니다. 오래된 골목길을 돌아가면 산과 동네 사이에 옹벽 위에 심어져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보러 갑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장소였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집 나간 나쁜 년이라고 욕하면서도 엄마가 좋아하는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곳으로 한 번도 찾으러 간 적이 없습니다.-

-난 엄마가 보고 싶은데 아빠는 보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말로는 항상 찾고 있다고 하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찾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를 찾아 헤매다 길에서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외할머니 장례식에 가고 싶었지만 아빠가 못 가게 했습니다. 슬프지만 참아야 합니다. 참지 않으면 또 맞을 테니까요.-

-평생 엄마를 그리면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는 선생님이 나타났습니다. 정말 기뻐서 당장 내일이라도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선생님이 하자는 데로 다했습니다. 정말 아파도 아빠가 일주일 넘게 매일 때리던 때보다는 참을 수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아니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괜찮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든요.-

-저는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기 싫어서 평생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궁창에 던져진 다음에야 그제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겁니다. 기쁘지만 그에 못지않게 두렵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매일같이 저에게 욕을 던지고 쓰레기를 던지고 물도 뿌립니다. 그런데 저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아이도 같이 욕을 먹게 되면 어쩌죠?-

-간호사 언니는 제 질문에 웃기만 하더니 이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나두면 결국 잘 될 거라고요.-

-역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나두면 되는 걸까요?-

-넘칠 것 같은 이 간지러움을 가슴에 묻어두고 그저 나둘 수 있을까요?-

-초콜릿···-

-엄마는 초콜릿을 좋아했습니다. 그렇지만 형평상 자주 사 먹지 못했다며 월급을 탄 날은 초콜릿을 하나 사서 둘이 나눠먹었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반쪽에게 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고 물었는데 그저 슬프게 울 것 같은 표정이어서 저는 초콜릿 먹는데 집중하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주고 싶어 했던 반쪽에 대해서는 외할머니 장례식에 가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못 가게 했지만 학교를 빠지고 걸어서 걸어서 밤늦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외할머니 장례식을 지키고 있는 멋진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 도착한 저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이제까지 담담하게 서 있던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무너지듯 주저앉더니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 큰 어른이 눈물을 흘리자 당황스러웠지만 저 만큼 외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것 같아서 같이 울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많은 아저씨의 이름은 천일이라고 했습니다. 성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미안해요. 천일 아저씨.-

-천일 아저씨와 엄마는 소꿉친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왜 외할머니 장례식장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외할머니는 엄마 말고는 전쟁통에 자식들을 전부 잃어버렸다고 들었습니다.-

-아빠는 그런 집안하고 결혼해 준 자신이 대단하거라고 항상 엄마 앞에서 우쭐 되고는 했습니다.-

-천일 아저씨는 보고 싶은 사람이 같을 때는 이렇게 장례식장에 찾아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초콜릿을 반쪽 나눠서 저에게 줬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지만,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저도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가도 슬퍼집니다. 아저씨도 그래서 그렇게 슬프게 울었던 걸까요?-

-아빠는 엄마를 화냥년으로 불렀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압니다. 저 같은 일을 당한 걸 말한다고 아빠가 엄마하고 똑같은 년이라고 했습니다. 엄마도 저처럼 많이 슬프고 힘들었을까요? 천일 아저씨는 그런 일을 당한 여자는 더 이상 좋아하지 못했던 걸까요?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지만, 외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역시 그런 일을 당한 엄마가 미웠던 걸까요? ···만약···(지저분하게 펜으로 지워서 알아볼 수 없음.)-

작은 소녀가 노트를 뚫어버릴 듯 낙서를 하기 시작하자 간호사는 걱정이 되었는지 먼 곳을 보던 시선을 다시 소녀에게 향하면서 담요를 따뜻하게 다시 덮어주면서 말했다.

“햇볕이 좋기는 하지만 공기는 차니까 이만 들어갈까?”

소녀는 말없이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두 명의 인형이 옥상 공원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오늘 병실에 처음 보는 아저씨가 나타났습니다. 간호사 언니가 옆에 없어서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그런 저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명함을 내밀었어요. 그러고는 인권 변호사라면서 지금 선임되어 있는 변호사보다 실력이 좋으니 자신만 믿으라고 가슴을 탕탕 쳤습니다.

- 하지만 전 저를 도와주고 있는 변호사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인권 변호사가 더 센 걸까요? 제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이요···제가 대답하지 않자 그 아저씨가 이해도 되지 않는 말을 계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경찰 주요 용의자이고 제 옷이 범행현장에서 발견되었다면서 억울하게 범인이 되고 싶지 않으면 자신을 찾으라고 강조를 계속했습니다. 정말 그런 걸까요? 전 이대로 범인이 되는 걸까요?

- 그럼 경수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긴장감으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범인이 아니라고요. 그러자 그 변호사가 아주 크게 웃기 시작하더니 다 잘 될 거라고 자신에게 맞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그 변호사의 말에 한번 긍정의 대답을 하고 나자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다 잘 될 거라고 한 이후에 정말로 경수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 면회를 온 경수는 저에게 미국이민을 권했습니다. 저한테 새로운 삶의 기회가 될 거라고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경수를 볼 수 없잖아요? 저도 천일 아저씨처럼 되는 걸까요? 잘 먹고, 잘 살고 그저 살아가는 삶 말입니다. 그래서 전 사실대로 말했어요. 제가 그자의 유력한 살인 용의자라고 말입니다.

- 그러자 경수가 크게 화를 내면서 병실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경수 얼굴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그래도 자신의 일처럼 화를 내주는 모습에 안심하고 마는 저는 나쁜 아이겠죠? 경수의 친구들이 저와 대화하더니 혼란한 표정으로 병실을 나갔습니다. 경수가 안전하게 집에 가도록 도와주겠죠?

- 그런 친구들이니까요. 저는 오늘도 하염없이 병실 문을 바라봅니다. 그렇지만 다시 열리지는 않을 겁니다. 전 친구가 없으니까요.

-병실 문이 다시 열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문이 열렸습니다.-

소녀의 입원실 안에 낮에 찾아온 변호사가 다시 나타났다. 양복을 입고 특유의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는 모습은 선량해 보였지만 동시에 어떤 꿍꿍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대로 병실에만 있으면 상황만 악화된단다.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지.”

-간호사 언니는 면회 신청도 하지 않고 들어온 사람이라면서 의심스럽다고 말했지만 저는 제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변호해 주겠다는 사람을 밀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돕겠다고 말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도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갑자기 병실에서 나가자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 건 말입니다.-

소녀는 간호사에게 받았던 노트에 마지막 글을 적고는 변호사가 말한 대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소녀의 준비는 다른 게 아니었다.

간호사에게 빌렸던 노트와 볼펜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소녀의 옷이 들어있던 캐비넛에서 핑크색 포장지에 들어있는 초콜릿을 꺼내 침대 한가운데 올려놓았다. 초콜릿을 한참 보던 소녀가 몸을 돌렸다.

‘이거 오늘 주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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