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체육 교사 살인 사건3>
통화하고 들어오라는 듯 휴대폰을 든 내 손을 단단하게 붙잡아준 후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홀린 듯이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말해줘도 괜찮다면서 집에 들어가시긴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주신아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라···내가 말하지 않아도 결국 알게 될 것 같아서 전화를 하기는 했는데···.”
“자꾸 뜸 들이시니까 이상한 생각만 하게 되잖아요. 무슨 일인데요.”
“인하가···인하가······.”
“인하한테 무슨 일 있어요?”
“병실에서 인하가 사라······.”
“인하가 사라지다니 무슨 소리예요. 인하가··인하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내 담당은 아니어도 마음이 쓰여서 지금 확인해봤는데 담당 간호사도···말도 없이 병실에서 사라질 리가 없다고만···.”
“설마···경수도 알아요?”
“인하 아버지 소재가 불분명하잖니. 아마 긴급연락처가 경수로···.”
“금방 갈게요. 잠시만 기다려요.”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할새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면서 되뇌었다.
‘제발···설마···그렇지는 않을 거야.’
이제까지는 빠르게 달릴 수 있어도 스스로 다른 사람 눈에 띄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조절하던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안구가 시린다고 느낄 즘 저 멀리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 근처의 높은 주차장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기는 했지만 지상 1층과 2층은 제외하고 지하부터 지상 7층까지는 주차장으로 8~10층까지만 영화관이었기 때문에 상주하는 사람이 많은 건물은 아니었다.
“어떻게···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경찰 출동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저기···여학생이 서 있는 거 아냐?”
웅성거리는 소음과 함께 나는 다리가 풀린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서 멍하니 건물의 끝자락을 쳐다보고 말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갑자기 다리던 택시가 멈추고 숨이 턱에까지 찬 경수가 건물이 보이는 건널목에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안돼···.’
누구에게 외치는 마음속 외침인지도 모르고 단지 경수를 향해 시선을 던지던 나는 한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쾅!
“까악.”
“정말 뛰어내렸어.”
어디서 나타난 건지 그제야 나타난 경찰들이 사람들을 통제하면서 사람들을 밀쳐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경수 옆으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저 경수를 목숨줄 마냥 꽉 부여잡고 있었다. 경수가 얼마나 나를 밀쳐내고 싶어 하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내 몸을 꽉 잡아채 쥐어짜는 듯한 압박에 숨을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놔. 놓으라고···아니야 아니야!!”
절규하는 경수를 부여잡고 온몸의 피가 그제야 돌면서 사고가 가능해지는 것 같았다.
‘절대 경수가 사고현장을 보게 할 수는 없어.’
내 생각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여력이 없었다. 다만 그저 이런 식으로 인하와 경수를 만나게 할 수 없다는 그런 생각만이 계속할 뿐이었다. 이런 우리의 소란을 눈치챈 것인지 멀리서 외삼촌이 우리를 향해 뛰어오는 게 느껴졌다.
“놔. 놔. 이럴 리 없어. 아니야. 인하는 인하는···.”
핏대까지 세워가면서 미친 듯이 외치는 경수를 붙잡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온기에 어디론가 숨어버리듯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경수를 꽉 껴안고 있는 내 손가락을 보더니 외삼촌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내 팔을 잡았다.
나는 그제야 홀린 듯이 경수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고 경수가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봤다.
“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해서 기본 조치는 했으니까···.”
“제가 잘못한 걸까요?”
“모르겠다. 다만 경수가 누군가를 원망한다면 난 그게 내 조카가 아니었으면 한다.”
“하지만···.”
내가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외삼촌을 응시하자 의사 특유의 차갑지만 섬세한 눈초리가 나를 향해 슬프게 휘었다. 내 머리를 꾹 감듯이 누른 외삼촌은 나직하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너무 힘든 기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누가 결정해준다면 그게 옳은 일일까?”
“전···.”
“친구가 힘든 일을 겪는 게 옆에서 지켜보기 힘들겠지. 그렇지만 그런 상황을 이겨내려고 할 때 옆에서 지켜주는 게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단다.”
사력을 다해 인파를 뚫고 인하의 현장에 달려간 경수가 비통하게 우는 소리가 수많은 사람의 웅성거림을 뚫고 들려왔다. 그 뒤로 작지만 내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가 들렸다.
“경수야.”
‘종혁이?’
내 망연자실한 모습을 일별하고 종혁이 경수가 울부짖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뒤로 종혁이 부모님 모습이 얼핏 보였다. 두 분 다 휴대폰을 붙잡고 뭐라고 외치는 와중에 경찰이 사람들을 뒤로 밀어내면서 소동이 나기 시작했다.
“그만 밀어요.”
“사건 현장입니다. 일정 거리 유지해 주세요.”
“취재도 좋지만, 안전이 우선입니다. 거리 유지해 주세요.”
“초상권 침해입니다. 찍지 말아요.”
“공무집행 중입니다. 거리 유지해 주세요. 어이 거기 여기 사건 현장 감시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기자들이 인하가 있던 붉게 물든 자리를 앞다투어 찍으면서 울부짖고 있는 경수의 모습까지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것인지 종혁이 아버지의 거센 외침이 기자를 향했다.
“누구든지 유가족 및 본인에게 허락받지 않고 얼굴이 노출되면 바로 고소하겠소.”
그 말이 기자들에게 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취재 열기가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양복을 입은 눈은 작지만, 금테안경 뒤의 눈동자는 웃고 있는 남자가 기자들 앞에서 손을 들어 보였다.
“저는 방금 자살한 고 기인하 학생의 변호사입니다. 일이 이렇게 흐르게 된 것에는··.”
내가 본 웃고 있던 느낌이 거짓말인 것처럼 양복의 남자는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들어 올렸을 때는 슬픔과 분노로 점철된 얼굴이 되더니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이 안타까운 사건은 바로 경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불행한 일이 재발 된 것입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더욱 소란이 커지면서 터지는 플래시에 주변 사람들 사이에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꿋꿋이 큰 목소리로 주변의 모든 사람의 관심을 전부 흡수하겠다는 듯 웅변하듯 목소리를 크게 한 인하의 변호사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외쳤다.
“범죄 피해자인 고 기인하 학생에게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도 않고 체육 교사 사건의 용의자로 몰면서 무리한 수사를 감행한 결과가 이것입니다. 이렇게 경찰이 제대로 된······.”
기인하의 변호사라고 주장하는 남자의 모습은 슬픔과 분노를 온몸으로 표현했지만 나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껴야 했다.
‘저런 사람이 인하의 변호사였다고?’
인하의 변호사라는 사람이 건물 앞에 나타나자 다들 앞다퉈서 그에게 향하면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경수의 소리 없는 오열만이 이 자리에 남았을 뿐이었다.
‘정말 인하를 위한다면···.’
나는 종혁이처럼 경수의 옆에 있어 주지도 못했고 주변의 구경꾼들처럼 방관자의 위치에 서 있지도 못한 그저 그곳에 못 박은 것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정말 인하를 위했다면···.’
나는 인하의 변호사라는 사람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와 분노에 몸을 떨면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외삼촌이 그런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휴대폰을 들고 계속 통화하더니 나를 종혁이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했다. 종혁이 아버지는 종혁이가 부축하는 경수의 시야를 가리면서 더는 사고현장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면서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고현장은 내가 생각보다 경수를 붙잡아둔 시간이 길었는지 이미 빠르게 정리가 되어가서 인하가 누워있던 자리의 붉은 물감을 아무렇게나 뿌린 것 같은 기하학적인 모습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그 자리에 누워있었을 거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길 한가운데였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울고 있는 경수와 그런 경수를 감싼 종혁이 그리고 종혁이 아버지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걱정스러웠는지 외삼촌이 내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울고 싶다면 울어도 좋아. 화내고 싶다면 화내도 좋다. 다만 마음에 쌓아두지만 말아라.”
‘나는 울고 싶은 건가?’
경수의 눈물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니야.’
나는 분노를 표출하듯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인하의 변호사를 향했다.
‘화를 내고 싶은 건가?’
“화가 나요···그런데 누구에게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외삼촌이 말없이 그런 내 등에 팔을 올려 기대게 해주었다. 그제야 나는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추운 겨울바람에 체온이 낮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참고 싶지 않은데···.”
“···주인아···.”
“그런데 저 변호사 말처럼 공권력이 무너져서 생긴 일인가요? 인하의 마음을 무너트린 건 인하가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건 정말 경찰인가요?”
나는 외삼촌을 향해 말했지만 나는 이미 답을 아는 것처럼 양복 입은 남자를 바라봤다.
‘분명 김 씨 아저씨는 경찰에 확실한 증거를 넘겼다고 말했어. 김 씨 아저씨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정말 김 씨 아저씨 말처럼 변호사가 문제의 시작일까?’
나는 김 씨 아저씨와 만날 때마다 억지로 눌러둔 파도와 마주하는 것처럼 기억의 파도에 둘러싸이고는 했다. 그래서 김 씨 아저씨가 변호사에 대해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게 된 사건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김 씨 아저씨가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단지 인하가 걱정되는 마음에 알아봐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 김 씨 아저씨의 말이 편견에서 판단한 발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