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체육 교사 살인 사건2>
집으로 향하는 길 종혁이와 나는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인하가 정말···.”
“그럴 리가 없잖아.”
‘인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인 걸 알고 있는데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인하의 상황은 꼭 누구라도 인하가 범인이라고 의심해볼 법한 상황으로 몰리고 말았다.
‘도대체 인하의 옷가지를 체육 살인 장소에서 어떻게 나오게 된 거지?’
“그렇지만 인하 옷이 거기 현장에서 발견되었다고···자기 입으로 말했잖아.”
“인하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경찰이 말한 거 아니야? 조사 왔다 갔다면서···.”
“그런가···.”
‘허 순경의 말을 들어보면 인하 옷가지가 발견된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입단속 시킨 것 같은데 어째서?’
나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집에 도착하기 전에 종혁이에게 말했다.
“난 들릴 곳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어디?”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좀 돌아가더라도 사가려고···.”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멀어지는 종혁이를 보면서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육체 강화 술법 덕분인지 춥다는 느낌보다는 지금의 답답한 심정을 식혀주는 것만 같았다.
멀리서 흐릿한 그림자가 흔들린다고 생각될 무렵 멀리서 김 씨 아저씨가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김 씨 아저씨는 특유의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분위기로 검은색 봉지를 든 채 걸어왔다.
‘부스럭거리는 비닐봉지 소리가 안 들린다는 게 신기하네.’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도착한 김 씨 아저씨는 봉지에서 밀크티를 꺼내서 나에게 줬다. 나는 미지근하지만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밀크티를 한 손에 들고 그 온기를 한동안 음미하다가 품 안에 넣었다. 의아해하는 김 씨 아저씨에게 가벼운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동생 가져다주려고요.”
“다음엔 더 챙겨 오도록 하지.”
“하하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고요. 그저 동생은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랄게 없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힘들까 봐 동생을 배려한 게 오히려 나중에 힘들더라도 함께했던 기억이 있었던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요.”
내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한 김 씨 아저씨는 이내 산자락에 걸려서 이제는 붉게 타오르듯 하는 노을을 보더니 말했다.
“체육 선생 살인 용의자로 인하라는 학생이 병원에 붙잡혀 있다고 했나?”
“네. 경찰은 인하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네?”
“너의 의뢰는 체육을 살인한 범인을 잡아달라고 했지만, 체육 선생을 살인한 범인을 직접 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감금 또는 납치 과정에는 폭행이 발생할 텐데 오히려 일이 복잡해지지···그래서 의뢰 내용 중 체육 선생의 범인에 대한 증거를 경찰에 가져다 달라고 했었지? 그래서 난 흉기 위치를 경찰에게 알려줬다. 흉기를 경찰이 수거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거기에 놈이 자수를 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드는 중에 너에게 연락을 받고 나온 거다. 그래서 네가 경찰이 인하를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해가 안 가는군.”
“그렇다면 경찰은 범인에 대해서 윤곽을 잡았다는 건가요?”
“그렇지 지금 조회만 해도 체육 선생과 시비가 생겨서 살인까지 하게 된 놈이 이제까지 범죄 이력이 없을 리 만무하니 금방 용의 선상에 오를 거다. 그런데 인하 학생이라고 했나? 그 학생에게 유력한 용의자인 것처럼 신문을 했다고? 나로서는 의문이다.”
“그럼···도대체 왜 인하는 자기가 범인이라고 스스로 자기 확신에 가까운···.”
“일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다면 반드시 이유는 제삼자에 있는 경우가 많지.”
“그건···.”
“이건 내 경험이지.”
“인하 주변에 사람이라고 해봤자. 병원의 의사 선생님하고 저하고 종혁이 경수···간호사 누나? 하지만 그 누나는 정말 인하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요.”
“형사 말고도 사건 담당자가 있을 텐데?”
“네?”
“변호사.”
“하지만 변호사는 인하를 위해서···.”
“정말 변호사가 피의자를 위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하나? 그런 존경스러운 변호사가 있지만 이제까지 내가 겪은 변호사는 그런 인간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담당한 사건의 피의자가 용의자로 의심되지 않는데 굳이 인하에게 그런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는 식으로 인하에게 이야기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글쎄 변호사들은 속을 알 수가 없어. 진정 사건에 열심히인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한 발판으로 사건을 이용할 때도 있지.”
“설마요···.”
“확인해보면 되겠지. 이게 새로운 의뢰인가?”
“네 인하 주변에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알아봐 주세요.”
“오늘 인하 학생 주변에서 변호사를 봤나?”
“아니요. 못 봤어요.”
무언갈 고심하는 표정의 김 씨 아저씨는 이내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무심히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최소한 왜 질문했는지는 대답이라도 해주고 가시라고요.’
나는 마음속으로만 외치는 답답한 하소연을 넋두리하듯 외치고는 이내 나도 자리를 정리하고 내가 올라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자리만 귀신같이 찾아서 나타나는 거지?’
나와 김 씨 아저씨의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서 인적은 드물고 그렇다고 만나서 대화 나누는 동안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장소만 정해서 나타나는 김 씨 아저씨의 등장에 놀랍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점점 추워지는 추위에 쫓기듯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집에 도착하자 따뜻한 밥 짓는 온기가 올라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 신발과 동생의 신발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한쪽에 치워져 있는 모습에 어머니가 일찍 들어오신 걸 알 수 있었다.
“주인이 왔니?”
“엄마? 오늘 일찍 왔네요?”
“이제 인수인계 시작했어.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일 있다고 일 끝나고 바로 왔어.”
“그럼 이제까지 계속 늦게 온 건···.”
“내 일 끝났다고 매정하게 바로 갈 수가 있어야지. 이것저것 돕다 보면 시간이 항상 늦어서···.”
“네?”
“나중에는 내가 일을 돕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더라. 그런데 어디서 그런 이야기 하기도 그래서···.”
“엄마!”
“괜찮아. 이제 진짜 그만둔다고 말하고 인수인계하면서 오늘도 바로 나오고···그런데 너무 매몰차게 한 게 아닌지···.”
“엄마 그건 매몰찬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요. 주신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동생은 엄마가 일찍 왔다는 사실에 마냥 기쁜 듯 엄마 다리에 매달리듯 주변을 서성이다 내 질문에 온몸으로 긍정의 대답을 발산했다.
“엄마 일찍 와서 좋아.”
살짝 어두운 표정이었던 어머니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뒤돌아 말했다. 제시간에 퇴근한 게 마음에 걸렸던지 나와 주신이의 대답에 마음의 짐이 내려간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늦었네···빨리 씻고 나와 오랜만에 저녁 같이 먹자.”
“네.”
나는 빠르게 씻고 나와서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윤기 있는 흰쌀밥에 샛노란 색 통통한 계란말이 그리고 주신이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심심한 겉절이지만 밥에 올려 먹으면 꿀맛이었다.
구수한 된장찌개에서 큰 두부와 애호박을 건져 먹을 때면 시원하면서 든든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저녁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동시에 어머니 휴대폰까지 울리기 시작하자 나는 정리하던 밥상을 뒤로하고 내 휴대폰을 먼저 들어 올렸다.
‘외삼촌?’
“안녕하··세요?”
“주인아···.”
인사를 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외삼촌의 음성이 크게 울렸고 외삼촌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어머니가 외삼촌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랐는지 내가 들고 있던 휴대폰에 들려오는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어···외삼촌 숨 좀 돌리고 진정하고 말씀하세요.”
“그러니까···잠깐···연미 옆에 있니?”
“네 지금 옆에 계세요.”
“우선 전화 좀 바꿔줄래?”
나는 순순히 휴대폰을 어머니에게 넘기고 밥상을 정리하면서 귀는 어머니와 외삼촌의 통화 소리에 기울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외삼촌의 목소리에 훈훈했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이내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아니 내 번호 말고도 어머니 번호로도 전화가 동시에 오다시피 했는데 나한테 전화해서 어머니한테 바꿔달라고 하신 거지?’
나는 걱정돼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어머니가 들고 있는 내 휴대폰의 흐릿한 푸른빛이 이정표처럼 보였다.
어머니도 내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걸 느끼셨는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담담해 보이려 애쓰지만 슬픔으로 흐릿한 그 눈동자 어머니가 힘겹게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이내 힘이 빠진 것처럼 휴대폰을 든 손을 나에게 넘겼다. 외삼촌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너무 당황해서 주인이에게 먼저 전화했는데 그래도 아직 미성년자니까 연미 네가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자꾸 이런 소식만 전하니까 너한테도···.”
“외삼촌?”
“아···주인이니? 연미는 옆에 있어?”
“네 그런데 어머니가 좀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제가 집에 모시고 좀 괜찮아지면 외삼촌한테 전화할게요.”
“그··럴까? 내가 너무 경황없이 행동했구나. 정리되면 연락 주렴.”
외삼촌의 당혹스러운 목소리는 이제까지 외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한 번 들었었다. 삶과 죽음을 항상 봐오는 의사여서 죽음 앞에서 담담할 것만 같은 의사도 한 명의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당혹성과 슬픔이 담긴 목소리···
“엄마 우선 추우니까 집으로 가요.”
“주인아···.”
“엄마.”
어머니를 부축하기 위해서 다가간 나를 말 그대로 붙잡고 서글프게 그러나 어쩌면 안도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아 엄마는 주인이하고 주신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 너희 아빠가 저렇게 되고도 너희만 보고 그렇게···”
“엄마···?”
나는 단단하게 붙잡듯이 꼭 안아준 어머니는 담담하게 한마디를 하고는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외삼촌한테 전해줘. 말해줘도 괜찮다고 나는 내 아들을 믿는다고.”
“네?”